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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산성 발굴조사

2002-12-13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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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산성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회의자료 1. 조사 개요 충북 충주시 안림동․목벌동․직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636m의 남 산에 축조된 충주산성(충청북도 기념물 31호, 1980.1.9)은 南山城이라 불린다. 서남부 일부는 지동 24-1번지, 북부 일부는 안림동에 속하며, 동쪽 계곡 경사면은 목벌동에 속하여 있다. 이 산성은 석축의 성벽으 로 둘레 약 1,120m를 높이 약 7m, 너비 약 5m의 규모로 내외겹축(內外 夾築)으로 축조하였으며, 사방에 문터가 있고, 건물터가 있다. 지금까 지 조사 연혁은 다음과 같다. ․1984년에 당시 충주공업전문대학 박물관이 중심이 되어 지표조사 실 시. 『忠州山城地表調査報告書』 ․1986년에 동쪽 성벽 3개 지점에 대한 발굴조사 실시.『忠州山城 및 直洞古墓群 發掘調査報告書』 ․1993년에 동남측 水口 내측 및 동문터 일부, 숯가마 발굴조사.『忠州 山城 2次發掘調査報告書』 ․1998년에 동문터 발굴조사. 1999,『忠州山城東門址 發掘調査報告 書』 ․2001년에 수구 내측 연못터 추정지(직경 약 8m) 시굴조사로 연못 존 재 확인. 이번의 조사는 연못터를 발굴하여 排水路를 확인하며, 이 결과에 따 라 연못의 복원과 성내 雨水의 배수시설을 갖추어 성벽을 보존할 방안 을 강구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충주산성은 ① 내외겹축의 석축 산성으로 삼국시대 에서 통일신라 후반까지 사용한 것으로서 후대에 재사용한 흔적이 없 어 중요하다는 점, ② 서문터․북문터․남문터는 능선으로 통하는 위치 에 마련되고, 동문터는 계곡으로 통하는 곳에 마련되고 懸門樣式으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內甕壁을 완전히 갖추고 있고, 내부에 작은 集水 시설을 가지면서 배수구를 문의 바닥 아래에 만든 구조가 최초로 확인 되었고, ③ 현존하는 水口 施設은 삼년산성 동쪽 수구에서 시작된 성 벽 통과식 수구를 본받아 만든 양식으로서 入水口와 出水口가 溫達山 城에서 확인(2002년 8월)되기 이전에 가장 확실한 구조로 처음 알려진 것이며, ④ 고대 성곽에서는 유일하게 女墻의 구조와 형태가 남아 있 는 상황이 밝혀지고, ⑤ 성내에 圓形의 저수지가 마련되고, 여기서 넘 친 물이 水口로 빠지도록 배수를 위한 導水路가 있음이 알려졌다. 2. 조사 내용 (1) 연못 [위치와 작업과정] 산성의 東門(懸門式인 同時에 貯水裝置와 排水溝가 높이를 달리하는 3개로 된 特殊한 構造) 남쪽 측벽에서 남쪽으로 50m 지점이 연못 내에 포함되는 위치이며, 水口(出水口와 入水口가 사다리꼴을 이루고 계단 이 階段式으로 城壁을 通過하는 構造)의 내측 入水口에서 14m의 거리 에 북쪽 윗면 池岸이 있다. 산성의 동쪽 계곡을 횡단하는 성벽은 성벽 위에서의 너비가 약 4.8m인데, 그 내측 가장자리에서 연못의 중앙부까 지가 9m가 된다. 연못은 이 산성 전체의 동쪽 계곡 두 개를 횡단하는 남쪽 계곡에 해당 하는 곳으로 산성 동쪽 아래의 욕각골(요까꼴) 마을 水源의 일부를 차 지하는 위치가 된다. 내외겹축 된 석축성벽의 안쪽 가장자리에서 약 2m~15m의 범위 안에 마련되었으며, 내외 겹축된 성벽 내측으로 불규 칙한 塊石을 채운 다음, 그 안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올라가는 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池岸의 윗부분은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다. 