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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 부소산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의자료

2001-07-06 13:47:00
조회 2584
2001년도 부소산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의자료 Ⅰ. 조 사 명 : 부여 부소산성 발굴조사 Ⅱ. 조사지역 : 부소산성 북문지 내측 및 동성벽 연결부, 경사면 평탄 대지 Ⅲ. 조사기간 : 2001. 5. 15 ∼ 현재 Ⅳ. 조사내용 1. 유적현황 이번 발굴지점은 부소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백마강을 바라 보고 있는 북문지의 동편성벽 능선의 정상부 평탄면과 북문지 내측의 계곡저지대, 북문지 동편성벽 능선의 정상부와 계곡저지대를 연결하 는 산 경사면의 L자형 평탄대지의 세 곳을 포함하고 있다. 북쪽으로 백 마강과 맞닿고 있는 부소산은 백마강 쪽으로 두 개의 능선이 돌출해 있 고 그 사이에 지대가 낮고 경사가 완만한 작은 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계곡은 과거 논으로 경작되기도 했던 곳으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 고, 잡목이 무성한 습지였다. 이 계곡의 북서쪽 끝 백마강과 맞닿은 지 점에 북문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2000년도에 일부 조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북문지의 동쪽에는 북문지의 동편성벽이 구축된 능선이 있는데, 이 능선의 정상부는 비교적 평탄한 대지를 이루고 있으며, 성벽의 외측 은 급격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이 곳 또한 2000년도에 일부 조사가 이루어졌다. 한편 능선의 정상부와 북문지 내측의 계곡저지대 사이의 능선 경사면 중간에는 능선 허리를 L자형으로 깎아서 만든 평탄대지 가 길게 조성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넓고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평탄대 지에 대한 조사가 이번에 실시되었다. 2. 조사경위 및 경과 2000년도 조사를 통하여 북문지 내측의 계곡저지대와 북문지 동측성벽 이 구축되어 있는 능선 정상부에 대한 성격이 일부 파악되었다. 계곡 저지대인 가지구 조사에서는 유물이 집중 출토되는 유물포함층이 발견 되었고, 능선의 정상부인 나지구에서는 8기의 수혈주거지와 저장공, 수 조, 주공으로 추정되는 소형수혈 등이 조사되었다. 이번 2001년도 조사 에서는 전년도에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가지구의 6Tr.를 중심으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였고, 북문지 동성벽이 구축된 능선의 정상부인 나지구는 미처 이루어지지 못한 평탄대지 최남단에 대한 조사를 마저 실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가지구와 나지구 사이에 있는 평탄대지 도 인위적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는 데, 이 지역을 다지구라고 명명하였다. 조사결과 가지구에서는 계곡의 경사면을 따라 동서로 길게 지나가는 석축열 2기와 방형의 우물, 자연 수로에 덧대어 만든 인공수로 등이 조사되었다. 나지구에서는 원형의 수조 1기와 수혈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고, 다지구에서는 석곽묘 1기와 판축대지, 판축대지 남쪽의 수혈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3. 각 지구별 조사 내용 가. 가 지구 (1) 조사방법 2000년도 조사 Tr.의 방향에 맞추어 동서 20m, 남북 20m의 방형 pit를 구획하고, 중앙에 남북으로 지나가는 폭 50㎝의 둑을 남겼다. 계곡의 윗부분인 동쪽의 pit를 가 - 1pit, 북문지쪽인 계곡의 아래쪽을 가 - 2pit 라고 하였다. 2000년도 조사 당시 퇴적층위가 어느 정도 밝혀졌기 때문 에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돌이 노출되는 상부의 퇴적층을 걷어 내고 본 격적인 조사를 실시하였다. (2) 층위 조사지역이 계곡저지대인 관계로 다소 복잡한 층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출토되는 유물과 퇴적양상을 고려한다면 크게 5개의 층위로 구 분할 수 있다. 