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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양주 회암사지 발굴조사(5차)

2002-12-13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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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조사 개요 양주 회암사지(사진 1, 2)에 대한 발굴조사는 지난 1997년도에 경기도 박물관에 의한 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립된 중장기 발굴조사 계획 에 따라 실시되고 있는데 기존의 조사 현황은 첨부파일 안의 (표 1)과 같다. 현재까지 조사된 건물지는 5차 조사지역까지 포함하여 모두 50개 건물 지에 이르며, 이외에도 정료대, 집수정, 내부담장지, 수조, 맷돌, 배수 시설, 화단 등 다양한 유구들이 조사되었다. 건물지 배치는 보광전 건 물지가 위치한 6단지를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설법전, 사리전, 정청 등 중앙 전각을 중심으로 나머지 건물지들이 좌우에 배치되고 있으나, 남 쪽의 5단지부터 3단지까지는 중정식 배치를 이룬다. 건물지는 대부분 하부 구조가 완벽한 상태로 조사된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다양한 구 들 시설이 조사되어 향후 전통 구들을 이해하는데 있어 획기적인 자료 로 평가된다. 출토 유물은 정식으로 보고 될 유물만 2만 여 점에 이르는 데, 조선 전기의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며, 일부 고려 후기 또는 임란 이 후의 17세기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5차 발굴조사는 양주 회암사지 3단지 동쪽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 어졌다. 이 지역은 본래 한국건축문화연구소에 의해 간단한 시굴조사 가 이루어진 후, 정비가 완료된 지역으로 대체적인 건물지 위치와 규모 는 이미 알려져 진 바 있다. 조사는 3단지 동쪽 지역의 경우, 유구 노출 을 위주로 진행되었으며, 4차 조사시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4, 5 단지 건물지에 대한 내부조사가 병행 실시되었다. 또한 정비작업이 진 행되고 있는 8단지 북쪽 지역 가운데 북동쪽 계곡부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집수정이 확인되어 전면 확장 조사를 실시하였다. 회암사지 5차 발굴조사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조사 기간: 2002. 6. 14~2002. 11. 30 2) 조사 지역: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 산 14-1번지 일대 3) 조사 기관: 경기도박물관․기전문화재연구원 Ⅱ. 5차 발굴조사 지역 및 조사 과정 5차 발굴조사 지역인 3단지 동쪽 지역(사진 3)의 전체 면적은 3,600㎡ (1,089평) 가량으로, 방안상 S2E2~S2E5 전지역과 S3E2~S3E5 일부 지역이 포함된다. 이 지역에 대한 97년도 시굴조사에서는 7개소에 대 한 시굴갱 조사를 실시하여, 일부 건물지에서 구들시설이 확인되었다. 조사지역인 3단지 동쪽지역은 오래전부터 밭으로 경작되어 왔고, 이미 한국건축문화연구소(1990)에 의해 약식의 발굴조사가 실시된 지역으 로 발굴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정비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따라서 지표 상에 초석들이 노출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유구는 육안으로도 쉽게 식 별이 가능하였다. 조사지역은 조성된 공간에 따라 소구역으로 세분되 는데, 3단지 중앙 문지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건물지군과 그 북쪽 지 역의 석축단 상의 건물지군으로 구분된다. 이번 발굴조사는 3단지 동쪽 지역내 건물지의 노출과 함께 확인된 건물 지의 전반적인 전각 배치양상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이미 4차 발굴조사에서 실시된 4~5단지의 건물지 내부조사를 보강하여 정 밀하게 추가조사 하였다. 조사는 97년도 시굴조사시 사용하였던 20m 방격(Grid)을 그대로 적용 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97년도 시굴조사시 설치했던 시굴갱 외에 추가적으로 시굴갱 조사를 실시하여 정확한 토층을 파악한 후, 제 토 단위 및 방법을 결정하였다. 시굴갱의 확장조사는 건물지의 윤곽이 확인되면 전면 제토하는 방법으로 실시되었으나, 가급적 상부 유구 및 상부 유구의 구지표면까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1~4차 발굴조사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회암사의 폐사직후 폐기된 건물지 잔해 위에 건물 을 조영한 흔적이 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기존의 기단을 그대로 이용하 면서 초석 배치를 새로 하거나, 구들시설을 마련한 것들이 일부 확인되 고 있다. 따라서 이들 유구들은 회암사 폐사 직전의 건물지와는 중복되 어 있지만, 시기적인 차이는 크지 않아 대체로 회암사의 폐사 시점에 맞추어 발굴 작업을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3단지 동쪽 지역 내에서 7개소의 건물지를 확인하였다. 이 외에도 사역 동쪽 경계를 구획하는 외부 담장지 및 우물지, 배수시설, 기타 다수의 석재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 내의 층위 양상은 4차 발굴조사까지 확인된 층위와 거의 같 다. 