남쪽은 거대한 암반 露頭이며 북쪽은 낮은 능선줄기 속으로 암반이 약간 노출 되었다. 당초 이곳은 서남쪽의 능선과 동향한 능선 사이에서 동향한 작은 골짜 기 아래로서 급경사가 점차 완만하게 토사로 덮여 있었으며, 뿌리가 왕 성한 잡목이 크게 자라 있었으므로, 최소한의 범위에 대한 벌목으로 잡 목 4그루를 베어내었다. 연못과 도수로의 확인을 위해서는 2001년에 확인된 연못의 위쪽과 언 저리를 池岸으로 예상되는 범위보다 밖으로 확장하여 사방 16m 정도 의 범위와, 이곳에서 잔존한 水口를 향한 부분을 조사하였다. 연못의 外緣은 남쪽으로 암반을 채석하면서 마련된 공간을 포함하며, 서쪽으로 급경사의 계곡, 북쪽으로 작은 능선을 지나 수구와 동문에 이 르며, 동쪽은 곧바로 석축의 성벽이다. 따라서 남쪽의 암반 노두 부분 과 池岸과의 관계를 알기 위하여 암반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여 지안이 확인되자 동서방향으로 더욱 깊이 구덩을 파서 池岸의 석축 외벽을 확 인하였다. 다른 방향에서는 급경사를 이룬 때문에 석축 외벽을 확인하 지 못하였으며, 파낸 흙과 돌은 성외로의 반출이 불가하므로 여장처럼 성벽 위쪽 외측 가장자리로 쌓고, 토사는 성벽 윗면을 두텁게 깔고, 다 시 동문과 연못 사이의 완만한 경사면에 쌓아두도록 하였다. 석축된 池岸의 확인을 위하여 예정구역을 전면 발굴하여 上部 2次 池 岸 內側이 완전히 드러난 상태가 되었다. 이 층위에서 비로소 연못 내 부의 黑灰色 뻘 층이 나타났으며, 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갑자기 추워 진 날씨로 얼음이 얼기 시작하였으므로, 중앙 서측에 구덩을 마련하고 고무 호-스를 사용하여 고여든 물을 빼내면서 작업을 진행하였다. 연못 내부에 充塡된 뻘 층은 작업의 편의를 위하여 남측 절반부와 서 측 일부로 파내어 1次 池岸을 확인하였으며, 아직 1차 연못의 바닥에 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1차 연못의 전체 윤곽 확인과 뻘층에 대한 정밀한 유물의 검출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고 시일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앞으로의 과제가 된다. [下部 1次 池岸] 池岸은 1차 석축 부분과 2차 석축 부분으로 구분이 가능하며, 이는 내 부에 가득 채워진 뻘 흙의 층위에서도 확인된다. 즉, 1차 석축 위로 계 단모양을 이루며 높아지면서 넓어진 부분에서 황갈색 토사가 남북 방 향과 동서 방향으로 교차되어 뻘층을 가르고 있다. 이 층위는 한때 水 位까지 뻘이 충전된 다음 池岸 외측에서 사태로 몰려든 흙이며, 그 위 로 다시 뻘층이 계속된 상태의 부분은 1차 석축 위를 대략 정리하여 3 층의 층급으로 축조한 2차 池岸 석축이 된다. 1차 석축은 [圖面 2․3]에서 보듯이 남쪽 池岸은 동서 방향으로 5.2m 의 길이를 직선으로 납작한 할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아직 바닥 까지의 깊이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1m 이상으로 추정된다. 서쪽 池岸 은 1.6m의 길이로 된 모서리와 3.2m의 길이로 된 부분으로 나뉜다. 1차 池岸의 서북 모서리까지 확인된 상태에서 북쪽 池岸은 서쪽에서 1.5m까지 직선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 池岸은 3m까지 직선을 이루고 있어서 평면 형태가 일그러진 5각형, 혹은 6각형일 가능성이 있다. 1차 池岸은 남쪽 석축 벽체의 길이가 5.2m, 동서 방향의 최대 너비 6m, 확인된 남북 너비 4.3~4.4m, 남서쪽 모서리로 넓어진 모습이며, 수직으로 쌓은 후 위로 오르면서 계단 모양을 이루어 사방으로 넓혀지 는 구조이다. 