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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교성리유적

2001-05-03 00:00:00
조회 2192
<진천 교성리 유적> ·조사기관 :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조사기간 : 2000년 3월말 ∼ 발굴중 ·조사지역 : 충북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조사성과개요 1.발굴경위 충북대학교 박물관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오창-진천간 도 로확장 및 포장공사 구간에 대해 1999년 4월부터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도로가 관통해가는 진천군 교성리의 구릉 사면에서 유적을 확인하였 다. 구릉에는 파괴된 석곽을 축조할 때 사용된 할석들이 곳곳에 보이 고, 석곽의 일부도 노출되어 있으며, 토기편들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 러한 지표조사 결과를 통해 볼 때 유구의 잔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 문에 시굴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발굴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는 문화재관리국의 허가 를 받아 올해 3월말부터 현재까지 발굴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2. 조사단 구성 교성리 발굴을 위한 조사단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조 사 단 장 : 양기석(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장) 지 도 위 원 : 손보기(단국대학교 박물관장) 윤무병(전 충남대학교 교수) 한병삼(문화재위원) 정영호(한국 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책임 조사원 : 권학수(충북대학교 교수) 조 사 원 : 차용걸(충북대학교 교수) 신호철(충북대학교 교수) 조사보조원 : 이경원(숭실대학교 대학원) 김현정(숭실대학교 대학원) 오경화(충북대학교 대학원) 김환일(충북대학교 대학원) 3. 역사적 배경과 고고학적 환경 충청북도 진천 지역은 중앙부에 하천유역의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요지로 일찍이 삼한중 마한의 한 국입이 자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 다. 삼국시대에는 시기에 따라 그 주인이 바뀌는 등 삼국의 치열한 격 전장이었는데 6세기 중반경에 이르러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한편, 신 라 영유기의 진천지역은 신라의 한강진출 교두보인 충주인 국원소경에 서 한강 하류지역인 신주에 이르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김유신과 관련 된 설화로도 잘 알려진 지역이다. 594년 김유신의 부친인 김서현이 지 금의 진천인 만노군 태수로 재임하면서 만명부인과의 사이에서 김유신 을 낳아 진천읍 상계리에는 생가터, 태실, 치마대, 연보정 등 김유신과 관련한 설화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진천지역에서 알려져 있는 삼국시대의 고고학적 유적으로는 원삼국시 대 분묘유적으로 잘알려진 진천읍 송두리 유적과 원삼국시대와 백제토 기 요지로 밝혀진 덕산면 산수리, 이월면 삼룡리 유적이 있다. 이 외에 진천읍 신정리, 성석리, 덕산면 구산리, 기전리, 용몽리, 문백면 도하 리 등도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적으로 회청색 경질토기, 타날문 토기 등이 많이 발견되었다. 4.조사결과 조사 구역은 도로에 의해 양분된 구릉의 동반부를 Ⅰ지구, 서반부를 Ⅱ 지구로 하여 설정되었다. 그런데 북쪽으로 약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파괴된 구릉의 사면에서 석곽의 일부가 노출되어 그곳을 Ⅲ지구 로 명명하였다. 발굴을 통해 확인한 유구는 30기로서 모두 매장유구이 다. 지구별 유구의 개수를 보면, Ⅰ지구에서 23기, Ⅱ지구에서 6기, Ⅲ 지구에서 1기가 확인되었다.이들 대부분은 삼국시대의 것으로 25기가 이에 해당한다. 나머지 5기는 모두 토광묘로서 고려시대의 것이 1기, 조선시대의 것이 4기이다. 삼국시대의 유구는 모두 토광을 파고 할석을 쌓아 올린 석곽묘 혹은 석 실묘이다. 대부분 파손을 입어 상부가 손상되었지만 다행히 도굴의 피 해는 심각하지 않은 편이다. 이들 분묘는 수혈식, 횡구식, 횡혈식의 세 종류로 구분된다. 가장 수효가 많은 것은 횡구식으로 9기이며, 수혈식 은 1기, 횡혈식은 2기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횡구식 혹은 수혈식인데 파괴가 심하여 불확실하다. 유구의 방향은 대부분 남북 방향을 이루고 있다. 이는 등고선의 방향을 고려하여 이와 직교되도록 축조하였던 것 으로 생각된다. 이 중 횡구부가 확인된 경우를 보면 얕은 쪽으로 입구 를 만들었다. 바닥은 할석이나 자갈 또는 할석과 자갈을 혼용하여 깔았다. 바닥 크기 가 138cm이하인 소형을 제외하고 성인용을 대상으로 하였을 때, 장벽 의 평균 길이는 2.4m, 단벽의 평균 길이는 0.9m 정도이다. 수혈식은 13호에서 확인되는데, 이곳의 다른 석곽들이 할석으로 축조 된 것과는 달리 판석을 세워서 축조하였고, 크기도 작은 편이다. 인접 한 14호도 판석이라는 석재를 세워서 만들어져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 수혈식으로 추정되지만 잔존 상태가 불량하여 확인하기 어렵다. 석곽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횡구식이다. 횡구부는 모두 경사져 내려가는 얕은 쪽에 마련되었다. 횡구부의 폐쇄는 다른 벽과 마 찬가지로 할석을 사용했지만, 장벽과 맞물린 것이 아니라 장벽사이에 끼워졌다. 그리고 다른 벽들은 석곽 안쪽이 매끈한 면을 유지하고 두께 도 얇은데 반해서 횡구부의 할석은 안쪽이 불규칙적이고 두께도 두터 운 상태를 이룬다.횡혈식은 Ⅱ지구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이중 3호는 파손이 심하여 본래의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한편 2호는 비록 대부 분의 벽체가 파괴되었지만 벽체의 하단과 동벽에 붙인 시상대가 잘 남 아있다. 연도는 파괴되어 없지만 벽체의 잔존상태로 볼 때 석실바닥보 다 약간 높여 남벽의 서쪽에 붙여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고배, 고배뚜껑, 평저완, 유대장경호를 중심으로 하여 단경호, 병 등 100여점이 출토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 은 고배로서 대부분의 유구에서 1-10점이 출토되었다. 고배의 절대다 수는 유개고배이며, 대각은 매우 낮고, 투창이 작은 전형적인 신라 단 각고배이다. 이들 토기는 회청색 경질이고, 표면의 문양은 단순한 편이 다. 철기도 출초되었지만 도자를 제외하면 모두 관못이다. 유물의 종류 와 세부특징은 유구의 종류와 관계없이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들 유적은 수혈식, 횡구식, 횡혈식의 유구가 공존하고 유물의 특징도 단각고배를 위주로 한 신라토기인 점에서 이 곳을 장악한 신라계 지배 집단의 무덤이며, 연대는 6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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