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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의림사지 지표조사 보고서

2002-03-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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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 종합고찰 이번 지표조사는 의림사의 사역을 확인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그간 여 러경로를 통하여 의림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에 대한 확인 작업을 병 행하여 사찰의 변천과정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실시하였다. 그러나 지표조사라는 한계로 인하여 사역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의림사지는 오랜 세월동안 방치되면서 마을이 들어서고 경작으로 인 하여 훼손되어 현재는 연화대석이 남아 있는 과수원 일대를 제외하고 는 사지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또한 1975년 충주공업전문대학의 이영 택 학장에 의하여 과수원 일대가 발굴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당시 의 조사내용과 사진, 출토유물 등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상황을 파악 할 수 없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건물지 유구와 특히 연화대석 주변을 정리하여 전모를 파악하였다.여기에서는 이번 조사의 주된 유구와 유 물을 분석하고자 한다. 의림사지의 사역은 동서쪽으로 현재 연화대석이 남아 있는 과수원 주 변에서 대원고등학교까지로 추정된다. 이는 1970년대부터 기와가 다량 으로 출토된 지역이 과수원(537번지)일대이고, 1989년에는 대원고등학 교 남동단에서 청동반자가 출토되었으므로 동일 사역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최근에 신축된 대원고등학교 체육관은 의림사명 청동반자가 출 토된 지역과 접하고 있으나 공사시 기와등의 유물도 출토되지 않았다 고 한다. 또한, 마을과 대원고등학교 사이의 논과 과수원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각각 별도의 사역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 리고 남북쪽은 현재 마즈막재를 향해 개설되어 있는 520번 지방도 북편 의 구 도로에서 축사 서쪽의 과수원 일대까지로 추정된다. 이는 구 도 로 남쪽에서는 기와 등의 유물이 출토되지 않고, 축사가 있는 지역은 최근에 복토하였다고 한다. 과수원(537번지)은 연화대석이 밭 중앙에 반 정도 매몰되어 있고 연화 대석의 동북쪽에는 치석된 석재로 조성된 건물지의 기단이 노출되어 있다. 이 기단은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불상 대좌 하부 구조로 추정 되므로 금당 등의 중심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 주민들 의 증언에 따르면 기와도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고 하고, 석조유물이 남 아 있어 이 지역 일대가 사역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었던 곳으로 추정된 다. 사명은 청동반자가 출토되면서 사명과 발원문, 조성시기, 발원자 등 의 연원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사명이 '禪義林寺'로 밝혀졌으며, 반자의 제작시기는 고려 명종 20년(1190년)으로 의림사는 최소한 12C 말까지는 법등이 이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 은 '禪義林寺'라는 사명이다. 사명으로 보아 선종계통의 사찰임이 확실 시되는데 신라하대부터 충주지역에도 선종사찰이 개창되었을 것이다. 이는 월악산 월광사에 주석했던 원랑선사와 신라 진성여왕 4년에 건립 된 그의 부도탑과 탑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월광사에서 멀지 않은 문경군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 지증국사가 창건하여 선풍으로 일으켜 9산선문의 일맥인 희양산파를 이루어낸 곳이기도 하다. 봉암사 와 월광사와 같은 신라하대의 선문사찰과 지리, 문화적 영향권에 근접 되어 있는 충주 인접지역인 괴산 각연사에 통일대사가 주석하였음을 볼 때 고려 초 충주지역에는 선풍이 크게 확산되었다고 생각된다. 비록 청동반자는 12C 말에 조성된 것이나 발원자 중에 부호장 劉張輔 라는 명문이 있음을 볼 때 의림사는 충주의 명문 호족세력과 밀접한 관 계를 유지하였던 선종사찰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는 羅末麗初 최대 의 지방세력으로 대두되어 중앙정계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되 는 유긍달, 유권설의 충주 유문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가졌던 사찰로 추정되어 진다. 충주 철불좌상은 양식적으로 볼 때 시대의 한계성에서 나타나는 도식 화 현상이 뚜렷하다고 하겠는데 그 중에서도 슬부와 의문 등이 지나치 게 도식화되어 있어 이 철불이 고려후기의 소작이라는 견해가 있어 왔 다. 그러나 존안에 나타나는 위엄과 근엄한 모습은 전대의 불상이나 양 식계보를 애써 따른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독창적 양식이 발휘된 것으 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 철불은 고려초에 충주호족이 관련되어 개창된 의림사의 주존불로 봉안되었다가 의림사 폐사 이후 오랜 기간을 염해 평에 노천불로 방치 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초기에 충주군청으로, 다시 본원사(마하사)로 옮겨지고 1959년 대원사로 이안된 후 화재로 인하여 충주박물관에 이관되었다가 다시 대원사 극락전에 봉안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연화대석은 충주 철불좌상의 대좌로 추정되었으며, 폐사된 이후 철불 좌상이 반출된 이후 원위치를 이탈하여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기와류는 수막새기와, 암막새기와, 평기와, 착고기와, 치미편 등이 출 토되었다. 수막새기와는 연화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연화문은 단파연화문, 8엽 연화문, 연화문 끝에 삼각형으로 조식하여 연꽃의 뾰족함을 표현 한 형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암막새기와는 고사리문 암막새기와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당초문 과 일휘문 암막새기와가 출토되었다. 고사리문 암막새기와는 중앙에 원형돌기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끝이 말린 고사리문을 조식하고 외 부에는 2단의 주연대를 형성하여 외부의 1단은 무문이고, 내부의 1단 은 연주문을 표현하였다. 당초문과 일휘문 암막새기와는 일부분만 수 습되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평기와는 무문과 직선문, 어골문, 사격자문, 복합문 등의 평기와가 출 토되었으며, 치미편, 착고기와, 벽동 등이 수습되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의림사지는 그 동안 안림동사지, 이궁지, 대궐터, 어림동 등으로 전칭되어 오다가 청동 금구가 출토되면서 寺名 이 밝혀지게 되고, 신라말에 유행한 선종계통의 사찰로 시대적인 상황 과 출토된 유물 등을 종합해 볼 때 고려 초에 개창되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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