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

고려시대 분묘 연구

2004-08-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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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次> Ⅰ. 머리말 1. 硏究史 2. 硏究方法 Ⅱ. 陶器出土 現況 1. 京畿道 (1) 龍仁 佐恒里 高麗墳墓群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2) 龍仁 麻北里 高麗古墳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3) 龍仁 麻北里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4) 安山 大阜島 六谷 高麗 古墳群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5) 駕洛 許侍中公 무덤 (6) 驪州上橋里 上方下圓石室墓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7) 驪州 하거리방미기골 古墳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8) 더부골 古墳群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9) 坡州 瑞谷里 高麗壁畵墓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10) 安山 釜谷洞 옛무덤 (11) 華城 屯垈里遺蹟 2. 忠淸道 (1) 忠州 丹月洞 高麗墓(1차)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2) 忠州 丹月洞 高麗古墳群(2차)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3) 中原 樓岩里 古墳群 (4) 忠州 水龍里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5) 忠州 直洞古墳群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6) 沃川 玉覺里 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7) 忠州 虎岩洞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8) 淸州 金川洞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9) 天安 長山里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10) 天安 南山里 高麗墓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11) 鳳岩里遺蹟(Ⅰ)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12) 公州 熊津洞 古墳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13) 保寧 九龍里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3. 江原道 (1) 江陵 坊內里 高麗墓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2) 襄陽池里 高麗墳墓 4. 慶尙道 (1) 尙州 屛城洞古墳群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2) 漆谷 梅院里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3) 蔚珍 烽山里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4) 安東 亭下洞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5) 慶山 林堂遺蹟(Ⅰ)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6) 金泉 帽岩洞遺蹟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5. 全羅道 (1) 茂朱 柳洞里 高麗墓 (2) 壽川里高麗古墳群 1) 유적의 검토 2) 유물의 검토 Ⅲ. 陶器의 形式分類와 編年 1. 器種 (1) 陶器類 1) 壺 ① 短頸壺 ② 長身壺 ③ 扁壺 2) 甁 ① 盤口甁 ② 叭口甁 ③ 梅甁 ④ 扁甁 (2) 共伴遺物 1) 磁器類 ① 磁器甁 ② 磁器壺 2) 銅器類 2. 形式分類 (1) 陶器類 1) 陶器壺 2) 陶器甁 (2) 共伴遺物 1) 磁器甁 2) 靑銅器皿 3. 編年 Ⅳ. 高麗陶器의 變遷과 地域性 1. 京畿道 2. 忠淸道 3. 江原道 4. 慶尙道 5. 全羅道 6. 小結 Ⅴ. 맺음말 參考文獻 附錄 Abstract 이글은 고려시대 분묘유적을 대상으로 각 지역별 유적과 유물을 분석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분묘출토 고려도기의 편년을 시도한 글이다. 지역별 유적의 검토에서는 아래와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용인 마북리 유적의 경우에서와 같이 석실묘와 석곽묘가 토광 묘에 비해 조영시기가 빠른 것으로 생각된다. 전 지역을 통틀어 무덤 의 규모가 큰 석실과 석곽은 동일 묘제끼리의 중복은 극소수이나 토광 묘와의 중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토광묘가 석실묘와 석곽 묘에 비해 경우에 따라서는 조영시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지역도 있 다. 이와 같은 현상은 유적에 따라 각 묘제별 조영공간이 제한적으로 차별화되어 쓰였던지 혹은 동일 유적 내에서의 시기적인 차이를 반영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위와 같은 경우는 단월동 고려묘(1차)와 단월동 고려고분군(2차)에 서 그 대략을 추정할 수 있다. 양 유적은 동일지역에 연접하여 서로 다 른 능선에 조영되어있을 뿐 조영 시기는 12세기대로 시간적인 차이는 거의 없으나 2차가 다소 빠르다. 다만 1차는 석곽묘와 토광묘가 서로 중복되며 조영된 반면 2차는 석곽 8호와 9호만이 중복되었을 뿐 거의 동일 능선 상에 석곽묘만 조영되어있다. 묘제상의 이러한 현상은 仁宗代부터 심화된 귀족사회 내부의 갈등고 조가 결국 1170년에 武臣의 亂으로 이어지고 田柴科體制의 붕괴와 지 방사회의 民亂發生을 불러온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좀더 부 연하면 이와 같은 일련의 연속된 기존사회질서의 붕괴는 고려사회 전 반에 걸친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을 급박하게 발생 시켰으며 묘제의 중첩 현상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묘역시설을 갖춘 묘들은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조영 되었고 12세기를 정점으로 경기 이외의 지역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보 인다. 또한 피장자의 신분은 관인층 내지는 지방의 향리층으로 추정된 다. 