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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2002-11-19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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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1. 조 사 유 적 : 익산 왕궁리유적 2. 조 사 지 역 : 왕궁리유적 서북편지역 3. 조 사 기 간 : 3월 4일~11월 19일 현재 4. 조 사 면 적 : 약 6,500㎡(약 2,000坪) 5. 조 사 기 관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홍성빈) 6. 조 사 목 적 2001년도 발굴조사된 王宮里遺蹟 서북편의 燒土溝와 연계된 燒土遺構 [工房址] 확인조사, 소토구와 연결되고 있는 지하의 布石施設에 대한 연장조사, 왕궁리유적 북편의 宮城을 가로지르고 있는 南北 稜線의 西 斜面에 대한 遺構확인조사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2001년도에 미확 인된 유구와 연계하여 이 일대에 대한 유구의 성격을 파악하고 西城壁 과의 연관관계를 조사하여 왕궁리유적의 성격을 좀더 구체적으로 규명 하고자 한다. 7. 조 사 개 요 王宮里遺蹟은 彌勒山으로부터 시작된 地脈이 龍華山을 거쳐 끝나는 곳 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맥으로 형성된 남북방향의 능선을 가운데에 두 고 長方形으로 宮城을 시설하였기 때문에 東‧西 城壁은 상당히 급한 경사로 이루어진 낮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北城壁은 그 경사면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이번 발굴조사지역인 城 北西便은 예전에 능선의 西斜面을 과수원으 로 이용하였으며 서편의 金馬‧全州간 國道변의 일부는 개간하여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이번 발굴조사는 2001년도에 조사된 서북편지역에 대한 연장조사로 2001년도 발굴지역의 남편지역을 전반적으로 확장조사하였으며 유구 의 가능성이 대두되어 왔던 城內 북편지역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稜線 西斜面 탐색 Trench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는 北城壁에서 남으로 50m 떨어진 곳에서 100m 폭으로 西城 壁을 포함하여 동편으로 100m 가량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였으며 그곳 에서 동편으로 중앙에 남북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 능선까지 탐색 Trench를 설정하여 遺構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조사지역 남쪽에는 남북방향으로 형성된 西城壁과 직교하여 동서방향 으로 바닥에 돌을 깐 폭 1.5m의 石築 排水路가 축조되어 있으며 그 북 편에서는 수레바퀴 자국이 남북방향으로 20여m 폭에 걸쳐 나타나고 있 다. 수레바퀴자국과 西城壁 사이에서는 수레바퀴자국이 나타나고 있는 층 의 아래에서 2001년도에 확인된 燒土溝와 연결되는 燒土層이 조사되었 다. 조사지역 북편에서는 2001년 발굴조사 당시 확인된 燒土溝와 연결되 어 동서방향으로 형성된 지하의 布石施設을 연장하여 조사하였다. 이 布石施設은 동서로 길게 연장되다가 남쪽으로 꺾여서 원형 구덩이로 연결되어 마무리 되었으며 그 동북편으로 다시 새롭게 生土層을 파내 고 형성된 布瓦施設이 동서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布瓦施設은 둥글게 곡선을 이루며 남으로 꺾이면서 남북방향으로 시설된 地下 石 壁施設과 연결되고 있다. 이 石壁施設은 남북방향으로 곧게 내려오다 가 동서방향으로 꺾이면서 燒土溝와 연결된 북편의 布石施設과 같은 형태의 布石施設로 연결되는데, 이 布石施設은 수레바퀴자국이 나있 는 곳에서 조금 못미처 작은 원형 구덩이로 마무리되고 있다. 地下 石壁施設의 동편으로 이 遺構와 연결되는 또 다른 布石施設이 비 슷한 형태를 이루며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도 면 참조) 8. 遺 構 調 査 가. 石築 排水施設 발굴조사지역의 남편에서 동서방향으로 축조된 대형石築 排水시설이 확인되었다. 동편의 밤나무숲에서 서쪽으로 경사져 내려오는 生土層의 경사면을 따 라 생토층을 깎아내서 만든 폭 150㎝의 排水路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배수로는 서쪽으로 갈수록 그 깊이가 낮아지면서 그 끝자락에 배수로 의 폭에 맞추어 石築 排水路가 동서방향으로 축조되어 있다. 