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오이도 뒷살막패총

2001-05-03 00:00:00
조회 2890
<오이도 뒷살막패총 시굴조사> 1) 조 사 명 오이도 뒷살막패총 시굴조사 2) 조사지역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뒷살막 조사지역 바로 앞은 현재 오이도이주단지가 조성되어 해안에서 멀 리 떨어져 있지만, 원래는 오이도 최북단 구릉의 서쪽에 형성된 灣이었 다. 섬 중앙의 최고봉에서 최북단의 구릉 방향으로 산줄기가 뻗어오다 가 완만해지는 지점에서 동쪽과 서쪽 양쪽으로 계곡이 형성되는데, 동 쪽의 계곡 밑은 안말마을로 이어지며, 서쪽의 계곡은 해안으로 이어지 면서 灣을 형성하고 있다. 패총은 서쪽 계곡의 북쪽 경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3) 조사목적 오이도패총은 우리나라 서해안 신석기시대 패총유적 중 가장 대표 적인 유적으로 섬 전체가 패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섬 곳곳에 패총유적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80년대 후반 시화공단 조 성 이후 계속 진행된 대규모 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오이도는 그 원형 이 크게 훼손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섬 곳곳에 분포한 많은 패총유 적들이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시굴조사지역은 주민들이 '뒷살막'이라 부르는 곳으로 이미 보고서를 통해 유적의 존재가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한국수 자원공사에 의해 택지조성이 계획됨으로서 패총훼손이 우려됨에 따라 학계를 비롯한 오이도 주민들과 시흥시 시민단체에서 이 지역에 대한 유적보존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 대한 개발 에 앞서 유적의 보존여부를 가리기 위해 시굴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이 다. 4) 조사기간 2000년 10월 15일 ∼ 11월 24일(40일간) 5) 기존 고고학조사 개요 오이도패총에 대한 조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1988년· 1994년·1999년 모두 3차례에 걸쳐 서울대학교 발굴조사단에 의해서 발 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오이도 내에는 수 많은 패총이 많이 확인되는데, 대체로 灣이 형성 된 포구 주위에서 패총이 발견된다. 이 오이도패총은 크게 북부패총군 (안말패총·소래벌패총·뒷살막패총), 남서부패총군(가운데살막패총), 남 부패총군(신포동패총)으로 구분된다. 이중 남부패총군의 신포동패총 은 1988년도에, 북부패총군의 소래벌패총은 1994년도에, 남서부패총군 인 가운데살막패총은 1999년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신포동패총에서는 야외노지 3기, 가운데살막패총에 서는 야외노지 4기와 수혈주거지 3기가 확인되었으며, 많은 양의 빗살 무늬토기와 석기·골기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직립구연에 밑이 뾰족하거나 둥근 포탄형 으로 한반도 중서부지방의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의 기형을 지니고 있 다. 태토질은 모래알갱이가 많이 섞인 점토질계로, 소수이지만 활석·석 면·운모 등이 보강제로 섞여있는 경우도 있다. 오이도패총 출토 빗살무늬토기는 표면에 시문된 문양의 구성에 따 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즉 구연부에 爪文·短斜線文·點列文 등을, 기복부에 종주어골문 혹은 횡주어골문을, 저부에 방사상문을 구 분하여 시문한 구분문계와 구연부부터 횡주어골문을 새긴 동일문계로 나눌 수 있다. 이 밖에 소수이지만 평행선대문·삼각집선문·어골문 등을 교대로 시문한 금탄리1식토기도 확인되었다. 구분문계 토기의 경우 다른 서해도서의 구분문계 토기와는 달리 기복부 문양이 한강유역의 암사동의 것과 유사한 점이 많으며, 동일문 계 토기의 경우도 다치시문보다는 단치시문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특 징적이다. 