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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업사

2002-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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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 맺음말 봉업사는 高麗 太祖의 眞影을 봉안한 眞殿寺院으로 恭愍王이 竹州에 이르러 태조의 眞影을 알현할 정도로 위엄있는 사찰이다. 이를 반증하 듯 사역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오층석탑·당간지주·석불입상 등 다수 의 석조문화재가 밀집되어 분포한다. 이 점은 사찰이 조성되었을 당시 규모가 매우 컸던 사찰임을 추측할 수 있으나 사역이 모두 경작지로 변 하여 봉업사에 대한 정확한 성격은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이러한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실시된 두 차례의 발굴결과, 경기지역 최대 의 거찰인 봉업사지는 통일신라시대의 華次寺로 초창되어 고려시대에 奉業寺로 변화되었다. 이 변화과정에서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데 큰 기여를 한 能達이 봉업사 창건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대규 모 중창시기가 고려 광종대임을 확인한 점, 또한 오층석탑 북편의 중심 사역 북서쪽으로 진전의 위치를 비정할 수 있었던 점이 이번 발굴의 가 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의 발굴성과를 바탕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정리하며 맺음말 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오층석탑 북편의 중심사역에서 21개소, 북서쪽으로 200m떨어진 지역에서 7개소의 건물지 등 모두 28개소의 건물지와 부속시설을 확인 하였다. 특히 북서쪽의 2차 발굴지역은 오층석탑 북편의 1차 발굴지역 의 출토유물과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곳까지 사역이 이루어졌 으며 유적입지,유구 구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봉업사의 주요건물지인 眞殿이 있었던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동일 거리에 위 치하고 있는 북쪽의 죽산리 삼층석탑, 석불입상 등까지 사역의 범위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케하여 당시 대규모의 사찰이 건립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유물의 양상과 함 께 건물지도 상층-중층-하층 등으로 중복되거나, 교란되어 전혀 다른 배치형태를 보이는 점 등으로 보아 사역의 가람배치도 시기에 따라 계 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華次寺"銘 기와는 고려시대 眞殿寺院으 로 알려진 봉업사 이전의 사찰명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매산리석탑 의 塔誌에 의하면 永泰 2년 丙午年(惠恭王 2年 · 766) 3月 30日 朴씨와 芳序, 命門 승려 2명이 석탑을 조성하기를 먼저 모의하고 이를 이루었 다는 기록으로 보아 봉업사는 이 시기에 창건되어 나말여초의 시대적 혼란기를 겪으면서 여러 호족세력들과의 관련을 맺으며 그 역할을 수 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1차 발굴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 으로 추정되는 木塔址와 이와 관련된 유구가 일부 확인되었고, 역시 이 시대의 유물이 계속적으로 출토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셋째, 9세기 말 후삼국시대에 이르면 봉업사를 중심으로 하는 죽주지방 은 혼란을 거듭하여 箕萱을 대표로 하는 농민반란군의 근거지로 竹州 山城에 자리하게 되며, 이후 弓裔와 결탁하게 된다. 즉 신라말 고려초 의 봉업사는 이 지역의 유력한 세력이었던 기훤, 궁예 등에 의해 자신 들의 세력확장과 농민규합에 이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 려가 후산국을 통일하면서 왕건은 궁예의 지지기반이었던 청주세력을 비롯하여 이곳 죽주의 호족들을 견제하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청 주호족출신으로 고려왕조 개국에 기여한 "能達" 을 파견한 것으로 "凡 草〔伯士〕能達毛"銘 명문기와를 통해 짐작하게 한다. 즉 능달은 이곳 죽주에서 봉업사를 중심으로 하여 불사를 일으키며 지역적 안정을 구 축하였다고 볼 수 있다. 넷째, 명문기와 중 고려 광종 때 연호와 간지를 나타내고 있는 "峻 豊" "乾德" "戊午" "辛西" "己巳" "甲戌"銘 기와와 서원경 즉 청주를 나 타내는 "西州官"銘 기와가 사역전체에서 다수 출토되었으며 이와 병행 하여 동일시기에 인근 望夷山城에서도 개축이 이루어지고 동일한 기와 류가 출토된다는 점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시기 죽주지방은 서원경과 중원경으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고려 광종의 왕권강 화 및 중앙집권화를 통한 개혁정책을 수행하는데 군사적, 종교적인 면 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봉업사는 이 시기에 이르러 국가경영의 중심사찰로서 太祖의 眞影을 모신 眞殿寺院으로서 성장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다섯째, 출토된 명문기와 중 시주자나 승려의 인명으로 보이는 "千年主 人光大" "水仁· 水吳"등의 명문기와와 불교적 장식을 가미한 연화문, 당 초문 계열의 평기와가 출토되는 점을 통하여 고려 성종 때 까지 불사 가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출토되 는 고려청자들은 순청자계열과 상감청자계열로 나뉘어지며 특히 2차 발굴지역에서는 12세기의 청자접시 23점, 청자잔 10점 등 모두 33점이 안정된 층위에서 포개진 상태로 일괄 출토되어 편년 설정에 중요한 자 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고려중기 이후까지도 봉업사가 매우 성행 하였음을 알려준다. 여섯째, 『高麗史』의 기록은 고려말까지도 봉업사의 위상을 전해주 고 있다. 공민왕이 竹州에 이르러 태조의 진영을 봉업사에서 알현하였 다는 것은 還都와 관련하여 三司右使인 李仁復을 開泰寺에 보내어 점 을 쳤던 사실과 더불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나라의 중요한 일을 두고 봉업사에서 태조의 진영을 알현하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이 곳이 국가의 중요한 사찰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민왕의 봉 업사 행행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던 행위이다. 혼란스럽던 고려말의 정 세를 극복하고 새롭게 왕권을 강화시켜 나가고자 했던 공민왕의 봉업 사에서의 태조 진영 알현은 고려초의 중창사실과 더불어 국가의 중요 한 역할을 수행하였던 사찰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 론이다. 마지막으로, 발굴을 통하여 수습된 옴字銘 암막새는 六字眞言信仰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六字眞言과는 약간은 다르나 密呪를 외우는 신앙은 고려후기 이래 강조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성행되었던 이 진 언은 초기에는 옴마니반메훔이라는 6자의 진언이 모두 표현되어 있었 으나, 후에는 옴만을 새기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봉업사의 옴字銘 암막 새는 바로 이 후대의 신앙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 봉 업사지의 조사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봉업사는 통일신라시대에 " 華次 寺"로 초창되었으며 이후 고려전기에 이르러 태조의 진영을 모신 진전 사원인"奉業寺"로서 대규모 중창을 하여 사역의 범위가 죽산 일대까지 확대되었으며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번성하여 고려말까지 국가의 중요 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사찰로 생각된다. 이후 봉업사는 조선시대 초기 까지도 일부 법맥이 이어진 것으로 보이나 『東國與地勝覽』이 편찬되 던 시기 전에는 폐사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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