石築 排水 路는 양 옆에 석축벽을 쌓았는데 석축벽 上面이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바닥에 自然板石을 깔고 서쪽으로 갈수록 약간 경사가 심하게 내려가 면서 깊어지고 있다. 石築 排水路의 시작점인 동편의 石築은 생토층위에 바닥석을 깔고 축 조하였는데 배수로의 폭은 1m이고 석축은 2단으로 그 깊이가 30㎝~40 ㎝ 정도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서쪽으로 갈수록 그 폭이 조금씩 넓어 지고 있으며 바닥은 약간 심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바닥석이 끝나는 30m 지점에서는 배수로의 폭이 150㎝로 나타나고 있으며 깊이도 150㎝ 로 깊어지고 있다. 조성된 바닥면의 경사각도는 2°로 확인되었다. 바닥석이 끝나는 그 서편으로도 石築 排水路는 10m 가량 연장되어 현 재 길이 40m 정도가 조사․확인되었는데 바닥석이 끝나는 지점부터 서 쪽으로는 뻘층으로만 형성되어 있다. 바닥석은 自然板石으로 돌을 2겹으로 겹쳐서 깔았는데 넓은 범위인데 도 불구하고 비교적 틈이 없이 촘촘하게 깔려 있다. 石築 排水路의 바닥에는 석축벽에 붙여 작은 주공이 2열로 나란히 5개 씩 확인되었는데 石築 排水路 동쪽 끝에서 서쪽으로 260㎝ 떨어진 곳에 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주공의 직경은 17㎝ 내외가 되고 각 주공간의 거리는 동쪽에서부터 160㎝+160㎝+140㎝+180㎝ 로 나타나고 있다. 동쪽에서 3번째 주공안에서 나무기둥이 발견되어 이 구덩이들이 나무 기둥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원형 구덩이는 돌을 세워서 쌓거나 겹쳐 쌓아서 꽤 깊이 들어가는데 나 무기둥의 주변에는 연한 회색 뻘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원형 구덩 이는 배수로의 중간부분에서 단단한 암반층을 만나면서 만들려고 하였 던 흔적만 보이다가 양 석축벽에 대칭으로 나무기둥흔적 자리가 나타 나고 있다. 석축배수로는 서쪽으로 계속 연장되고 있는데 그 위로 남북방향의 西 城壁이 지나가면서 遺構가 겹치고 있다. 西城壁은 이 石築 排水路의 남 측 석축을 이용하여 동서방향으로 성벽을 관통하는 暗渠를 시설하였는 데 暗渠의 바닥이 石築 排水路의 중간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城壁의 조 성시에는 石築 排水路의 기능이 어느 정도 상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石築 排水路의 바닥층에서는 百濟時代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다량 으로 출토되고 있어 배수로의 형성이 百濟期에 만들어진 것임을 입증 하고 있는 반면 西城壁의 暗渠施設 바닥에 해당되는 위치에서는 統一 期의 遺物이 비교적 많이 수습되고 있어 조성과정의 시기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石築 排水路는 생토층위에 배수로를 만들어 그 경사면을 따라 형성된 것으로써 배수로의 경사도와 폭으로 보아 많은 양의 물이 흐를 수 있도 록 설계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나타난 토층에서도 여러 층의 모래가 두텁게 나타나고 있어 많은 물이 일시에 흘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石築 排水路의 주변에서는 관련된 시설遺構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 이 곳에 급경사의 거대한 石築 排水路가 왜 필요하였는지는 많은 의구심 을 남기고 있으며 배수로의 기능뿐만 아니라 바닥에 형성된 대칭된 기 둥구멍 등으로 보아 다른 용도의 시설로도 활용되었는지 계속 정밀조 사가 필요한 중요한 유구이다. 나. 西城壁의 기초시설 축조 발굴조사 지역의 西城壁은 地上 遺構가 모두 유실되고 지하에 매몰되 어 있는 기초시설만 남아있다. 그나마 예전의 도로공사로 인하여 성벽 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3m 폭의 윤곽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상태 이다. 또한 西城壁 바로 옆으로 金馬⋅全州간 포장도로가 지나가기 때 문에 성벽의 외곽으로는 좁은 범위의 조사만이 이루어져 유구의 성격 을 밝히는데 한계가 있지만 東城壁의 기초시설 축조방법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西城壁의 서측선이 남아있는 그 바깥쪽에 탐색 Trench를 설정하여 기 초시설의 구조를 확인하였다. 