그러나 서측에서는 계단을 이루지 못하고 압력에 밀린 상 태에서 2次 池岸의 축조를 위한 기초가 60cm의 높이로 거의 수직으로 축조되어 있어서 모두 4개의 층단을 이룬 것처럼 보이고 있다. 현재 나타난 1차 지안은 남벽 길이 525cm, 서남벽 길이 180cm, 서벽 길이320cm, 동쪽 벽의 추정 연장길이 420cm, 북쪽 벽의 추정 연장길 이 500cm 정도이며, 동북쪽의 모서리 모양을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다. 동남쪽 모서리에서는 위에서 抹角처럼 모를 없앤 모습을 보여주며, 동 서 5m, 남북 4.4m의 장방형에 서쪽을 삼각형으로 잇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북쪽 모서리도 서남쪽 모서리와 비슷한 모서리 처리를 하였을 가능 성이 있는 것은, 각기 계곡의 중심부로서 물이 들어오는 위치와 빠지 는 위치이기 때문에 당초의 상태와 보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까지 40cm 깊이까지 뻘흙과 벽을 축조하였던 석재가 뒤엉켜 나오고 있 으며, 바닥까지는 연못의 기능을 하기 위해 최소한 1m의 깊이 이상이 될 것이라 추정된다. 1次 池岸의 윗면 높이는 서쪽 중앙에서 2次 池岸의 정상에서 295cm, 동쪽에서는 180cm인데, 이때 서쪽과 동쪽의 2次 池岸 위쪽의 높이 차 이는 1.8m가 된다. 1차 池岸의 서측과 동측 상면의 높이 차이는 동측 이 15cm 낮은 상태로 남아 있으며, 남북 방향에서는 동일한 높이이다. 남북 방향의 경우 남쪽 2차 池岸 최상부에서 1차 池岸 상부까지는 330cm, 북쪽에서는 275cm가 된다. [上部 2次 池岸] 2차 池岸은 불규칙하지만 대체로 抹角 多角形을 이룬 3重의 石築으로 서 바깥에서 안쪽으로 차례로 층단을 이루어 내려가는 계단식 보호석 축이다. 석축은 연못 안쪽을 향하여 압력을 받아 쏠렸으며, 동쪽에서는 연못 바깥으로 쏠려 있어서 갑자기 계곡 방향을 따라 많은 물과 土砂가 넘치면서 崩壞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1차 池岸이 비교적 수평을 이룬 반면에 2차 池岸은 계곡 위쪽이 높고, 계곡 아래쪽이 얕게 붕괴된 양상으로 남아 있다. 비교적 완전한 형태 를 유지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남북 방향의 너비는 최대 12.2m가 되며, 석축 윗면을 기준으로는 윗면 석축의 가장자리 사이가 10.8~10.9m, 윗 면의 한쪽 석축너비가 60~90cm의 석축을 이룬다. 이 외측 석축의 동서 방향 너비는 13.3~13.4m이며, 이 석축의 안쪽으 로 층단을 이루어 낮아진 중간 부분은 너비가 외측에서 60~80cm씩 좁 아진 것이며, 다시 안쪽으로 낮아진 내측층단의 석축도 마찬가지이다. 중간 층단에서는 남북 방향의 너비가 9.5m(이는 외측 석축의 안쪽 길이 와 동일)에서 8.2~8.3m의 사이가 되며, 내측 층단은 8.2~6.5m로 불규 칙하게 남아 있다. 남북 방향의 너비는 외측 석축 내측면 사이가 최대 11.5m, 중간 석축 내측면 사이가 9.2m, 내측 석축의 내측면 사이가 8.1 ~8.2m가 된다. 각 층단의 높이는 외측 상부의 잔존 상황이 비교적 양호한 서측에서 외측 상면에서 60cm 아래에 중간 층단이 있고, 거기서 다시 90cm 아래 에 내측 층단이 있다. 그러나 남측에서는 좁은 공간 탓으로 90cm씩이 되어 있으며, 북쪽과 동측에서는 층단 사이의 높이가 낮아진다. 이들 3중의 석축은 각기 별도로 축조한 것이지만 남쪽 석축의 외측면 확인에서 외측면 작업 자체가 한꺼번에 축조되어 있었으므로, 계획적 으로 3단의 석축이 계획된 상태에서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2차 석축 지안은 그 자체를 3차례에 걸쳐 시간 차이를 두고 축조한 것 은 아니고, 처음은 너비 1.8m(서쪽)~2.4m(북서쪽)~2.7m(북동쪽)~ 3.6m(동쪽)3m(동남쪽) 등으로 서쪽은 좁고 동쪽으로 넓게 터를 잡아 축조하다가, 중간 층을 두고 다시 외곽을 쌓아 올린 것이다. 