이러한 문양의 종류와 시문방법, 문양구성상의 특징들을 주 변지역 출토 빗살무늬토기류와 비교하여 편년한 결과, 오이도패총은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 후기로 편년되는 다른 서해도서지방의 유적들 과는 달리 신석기시대 중기로 소급해 올려볼 수 있다. 특히 가운데살막 패총의 경우 서울대학교 기초과학교육연구공동기기원의 AMS 측정 결 과 B.C.2920-2660년(95.4% 신뢰도)라는 절대연대값이 나왔다. 6) 조사경과 먼저 지표 상에 패각이 드러나 있는 계곡의 북쪽경사면을 A지역, 동쪽과 남쪽 경사면 을 각각 B지역·C지역으로 구분하여 시굴트렌 치를 구획하여 굴토하였다. A지역의 경우 패총의 규모와 퇴적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등고선과 수직인 방향으로 시 굴트렌치를 구획하여 굴토한 후, 패총의 중심 에서 동쪽을 5×5m의 방격으로 나누어 조 사하였다. 그 결과 확인된 패각은 평면상에서 볼 때 약 50×40m의 범위에 걸 쳐 분포하고 있 다. 패각층의 두께는 지점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대체로 경사면 상부의 패총은 그 중심부가 40cm정도이며, 하부는 1.5m가 넘는다. 패각층은 출토된 유물로 볼 때,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 다. 즉 경사면 전 반을 덮고 있는 황색순패층과 그 바닥면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고 있으며, 그 황색순패층 위를 덮고 있는 (특히 아랫단) 패각층에서는 타날문토기 등 백제토기 들이 출토됨 에 따라 신석기시대 패각층과 백제시대 패각층으로 나누어 볼 수 있 다. 특히 백제시대패각층은 벽면에 나타난 층위상으로 볼 때(L자형 층 위) 신석기시대 패각층을 까고 주거지 혹은 노지로 사용하였던 것 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의 유구는 바닥 상면과 황색순패층 사이의 야외노지 7 기와 수혈주 거지(추정) 1기가 확인되었다. 이들 야외노지는 지 름 약 50cm 가량의 원형 내지 타원형으로 다른 신석기시대 유적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을 이용한 노지가 아니 라 별다른 시설 없 이 바닥면이나 패각 위에 불을 지핀 것들이다. 수혈주거지는 시 굴 트렌치 상에서 확인된 것으로 트렌치가 좁고 또한 주거지를 덮고있는 패각층 위 로 백제시대 주거지와 노지가 확인됨에 따라 더 이상 확 장하지 못하였다. 다만 경 사면이 급격히 떨어져 수평면을 이루고 기둥구멍으로 보이는 것과 바닥면에 소토 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수혈주거지로 판단된다. 또한 이 추정 수혈주거지 어깨선 과 바닥 에서 무문양의 빗살무늬토기와 점판암제의 소형석기가 수습되었다. 육안으로 패각이 확인되지 않는 B지역과 C지역에는 등고선 방향 으로 시굴트렌치 를 굴토하였다. 그 결과 두 지역 모두 별다른 유 구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표 토 바로 아래로 생토층이 확인 되었다. 특히 C지역의 경우 최근에 경사진 지형을 계 단식으로 바 꾸는 과정에서 지층의 크게 교란되어 있었다. 계곡 아래쪽의 경우 육 안 상 A지역 아래쪽으로 패각이 확인될 뿐 다른 곳에는 별다른 유 물이나 패총으로 보 이는 패각더미는 확인되지 않았다. 7) 출토유물 이번 시굴조사를 통해서 빗살무늬토기편, 석기 및 타날문토기 등 백제토기편이 약 500여 점이 수습되었다. 빗살무늬토기는 대체로 무문양이거나 단치횡주어골문이 시문된 것들이지만, 소량 이나마 구연부에 단사선문을, 기복부에 단치횡 주어골문을 시문한 구분문계토기도 눈에 띤다. 특히 단사선문의 경우 시문구를 눌러 시문(押捺)한 것이 아니라 그어서 시문(押引) 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문양양상은 암사동식 구분문계토 기가 확인되는 오이도 다른 지역의 패총유적들과는 다른 양상으 로 오이도 제 패총유적들 이 시기적으로 큰 편차가 있음을 보여주 는 자료로 여겨진다. 