백제계 유물과 통일신라계 유물, 조선시대의 유물이 공 반되고 있는 교란층(Ⅰ층), 교란층 아래에서 나타나는 모래와 산 자갈 이 교대로 퇴적되어 있는 수로내부 상층퇴적층(Ⅱ층), 가 - 1pit의 북동 쪽에서 일부 나타나는 암회갈색사질점토층(Ⅲ층), 제 1수로의 내부에 퇴적되어 있는 백제시대 층위인 흑색점토층(Ⅳ층), 그리고 수로내부 퇴 적층인 흑색점토층 아래층에서 나타나며 북석축열과 인공수로의 최하 층에서 나타나는 모래자갈층(Ⅴ층)으로 구분된다. 교란층인 Ⅰ층은 근 래의 수전층과 수전층 상부의 모래퇴적층, 수전층 하부의 회청색사질 점토층을 포함하고 있다. 여러시기의 유물이 공반되고 있어서 교란층 으로 추정되는 Ⅱ층은 모래와 모난 산 자갈이 교대로 퇴적되어 있는 데, 제 1수로의 상부와 제 2수로·제 3수로의 하층퇴적층을 이루고 있 다. 한편 안정된 백제층으로 추정되는 Ⅳ층의 흑색점토층에서는 연질 토기가 주로 출토되고 있으며, 목제유물과 목탄, 씨앗류와 같은 유기물 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또한 유기물질의 경우 불에 탄 채로 출토되 는 경우가 많아서 주목된다. (3) 유구 조사 결과 유적을 동서로 지나는 3개의 자연수로와, pit의 북쪽에서 동 서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북석축열, 북쪽 석축열의 남쪽에 있으면서 북쪽 석축열과 나란하게 동서방향으로 뻗는 가 - 2pit의 남석축열, 북석 축열의 남쪽에 인접해 있는 가 - 1pit의 방형 우물, 제 1수로라고 명명 한 자연수로를 다듬어서 만든 가 - 1pit의 인공수로 등이 조사되었다. 그 중 제 2수로, 제 3수로로 명명한 pit의 중앙과 남쪽에 위치한 두 개 의 수로는 탐색 Tr. 조사결과 비교적 후대에 형성된 수로로 판명되었 고, pit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제 1수로는 백제시대 당시에도 존재하 고 있었던 수로로 확인되었다. 1) 북 석축열 조사구역의 북벽에 바짝 붙어서 일부만 노출되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길이는 동서 약 16.5m정도이고 최대높이는 약 70㎝정도이다. 계곡의 경사면 위쪽인 가 - 1pit의 동쪽에서는 암반층위에 석축이 2 ∼ 3단으 로 낮게 조성되어 있으나, 북문지가 위치한 계곡의 아래쪽인 서쪽으로 진행하면서 굵은 모래와 산 자갈이 혼합된 퇴적층 위에 석축이 형성되 고 있고 5 ∼ 6단을 이루면서 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석축의 상단은 流 水에 의한 파괴와 침식작용으로 백자편을 비롯한 통일신라계 토기와 백제계 토기가 공반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석축은 가 - 1pit의 북동쪽 에서 나타나는 암회갈색 사질점토층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워 낙 일부만 노출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 파악이 어렵다. 다만 석축 이 기반하고 있는 모래자갈층에서 사비시대 백제토기만이 출토되고 있 어서 그 상한을 짐작할 수 있다. 2) 남 석축열 가 - 2pit에서 시작해서 조사구역의 서쪽 밖으로 계속되고 있다. 현재 약 7m 가량 노출되어 있다. 높이는 2 ∼ 3단이 잔존하고 있으며, 최대 약 40㎝ 정도의 높이이다. 북 석축열과 진행방향이 거의 나란하다. 가 - 1pit에서 이어지는 제 1수로의 북쪽 경계지점의 암반층위에 석축을 구 축하였는데, 석축열 동쪽의 경우 백제층으로 추정되는 흑색점토층이 위를 일부 덮고 있었다. 반면 가 - 2pit의 서벽에 가까운 석축열의 경우 석축이 제 1수로 내부의 모래 퇴적층 위에 구축되어 있다. 또한 남 석축 열의 축조시기를 알아 보기 위하여 남 석축열과 북 석축열사이의 공간 에 폭 50㎝의 탐색 Tr.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깊이 20㎝ 내외에서 풍화암반층이 노출되었고, 그 위에 흑색점토층과 모래층이 퇴적되어 있었다. 이로 미루어 남 석축열과 북 석축열 사이의 공간도 한때 수로 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출토되는 유물도 연질토기와 수 점 의 백제토기편만이 보이고 있다. 따라서 남 석축열은 시기적으로 북 석 축열보다 빠를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3) 방형 우물 가 - 1pit 북 석축열의 남쪽 약 150㎝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로 흐 르는 가 - 1pit 제 1수로에서 북 석축열쪽으로 직교하도록 풍화암반층 을 깎았고, 그 중간 지점에 우물을 만들었다. 우물은 동서 70㎝, 남북 80㎝정도의 규모이고, 네 벽은 잘 다듬은 화강암을 횡적하여 정교하게 쌓았다. 