맨 위까지 축조된 외곽은 일부 약간의 보수의 흔적이 있다. 2차 池岸의 내측 석축은 1차 池岸의 직선을 弧形으로 바꾸고 있으며, 이 때문에 시굴조사시에 圓形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다. 2차 池岸은 계곡의 위쪽보다 아래쪽으로 너비를 증가시켜 축조하여 물 과 토사에 의한 붕괴를 방지한 구조였으나, 현재 남은 상태에서 보아 한차례 엄청난 물난리로 연못은 토사로 가득 차고 그 위로 토사가 흘 러 넘쳐 성벽까지 붕괴시킨 것임을 알 수 있다. 2차 연못은 1차 연못이 池岸의 붕괴와 사태로 매몰되자 浚渫을 하지 못하고 연못을 더욱 크게 만들되, 1차 池岸의 모습을 대체로 유지한 평 면 구도 아래 보다 규모를 넓히었다. 1차 池岸의 上面을 대략 유지하 되, 동측에서는 범위를 넓혀서 기초를 붕괴된 1次 석축 위에 마련하여 축조된 것이며, 축조된 양상은 1次 池岸 축조에 비교하여 내측, 중간, 외측의 모습이 정교하지 못하며, 특히 최상단을 이루는 외측 池岸은 남 측 윗면에서 작은 할석편이 많이 사용되고 폭이 매우 좁게 보완된 것이 다. (2) 排水用 導水路 연못에서 水口까지의 사이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내려가는 지형이 다. 수구의 입수구 내측으로 1m 정도의 양쪽 측벽이 남아 있는 안쪽 끝 부분에서 저수지의 2차 池岸 내측까지는 약 13.6~13.8m의 거리이 며, 2차 연못의 외측 벽면까지는 11.2~11.3m의 거리가 된다. 연못의 내부에서 도수로와 이어지는 부분은 2차 석축의 내측 석축에 서 연못 안쪽으로 너비 약 1.6m의 부분이 경사를 이룬 할석으로 덮여 있었으며, 그 너비의 중앙부에서 入水口까지 석재가 방향을 달리하여 2 줄로 확인되는 바 있었다. 1차 연못에서 배수가 어떠한 경로로 이루어진 것인지는 아직 불명이 다. 현재 남아 있는 水口는 입수구에서 남측으로 꺾여 연못에 이르는 사이가 할석과 점토로 덮여 있었다. 당초 수구 내측을 조사할 당시 수구의 입수구 남측에 석축이 조잡하 게 있었으며, 그 너머로 모래가 쌓여 있었던 것이 목격된 바 있는데, 그 후 입수구 조사에서는 연못을 향하여 일부 석축된 側溝 형식의 도수 로가 확인된 바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도수로는 2차 연못 때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며, 연못 의 북동쪽 모서리 부근에서 수구의 입수구를 향하여 직선으로 약간의 유구가 남아 있다. 이 도수로의 동측(성벽 쪽)으로는 점토가 다져진 위 에 숯이 포함된 층위가 있고, 다시 황갈색 점토로 다져진 위에 할석을 깔고 있으며, 이 층위의 경사면을 따라 동북쪽으로 너비 25~40cm에 불과한 규모로 할석을 두 줄로 면을 상대하여 놓은 부분이 목격된다. 이것이 최후의 배수용 導水路에 해당하며, 연못에 물이 2차 석축의 중 간 단에 이르도록 채워진 다음에 배수될 수 있는 높이에 해당한다. 그 리고 이 도수로의 아래 층위에서도 토기 조각이 검출되고 있어서 1차 연못의 배수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닐 것임을 시사한다. 이 배수용 도수로는 후에 토사가 넘치면서 유실된 부분이 있으며, 이 처럼 도수로가 유실되자 연못의 배수는 도수로를 넘쳐 성벽 쪽으로 모 래가 쌓인 상태로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도수용 배수로를 복원할 경우 현재도 연못에 고인 물이 일정한 수위 에 도달하면 수구를 향하여 배수가 가능하다. (3) 水口 水口는 일찍부터 알려진 出水口 때문에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93년 가을에 入水口가 조사되었다. 수구는 성벽 통과식으로 성벽 내 에서 입수구―출수구 바닥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고 27.5°의 기울기를 가 지고 있다. 출수구는 立面에서 보아 바닥 너비 55cm, 좌우 5층으로 側 壁을 축조하여 위쪽 너비 24.5cm, 높이 65~66cm의 규모이며, 底面에 舌石의 너비 102cm, 높이 18cm, 밖으로 22cm가 내밀어 있고, 蓋石은 너비 85cm, 높이 15cm의 위에 길이 76cm, 높이 18~20cm의 이중 板狀 石으로 結構되었다. 