이곳은 성벽의 기초석만 남아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복원 구성은 불가 능하지만 성벽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축조방법을 알 수 있는 토층을 확 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西城壁 모두가 이곳과 지형이 같다고 볼 수 없 기 때문에 성벽의 축조방법이 모두 같다고는 할 수 없다. 탐색 Trench의 제일 하층에는 적갈색 점토의 生土層이 형성되어 있으 며 그 위에 25㎝ 두께의 진회갈색 점토가 생성되어 있다. 성벽의 계획 된 구획(西城壁의 서측 기초석이 놓일 자리)에 맞추어 남북방향의 일직 선으로 성벽 내부 쪽의 진회갈색 점토층을 생토층 바닥까지 제거하고 제거한 자리에는 진회색 점토(뻘)를 20㎝ 두께로 깔았다. 이 진회색 점 토는 폭 3m의 성벽 내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西城壁 동측 내 부로도 연장되고 있어 바닥에 일정한 수평을 만들기 위하여 깔았던 것 으로 보인다. 그리고 절개선에 맞추어 기초석을 수직으로 쌓고 성벽 내 부에는 커다란 잡석을 황갈색 점토와 함께 土‧石 混築으로 채웠다. 이 러한 土‧石 混築의 築城은 東城壁의 지상위에서도 보이고 있어 기초에 서부터 이러한 수법으로 계속적으로 쌓아 올렸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 布石施設 1 2001년도에 발굴조사된 燒土溝는 西城壁에서 내측으로 750㎝ 떨어져 西城壁을 따라 북편방향으로 진행되다 동편으로 꺾여 어느 정도 연장 되면서 燒土溝가 끝나며 동편으로 계속 확장되는 과정에서 生土層을 30~40㎝정도 일정한 폭으로 파내고 안에 작은 화강암 破石과 석영질 돌을 일정한 두께로 깐 布石施設이 연결되고 있다. 布石施設은 남쪽에서 볼 때 ‘ㄱ’자 형태를 하고 있으며 동서길이가 32m 나 되는 특이한 遺構로서 淨水시설로 추정된다. 이 布石施設은 경사진 지형을 따라 동편으로 일정한 폭의 생토층을 파 내고 안에 작은 화강암 破石과 석영질 돌을 일정한 두께로 깔은 다음 그 내부를 파낸 흙으로 다시 메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생토층과 布石 施設의 내부 매립토 사이에 형성된 굴광선이 舊地表面에서는 전혀 나 타나지 않아 내부에서 벽선을 따라 파내면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布石施設은 동서로 길게 연장되고 있는데 그 경사가 아주 완만하여 지형상 올라가는 동쪽에서는 布石施設이 상당히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布石은 다시 남쪽으로 포물선을 이루면서 꺾이는데 이 꺾이는 부 분에서 약간 심한 경사로 올라와 그 다음부터는 布石이 생토면과 같은 높이를 이루고 있다. 布石은 남쪽으로 조금 연장되다가 폭 120㎝의 둥 근 구덩이에서 끝나는데 20㎝ 폭으로 좁게 형성된 포석이 원형 구덩이 의 벽에 기대어 바닥까지 깊게 쌓여 있다. 따라서 구덩이안의 布石은 한쪽 면이 노출되어 있는데 작은 돌들을 높이 쌓은 관계로 무너질 우려 가 있어 커다란 화강암 板石으로 노출된 면에 기대어 무너지지 않도록 보강하였다. 원형구덩이 북편의 布石施設은 경사진 생토층을 40㎝ 두께로 70㎝ 깊 이까지 파냈는데 아래쪽은 약간 좁아 그 폭이 25㎝로 되어 있다. 바닥 에 작은 화강암 파석과 석영질 돌을 25㎝ 두께로 편평하게 깐 다음 동 쪽 벽에 붙여 다시 돌들을 15㎝~20㎝ 두께로 좁게 생토층 상면까지 쌓 아 올렸다. 그리고 생토층과 동쪽벽 석축사이의 빈 공간에는 명황색 점 토로 다졌으며 그 위에 다시 적갈색 미세사질점토를 布石施設 상면까 지 채워 구지표면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시설은 동쪽벽의 석축을 따라 지상의 물을 아래로 흡수하고 원형 구덩이 안에 모인 많은 물이 자연스럽게 布石施設을 타고 흘러갈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물은 구덩이가 있는 곳에 서 布石을 따라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동쪽으로 꺾여 빠지도록 되어 있 다. 이곳에서 나타난 토층을 보면 생토층 상면에서는 70㎝에 이르는 폭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져 깊이 80㎝ 아래에서는 그 폭이 10㎝ 밖에 되 지 않는 역사다리꼴로 깊게 파낸 다음 바닥에 25㎝두께로 돌을 깔고 그 위에 생토층과 같은 높이로 내부에서 파낸 흙을 다시 메워 마무리 하였다. 라. 