암반의 자연경사면을 이용했기 때문에 깊이는 일정하지가 않 다. 대체로 60 ∼ 70㎝ 정도의 높이를 한 4 ∼ 5단의 벽석이 잔존하고 있다. 서벽아래의 바닥에는 암반층을 파고 만든 원형의 깊은 구덩이가 존재하는데 이곳에서 많은 양의 물이 솟아오른다. 우물 내부에는 모래 와 점토가 교대로 퇴적되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물이 계속 솟아오르 면서 토층조사를 위해 남겨둔 퇴적층을 허물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부 토층조사는 불가능하였다. 내부에서는 불에 탄 씨앗류와 백제계 유물 이 출토되었다. 한편 우물의 주변에는 자연적으로 퇴적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치석된 화강암제 석재들이 무질서하게 퇴적되어 있는 것이 관찰된다. 이 석재들은 수로 내부에 자연 퇴적되어 있는 돌들과 확연하 게 구분되고 있다. 따라서 우물지 주변의 석조물이 붕괴되면서 퇴적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도 백제계 유물만 출토되고 있어서 어느 정 도 안정된 층위를 이룬다. 4) 인공수로 자연수로인 가 - 1pit의 제 1수로에 덧대어서 만든 수로로 자연수로의 남쪽 경계면 암반을 일부 깎아 다듬고 간단하게 석축을 쌓았다. 석축 은 면이 북쪽을 향하도록 하였고 계단식으로 약 3단 정도를 쌓았던 것 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에 대응하는 북쪽의 경우 확연하지는 않지만 수 로의 중간부분부터 석재를 덧대어 인공수로로 개조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석재들이 확인되었다. 수로 남쪽의 최상단 석축의 길이는 동서 약 5m 가량이고, 수로의 최대 폭은 약 80㎝ 정도이다. 수로 최하단 석 축은 자연수로 내부에 모래와 산 자갈이 일부 퇴적된 이후 그 위에 구 축하고 있다. 2000년도의 6Tr.에서 조사된 목기편과 대부완 등의 유물 은 인공수로의 내부에 퇴적된 흑색점토층에서 출토되었음이 이번 조사 로 확인되었다. 이 수로는 북쪽의 방형 우물을 다분히 의식하고 기획·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방형 우물과 동일시기로 판단된다. (4) 출토유물 교란층인 Ⅰ층과 Ⅱ층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되 었다. 출토유물은 백제유물과 통일신라시대 유물, 조선시대유물로 구 분된다. 백제유물은 기와류와 토기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와 는 대부분 평기와이고, 수막새편도 일부 출토되었다. 토기는 다양한 기 형의 호, 삼족기, 개배, 뚜껑, 시루, 자배기, 완, 대부완, 등잔, 기대, 벼 루, 연통장식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타날문이 시문된 기벽 두께 가 4㎝내외에 이르고, 속심이 암자색을 띠는 석기질의 대형토기편도 수 점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유물은 기와류가 극히 적고 대부분 토 기류인 점이 특징적이다. 인화문토기 뚜껑, 인화문 완, 주름무늬 병, 경 부에 파상문이 시문된 대형 호 등 비교적 단순한 기종구성을 보여준 다. 또한 시대와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원판형 토제품도 다수 출토 되었다. 중국제 자기편도 수 점 출토되었다. 한편 제 1수로의 내부에 퇴 적된 흑색점토층에서는 표면이 흑색이나 흑갈색을 띠는 자배기나 시루 의 편으로 추정되는 연질토기가 주로 출토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유물 은 분청자를 비롯한 백자, 옹기편 등이 있다. 나. 나지구 나지구는 2000년도에 대부분 조사가 이루어져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 되는 8기의 수혈주거지와 원형 수조 1기, 저장혈과 주공 등이 발견되었 다. 그러나 나지구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또 다른 1기의 수조와 8 호 주거지는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8호 주거지와 새로이 발견되어 미처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2호 수조에 대한 조사 를 이번에 실시하게 되었다. (1) 8호 주거지 동서 320㎝, 남북 360㎝의 정방형에 가까운 장방형 주거지로 수혈의 깊 이는 최대 20㎝가 잔존하고 있다. 