지역마다 층위의 두께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크게 5개층으로 구분 된다. 가장 위에 있는 토층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Ⅰ층은 지 표층으로 현재의 지표면이다. 그 아래의 Ⅱ층은 황색 모래층으로 산 위 에서 흘러내려 유적 상부에 재퇴적된 층이다. 두께는 10~20cm 정도이 며, 백자편 및 와편 등 유물이 소량 출토된다. Ⅲ층은 흑갈색 내지 암갈 색의 사질점토부식토층으로 두께는 10~20cm 정도이다. 현재 노출되 고 있는 건물지 문화층에 해당되는데, 건물지 주변에서는 와적층의 양 상을 보인다. Ⅳ층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건물지의 축 조이후 사용과정에서 퇴적된 층이다. 약 5~10cm 가량의 두께이며, 이 층의 상면에 건물지 폐기시의 와편이나 목탄편들이 분포하고 있다. 마 지막으로 Ⅴ층은 건물지의 구지표층이다. 대체로 황색 내지 황갈색의 마사토를 인위적으로 깔아 구지표면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Ⅲ. 조사 내용 1. 유구 조사 1) 3단지 동쪽 지역 (1) 3단지 「가」건물지 3단지 동쪽지역 상단부 건물지군의 서쪽에 위치한 건물지이다. 기단 규 모는 남북 길이 25.87m, 동서 길이 8.30m이다. 건물지의 평면형태는 남 북 2실로 구성된 세장방형의 건물지로 남실과 북실이 각각 정면 4칸(주 칸거리 3.1m)이며, 측면 3칸(주칸거리 3.1m)이다. 남실과 북실은 각각 남쪽에 1칸의 아궁이방과 북쪽에 3칸의 구들방으로 구성된다 칸(間)을 건물의 가장 기본 단위로 했을 때, 이들 칸이 모인 최소 단위의 독립적 인 공간을 방(房)이라 하고, 여러 방(房)으로 구성된 한 단위의 주거 공 간을 실(室)로 임의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따라서 건물은 하나 이상 의 실(室)로 구성되는데, 5단지 「가」건물지, 3단지 「가」․「다」․ 「라」․「바」건물지 등 건물지 5개소가 2실로 이루어져 있다. . 북실의 아궁이는 1m 가량의 장대석으로 좌우 벽을 축조하여 입구부를 만들고 잡석을 쌓아 함실부를 조성하였다. 고래는 남북방향으로 중앙 칸에서만 확인되었는데, 구들골은 총 5골이다. 고래둑의 폭은 25~ 30cm 가량이며, 구들골의 폭은 30~35cm 가량이다. 굴뚝부는 북실 북 동쪽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다. 한편 북실 아궁이 남쪽으로 잇대어 함 실 아궁이가 확인되었는데, 남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실은 조사결과 교란으로 인하여 남아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 뿐만 아 니라, 시굴갱 조사로 인하여 중앙의 아궁이 시설과 구들시설의 일부가 파괴된 것이 확인되었다. 현재의 잔존 상태로 보았을 때, 북실과 마찬 가지로 남쪽에 1칸의 아궁이방과 북쪽에 3칸의 구들방으로 구성된 형 태인데, 후대에 개조된 흔적이 확인된다. 즉 북실 아궁이 남쪽으로 잇 대어 추가로 함실아궁이를 설치하여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불을 지피 도록 구들시설이 개조되었다. 굴뚝부는 북실 동쪽 기단 밖으로 연결된 연도 끝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2) 3단지 「나」건물지 3단지 동쪽 지역 상단부 건물지군의 중앙에 위치한 건물지이다. 정면 7 칸(주칸거리 3.90m), 측면 3칸(주칸거리 2.30m)의 세장방형 평면 형태 로 가운데 1칸의 통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 세 칸씩 독립적인 공간이 마 련된 구조이다. 기단의 규모는 동서 길이 29.9m, 남북 길이 11.5m이다. 초석은 부정형이거나 원형의 주좌를 둔 방형의 석재를 주로 이용하였 는데 남쪽에서 두 번째 열의 초석은 동서 방향으로 모두 장초석을 이용 하였다. 건물지의 중앙 통로 바닥은 불다짐으로 처리하였다. 西室 3칸 에는 구들시설이 확인되었으나 파괴가 심하고 방향이 무질서하여 정확 한 규모나 형태를 파악하기 힘들다. 또한 東室은 파괴가 심하여 바닥 의 상당부분이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동쪽에서 3번째 줄의 남북 방향 초석은 남쪽의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결실된 상태이다. (3) 3단지 「다」건물지 3단지 동쪽지역의 상단부 건물지군 동쪽에 위치한 건물지로, 서쪽으 로 3단지「나」건물지와 연결되어 있고 북쪽으로는 4단지 석축단에 맞 닿아 있다.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7칸(주칸 거리 3.1~3.7m 내외), 측 면 2칸( 주칸 거리 2.9m 내외)이며, 기단 규모는 남북 길이 25.4m, 동 서 길이가 8.2m 가량이다. 건물지의 평면형태는 남북 2실로 구성된 세 장방형의 건물지로 북실 정면 4칸, 남실 정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석은 50×70cm 가량의 방형 석재를 상면만 가공해 사용하였다. 내부 시설로는 구들시설이 확인 되는데, 북실의 경우, 남쪽 1칸의 아궁이방 과 북쪽 3칸의 구들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북실에 2개의 독립된 구들시설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쪽 아궁이방에는 2 개의 함실아궁이가 확인되고 있으며, 구들 시설 또한 2개로 구분되었는 데, 각각 4열씩의 구들골이 확인되었다. 고래둑의 폭은 40~50cm 가량 이고, 구들골의 폭은 20~30cm 가량이다. 남실은 남쪽 1칸의 아궁이방 과 북쪽 2칸의 구들방으로 구성되는데, 마찬가지로 2개의 독립된 구들 시설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서쪽 구들은 3열의 구들골이, 동쪽 구들 은 6열의 구들골이 확인되었다. 