布瓦施設 布石施設의 동편으로 계속 확장조사과정에서 연장선상에 布瓦施設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시설 역시 生土層을 파내고 기와를 토수관처럼 연 결하여 지하의 물이 관을 통하여 흘러가도록 된 시설로서 취수 또는 淨 水用시설로 추정된다. 布瓦施設은 조성된 형태가 전체적으로 둥근 포물선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 길이는 20.2m로 나타나고 있다. 생토층을 50㎝ 폭으로 파내고 수키와를 연결하여 놓았는데 서쪽으로 내려가는 생토층의 경사면에 비하여 布瓦施設의 경사는 완만하며 동쪽 으로 갈수록 시설이 깊어지고 있다. 서쪽의 경우 생토면의 유실로 인하 여 布瓦施設이 지표면에 드러나 있으며 그 끝부분도 유실되어 서쪽의 布石施設과 연결이 되는지 아니면 독자적인 시설인지는 확실하지 않 은 상태이다. 布瓦施設에 사용된 기와는 모두 백제기와로 그중 印章瓦 도 1점이 포함되어 있다. 布瓦施設은 서쪽의 경우 수키와 2장을 겹쳐 놓아 토수관처럼 시설하였는데 지표면에 노출된 5m 가량은 기와의 넓 은 쪽과 좁은 쪽이 일정한 방향으로 되어있지 않고 계속적으로 엇갈려 놓여 있으며 부분적으로 흐트러져 있지만 그 동편의 지하에 묻혀있는 부분은 원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부분에서는 숫키와 1 장만을 엎어 포개 놓아 ‘⌓’(반원)형태를 하고 있으며 기와의 방향도 일 정하게 포개져 있어 동편과는 다른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동편의 기와 상태가 보수의 흔적인지 교란의 영향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布瓦施設은 동서로 연장되다가 둥글게 남쪽으로 꺾여 연장되고 있 는데 모두 굴착된 生土溝의 북쪽 바닥에 붙여 한쪽으로 치우치게 시설 되어 있으며 일부는 기와가 놓이는 부분만 다시 깊게 파 바닥에 단이 생긴 경우도 있다. 이 布瓦施設은 남쪽에서 조금 내려와 그 동편에 시설된 또 다른 布石施 設과 연결되어 있는데 동편의 布石施設은 생토층 상면 바로 아래에 시 설되어 있어 지하에 있는 布瓦施設과는 높이차가 있으므로 서로 연결 되는 부분에 상하로 수키와를 포개어 만든 토수관이 落差孔을 만들면 서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관을 통하여 흐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낙차 공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에는 아래에 布石施設을 하고 그 위에 비교 적 편평한 암기와를 덮어놓은 형태로 시설을 하여 布瓦施設은 또 다른 구조로 변하여 연결되고 있다. 수키와를 포개어 만든 落差孔을 통하여 위에서 내려온 물은 남쪽과 북 쪽으로 분산되어 흐르도록 하였는데 따라서 낙차공 북쪽으로 흐른 물 은 布瓦施設을 따라 둥글게 포물선을 이루며 서쪽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다. 낙차공 남쪽에 형성된 암기와로 덮은 布石施設은 약간 낮은 단을 형성 하면서 남쪽으로 길게 연장된 또 다른 지하 石壁施設의 바닥돌과 연결 되고 있다. 마. 地下 石壁施設 地下 石壁施設은 布瓦施設과 연결되어 있는데 남북방향 일직선으로 약 24.5m 가량 형성되어 있다. 石壁施設은 生土層을 70㎝ 폭으로 깊이 110㎝ 까지 파내고 만들었는데 바닥은 폭 10㎝~20㎝ 밖에 되지 않아 아주 좁고 깊은 역사다리꼴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바닥에는 작은 돌 을 깔았으며 깊이 파낸 生土溝의 동측벽에만 작은 화강암 破石과 雜石 을 얇은 두께로 붙여 쌓아올렸는데 생토층 상면에서는 큰 돌을 사용하 여 마치 基壇처럼 마무리 하였다. 그러나 상면의 돌은 대부분 유실이 되었으며 북편에서는 그 자리에 많은 瓦片이 끼어 있기도 한다. 石壁 의 잔돌 사이에는 기와편이 여러 점 섞여 있으나 다른 종류의 遺物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生土溝는 石壁施設을 한 후에 내부를 파낸 흙으로 다시 메웠기 때문에 舊地表에서는 굴광선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되메우기 수법 은 布石이나 布瓦의 구축방법과 똑같은 것으로 나타나 이 모두가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구조적인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으로는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 石壁施設은 둥글게 꺾이면서 서편방향으로 형성된 布石施設과 연결 되면서 다른 구조로 변하고 있다. 이 地下 石壁施設은 동서방향의 경사면을 남북방향으로 차단하면서 시 설되어 있는데 연관된 遺構의 흔적이 서면 내부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바. 