석기 역시 오이도의 다른 패총유적과는 달리 갈돌, 갈판, 고석(敲 石), 석부편, 굴따 는 석기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타날문토기 등 백제토기는 시문방법이나 구연의 형태상 삼국시대 초기의 것으로 판단 된다. 8) 조사성과와 의의 이번 조사는 시굴조사라는 점에서 지표 상에 보이는 패총의 규모 와 퇴적양상, 그 리고 지표 상에 패총이 확인되지 않는 지점에 대 한 패총의 존재유무에 주안점을 두 고 조사하였다. 그 결과 灣 북 쪽 경사면의 지표에 드러난 패총 외에는 패총을 확인 할 수 없었 다. 북쪽 경사면의 패총의 경우 빗살무늬토기를 내는 신석기시대 패총 과 함께 타날문 토기를 내는 백제시대 패총이 형성되어 있음이 확 인되었다. 이 곳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암사동식 구분문계토기가 주로 출토되는 오이도 다른 지역의 패총들과는 달리 문양에 있어서 단 치횡주어골문 위주의 동일문계토기 이다. 또한 극소수의 구분문계 토기 역시 시문방법상 전형적인 구분문계토기가 아니 다. 이 점에 서 오이도의 각 패총유적들이 큰 시간적 편차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 다. 즉 오이도는 신석기시대 중기 부터 후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 쳐 신석기인들에 의해 점유되었던 곳으로 식량획득에 있어 오이도 가 신석기인들에게는 얼마나 중요했던 곳인가를 보여주는 자료 로 사료된다. 또한 타날문토기 등 백제시대토기가 출토된다 는 점 에서도 오이도와 인근 갯벌의 경제성이 얼마나 높은 곳인가를 보여주 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구로는 야외노지 7기, 수혈주거지(추정) 1기가 확인되었으며, 이외 에도 백제시대의 주거지와 노지도 확인 되었다. 9) 당면과제 시굴조사라는 한계로 인해 트렌치 내의 유구를 확장조사를 할 수 없었던 관계로 유 구들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필 수 없었다.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정밀발굴조사가 이 루어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부득이 정밀발굴조사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 어지기 어렵다 면, 경작 등에 의해 이 지역의 훼손될 우려가 있는 만큼 보존대책 을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오이도에는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패류채취를 위해 신석기인들이 끊임없이 점유하였던 흔적이 섬 곳곳에 남아 있 다. 그러나 오이도에 대한 계속되는 개발사업으로 인해 이들 패총 유적들은 오이도 북부패총군의 일부 패총을 제외하고는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서해안 신석기시대 유적을 대표할 수 있는 오 이도 패총에 대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유적을 효율적으로 보존 하기 위해서 이번에 조사한 뒷살막패 총을 비롯한 현재 비교적 양 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북부지역패총군을 중심으로 패총 유적공원 을 조성하여 보존·활용할 필요가 있다. <오시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 월곶IC → 대부도방면(시화방조제)으로 좌회전 → 옥구고가 → '오이도이주단지' 황색입간판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회 전 → 오이도이주단지 내 첫번째 건물(숲속의 바다 회집)을 끼고 좌회 전 → 옥터초교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 발굴현장 ※ 지하철 이용시 안산선 종점 '오이도'역에서 버스(32-1번)나 택시를 이용하여 오이도 내 옥터초등학교로 오시면 됩니다. ♣ 연락처 ♣ 서울대박물관 02-880-8091 임 효 재 011-232-0275 임 상 택 011-443-9451 양 성 혁 011-776-0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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