고래둑의 폭은 40cm 내외이고, 구들골 의 폭은 30cm 내외이다. 북실 및 남실 모두 굴뚝 시설이 별도로 설치 된 것이 특징이다. 한편 남실의 초석 배치에서 정면과 배면의 배치가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고, 또한 「나」건물지 방향으로 1칸의 공간이 추 가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다」건물지가 후에 개축되면 서 건물지가 일부 변형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 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다」건물지의 남쪽 초석열 바깥으로 는 「나」건물지까지 이어지는 폭 60cm 가량, 총 길이 18.1m 가량의 내부 담장지가 확인되었다. 이 담장지는 개방된 형태로 추정되는 「다」건물지 남쪽 공간의 아궁이부를 외부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설치 된 것으로 추정된다. (4) 3단지 「라」건물지 3단지 문지 동쪽에 위치한다. 건물지의 평면형태는 동서 2실로 구성된 세장방형의 건물지로 정면이 동실 3칸, 서실 4칸(주칸거리 3.2~3.5m) 이며, 측면 2칸(주칸거리 1.5~4.5m)이다. 동실과 서실 모두 동쪽에 각 각 1칸의 아궁이방이 마련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구들방이 있다. 동실 의 구들 시설은 구들골이 8골로, 그 폭은 20cm가량이며, 고래둑 폭은 28cm이다. 굴뚝은 교란되어 확인하기 어렵다. 서실의 구들시설은 구들 골이 7골로, 그 폭은 34cm가량이며, 고래둑의 폭은 32cm이다. 서실의 고래둑은 교란되어 겨우 윤곽만이 확인될 뿐이며, 굴뚝 역시 교란되어 확인이 어렵다. 기타 동실 북서쪽으로 계단시설이 확인되며, 북쪽 기단 과 연접하여 집수구가 설치되어 있어 동실 아래쪽으로 암거가 설치되 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수구는 가로 70cm, 세로 70cm로 정방형을 이 루며, 집수 구멍은 총 6개(직경 14cm)이다. (5) 3단지 「마」건물지 3단지 「라」건물지 동쪽에 위치하며, 남쪽에는 계단지가 그리고 북쪽 으로는 3단지 상단부 건물지로 올라가는 중앙 계단과 천랑이 위치한 다. 건물지는 정면 7칸(주칸거리 3.4~3.7m), 측면 2칸(주칸거리 3.7m) 인 동서 방향의 장방형 건물지이다. 이 가운데 정면 3칸이 2단지에서 3 단지로 올라가는 통로로 추정되는데, 건물지 북쪽의 천랑 초석열과 통 로 중앙 칸의 초석열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통로를 중심으로 동 쪽 3칸과 서쪽 1칸에는 칸마다 고맥이가 확인되는 점으로 미루어 모든 칸이 벽체로 둘러져 있어 독립된 공간을 이루는데, 그 구체적인 용도 는 알 수 없다. 기타 암거 시설이 확인되는데, 북쪽의 3단지 「나」 건 물지 석축단 아래에 남북으로 설치된 암거시설이 건물지 바로 북쪽에 서 북동→남서 방향의 또 다른 암거와 합류하여 건물지 아래로 연장됨 이 관찰되었다. (6) 3단지 「바」건물지 3단지 하단부 건물지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건물지이다. 동쪽으로 는 외곽 담장지(폭 1.2m)가 둘러있고, 북쪽 기단 밖으로는 자연석으로 배수로를 만든 것이 확인된다. 건물지는 「라」건물지와 유사한 구조 로 동서 2실로 구성된 세장방형의 건물지이다. 동실과 서실의 정면이 각각 3칸(주칸거리 2.4~3.2m)이며, 측면 3칸(주칸거리 1.8~3.4m)이 다. 동실과 서실 모두 서쪽에 각각 1칸씩의 아궁이방이 마련되어 있으 며, 서쪽에는 각각 2칸씩의 구들방이 있다. 이 가운데 동실의 구들골은 8골로, 그 폭은 30cm이며, 고래둑의 폭은 40cm이다. 서실 구들골은 총 7골이 확인되며, 구들골 폭 30cm, 고래둑 폭 30cm 가량이다. 고래둑은 석재와 기와편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구들장의 일부가 남아있다. 굴 뚝은 북동쪽에 위치한다. (7) 3단지 「사」건물지 3단지 가장 동쪽에 위치한 건물지이다. 외부담장지와 맞닿아 있으며, 3단지의 다른 건물지군들의 배치와는 무관하게 외부담장지, 배수로, 수 조 등과 평행을 이루도록 배치하였다. 규모는 조사가 완전히 이루어지 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정면 5칸(주칸 거리 3.2m 내외), 측면 1칸 (주칸 거리 5.3m 내외)으로 추정 된다. 기단 규모는 남북 길이 15.7m 가 량, 동서 길이 7.3m 가량이다. 한편 「사」건물지의 내부에는 경기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2기의 멧돌이 배치되어 있어, 「사」건물지의 기능 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8) 기타 유구 이번 회암사지 3단지 동쪽지역에 대한 조사에서는 건물지 이외에 담장 지, 집수구, 배수시설, 우물지, 기타 석조물 등이 조사되었다. 담장지 는 사역 동쪽 경계를 이루는 외부 담장지가 확인되었는데, 조사지역에 해당되는 부분의 총 길이는 약 37m 가량으로, 잔존 높이 80cm 내외, 폭 140~150cm 내외이다. 이외에도 내부 담장지가 몇 개소 확인되었는 데, 3단지 「바」건물지와 외부 담장지를 연결하는 내부 담장지와 3단 지 「사」건물지 북쪽에서 확인된 내부 담장지가 있다. 이번 조사지역도 4~5단지 지역과 마찬가지로 건물지의 밀집도가 높 아 낙수처리 등을 위한 집수구와 더불어 잘 정비된 배수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수구는 3단지 하단부의 「라」건물지 북쪽 기단 밖에서 1 개소 확인되었는데, 4단지 「아」건물지의 남쪽 기단 석축 하부의 배수 구를 통해 배출된 물이 이곳으로 흐르도록 되어있다. 