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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 三足土器의 擴散과 消滅過程 硏究

2002-06-24 00:00:00
조회 1332
1990년대 이래로 百濟考古學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나, 아직 많 은 부분에서 세밀한 硏究가 요구되고 있다. 本考는 百濟의 文化와 歷史 의 復原을 위하여, 百濟土器 중 한 器種인 三足土器에 대한 분석을 통 하여 百濟土器文化의 變化樣相의 한 單面을 살펴보는 것을 目的으로 한다. 三足土器는 百濟 初期부터 末期까지 사용되는 주요 器種인 동시 에 百濟 이외의 이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百濟의 固有한 土器이 다. 최근까지의 三足土器에 대한 硏究는 百濟土器라는 큰 흐름 안에서 이해되고 있으나, 삼족토기 자체의 구체적인 變化樣相과 擴散過程에 대해서는 그 硏究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현재까지 發掘調査된 삼족 토기를 대상으로 하여 형식분류와 편년설정을 시도하고, 그 결과 어떠 한 과정을 거쳐 擴散되고 消滅하는지, 또 그러한 過程이 어떠한 意義 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일단 三足을 갖춘 土器는 그 器形에 관계없이 모두 同一한 類型의 범 주에 속하는 土器로 보아 검토대상에 포함시켰다. 그 다음 뚜껑의 유무 에 따라 有蓋式과 無蓋式으로 구분하고, 胴體部의 形態에 따라 다시 盤 形과 杯形으로 구분하여 有蓋式 盤形三足土器, 無蓋式 盤形三足土器, 有蓋式 杯形三足土器, 無蓋式 杯形三足土器의 4개 器種으로 분류하였 다. 有蓋式 盤形三足土器는 肩部의 形態에 따라 2개 型式으로, 無蓋式 盤形三足土器는 口緣部의 形態에 따라 2개 型式으로 구분된다. 無蓋式 杯形三足土器는 口緣部의 形態에 따라 2개 型式으로 구분되며, 有蓋式 杯形三足土器는 肩部의 形態와 杯身部의 深度指數, 口緣部의 높이指數 에 의해 6개 型式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三足土器는 총 12개 型式으로 세분되며, 각 型式의 出現樣相의 變化에 의해 크게 Ⅰ期(出現)-Ⅱ期(擴 散)-Ⅲ期(消滅)로 구분될 수 있다. Ⅰ期는 3世紀 중·후반에서 5世紀 중반의 三足土器가 百濟遺蹟에서 처 음 출현하는 時期로 서울・경기지역의 몇몇 遺蹟에서만 대량으로 출토 된다. 前半에는 有蓋式 盤形三足土器b型을 제외한 모든 盤形三足土器 와 有蓋式 杯形三足土器a型・c型이 나타난다. 後半은 4世紀 중반에서 5世紀 후반으로 1期에 출현한 형식들이 유지되면서, 새로이 有蓋式 盤 形三足土器a型, 無蓋式 杯形三足土器, 有蓋式 杯形三足土器b型・d型 이 나타난다. Ⅱ期는 5世紀 중반 경에서 6世紀 중반으로 三足土器가 古墳副葬品으 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擴散되는 시기이다. 地方의 土着 勢力의 古墳에서 三足土器의 副葬이 나타난다. 古墳 副葬品으로는 有 蓋式 杯形三足土器d型이 많이 사용되는데, 盤形三足土器와 無蓋式 杯 形三足土器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Ⅲ期는 6世紀중반에서 7世紀 중반으로 三足土器가 扶餘, 論山, 益山 등의 중심지역에서부터 서서히 消滅되어가는 時期이다. 이 時期의 前 半에는 扶餘를 비롯하여 論山, 益山 등 百濟 주요지역에서는 三足土器 가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지만, 西海岸 地域의 古墳群에서는 당시까지 古墳副葬品으로 활발하게 사용된다. 後半에는 扶餘와 같은 중심지에서 는 三足土器가 거의 거의 보이지 않으며, 西海岸 부근의 保寧, 舒川地 域의 古墳에서도 서서히 三足土器를 부장하지 않게 되어 百濟의 전지 역에서의 三足土器 사용이 消滅하게 된다. 三足土器는 夢村土城과 風納土城에서 밝혀진 여러 자료에 의해 祭祀 用器로서의 성격이 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風納土城 경당지구 9 號 土壙, 夢村土城 85-2號 土壙墓에서 확인된 파괴된 三足土器, 熊津都 邑期와 泗沘都邑期의 石室墳에서 확인되는 足部除去 三足土器 등은 모 두 동일한 형태의 祭祀儀禮에 이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百 濟 固有信仰의 儀禮와 관련된 用器로 三足土器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三足土器의 擴散過程은 百濟 祭祀儀禮의 擴散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世紀 중반에 이르면 百濟는 地方支配體制를 整備하면서 王의 子弟나 宗族을 地方官으로 派遣하거나, 地方의 有力勢力를 中央貴族으 로 編入시키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百濟 中央의 固有한 祭祀儀禮가 地方으로 확산되었고, 그 결과 변방지역의 古墳에 三足土器가 副葬되 기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三足土器가 처음 古墳에 부장 되 는 지역은 淸州, 論山, 益山 등 당시 百濟의 중요 地方據點地域이며, 土 壙墓나 竪穴式石槨墓와 같은 地方勢力에 의해 사용되던 墳墓에 副葬되 기 시작하는 점은, 三足土器의 擴散이 地方統治體制의 整備와 聯關되 어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삼족토기의 확산과정은 단순한 領域의 擴 張,物理的 地方統治體制의 强化를 넘어서서, 百濟의 固有信仰의 擴散 過程이 反影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6世紀 중반부터의 시작되는 삼족토기의 쇠퇴는 지역에 따라 매우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단일한 원인을 찾기가 어렵 다. 다만 三足土器의 擴散과 마찬가지로 百濟 固有信仰에 변화가 크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 원인으로는 이 시기에 급격히 발전한 百濟佛敎의 影響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百濟 固有 信仰의 祭祀儀禮에 관한 자세한 硏究가 진행되지 못했고, 百濟佛敎와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그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기 때문 에 어떠한 구체적인 상황이 삼족토기의 소멸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 혀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삼족토기의 정확한 基源과 性格이 밝혀지고, 百濟 祭祀儀禮의 모습이 규명된다면, 三足土器의 擴散과 消 滅의 원인, 또 이러한 일련의 변화과정이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분 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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