내부의 동벽에 가까운 바닥에는 직 경 10㎝내외의 작은 구멍이 동서 30㎝, 남북 60㎝의 장방형을 이루면 서 뚫려 있고, 그 내부에는 불에 타서 적갈색으로 변한 풍화암반층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동벽의 중간부분부터 남동모서리에 이르는 구간 에는 폭 20㎝내외, 높이 10㎝내외의 낮은 단이 형성되어 있다. 북동모 서리에 지붕과 벽체를 올리는 주공이 있다. 이 주거지의 형태는 2000년 도에 조사가 이루어진 6호, 7호 주거지와 매우 흡사하며, 특히 7호 주거 지와 내부구조가 똑 같다. 따라서 이 8호 주거지도 통일신라시대의 주 거지로 추정된다. (2) 2호 수조 1) 수조의 규모 및 축조방법 : 풍화암반층을 동서 420㎝, 남북 480㎝, 최대깊이 180㎝로 파고, 그 내부에 60㎝의 높이로 회청색 진흙을 깔았 다. 그 다음 토광벽과 약 100㎝내외의 거리를 두고 둥글게 석축을 쌓으 면서 석축 뒤와 토광벽 사이의 공간에는 회청색의 진흙을 채웠다. 원 형 석축은 직경 180㎝ 내외이고, 북벽의 경우 현재 5 ∼ 6단에 최대 60㎝ 정도의 높이만 잔존하고 있다. 한편 원형석축의 남북 뒷채움공간 에는 정연한 형태는 아니지만 석축에서 토광 벽사이를 가로지르는 부 석유구가 나타나고 있다. 이 부석유구를 덮고 있는 토양은 주변의 회청 색진흙과 구별되는 암갈색사질점토층으로 작은 와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석축의 남동쪽 뒷채움공간에도 와편이 다량 포함된 암갈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는 부정형의 구덩이가 나타났다. 이 구덩이는 뒷 채움공간의 회청색진흙층을 파고 만들어진 것으로 층위상 확인되었 다. 2) 내부 퇴적상태 : 수조 내부에는 수조의 폐기 과정과 폐기 이후 재사 용으로 인해 대단히 많은 유물이 있었다. 크게 5개의 층위로 나눌 수 있 다. Ⅰ층은 수조의 최상층에 퇴적된 암갈색사질점토로 구성된 층위로 백제계와 통일신라계유물이 공반되고 있다. Ⅱ층은 황색마사토와 흑색 재층이 교대로 퇴적된 생활퇴적층으로 백제계기와로 만든 소형의 화덕 이 존재하고 있다. 즉, 수조가 폐기된 이후 생활공간으로 수 차례 이용 되었던 층위이다. 이 층위에서도 백제계 유물과 통일신라계 유물이 공 반되고 있다. Ⅲ층은 완형의 백제계 기와를 비롯한 백제계 토기가 다 수 출토되는 층위로 암갈색사질점토층이다. 중앙부가 낮고 주변부가 높게 경사를 이루면서 퇴적되어 있다. 역시 이 층위에서도 통일신라계 유물인 경부 파상문 대형호가 출토된다. Ⅳ층은 회갈색사질점토층으 로 퇴적양상은 Ⅲ층과 동일하지만 회청색의 점토가 다량 혼합되어 있 는 점에서 위층과 구별된다. Ⅴ층은 수조가 폐기된 이후 최초로 퇴적 된 층위로 추정되는데, 수조의 토광벽선을 따라 안쪽을 향해 경사지게 퇴적되어 있다. 이는 토광벽인 풍화암반층이 풍화되면서 뒷채움공간 에 퇴적된 결과 형성된 층위로 추정된다. 3) 출토유물 : 백제기와가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2000년도 에 조사가 이루어진 1호 수조와 동일한 양상이다. 완형의 기와가 많다 는 점은 자연퇴적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메워진 것임을 추정하게 한다. 백제토기로는 호와 기대편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토 기로는 동체에 격자타날이 되어 있고, 돌대문이 부착되어 있는 토기가 Ⅳ층에 까지 출토되고 있다. 특히 원판형 토제품이 많이 출토되었는 데, 수조 바닥의 퇴적층에서 여러 점이 출토되었다. 4) 축조시기 : 축조시기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유물이나 층위적 증거는 없다. 다만 내부에 퇴적된 퇴적토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출토되 는 것으로 보아 폐기 당시가 통일신라시대임을 추정하게 한다. 이 수조 의 축조시기를 주변에서 조사된 수혈주거지와 연관을 짓는다면 잠정적 으로 통일신라시대 초기로 추정한다. 다. 다지구 (1) 석곽묘 1) 묘곽의 크기 및 구조 : 묘곽의 규모는 길이는 220㎝, 너비 50㎝, 높 이 60㎝내외이다. 동벽의 경우 3단이 남아 있고, 나머지 세 벽은 2단만 남아 있다. 뚜껑돌로 추정되는 석재는 주변의 Tr.에서도 발견할 수 없 었다. 남단벽을 제외한 세 벽의 경우 맨 하단의 벽석을 세우고, 그 위 단의 벽석 부터는 횡적하고 있다. 남단벽은 3매의 석재가 양 측벽의 사 이에 끼워져 있는 형태인데, 석재는 매우 엉성하게 쌓여 있고 석재사이 에는 퇴적토를 메웠다. 이로 미루어 횡구식석곽으로 추정된다. 석곽의 바닥은 판축층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석곽묘를 조성하기 위해서 만든 묘광도 전대에 조성된 판축층을 파고 만들어 졌음이 확인되었다. 