배수시설은 4단지 에서 3단지 「사」건물지 서쪽 기단 밖으로 이어져 3단지 상단부 건물 지군의 남쪽으로 흐르다가 3단지 「마」건물지의 하부 암거를 통해 2 단지로 나가도록 시설된 배수로가 확인된다. 이 배수로의 총 길이는 확 인된 부분만 67m에 이르며, 폭은 130~190cm 가량이다. 한편, 3단지 「나」건물지 남쪽 석축 하부에서 「마」건물지의 하부 암거로 이어지 는 또 다른 배수로가 확인되었는데, 확인된 총 길이는 약 8m 가량이 다. 3단지 「나」건물지 북쪽에는 옛 회암사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던 것 으로 추정되는 우물지가 위치해 있는데,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제 시대 무렵에 양주군 일대에 가뭄이 들었을 때, 동네 주민들에 의해 우 물지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유구가 일부 잔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 문에 6차 발굴조사시에 정밀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여러 기의 석재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우선 우물지의 동서편 에서 각각 방형의 석조물이 대칭되게 확인되었는데, 용도는 알 수 없 다. 이밖에 「사」건물지의 서쪽에는 방형의 대형 수조가 2개가 위치 해 있다. 2) 4단지 보강 조사 (1) 4단지 「가」건물지 4단지 서쪽 끝에 위치하며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남북으로 세장한 건 물지이다. 4차 조사시 이미 아궁이, 고래시설, 출입구 시설의 위치 및 윤곽이 확인된 유구이다. 따라서 이번 보강 조사에서는 4차 조사 당시 조사가 미진했던 아궁이와 굴뚝시설을 우선적으로 조사하였으며 기타 아궁이 서쪽으로 연결된 장방형의 석조 시설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 졌다. 조사 결과, 아궁이는 155cm×100cm 규모이며 함실과 불을 때는 부분으로 구분된다. 함실은 30cm 정도 크기의 석재를 쌓은 다음 사이 사이에 점토를 발라 마감하였으며 불을 때는 부분은 1~2매의 장대석 으로 동, 서 측벽을 만들었다. 굴뚝시설은 2개소 확인되었는데, 선후 시 차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모두 건물지 서쪽에 위치해 있다. 장방형의 석조 시설은 내부퇴적토를 모두 제거하고 원형을 노출시켰으나 파괴 가 심하고 이와 비슷한 다른 예가 확인된 바 없어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다만 시설물 모서리에 장초석이 놓여진 점으로 미루어 누각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 시설물의 남쪽 면에 붙여 소형 의 함실아궁이와 더불어 그 남쪽의 소형 토광 내에서 옹기 1점이 확인 되었는데, 중복 관계로 보아 누각이 축조되기 이전 시기의 것으로 판단 된다. 한편, 건물지 남쪽부가 교란되어 하강 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들 시설을 포함한 이전 시기의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시기를 달리하는 유 구들이 중복된 양상을 보이는데, 건물지의 구조상 큰 변화는 없었더라 도 내부 시설은 용도 변경에 따라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4단지 「나」건물지 4단지 서쪽 끝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4단지 「가」건물지와 맞닿아 있 다. 4차 조사시 건물지의 규모와 구들 시설의 일부가 확인되었다. 5차 조사에서는 4차 조사시 노출된 구들시설에 대해 정밀조사를 실시하였 으며 건물지의 서측에 위치한 방형유구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하였다. 아궁이는 건물지의 남동쪽 모서리에 자리잡고 있다. 불기운이 들어가 는 방향은 주로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의 고래시설로도 일부 들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축조상태가 매우 조잡하다. 아궁이 규모 는 길이 240cm, 폭 160cm이다. 방형유구는 남북 320cm, 동서 280cm 의 규모로 장대석을 놓아 건물지와 구분하였다. 바닥에는 길이 30~ 50cm 가량의 답석을 깔았다. 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며 아직 정확한 성 격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한편, 「나」건물지의 북쪽 구들시설 위에 서 동서방향 530cm, 남북방향 360cm의 규모로 중복 축조된 구들시설 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구들시설은 「나」 건물지와 달리 동-서 방향이 며 아궁이는 서쪽에 위치한다. 아궁이 규모는 길이 120cm, 폭 80cm로 비교적 소형이다. 「나」건물지와 달리 고래둑을 석재로 축조하였 다. (3) 4단지 「라」건물지 4단지 문지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지로 「마」건물지와 대칭을 이루는 건물지이다. 건물지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전체적인 형태는 남북으로 세장한 모습이다. 4차 조사에서 건물의 규모와 아궁이, 구들 시설, 굴뚝 등의 위치와 형태가 노출되었으나 아궁이부와 굴뚝지의 세 부적인 모습은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조사 결과 남쪽으로 면한 남 북 1칸, 동서 3칸의 공간은 난방과 함께 취사 등을 위해 사용된 현재의 부엌과 같은 공간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서는 구들시설과 연결된 중앙 아궁이 외에도 동쪽과 서쪽에 각각 부뚜막이 있었던 것으 로 보인다. 