이 부분의 성벽 너비는 내외 상단에서 6.6m, 입수 구 천정석에서 출수구 천정석까지는 7.13m이다. 入水口는 당초 10층 1.4m의 성벽 안쪽 가장자리 아래서 시작하여, 길 이 110cm까지 바닥이 깔린 상태이며, 나팔 모양처럼 내측에서 수구로 좁아진다. 너비 45cm, 높이 65cm로 좌우 각각 할석 54층과 4층으로 축 조되고, 위쪽 너비 20cm, 개석은 너비 78cm 높이32cm이다. 입수구는 높이가 65~68cm로 출수구보다 폭이 좁은 사다리꼴이다. 수구 내측의 차단벽은 북측의 것이 길이 4.8m, 너비는 중간에서 1.15m 로 암반과 이어져 있었으며, 도수로 위에서 40cm의 간격을 두고 3m의 길이까지 곧장 축조하고, 20cm를 좁혀 1.8m를 축조하였는데 성벽 내 측 높이보다 30cm 낮게 수평 上面을 이룬다. 남측의 차단벽은 도수로 측벽에서 1.8m의 간격을 두고 직교하는 석재가 3-4개 남아 있었으며, 모래와 석재가 교란되어 있었다(93년도 발굴 당시 상황). 이와 같은 상태를 종합하면, 수구연못에서 수구로 향한 물이 북측 차 단벽에 의하여 수구로 방향을 바꾸도록 되어 있었으며, 수구 쪽으로의 사태에 의하여 토사가 많이 몰려들어 매몰된 시기가 있었음과, 그 이 후 연못의 확대 증축과 수구로의 도수로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東門~水口 사이의 遺構 동문의 남측 측벽 선단에서 수구까지는 직선거리 30m가 된다. 이 구간 의 대부분은 보수된 성벽이며, 당초 남아 있었던 수구와 동문을 더 이 상 붕괴되게 하지 않도록 조처한 것이다. 이 부분은 성벽 내측의 높이가 연못이 있는 곳에 비하여 낮으며, 작은 계곡부에 해당된다. 이 계곡부에서 배수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성벽 내측 벽면과 성벽 내측으로 성벽에 직교하 는 발굴 구덩(성벽에 직교한 부분 길이 12.5m 너비 3m, 성벽 내측면을 따라 길이 16m 너비 2m의 구간)을 설정하여 조사하였다. 이 구간에서 성벽의 너비는 6~7m로 불규칙하며(보수 구간 윗면 기 준), 성벽은 심하게 유실된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이 바로 계곡의 중심 이 된다. 성벽 내측 벽면에서 5.5~6.5m의 거리를 두고 성벽과 나란히 달리는 작은 벽체의 흔적이 나타났다. 이 벽체는 당시의 생활면과 접하여 황갈색 점토다짐을 하여 작은 할석 편으로 만든 것이며, 성벽 내측의 통행로, 혹은 물의 차단벽으로 만들 어진 것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 유구가 동문 내측으로 이어지는 양 상으로 보아, 동문 내에서의 저수장치와 배수 유구와의 관련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별도로 연못을 만든 흔적은 찾을 수 없었 다. 따라서 동문이 있는 위치의 작은 谷部에서 내려온 물은 동문 내부 의 집수장치로 모여서 배수되었으며, 큰 물난리를 만나 성내의 물과 토 사가 동문 내에 마련된 배수장치로 빠지지 못하고 가장 낮은 위치를 통 과하는 성벽을 밀치고 나가면서 성벽이 유실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5) 동남쪽 계곡의 배수처리 계획 지금까지 조사된 상태를 토대로 東門과 水口 및 연못이 있는 전체 계 곡은 중간에서 낮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낮은 등성이가 다시 東門 구역 과 연못 구역을 구분하며, 연못 구역과 동문 구역을 수구의 내측 북쪽 의 성벽에 직교하는 석축이 구분하고 있어서, 연못으로 모여든 물은 수 구로 배수되었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수구의 북측으로 형성된 골 짜기의 물은 배수를 위한 시설이 東門 內에 있는 집수장치와 배수구가 있을 뿐이다. 