그리 고 일부 벽석의 경우 매우 정교하게 치석되어 있어서 다른 벽석과 확연 하게 구분되고 있는데, 이는 전대의 석재를 무덤을 만들면서 다시 이용 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2) 출토유물 : 발치 쪽으로 추정되는 남쪽 단벽에 가까운 바닥에서 백 제 암기와편이 가로로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중국제 청자완이 올려진 채로 출토되었다. 이 두 점의 유물은 무덤의 부장유물로 추정되고 있 다. 묘곽내부의 퇴적토에서는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과 조선시 대의 백자편도 출토되었다. (2) 평탄대지조사 1) 층위 : 크게 3개의 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작층인 Ⅰ층은 암갈색 사질점토층으로 조선시대의 옹기편과 백자편이 백제와 통일신라시대 의 유물과 같이 출토되고 있다. Ⅱ층은 옅은 황갈색을 띠는 사질점토층 으로 조선시대의 유물은 출토되지 않고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의 유물 이 출토되고 있다. Ⅲ층은 판축층으로 현재의 지표에서 약 50 ∼ 60㎝ 아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가장 깊은 곳의 경우 150㎝정도의 두께를 이루고 있다. Ⅲ층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현재까지 백제유물만 출토되 고 있다. 2) 유구 : 유구는 풍화암반층을 파고 만든 수혈유구와 판축대지, 석축 열 등이 조사되었다. 수혈유구는 다지구 남쪽에 집중되고 있는데, 현 재 고상건축 1기와 수혈주거지 1기, 저장혈로 주정되는 소형수혈과 다 수의 주혈 등이 확인되었다. 판축대지는 수혈유구가 집중되고 있는 남 쪽일부를 제외한 전면에 조성되어 있는데, 이 판축대지와 관련된 뚜렷 한 유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석축열은 판축대지의 상 부에 조성되어 있는데, 단지 1열의 석축열이 진행하고 있는 형태만 확 인되었을 뿐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형태와 용도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① 수혈유구 衁. 고상식건물지 : 다지구 평탄면의 최남단에서 조사되었다. 풍화암반 층을 파서 만든 溝가 시설되어 있고, 그 내부와 주변에는 주공이 배치 되어 있다. 주공의 배치는 일정하지 않다. 경사면의 낮은 쪽인 남서쪽 에 만들어진 溝는 형태가 불분명하다. 규모는 동서 290㎝, 남북 260㎝ 이고 溝의 폭은 일정치 않지만 30㎝ ∼ 50㎝가량이다. 遁. 수혈주거지 : 방형 고상건물지의 바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 벽에 부뚜막시설을 만들었고, 동벽과 나란하게 배기시설을 설치했다. 현재조사중에 있어서 전체적인 형태 등은 아직 알 수 없다. 鑁. 기타 수혈유구 : 기둥구멍으로 추정되는 크기가 다양한 다수의 소 혈과 저장공으로 추정되는 소형의 원형수혈 등이 조사되었다. 현재 부 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으 며,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② 판축대지 : 산허리를 L자형으로 깎아서 만든 평탄한 대지 위에 조성 되어 있다. 전면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현재 Tr. 조사에서 드러난 판축대지의 규모는 남북 20m, 동서 15m 정도이지만, 조사범위 밖으로도 판축층이 계속되고 있음이 확인되 었다. 평면형태는 부정형에 가깝다. 다 - 11 Tr.에서 조사한 탐색 pit에 서는 판축층의 두께가 150㎝내외이며, 서쪽으로 계속되고 있음이 확인 되었다. 자연지형을 따라 서쪽으로 낮아지는 풍화암반층위에 암반층 을 깬 돌을 깔고 그 위에서부터 점토와 마사토를 교대로 다져가면서 판 축층을 조성했다. 판축층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낮아지고 있으 며, 석곽묘가 조성된 주변이 가장 두껍게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다. 따라서 이 판축층은 서쪽으로 가면서 낮아지는 경사면을 평탄하게 조성하고, 그 위에 시설물을 축조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 다. 판축층내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현재까지 백제토기와 와편만이 발 견되었다. 이 판축대지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확실한 유구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③ 석축열 : 현재까지 유구 전체가 노출되지 않아서 정확한 형태와 규 모, 용도 등은 알 수 없다. 