굴뚝은 북쪽에서 2개소 확인되었는데, 시기적으로 차이를 두고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4) 4단지 「마」건물지 4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로, 상부에 20여개의 장대석이 쌓여 있었고 중앙 둑이 그대로 남아 있어 내부시설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었 다. 이에 이번 조사에서 보강조사를 실시하였다. 건물지의 내부시설로 구들시설을 확인하였다. 남쪽의 아궁이는 3차례 이상의 사용 흔적이 확 인 되었고, 북쪽으로 향한 6개의 구들골을 통과해 건물지의 북동쪽에 마련된 굴뚝으로 연기가 나가도록 시설되었다. 한편 건물지 중간 부분 의 구들시설이 함몰되어 있는데, 이는 건물지 하부에 설치된 암거시설 때문으로 추정된다. (5) 4단지 「사」건물지 4단지 문지 서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물지이다. 규모는 정면 8칸, 측 면 4칸으로 동서로 세장한 형태이다. 4차 조사시 건물지의 외형과 규 모 등이 노출되었으며 아궁이, 구들시설의 윤곽이 확인되었다. 이번 조 사에서는 아궁이에 대한 정밀 조사와 함께 굴뚝시설의 위치를 파악하 는데 역점을 두었다. 아궁이는 서승당 건물지와 마찬가지로 서쪽 1칸 에 수혈을 파고 벽면에 석재로 쌓아 부엌공간을 마련하고 여기에 함실 아궁이를 설치하였는데, 남북 2개소가 확인된다. 함실은 반원형의 평 면 형태로, 길이 30cm 내외의 모가 없는 석재로 쌓고 사이에 점토를 채 우거나 발라 마감하였다. 굴뚝은 건물지의 동쪽 끝 중앙에 위치해 있으 며 아래에서부터 돌을 원형으로 돌려 쌓았다. 부분적으로 파괴되고 축 조상태도 비교적 조잡한 편이다. 한편, 정면 중앙 1칸은 통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함실아궁이에서 발생한 뜨거운 공기가 건물지 서편 의 “ㄷ"자 구들을 데운 후, 중앙 통로 바닥 아래를 통과하여 건물지 동 편 ”ㄷ"자 구들을 데우도록 하였다. 한편, 건물지의 북쪽 1칸은 툇마루 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6) 4단지 문지 4단지 남북 중심축 전면에 위치한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4차 조사에서 대체적인 형태와 구조는 밝혀진 상태였으나 가운데 중앙 보크가 제거되지 않아 바닥전면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중앙 통 로 좌우의 공간도 바닥을 완전히 확인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중앙보크 를 제거하고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조사결과 중앙 1칸에는 바닥 전면에 걸쳐 전돌을 깔았으며, 좌, 우 각 각 1칸에는 마루시설을 하고 그 위에 소조 사천왕상을 배치하였던 것으 로 추정된다. 한편, 중앙보크 제거시 상당량의 유물이 수습되었는데, 주로 잡상, 특수기와 등과 함께 각종 소조품들이 출토되었다. (7) 4단지 「아」건물지 4차 발굴조사에서 이미 서쪽 3칸의 단 시설과 동쪽 2칸의 구들시설이 결합된 형태의 건물지인 것이 확인되었다. 다만 후대 교란된 것으로 추 정되는 남동쪽 기단 내 수혈을 보강 조사하는 과정에서 굴뚝지를 새롭 게 확인하였다. 굴뚝은 폐기와를 쌓아 개자리를 시설하였고, 벽체에 맞 물려 굴뚝 시설을 마련하였다. 3) 5단지 보강 조사 (1) 5단지 「가」건물지 3~4차 발굴조사에서 이미 조사된 건물지로, 서쪽 기단 밖을 정리하 는 과정에서 선대 연도부를 새롭게 확인하였다. 현재 석축단 아래에 쓰 러져 있는 정료대 하대석 자리에 「가」건물지 남쪽 구들시설의 원래 굴뚝지가 위치해 있었던 것이, 어느 시점에서인지 정료대가 들어서고 현재의 위치로 굴뚝지가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2) 5단지 「다」건물지 4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이다. 다만 「다」, 「사」 ,「아」건 물지에 걸쳐서 넓게 분포하고 있던 후대 교란지역에 대한 조사가 명확 히 이루어지지 않아 보강조사를 실시하였다. 교란으로 유실된 남쪽 기 단 일부 및 초석의 위치에서 적심석을 확인하였다. 또한 아궁이 부분 의 미진했던 조사를 보강하기 위해 실시한 시굴갱 조사에서 최소한 2차 례 이상 사용한 흔적을 확인 하였다. (3) 5단지 「라」건물지 4차 발굴조사에서 조사된 건물지이다. 다만 5단지 「아」건물지와의 관계에 대한 조사가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았었고, 건물의 북쪽에서 연 도부를 조사하는 과정에 선대 것으로 추정되는 구들시설 일부가 확인 되어 보강조사를 실시하였다. 먼저 「라」건물지의 아궁이부가 「아」 건물지보다 시기적으로 후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확인할 수 없었던 차에, 「아」건물지의 내부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대략이나마 확 인할 수 있게 되었다. 조사 결과, 「아」건물지의 동쪽 고맥이 일부와 내부 단시설의 마무리 흔적이 관찰되면서, 「라」건물지가 사용되던 시점에서 이미 「아」건물지는 축소되어 두 건물지가 동시에 사용되었 던 흔적이 확인되었다. 「라」건물지의 북쪽에서 확인된 선대 구들시 설에 대한 조사는 「라」건물지의 바닥을 상당 부분 제거해야만 가능 할 것으로 보여, 내부시설이 없는 북 2칸에서만 선대구들의 윤곽을 확 인하는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하였다. (4) 5단지 「사」건물지 4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이다. 다만 「다」, 「사」, 「아」건 물지에 걸쳐서 넓게 분포하고 있던 후대 교란지역에 대한 조사가 명확 히 이루어지지 않아 보강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현재 확인된 아궁이부가 원래의 위치에서 이동되었던 흔적을 확인하였는데, 원래 정면 4칸 중 가장 동쪽 칸에 있던 아궁이부가 3번째 칸으로 이동되었 던 것이 확인 되었다. 