다만 성벽으로 물이 경사면을 따라 直衝하지 못하도록 성 벽 너비에 가까운 거리를 성벽 내면에서 떨어진 위치에 성벽과 나란히 낮고 작은 둑을 축조하여 물을 유도하는 시설이 있었다고 여겨지며, 한 꺼번에 많은 물이 사태를 일으켜 가장 낮은 위치를 통과하는 성벽을 붕 괴시킨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따라서 이 부분의 성벽을 보존하기 위하 여, 그리고 동문터의 보호를 위해서도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水口 설 치의 필요가 있다. 3. 출토 유물 암반의 노출과 연못을 덮은 사태층에서는 토기편과 기와편이 많이 포 함되어 있었으며, 암반의 부스러기(계명산층의 흑운모 석영편마암, 準 片磨岩 및 角閃岩)에서 떼어낸 할석과 자갈, 토로마이드 質 石英岩 덩 이)가 포함된 사태층을 이루고 있었다. 연못의 내부에 충전된 黑灰色 뻘흙은 굵은 모래와 뻘이 섞이고 나뭇잎 과 나뭇가지 등의 흘러 들어간 부식물이 있었으며, 깊은 위치로 갈수 록 파편은 작은 것들이었다. 아직 바닥에 이르지 못한 상태이나, 현재 까지 조사과정에서 수습한 주요 유물은 다음과 같다. ◦ 철기류 : 철촉, 철제 가위, 異形鐵器 등 ◦ 토기류 : 쇠뿔모양 손잡이, 가로손잡이 시루, 흑색 盌, 황갈색 盌, 短 脚高杯 조각, 印文 토기 조각 등 ◦ 기와류 : 무문양 포목흔 기와편, 선조문 포목흔 기와편, 격자문 포목 흔 기와편 등 東門 출토 기와와 거의 동일 ◦ 木器類 : 나무망치, 망치 머리모양 목제품 ◦ 기 타 : 有孔滑石製品, 滑石製 紡錘車 조각, 陶製紡錘車 4. 성격과 특징 충주산성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충주 평원을 한눈에 조감하는 가 장 전망이 좋은 위치에 축조되었다. 북쪽은 마즈막재(心項峴)로서 한 강 상류로부터 내려오는 물길을 막는 嶺阨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멀리 청풍 방면, 남쪽으로는 月岳山과 鷄立嶺 방면에서 오는 재오개, 서남쪽 으로는 조령과 이화령을 넘어 북상하는 노루목과 대림산성, 서쪽으로 멀리 음성 방면과 망이산성, 서북쪽으로 충주시내와 장미산성이 모두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이다. 2002년도 충주산성 연못의 발굴조사는 2001년의 시굴조사에 이은 것 으로 발굴조사의 목적이 첫째, 성내 배수 문제의 해결을 통한 성벽의 보존 조처를 위한 것이었고, 둘째로는 성내 식수원을 찾으면 많은 탐방 객에게 식수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조사 결과 연못은 1次로 불규칙한 5각형 내지 6각형을 이룬 것이었다 가, 2次로 불규칙한 다각형으로 수축된 것임을 알수 있었다. 이처럼 불 규칙한 모양의 연못은 성내 당초 지형의 복잡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 며, 동시에 水壓과 土壓을 지탱하게 만들기 위한 고려에서 성립된 것이 라 여겨진다. 계곡에서 내려온 물은 연못의 두둑 외측에서 연못으로 스 며드는 과정에서 淨水가 이루어지며, 일정한 水位를 유지하도록 하였 으나, 물이 일정한 수위를 넘치면 도수로를 따라 동북쪽에 마련된 水口 로 배수되도록 만든 것이었다. 매우 가뭄을 겪은 2001년도의 경우에도 마르지 않고 식수로 계속 사용 한 바 있으므로, 현재까지 확인된 깊이 3.5m(서쪽)~2m(동쪽)보다 얼 마간 더 깊어서 평상시 식수원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하루 평균 15 ~20㎥의 물을 배수할 수 있었다. 이 연못은 해발 약 560m~566m의 위치에 마련된 것으로 지금까지 조 사된 산성의 연못으로는 가장 높은 위치이다. 