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
신라 西原京 治址 연구
1999-11-30 00:00:00
조회 1426
<국문요약>
청주지역은 금강과 한강수계가 접하는 지리적 요충지로
써, 삼국은 청주지역을 차지하고자 치열한 접전을 벌였
다. 이 지역을 제일 먼저 영유한 백제는 청주지역에 상당
현을 설치한 뒤 상당기간 지배하였다. 백제에 이어 이 지
역에 진출한 나라는 신라이다. 신라가 청주지역을 차지한
것은 6세기 중엽이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신문왕 5년 청주에 서원(소)경
을 설치하였다. 그 동안 서원경의 연구는 몇몇 문헌과 단
편적인 자료에만 의존한 나머지 그 동안 축적도니 발굴성과
와 유적, 유물, 자료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불충분하였
다.
특히 서원경의 治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의견
이 제시되고 있을 뿐 정론이 추출되지 못한 실정이라고 하
겠다.
본 연구는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모두 종합하여 서원경의
치소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청주는 마한의 옛 땅으로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청주
는 백제의 낭자곡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사서에도
본백제... 라고 표기되어 있고, 신봉동일대에서 출토되는
유적, 유물로 보아 백제가 이 지역을 선점한 것은 사실로
볼 수 있다.
또한 신봉동고분군 인근인 청원 주성리 유적에서 형식이 다
양한 백제 토광묘와 5~6세기의 석곽묘, 석실분, 적석목곽
분이 조사되었다. 그리고 청주시 흥덕구 西村洞에서 1976
년 수습된 고배, 유공광구호 등의 회청색 백제토기의 편년
이 6세기 중엽으로 판명되는 것으로 볼 때, 백제의 청주
지배는 6세기 중엽으로 끝났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청주진출은 6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6세기 중엽
한강하류를 빼앗긴 백제가 신라를 정벌하려고 벌인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한 후 신라와 경계인 백제의 동쪽 영
토 대부분이 상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청주도 이때에 신라
에 영유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백제계 유물이 6세기 중
엽에 청주에서 소멸되는 것을 볼 때, 6세기 중엽에는 신라
가 청주를 영유한 것으로 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옛 고구려와 백제 지역을 효율적
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전국에 九州五小京을 설치하였다.
청주에 설치된 서원경 치지와 관련하여 4곳이 거론된다.
즉 상당산성, 우암산성, 당산토성, 청주읍성이다.
청주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7세기에서 10세기 유물과 유적
은 서원경의 치지를 규명할 만큼 충분하다. 청주지역에서
이시기 유적과 유물들은 오늘날 청주의 중심부인 무심천 주
변에 밀집되어 있다.
이러한 유물의 분포 현상으로 서원경의 치지는 무심천 일대
에서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특히 서원경 치지
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도시구조이다. 통일신라 도시
계획의 특징은 왕경(경주)으로서 대표되고, 5소경은 경주
의 원형을 따라 건설되었다. 신문왕 7년과 11년에 쌓은 沙
伐州城과 남원소경성이 시가지 흔적이 있는 평지성으로 판
명되고, 또한 중원경의 위치가 최근 남한강변의 평지인 塔
坪里 일대로 비정되는 것으로 볼 때, 신문왕 9년에 쌓은
서원경성도 하천을 낀 평지에 건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무심천 서북쪽에 서원경이 설치된 이듬해(686년)에
건립한 雲泉洞신라사적비가 발견되었다. 이 사적비의 내용
으로 볼 때 서원소경은 왕권과 일정한 관련을 갖고 설치되
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이 비는 단순히 한 사찰의 역사
를 기록한 事蹟碑가 아닌 신라의 일통삼한의 의지와 國泰民
安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 비가 산중이 아닌 무심천변 평지에 건립된 것을
통하여 1년 전에 축성된 서원경성도 산중이 아닌 평지에
그것도 사적비 인근에 건립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무심천을 중심으로 9세기에 집중적으로 불교 유적이
조영되는 것과 무심천변에서 3킬로미터에 상거한 용담동,
명암동에서 7세기에서 8세기로 판명되는 고분군이 분포하
는 점을 볼 때, 서원경의 치지도 무심천 인근에 조영되었
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신라 9주 5소경 도
시구조는 물론 고분, 불교유적, 유물의 분포 상황을 종합
해 볼 때 무심천변에 소재한 청주읍성이 서원경 치지였음
이 확실하고, 이 치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동쪽으로 우암산
성, 상당산성, 서쪽으로 부모산성, 남쪽으로 양성산성,
북쪽으로 목령산성을 배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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