이 선대의 아궁이부는 현재의 아궁이 입구부의 동측벽(뒷벽) 하부에서 강제 폐기 양상으로 확인되었다. 함실의 직경 은 약 110㎝ 가량으로 잡석을 진흙에 개어 쌓았다. 아궁이 입구부는 140×90㎝ 가량의 규모로 수혈식으로 시설하였다. 한편, 아궁이부의 이 동과 관련되어 건물의 규모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분명치 않다. (5) 5단지 「아」건물지 당초의 조사와는 달리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남측 벽 전면에서 단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사」건물지 의 상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건물지와의 선후관계 가 확인된다. 하지만, 사용 시기는 동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 다. 이 지역의 초석 배치 및 건물의 중복 관계가 복잡해 좀 더 세밀한 고찰이 이루어진 후에 판단되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2. 出土 遺物 이번 5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크게 도자기류, 기와류, 금속 류, 석제품 및 소조품 등으로 구분되며, 이전의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 과 큰 차이가 없다. 1) 도자기류 자기류는 상당히 많은 양이 조사지역의 와적층 및 구지표면 상에서 출 토되었다. 출토품은 조선 순백자가 다수를 차지하며 기종은 접시, 종 자, 발 등의 일상생활용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 외에도 분청사기, 청 화백자 등이 소량 출토되어 다양한 양상을 보여 준다. 백자 접시, 종자 와 같은 일상생활용기들은 3단지 「다」건물지 내부에서 다수 출토되 었다. 태토 질과 유색, 성형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상품 백자이기 보다 는 생활 자기에 가깝다. 5단지 「라」건물지 옆 동쪽 배수로에서는 명 문이 새겨져 있는 백자 발이 출토되었다. 백자 발의 굽 바닥면에는 각 각 "左", "右", "別"의 음각명이 남아 있다. 분청사기로는 상감분청 향로 편과 인화상감접시편이 출토되었다. 상감분청 향로는 3단지「사」건물 지 서쪽 기단 밖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는데, 향로의 전 일부만이 남아 있으며, 각이 져 있는 전 부분에는 당초문양이 백상감되어 있다. 인화상감분청사기는 3단지「나」건물지와 3단지「사」건물지 서쪽 기 단 밖 배수로에서 각각 1점씩 출토되었다. 3단지「나」건물지 출토 인 화상감분청접시편의 외면에는 "長"銘이 원권문안에 백상감되어 있는 데, “長興庫”의 “長”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기는 대략 15세기 전반에 해 당한다. 이외에도 魚文이 흑백상감으로 시문되어 있는 인화상감분청접 시편이 3단지「사」건물지 서쪽 기단 밖 배수로 근처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4단지 「마」 건물지 내부에서는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었는데, 백 자 발의 구연편으로 보이며 기 외면에 초화문이 청화로 시문되어 있 다. 도기류는 주로 담장지 아래, 배수구 내부 등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건 물지 내에서의 출토량은 많지 않다. 기종으로는 옹류가 주를 이룬다. 3 단지「바」건물지 동북 기단 밖 배수로 내에서는 소량의 사립이 섞인 정선된 점토로 만든 양이부호가 출토되었는데, 물동이로 쓰였을 것으 로 추정된다. ‘T’자형에 가까운 구연에서 풍만한 구형의 동체를 이루다 가 평저형의 저부로 이어진다. 동체부와 저부에 빗금문의 타날흔이 남 아 있으며, 구연 아래와 동체 중앙부에 각각 1줄의 굵은 음각선이 돌려 져 있다. 2) 기와류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기와류는 시굴 조사 및 1~4차 조사시 출토된 것 과 큰 차이가 없다. 3단지 동쪽 지역의 각 건물지 주변 와적층에서 다양 한 형태의 막새기와들이 출토되었다. 수막새의 경우에는 범자문 수막 새가 가장 많이 출토 되었으며, ‘洪武三十年…’명 수막새와 연화문 수막 새도 출토되었다. 암막새의 경우에는 용문 암막새와 범자문 암막새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고, 4단지 「라」건물지 보강 조사에서는 고려시대 귀목문 암막새가 출토되었다. 한편 4단지 「사」건물지 보강 조사에서 건물지의 북서쪽 고래둑을 쌓는데 이용되었던 직경 11cm 내외의 소형 연화문 수막새가 수습되어 주목된다. 소형막새는 아직까지 그 사용처 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활주 위의 차양용이거나 건물 내부의 닫 집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수기와로는 4단지 「바」건물지에서 출토된 취두편이 있다. 취두의 앞쪽은 용으로 추정되는 동물이 입을 크게 벌려 용마루를 물고 있는 형 상이며, 뒤쪽에는 몸을 얽은 소룡을 부조로 표현하였다. 복원이 완료되 지 않았으나 비교적 그 형태가 잘 남아있어, 이를 통하여 회암사지에 서 사용된 취두의 형태를 대략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 다. 