布石施設 2 남북방향으로 일직선상에 시설된 地下 石壁은 남편으로 둥글게 포물선 을 이루며 서쪽으로 꺾이는데 꺾이는 부분부터는 壁石이 없이 바닥석 과 연결되어 바닥에 돌을 깐 남편에 布石施設이 시작된다. 이 布石施設은 발굴지역 북편에서 동서방향으로 나타난 布石施設과 같 은 구조로 70㎝ 폭으로 서편 경사면을 따라 길게 生土層을 파내고 작 은 화강암 破石과 석영질 돌을 두텁게 깔은 다음 내부에서 파낸 흙으 로 다시 돌 위를 덮어 마무리 하였다. 이곳의 布石施設은 북편의 布石 施設과 돌을 깐 방법이 약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돌을 깔 때 가운데 부분을 더 두텁게 깔고 가장자리에는 돌을 조금 깔아 ‘⌓’(반원)형태로 돌의 상면이 둥근 호를 이루고 있다. 이 布石施設은 32.5m나 길게 연장되고 있는데 끝나는 부분은 생토층 을 직경 120㎝로 파서 만든 원형 구덩이로 되어 있다. 원형 구덩이는 가 장자리에 폭 30㎝로 溝를 돌리고 그 안에 잔돌을 깔아 또아리병의 모양 으로 布石施設을 마무리하였으며 가운데 부분은 원형으로 돌린 가장자 리 포석보다 약간 낮게 되어 있다. 이 布石施設에서 북편의 동서방향 포석시설까지 거리는 37.5m이며 그 사이에는 타원형과 비슷한 모양을 한 부정형의 구덩이가 있다. 구덩이 는 동서 경사면을 따라 동편은 깊이가 깊고 서쪽은 조금 얕게 되어 있 는데 바닥에는 백제기와편이 조금 산재되어 있으며 그 10㎝ 위에서는 白磁片이 다수 출토되고 있어 주변의 布石‧布瓦‧石壁 遺構와는 시기 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 구덩이가 자연적인 현상인지 인공적인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사. 布石施設 3 地下 石壁施設 동편으로 높아지는 경사면을 따라 또다른 布石施設이 형성되어 있는데 石壁施設 북쪽 끝부분에 있는 수키와 落差孔에 연결 되어 生土層을 좁게 파내고 작은 돌을 깐 布石施設이 나타나고 있다. 이 포석시설은 다른 포석시설과 달리 경사가 심한 생토층을 얕게 파고 그 안에 작은 잡석을 깔았는데 그 안에는 기와편이 다수 섞여 있다. 布 石列을 따라 얕게 사질점토가 덮여있고 그 위에 기와편이 넓게 분포되 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의 구지표는 많은 부분이 깎여 나가고 나중 에 포석 주위에 흙과 기와편이 깔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布石施設은 지하 石壁施設의 동으로 17m 지점에서 다시 남쪽으로 꺾여 일직선으로 곧게 연장되고 있다. 남쪽으로 꺾이는 곳에서는 비교 적 넓은 암키와들이 布石施設 위에 덮여있는데 그 모양이 정연하게 나 타나고 있지만 어떠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는 단정하기가 어렵다. 이 기와시설은 좁은 범위에서만 나타나고 있으며 그 남쪽으로 계속하여 布石施設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은 舊地表의 유실이 심한 관계로 布 石의 일부인 잔돌들이 남북방향으로 좁게 형성된 모래층위에 남아있 어 布石施設이 계속 연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 그 구조를 파악 하기는 어렵다. 布石施設의 전체적인 형태는 남쪽 연장선상을 조사하지 못하여 알 수 가 없으나 서편의 布石, 布瓦施設과 같은 의도로 시설한 것이 분명하므 로 서로의 연관관계를 의식하면서 水源의 시작지점을 확인하여야 遺構 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 西城壁 暗渠施設 暗渠施設은 남북 500m 길이의 西城壁북편으로 약 350m 지점에 위치하 고 있다. 폭 3m인 体城壁을 동서방향으로 관통하여 암거바닥에 넓은 板石을 깔고 그 위에 폭 80㎝, 높이 70㎝로 4~5단 가량 石築을 쌓았으 며 석축 위에는 아랫면만 다듬은 화강암 長大石을 덮개돌로 얹혀 놓았 다. 暗渠施設의 남측 壁石은 石築 排水路의 남측석축을 그대로 연장․이용 하였으며 북측 壁石만 그 폭을 좁혀 새로 조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 다. 暗渠施設 바닥돌은 1개의 넓은 板石을 이용하기도 하고 넓은 판석 대 신 조금 작은 판석 2매를 잇대어 바닥을 구성하였다. 1개의 판석으로 바닥을 구성한 서편의 체성벽 외부바닥을 제외하고는 壁石을 세우고 그 안쪽에 바닥석을 깔아 놓아서 나중에 壁石이 안으로 밀려들면서 暗渠의 폭이 좁아지고 있어 바닥석이 겹치는 부분이 위로 솟아올라 있다. 暗渠의 상면에 올려있는 뚜껑돌은 길쭉한 화강암을 아랫면만 평평하 게 다듬고 나머지 면은 대충 다듬었다. 