다 - 12Tr.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로 북동쪽으 로 곧게 진행하고 있다. 판축층의 최상층인 황백색 마사층속에 석축이 조성되어 있는데, 층위로 볼 때 후대에 파고 만든 석축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석축의 높이는 약 25㎝내외이고 2단으로 구축되었다. 현재까 지 드러난 길이는 550㎝정도이다. 3) 출토유물 : 판축층에서 출토된 유물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유구와 관 련되어 출토된 유물은 없다. 주로 Ⅱ층 유물포함층에서 출토되고 있는 데, 백제계 유물과 통일신라계 유물이 공반되고 있다. 백제계 유물로 는 완, 대부완, 호, 개배, 뚜껑, 기대, 자배기나 시루의 손잡이로 추정되 는 동이형파수, 인장와를 포함한 기와 등이 출토되고 있다. 통일신라 계 유물로는 뚜껑이나 완 등의 인화문 토기류, 납석제 용기, 주름무늬 병, 경부에 파상문이 시문된 대형호류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철촉 등의 철기류, 그물추와 방추차, 원판형 토제품과 같은 토제품과 중국제 자기 류도 출토되었다. Ⅵ. 조사성과 이번 조사에서는 성벽과 관련된 내부 시설물들을 조사할 수 있었다. 성 벽내부의 평탄면인 나지구에서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1기의 수혈 주거지와 1기의 원형 수조 등이 조사됨으로써 부소산성이 백제 뿐 아니 라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성 본래의 목적에 맞게 지속적으로 이 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지구의 수로와 우물, 석축열 등은 계곡 저지대와 주변을 이용하여 생활했던 생활공간임을 추정하게 하고 있 다. 또한 석축유구가 동쪽과 서쪽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어서 주변지역 에 대한 확장조사가 필요함을 말해 준다. 다지구의 판축대지는 이 판축 층을 이용한 또 다른 시설물이 있을 가능성을 암시해 주고 있으며, 주 변 지역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판축층의 성 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함도 아울 러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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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도 부소산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의자료 운영자 2585 2001.07.06
116 경주 황성동 537-1번지 발굴조사 운영자 2176 200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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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무안 국제공항 건설지역내 문화유적 현장설명회(6/20) 운영자 735 2001.06.25
110 용인 죽전 유적 현장 설명회 (6/14) 운영자 800 2001.06.15
109 용인 죽전 유적 운영자 2393 2001.06.14
108 사적 259호 강화 선원사지 운영자 2096 2001.06.13
107 선원사지(禪源寺址, 사적 제259호) 현장설명회(6/12) 운영자 723 2001.06.13
106 울산 柏川유적 운영자 1770 2001.06.12
105 대전 석봉정수장 건설사업 지역의 구석기유적(용호동) 3차 발굴조사 운영자 2093 2001.06.11
104 석봉정수장 건설구간내 구석기유적 현장설명회(6/11) 운영자 779 2001.06.11
103 기흥읍 구갈리 백제시대 대규모 유적 발굴 운영자 2434 2001.06.11
102 기흥 구갈리(器興 舊葛里) 유적 현장설명회 (6/9) 운영자 762 2001.06.10
101 구룡―부여간 도로확장 및 포장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운영자 2318 2001.06.08
100 양주 관아지(楊洲 官衙址) 제2차 발굴조사 운영자 2209 2001.06.08
99 수도권광역 상수도 6단계 구간내 문화유적 시굴조사 운영자 2107 2001.06.08
98 대전 월평산성(月坪山城) 발굴조사 운영자 2375 200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