또한 같은 지역에서 출토된 용도미상의 용머리편은 환조에 가까운 고부조로, 높이는 약 11cm 가량이며, 그 후면은 반구형으로 움푹하게 패여 있다. 4단지 「카」건물지에서는 완형에 가까운 잡상이 한 점 출 토되었는데, 이 상은 이전까지 회암사지에서 출토되었던 다른 잡상에 비하여 추상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궁궐에서 사용된 잡상과 유사한 모습이다. 3) 금속류 이번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금속류 유물은 철제류와 청동제류로 크게 구분된다. 철제 유물은 그 용도에 따라 건축부재류, 생활용구류, 농공 구류, 무기류 등으로 분류되며 많은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건물지 목조결구용 철정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 외에 다양한 종류의 건 축부재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타 철부가 4단지 「라」건물지에서 출토되었으며, 철겸,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제 유물은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서 주목되는 청동 제 유물은 4단지 문지 부근에서 출토된 풍탁편이나, 보존 상태가 양호 하지 않다. 기타 청동 방울, 청동 시저, 청동 국자 등이 출토되었으며, 卍자가 양각된 원형 장식, 배꽃 문양 장식 꽂이, 연꽃 장식 등이 출토되 었다. 또한 3단지 「라」건물지에서 출토된 청동 비녀는 머리부분이 결 실되었으나 양쪽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장식을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꽂이부에는 여의두문이 새겨져 있다. 동전류는 5단지 「사」건물지에 서 도광통보(道光通寶)가 출토되었으며, 이외에도 조선통보,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다. 4) 석제품 석제 유물은 벼루와 구슬류, 옥 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석제 벼루는 2점 이 출토되었는데,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장방형을 이루며, 단면은 밑면 이 윗면보다 좁은 사다리꼴이다. 이 가운데 소형 벼루는 4단지 문지 중 앙 둑 제거 작업시 상부 퇴적층(모래층)에서 출토되었는데, 점판암 계 통의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모서리 부분만 남아 있다. 잔존 길이는 가 로 3.2㎝, 세로 4.5㎝, 두께 0.7㎝이다. 또 한 점의 벼루편은 4단지 「카」건물지 내부에서 출토되었는데, 벼루의 가운데 부분만 잔존하 며, 너비 8.3㎝, 두께 1.8㎝이다. 남아 있는 부분의 한 쪽 경사로 보아 물집 부분이 결실되었으며, 벼루 바닥면이 상사와 거의 같은 높이로 되 어 있다. 석제 구슬은 4단지 「사」건물지 북동쪽 구들 남측 塼 아래에 서 출토되었다. 구경 0.3㎝의 구멍이 뚫려 있고, 검은 색을 띄고 있다. 유리 구슬은 3단지 「라」건물지 내부 바닥면에서 출토되었다. 비취색 이며, 0.4㎝의 구멍이 관통되어 있다. 표면에는 제작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나선형의 선이 있다. 출토된 구슬류의 용도는 念珠 혹은 장식 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에 구멍이 뚫린 원반형의 璧이 3단지 「바」건물지 내부 와적층에서 출토되었다. 璧은 장례시에 사용 되는 葬玉의 일종으로, 시신의 가슴에 얹는 것이다. 일부가 결실된 片 으로 두께는 0.4㎝이고, 지름은 약 14㎝로 추정된다. 앞․뒷면의 문양 은 동일하게 穀粒渦文이 새겨져 있다. 이는 낙랑 고분인 석암리 9호분 목관 내에서 출토된 璧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석암리 출토 璧 의 경우 안쪽에는 穀粒渦文이, 바깥에는 네 쌍의 雙身龍紋이 새겨져 있 다. 5) 소조품 이번 발굴조사에서도 4차 발굴조사와 마찬가지로 4단지 문지 지역에 서 다량의 소조품이 일괄 출토되었다. 4차 발굴조사에서 수습된 소조품 류와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 중 화염문 내에 세 개의 구슬이 표현된 형태의 소조편이 2점 포함되어 있다. 후면은 떨어져 나갔거나 동체에서 분리된 형태로 보이며, 내부 중앙에는 방형의 철심을 꽂았던 흔적이 있다. 따라서 이는 철심을 이용하여 동체에 연결시켰던 장식의 일종이며, 4차 발굴조사시 출토된 금동 화염문 보관장식과 동일한 형태 를 보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관 장식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된 다. 瓦質의 소조품도 여러 점 출토 되었는데 두 점의 인물두상을 제외하면 성형 상태가 거칠며, 용도를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3단지 「사」 건물지 남쪽 기단 밖 외부담장지 하부의 와적층과 3단지 「나」건물지 에서 동일한 형태의 인물 두상 두 점이 출토되었다. 부조 형태로 머리 이하는 결실된 상태인데, 둥글고 통통한 얼굴에 耳目口鼻가 가운데로 몰려 있다. 이마 윗부분으로 앞가르마를 탄 머리의 일부분이 보이는데 머리카락은 몇 가닥의 양각선으로 얕게 표현되어 있다. 화문, 구슬문, 곡선문양 등이 돋을새김 혹은 음각선으로 표현된 광배 형태의 장식이 머리 주위에 둘러져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부녀자의 가채와 형태가 유 사하다. 3단지「나」바닥면에서 출토된 소조상은 하체가 결실되어 있 으며 四肢를 대략적으로 성형하고 세부 표현은 粗略하다. 얼굴은 코와 입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어 마치 새의 얼굴과 같으며, 눈을 부 릅뜨고 있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미간에는 둥근 점이 도드라져 있 다. 깊은 음각선으로 입과 콧망울을 표현하였고 얼굴 주위에는 수염이 표현되어 있다. 