暗渠의 壁石에 사용된 돌 가운 데에는 城壁의 하단부에 사용된 가공석이 포함되어 있어 이 暗渠施設 이 본래 계획된 것이 아니고 성벽의 조성이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성벽 의 일부를 관통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방향으로 형성된 石築 排水路는 성벽내부의 암거시설이 시작되는 부분의 5m 앞부터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시설 높이가 절 반으로 줄어 暗渠가 조성되었던 시기의 舊地表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면에서 暗渠의 바닥을 형성하고 그 위에 石築을 쌓아 暗渠의 壁石을 구 축하였다. 따라서 暗渠의 壁石은 石築 排水路위에 형성되어 있는데 남 아있는 暗渠의 북측벽을 보면 높은 단을 이루며 동북방향으로 둥글게 휘어져 아래의 石築 排水路와는 뚜렷한 선후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높 은 石築으로 둥글게 휘어진 양상이 동북편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완 만하게 흐르기 좋게 설계되어 있다. 暗渠의 바닥면이 石築 排水路의 중간 높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石築 排 水路는 暗渠의 조성 당시 중간부분까지 매몰되어 있었으며 남아있는 石築 排水路의 윗부분이 暗渠로 통하는 동서 수로의 역할을 계속적으 로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石築 排水路의 바닥에서는 百濟期의 遺 物만 출토되는 반면 暗渠의 바닥면에 해당되는 石築 排水路의 중간층 에서는 統一期의 遺物이 대부분 출토되고 있다. 자. 수레바퀴 자국 수레바퀴 자국은 石築 排水路의 북편으로 노출되었는데 모두 남북방향 으로 그 자국이 남아있다. 현재 확인된 범위는 길이 약 70m, 폭 약 20m로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한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좁고 길게 뻗어있는 자국 들이 부여 宮南池의 道路遺蹟에서 나타난 것과 거의 흡사한 모양을 하 고 있다. 불규칙하게 뻗어있는 자국들은 약간 무른 땅을 파고 들어 조금 깊게 파 였는데 舊地表인 적갈색 점토층에 연회색 미세사질점토로 확연하게 드 러나고 있다. 차. 燒土溝와 燒土層 2001년도에 조사하였던 서성벽내 工房廢棄址 남편에서 연속으로 형성 된 燒土溝에 대한 조사는 남쪽으로 계속 진행되는 관계로 금년에 연장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1년도에 조사된 N30~N28지점 燒土溝는 探索 坑으로 극히 일부분만 확인된 상태여서 이에 대한 확장조사가 필요했 고 조사결과 燒土溝의 깊이가 溝라 지칭하기가 부적절할 정도로 낮아 지는 대신 폭이 넓게 분포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조사 중 이여서 燒土層의 범위가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지만 남북방향으로는 東西 石築排水路 북측석벽과 연결되는 暗渠施設 부근까지 내려가며, 현재까지 확인되는 동서 최대 폭은 10.8m로 工房廢棄址보다 범위가 넓 게 분포되어 있는 양상이다. 황적갈색 사질점토+숯‧재‧소토+百濟 土器‧瓦片 및 각종 工房 관련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燒土層은 現地表面에서 120㎝ 정도 아래에 위치 하며 그 위로 황회색 사질점토층이 얇게 덮혀 있고 그 위로 적색 사질 점토층(統一新羅 層)이 두텁게 형성된 상태이다. 이 부분의 탐색조사에 서는 西城壁 體城部 內側에 조성된 마감돌(지하의 남북 석렬) 아래로 燒土層이 있어 城壁 內側 構築土 조성이전에 燒土層이 형성되어 있음 이 확인되었다. 특히 燒土遺構의 동측 경계선이 확인된 N26,27W11,12 Pit 구간 燒土層 내부 조사에서는 금속‧유리제품의 제작과 관련된 각종 도가니 및 燒土 塊, 숯, 재, 슬래그 등과 함께 비교적 많은 양의 녹유리편과 金絲, 금구 슬, 金版片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어떤 뚜렷한 목적의 구조물이 확인되 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廢棄層으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기와 집중 분 포지가 내부에서 확인되었는데 그 규모는 180㎝×230㎝로 평면상 長方 形을 이룬다. 