더구나 수구가 완전히 남 은 상태의 연못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이번 발굴을 통하여 懸門 樣式의 東門에 마련된 집수시설과 배수장치 는 이 연못과 남북으로 자리하여 계곡의 물을 배수하는 중요한 몫을 하 였던 것이며, 후대에 성내가 토사로 덮인 상태에서 집중 호우 등의 원 인에 의하여 연못이 메워지고, 그로 말미암아 集水와 排水 상태가 나빠 져서 성벽이 붕괴되었던 상황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는 水利考古學에 서의 또 다른 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 조사는 1次 연못의 정확한 규모 와 배수방법, 뻘 층의 유물 정밀 수습 등의 과제가 남아 있다. 이 조사 가 완료되면 그 결과를 토대로 연못의 복원을 통한 성내 식수원의 확보 와 배수장치의 수리를 통한 성벽 보존 대책의 마련이 가능할 것이며, 훌륭한 관광자원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토유물의 양상은 전형적인 삼국시대에 속하는 유물과 통일신라시기 의 유물이 있을 뿐, 그 이후의 유물이 없다. 삼국시대와 관련된 토기와 기와는 대략 短脚高杯처럼 신라의 유물임을 標識的으로 알려주는 것 이 많으나, 삼국이 공통으로 사용하였을 유물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6세기 후반을 나타내는 유물들과 통일신라 시기를 나타내 는 유물이 위주가 되어 있음은 이 산성이 國原小京의 설치와 비슷한 시 기에 이미 축조되어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요소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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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산성 발굴조사 운영자 2202 2002.12.13
276 금마-연무대간 도로확포장공사구간내 문화유적 운영자 1916 2002.12.13
275 대덕계족산성 발굴조사(3차) 운영자 2223 2002.12.13
274 양주 회암사지 발굴조사(5차) 운영자 2731 2002.12.13
273 부여 능산리사지 발굴조사(8차) 운영자 2004 2002.12.13
272 군장산업단지 진입도로 공사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468 2002.12.12
271 청도 진라리 유적 운영자 1988 2002.11.25
270 청도 진라리 현장설명회 개최 안내(11.23) 영남문화재연구원 967 2002.11.22
269 함안 성산산성 02년도 발굴조사 전산실 1675 2002.11.21
268 익산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2197 2002.11.19
267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11/19) 운영자 897 2002.11.19
266 화성 천천리 유적 현장설명회 (11/12) 이기성 1064 2002.11.08
265 파주 적성 우회도로 구간내 문화유적 시굴조사 현장설명회 김대일 1186 2002.11.06
264 포항 철강공단-냉천간 도로공사구간 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2629 2002.11.06
263 포항 철강공단 - 냉천간 도로공사 구간내 유적 현장설명회(11/7) 운영자 858 2002.11.06
262 단양 사지원 태장이묘 3차발굴조사 현장설명회(11/4) 전범환 1035 2002.11.02
261 광주 분원리 조선백자 도요지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918 2002.11.01
260 전주 송천동 토지구획정리 사업지구내 유적 운영자 2551 2002.10.28
259 구이-전주간 도로확포장공사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1971 2002.10.25
258 구이-전주간 도로 확·포장구간내 현장설명회(10/25) 운영자 825 200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