이러한 분묘들은 羅末麗初에는 내부 매장주체부가 석실 또는 석곽으 로 조영되고 외부에 원형의 호석을 두른 형태에서, 9세기 代에 내부 매 장주체부가 석실 또는 석곽으로 조영되며, 외부는 원형의 호석을 두르 고 앞쪽에 방형의 대석을 배치한 형태로 변형된다. 10세기 代에 접어들 면서 내부 매장주체부가 석실과 석곽으로 조영되고, 외부는 방형의 호 석과 담장, 그리고 2단의 참배단을 마련한 형태로 정형화 된다. 이러한 사실은 경종원년의 분묘규모 금제를 통해서 증명된다. 또한 단순히 묘 규모의 금제가 아닌 묘역 규모의 금제이며 당시에 사용된 척은 주척으 로 고려말까지 사용되었다. 12세기에 접어들면 외부는 형태상 변화가 보이지 않으나, 내부 매장 주체부가 석실, 석곽뿐만이 아니라 토광도 채용 되고 있다. 즉 토광묘 위에 방형의 호석과 담장을 두르고 앞쪽으로 이단의 참배단을 마련한 묘들이 조영된다. 셋째, 지역에 걸쳐 다양한 묘제들이 조사되었으나, 모두 목관을 사용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화장묘의 경우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상당히 성행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분석대상 유적에서는 극소수밖에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연유는 당시의 葬禮節次에 관한 고려 없이 무덤의 조영방법 에 따라 석실, 석곽, 토광묘 등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지금 의 장법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단지 單葬으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二次 葬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지로 청자가 반출되는 고려 시대 묘 주변에서 유물이 단 한점도 출토되지 않는 허술한 토광묘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 토광묘를 전부 일반 民墓로 보기보다는 肉脫 을 위해 一次葬으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二次 葬의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증거를 발굴현장에서 획득하기란 매우 힘들 다. 넷째, 부장유물은 자기 대접과 청동 합(발), 자기병․호, 도기병․호 가 세트를 이루며, 가위, 동경, 동곳, 인장 등이 개별적으로 부장된다. 13세기 전기 까지는 병류가 대부분 부장되나 고려후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호류로 대치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기와 자기를 불문하 고 13세기 전기 이후에는 반구형의 입술을 가진 병은 소멸되는 것으로 보인다. 13세기 이후로는 주로 팔구형의 병이 부장되며 조선으로 그 전 통이 이어진다. 자기병은 9세기에서 11세기 전기까지의 유적에서는 대부분 녹청자가 출토되어 주목된다. 녹청자에 관해서는 주류학계에서 원시청자로 보 는 견해와 지방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질청자로 보는 견해가 팽 팽히 맞서고 있으나 출토유적의 조영연대로 보아 원시청자로 보는 견 해에 무게를 더한다. 또한 입술의 형태가 9세기~10세기 중기대의 도기 병과 유사해 주목해볼만하다. 또한 10세기대에 철회청자와 흑유자기 가 번조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묘 내부에 부장되는 유물 중, 분묘군 사용집단의 사회․경제 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있다. 이러한 유물은 슬러그로 중원 누암리 고분군과 직동 고분군, 충주 단월동 1차 조사에서 묘 바닥 안에 넣는 경우가 조사되어 무덤 주인공이 철과 관련이 있음을 암묵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충주 지역은 이중환이 ꡔ擇里志ꡕ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강 상류이어 서 물길로 오가기 편하였던 교통의 요지이며, 철의 주요 산지였다. 더 욱이 고려시대에는 多仁鐵所가 있었던 곳으로 예로부터 철과 관련이 깊은 고장이다. 고려시대에는 丹月部曲이 있었던 곳으로, 무덤의 주인 공을 부곡민을 지배하던 長吏로 볼 수도 있고, 무덤 내부에서 발견되 는 슬러그로 보아 多仁鐵所와 연관이 있는 戶長層과의 관련도 고려해 보아야할 것이다. 상기한 검토결과를 바탕으로 도기를 중심으로 형식분류를 한 결과에 의하면 Ⅰ期에는 반구병과 팔구병이 모두 제작되었고, 반구병은 입술 측면에 두 줄의 홈이 돌아가면서 입술이 밑으로 처져 뾰족하게 돌출된 형태로 목은 짧은 것과 긴 것이 공존한다. 동체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찌그러트린 편병도 보이며, 견부에는 1~2줄의 음각선을 돌렸고 저부에 는 굽의 흔적도 일부 보인다. 팔구병은 구연의 모양이 다를 뿐 반구병 과 유사한 胴形을 보이나 목은 짧다. 공반유물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자기병으로 그 형태가 도기병과 유사 하다. 더욱이 저부에 흔적이 아닌 분명한 굽이 달려있어 주목되며, 도 기병의 모습과 아주 유사해 제작기술상의 토대는 종래의 도기제작전통 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Ⅱ期 역시 반구와 팔구병이 모두 제작되며 Ⅰ期에 보이던 반구병의 모습은 10세기 중기를 전후로 입술 측면에 한 줄의 홈이 돌아가던지 점 차 홈이 없어지고 입술이 밑으로 처져 뾰족하게 돌출된 형태는 점차 사 라진다. 肩部에 1줄의 음각선을 돌렸고, 굽의 사라지고 Ⅰ期에 보이던 팔구병 의 모습은 11세기를 전후한 시점에서 전형적인 팔구병의 모습을 보이 며 Ⅲ期에 접어들어 굽이 달리며 조선으로 그 맥이 계승된다. 도기호는 Ⅰ기에는 단경호의 胴形에 굽이 달려 있는 것도 보이나 10세 기 전기에는 평저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장동병은 10세기 중기부터 羅末麗初까지 계속된다. Ⅰ期에 보이던 자기병은 10세기 중기를 기점으로 점차 사라지고 대 신 입술측면이 단순해지며 저부에 굽은 사라진다. 이시기에는 흑유자 와 철화청자가 보이며 역시 녹청자도 많이 보인다. Ⅲ기에는 12세기 전기 경에 전형적인 도기매병이 보이고, 도기병과 호 모두 Ⅱ기의 양상을 보이나 13세기 중기를 기점으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해 Ⅳ期로 접어들면 팔구병을 제외하곤 소멸된다. 이러한 양상은 자기병에 있어서도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Ⅳ期에는 도기반구병이 사라지고 팔구병과 호가 주로 부장되는 특징 을 보이며, 자기류에 있어서도 동일한 양상을 도출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려도기의 변천과정은 종전까지의 陶磁史 중심적 견해에서 벗어나 도기를 중심으로 진행하여본 연구에 의의가 있으나 분묘출토 도기기종이 다양하지 못해 고려도기를 중심으로 한 지역성 도출은 미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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