안에는 평기와와 燒土塊가 비교적 조밀하게 깔려 형성되 어 있으며 그 안팎에는 넓적한 할석, 도가니, 土器 파편들과 완전히 파 괴된 상태의 적갈색 軟質土器片들이 산재해 있어 공방지의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갈색 연질토기편의 경우 口緣部가 확인된 것 은 원통형 형태의 土器로 扶餘 花枝山에서 출토된 煙筒刑 土器와 土質 과 형태가 같아 굴뚝 등 送風 혹은 排煙과 관련된 용도일 가능성이 있 어 주목된다. 9. 重 要 出 土 遺 物 금번 조사에서는 工房과 관련된 遺構로 판단되는 燒土溝와 燒土層, 그 리고 40여m 정도 구간이 노출된 東西 石築 排水路 내부 조사에서 遺物 이 집중 출토되었다. 工房과 관련된 溝 및 燒土遺構層에서는 2001년도 工房廢棄址 조사시 출토된 것들과 거의 동일한 遺物들이 출토되었는데 燒土層의 분포범위 가 상당히 넓고 다양한 종류의 도가니와 금제품 파편들이 출토되었다. 우선 도가니 크기가 구경 5㎝․높이 2.5㎝의 매우 작은 것에서부터 구 경 15㎝․높이 18㎝ 정도의 대형까지 조사되었으며 특히 내면에 금 알 갱이와 금속부산물(철, 구리 등)이 남아있어 좋은 분석 자료가 되고 있 다. 대형도가니의 경우 대부분 녹유리를 제작했던 용기로 내면에 유리 막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으며 도가니 뚜껑이 공반 출토되고 있다. 이러 한 도구로서 제작된 제품은 그리 많은 양이 수습되지는 않았지만 유리 구슬편, 金絲, 금구슬, 金版片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燒土溝와 燒 土遺構層에서는 百濟 泗沘期에 해당되는 8葉蓮花紋수막새, 印章瓦(刀 下, 辰, 前部乙瓦), 線紋과 格子紋系 평기와 등 瓦塼類와 함께 臺付盌, 전달린 토기, 線紋이 타날된 短頸壺, 直口壺, 大形把手付壺 등이 조사 되는데 특히 送風․排煙시설에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통형 토 기로 추정되는 적갈색 軟質土器片이 많은 양 출토되었다. 유구의 성격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工房과 관련되는 淨水시설로 추정되 는 布石施設과 布瓦施設은 生土面을 굴착해 조성되었는데 일부 구간 은 百濟系 수키와를 사용했고 布石 上面에 線紋 혹은 無紋 百濟系 암키 와를 덮은 상태로 노출되었다. 조사과정에서 평기와 이외에 다른 출토 유물은 8葉蓮花紋수막새, 百濟 土器片들이 약간 있다. 東西 石築 排水路 40m 정도 구간 조사중에는 내부에서 많은 양의 陶土 類가 수습되었는데 水路 상면의 堆積層과 石築이 유실되거나 시설되 지 않은 동편의 일부 교란층을 제외하면 모두 泗沘期 百濟系 遺物로 판 단된다. 먼저 瓦塼類는 8葉蓮花紋‧太極紋‧素紋수막새를 비롯해 「辰」「刀下」명 등의 印章瓦, 無紋‧線紋系 평기와 등이 수습되었 고, 土器類는 直口壺‧寶珠形 꼭지 뚜껑, 燈盞, 전달린 토기, 臺付盌 등 의 일반적인 기종 이외에도 牛角形 把手付盒, 변기형 토기, 異形燈盞 등 많은 량의 토기파편들이 출토되었다. 10. 발굴조사 성과 발굴지역내 동서방향으로 축조되어 있는 석축 배수로는 큰돌을 막쌓기 로 쌓아 올렸는데 바닥에도 촘촘히 돌을 깔아 매우 견고한 형태로 되 어 있다. 폭 150㎝에 이르는 배수시설로서 동편은 생토층을 굴착한 자 연배수시설이며 지형상 경사도에 따라 서편으로 갈수록 경사져 깊은 곳은 150㎝에 이르며 현재 조사된 석축배수로 동서길이가 40여m에 달 하는 대형 배수로로서 많은 량의 유수를 합수․처리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이라는 점에서 그 동남편 상단 중심구역에 대규모 시설물이 있었 을 가능성이 있어 당시 본 유적이 대규모 계획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 성 등 여러 가지 추측을 제공하고 있다. 석축배수로의 바닥에는 百濟時代 遺物들이 다량 출토되어 축조시기를 말해주는데 西城壁을 관통하여 석축배수로가 조성되어 있어 서성벽의 축조시기와 석축배수로가 만들어진 시기의 선후관계에 대하여는 향후 정밀조사가 필요하며, 출토유물로 보아 이 주변에 또 다른 백제시대遺 構의 존재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石築 排水路 북쪽으로 燒土溝가 형성되어 있고 그 상층에 넓은 범위로 燒土層이 분포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소토층에는 기와편과 토기를 비 롯한 많은 유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각종 도가니가 다량으로 출토 되었으며 금세공과 관련된 많은 양의 금제품과 金片, 녹유리편이 수습 되었다. 