등 부분은 파손되어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양 옆으로 벌 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4단지 「카」건물지에서 출토된 소조상은 두부 와 하체부가 결실된 인물상으로 두 손을 가슴 가운데로 모으고 있으며 망토 형태의 의복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의 형태는 생략되 어 있다. 3단지 「바」건물지 동쪽 기단 밖 외부 담장지 바닥면에서 출 토된 소조상도 흉부만 남아 있으며 가슴 중앙부에 용도 미상의 구멍이 뚫려 있다. 후면은 움푹 파인 형태로 다듬어 져 있고 그 내부에 음각선 으로 깃털 모양을 대강 표현하였다. 기타 소조품으로는 돗자리 등의 편 직물을 짤 때 씨줄을 매어 두는 실패 3점이 3단지 「바」건물지 동쪽 기단 밖 외부담장지 바닥면에서 출토되었다. Ⅳ. 조사 성과 및 의의 이번 양주 회암사지 3단지 동쪽 지역에 대한 5차 발굴조사에서는 건물 지 7개소를 확인, 조사함으로써 현재까지 50개소에 이르는 건물지를 확 인하였는데, 그 내용은 (표 2)와 같다. 이 가운데 일부 건물지는 토지 사용 승낙과 관련하여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전체 건물 규모는 222칸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고려말 중창시의 목은 이색이 기록한 『天 寶山檜巖寺修造記』의 262칸에 근접하는 수치로 6차 발굴조사 지역인 3단지 서쪽 지역과 조사가 연기된 4단지 동쪽 상단부 지역에 대한 조사 가 이루어지면, 고려말 중창시의 건물의 규모가 모두 드러날 것으로 기 대된다. 따라서 조선 성종대의 중창 및 여러 차례의 중수에도 불구하 고 기본적인 사역의 범위, 건물 규모 등은 고려말 중창시의 모습을 그 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건물지 내부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차례에 걸쳐 내부 시설이 변경된 흔적을 확인할 수 있 었다. 가령 4단지 「가」건물지의 경우 최소 3차례의 내부 시설 변경 이 확인되는데, 이는 「가」건물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 건 물지에서 관찰되는 사항이다. 3단지 동쪽지역의 조사에서는 각 단지의 문지를 경유하여 보광전에 이 르는 남북 축선상의 動線 이외에 새로운 동선이 확인되었다. 이 동선 은 2단지에서 계단을 통하여 3단지 「마」건물지 중앙 통로와 그 북쪽 의 천랑을 경유, 다시 3단지 「나」건물지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연결된 다. 그리고 다시 「나」건물지의 중앙 통로를 통해 건물지 북쪽으로 나 가게 되면, 바로 4단지 「차」건물지로 올라가는 계단과 연결되는데, 이 역시 남북 일직선상으로 연결된 동선이다. 3단지 동쪽 지역에서 조사된 건물지의 특징으로는 「가」건물지, 「나」건물지, 「라」건물지, 「바」건물지와 같이 남북 또는 동서 2실 로 이루어진 건물지의 존재이다. 이러한 평면 구조는 5단지 「가」건물 지에서도 조사된 바 있으나, 3단지 동쪽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 것이 특 징이다. 이들 건물지들은 공통적으로 내부에 구들시설이 마련되어 있 는 것이 특징으로 각각 아궁이방과 구들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타 3단지 동쪽 지역에서는 건물지 이외에도 우물지와 더불어 이와 관 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형의 석조물이 조사되었는데, 그 용도는 확인 하기 어렵다. 다만 「사」건물지 내부에는 규모가 큰 2기의 맷돌이 위 치하고 있으며, 그 서쪽 전면에는 건물지와 평행하게 대형 수조 2기가 분포하고 있어 3단지 동쪽지역의 건물지군의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 을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취사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표 2의 양주회암사지의 건물지 현황도 첨부 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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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대덕계족산성 발굴조사(3차) 운영자 2223 2002.12.13
>> 양주 회암사지 발굴조사(5차) 운영자 2732 2002.12.13
273 부여 능산리사지 발굴조사(8차) 운영자 2004 2002.12.13
272 군장산업단지 진입도로 공사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468 2002.12.12
271 청도 진라리 유적 운영자 1988 2002.11.25
270 청도 진라리 현장설명회 개최 안내(11.23) 영남문화재연구원 967 2002.11.22
269 함안 성산산성 02년도 발굴조사 전산실 1675 2002.11.21
268 익산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2197 2002.11.19
267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11/19) 운영자 897 2002.11.19
266 화성 천천리 유적 현장설명회 (11/12) 이기성 1064 2002.11.08
265 파주 적성 우회도로 구간내 문화유적 시굴조사 현장설명회 김대일 1186 2002.11.06
264 포항 철강공단-냉천간 도로공사구간 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2629 200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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