출토되는 유물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 대단위의 工房 施設이 있었을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에 대단위의 공방시설이 있었다는 것은 왕궁리유적의 조성과정 및 문화적 성격과 미륵사지․제 석사지 등 주변 유적과의 연관관계를 구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서성벽의 하부조사에서는 성벽의 축조방법이 성벽 내측은 지반토를 파 고 기초석을 쌓아 올린 반면 외측은 기초석을 쌓아 올린 다음 그 바깥 쪽을 盛土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축조방법은 동성벽이나 남 성벽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법으로서 각 지점의 지형에 맞추어 기초시 설을 다르게 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성벽의 하부에서 발견된 암거시설은 이와 대칭되는 동성벽의 발굴조사시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석축배수시설 북편에서는 布石과 布瓦‧石壁施設이 넓은 범위에서 조 사되었다. 生土層을 파고 만든 이 시설들은 30m가 넘는 공간을 두고 동 서 경사면에 3중으로 시설되어 있는데 모두 연결은 되고 있지만 그 위 치나 구조적인 차이가 다르고 주변에서 이와 관련된 구조물이 전혀 발 견되지 않아 서로의 관계를 밝히기는 아직 어렵다. 이러한 유구는 우리 나라에서 아직까지 발견된 예가 없어 그 성격을 단정하기 어려우나 서 편에서 조사된 소토층내에서 출토된 금사․금판편․유리제품 등 각종 가공된 유물과 관련된 공방시설에서 필요로 한 淨水된 물을 공급하기 위한 특수시설로 추정할 뿐이다. 서성벽을 관통하고 있는 암거시설은 성벽을 조성하는 과정에 체성벽 의 기저부 높이를 석축배수로 바닥보다 높게 암거바닥이 조성되었다. 암거바닥은 판석을 깔고 그 위에 폭 80㎝, 높이 70㎝로 4~5단 석축을 하고 장대석을 덮개로 이용하였다. 암거시설의 남측 벽석은 석축배수 로 남측 석축을 연장하여 이용하였고 북측 벽석만 폭을 좁혀 다시 조성 하였다. 석축배수로와 성벽 및 암거시설 조성시기의 선후관계가 이곳 에서 구명될 것으로 판단되나 계속 정밀․보충조사후 확인될 것으로 기 대된다. 또한 금번 발굴조사구역내에서 출토된 유물이 대체로 百濟時代의 것으 로 확인되고 있어 東西 石築 排水路와 燒土層과 관련된 工房施設, 地 下 布石‧布瓦‧石壁施設이 조성되었던 당시의 왕궁리유적 서북편 구역 에 대한 기능상의 유구 성격에 대하여 향후 연구,검토되어야 할 것으 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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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금마-연무대간 도로확포장공사구간내 문화유적 운영자 1915 2002.12.13
275 대덕계족산성 발굴조사(3차) 운영자 2223 2002.12.13
274 양주 회암사지 발굴조사(5차) 운영자 2731 2002.12.13
273 부여 능산리사지 발굴조사(8차) 운영자 2003 2002.12.13
272 군장산업단지 진입도로 공사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468 2002.12.12
271 청도 진라리 유적 운영자 1987 2002.11.25
270 청도 진라리 현장설명회 개최 안내(11.23) 영남문화재연구원 967 2002.11.22
269 함안 성산산성 02년도 발굴조사 전산실 1675 2002.11.21
>> 익산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2197 2002.11.19
267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11/19) 운영자 897 2002.11.19
266 화성 천천리 유적 현장설명회 (11/12) 이기성 1064 2002.11.08
265 파주 적성 우회도로 구간내 문화유적 시굴조사 현장설명회 김대일 1186 2002.11.06
264 포항 철강공단-냉천간 도로공사구간 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2629 2002.11.06
263 포항 철강공단 - 냉천간 도로공사 구간내 유적 현장설명회(11/7) 운영자 857 2002.11.06
262 단양 사지원 태장이묘 3차발굴조사 현장설명회(11/4) 전범환 1034 2002.11.02
261 광주 분원리 조선백자 도요지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918 2002.11.01
260 전주 송천동 토지구획정리 사업지구내 유적 운영자 2551 2002.10.28
259 구이-전주간 도로확포장공사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1970 200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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