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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광양 마로산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2004-08-20 09:33:00
조회 1437
I. 조사개요 1. 조 사 명 : 광양 마로산성 3차 발굴조사 2. 조사지역 : 전남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산 78번지 일대 3. 조사기간 : 2004년 5월 12일-2004년 8월 24일 4. 조사기관 : 순천대학교 박물관 5. 조사목적 광양 마로산성은 정밀지표조사와 2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에 쌓은 이후 통일신라시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된 성으로 밝혀졌다. 또한 ‘馬老官’이란 명문이 양각된 기와가 출토되어 백제시대(6세기)부터 통 일신라(8세기 중엽)까지 이 지역에 馬老縣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三 國史記』의 기록과 일치함을 보여준다. 1·2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많은 유구와 더불어 기와류, 토기류, 철기 류, 청동기류 등의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1·2차 발굴조 사를 완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마로산성 내부 중 일부만 조 사된 상황이다. 따라서 미조사지역에 대한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마로 산성에 대한 전체적인 현황과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추후 정비·복원의 자료를 획득함은 물론 광양시의 고대 문화와 역사를 복원하는데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판단된다. 6. 조사단 구성 조 사 단 장 : 임성운(순천대학교 박물관장) 자 문 위 원 : 조유전(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위원)      손병헌(성균관대학교 교수) 심봉근(동아대학교 교수)      최몽룡(서울대학교 교수)      차용걸(충북대학교 교수) 윤덕향(전북대학교 교수) 최맹식(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장) 책임 조사원 : 이동희(순천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7. 조사경과 광양 마로산성은 1999년 8월 5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73호로 지정되었 고, 산성의 정비·복원의 자료를 획득하고자 2차례의 발굴조사(1차: 2001. 9.18-2002. 2.26, 2차: 2002. 10. 25-2003.1.7)가 실시되었다. 1차 조사에서는 성벽조사(외벽 65m, 내벽 135m 정도)를 포함하여, 건 물지 7동, 수혈유구 4기, 문지 1개소 등이 확인되었고, 2차 조사에서는 건물지 4동, 집수정 4개소, 문지 1개소, 수혈유구 10기 등이 추가로 확 인되었다. 3차 조사는 1·2차 조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2차 조사에 서 미흡하였던 건물지(Ⅱ-1~4 건물지)와 문지(남문지, 동문지)에 대 한 추가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다음으로 1·2차 조사에서 제외되었던 미 조사지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Ⅱ. 조사내용 1. 건물지 2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던 건물지(Ⅱ-1~4)에 대한 추가조사와 더 불어 이번 조사에서는 3동의 건물지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1) 건물지 Ⅱ-1 성의 가장 북쪽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평탄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확인되는 건물의 규모는 남-북 4칸(주칸거리 220~280cm), 동-서 5칸(210~220cm)이다. 초석의 크기는 46~86×40~65×10~ 15cm이고, 형태는 장방형이다. 기단부는 북쪽과 동쪽으로 1단 확인되 고 있으며, 기단밖으로 희미하지만 U자형의 고랑이 있어 배수와 관련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쪽의 경우 암반층을 ‘ㄴ’자형으로 깎아 축조 하여 기단 20~30cm 밖에서 암반층이 확인되고 있으며, 서쪽으로 가면 서 암반층의 경사면에 주공이 4개 확인되고 있다. 건물지 내의 출토유 물은 토기류, 기와류 등이고, 특히 중국제 해무리굽 청자편과 백자편 이 출토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건물지 내에서는 16개소의 수혈유구가 확인되고 있는데 수혈유구 가 먼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수혈유구는 건물지의 초석과 겹치는 부 분도 있지만 대부분 중복되지 않는다. 수혈유구에서는 기와편, 토기편 등이 출토되고 있으며, 특히 철기류나 청동류의 제품들이 수혈마다에 서 대부분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9호 수혈에서는 철제 호등 3점이 수습되었고, 5호 수혈에서는 은제 요대가 수습되었다. 2) 건물지 Ⅱ-2 Ⅱ-1호 건물지의 남동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지의 규모는 770 (동-서)×500(남-북)cm이다. 건물지는 ‘╔╗’ 형태로 남쪽부분이 유실 된 것으로 추정된다. 벽면은 면을 맞추어 수평쌓기하였고, 최고 높이 는 4단 94cm이다. 바닥은 작은 할석을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깔았으며, 북동·북서 모서리부분에는 지름 30~40cm, 깊이50~60cm 크기의 주공 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또한 바닥부에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가로 지르며 배수구가 확인되고 있다. 건물지의 용도는 바닥부에 할석을 깔고, 배수시설이 건물내부에 자리 한 것으로 보아 단순 주거를 위한 공간보다는 배수처리가 필수적인 특 수 용도의 시설물로 추정된다. 3) 건물지 Ⅱ-3 Ⅱ-2호 건물지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사가 심한 곳으로 마치 Ⅱ-2건물지와 함께 남-북 일자식의 계단식으로 조성된 듯 하다. 규모 는 930(동-서)×540(남-북)cm이고, 남쪽부분이 일부 파괴되었다. 벽면 은 삼각추 형태의 석재를 이용하여 면을 고르게 맞추고 있으며, 최하단 은 4~9cm 앞으로 삐져나와 있어 벽면은 들여쌓기하였음을 알 수 있 다. 벽면에는 기둥 설치와 관련된 빈공간(너비 약 30cm)이 확인되는 데, 북벽은 350cm간격으로 2개소, 동·서벽은 각 1개소의 기둥자리가 있 다. 최고높이는 7단 170cm이다. 바닥은 아무런 시설이 없는 맨바닥이 다. 조사중에 탄화미가 다량으로 수습되어 군량미를 보관한 창고로 추정된 다. 또한 건물지의 남쪽 벽면과 맞물려 수혈유구가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 로 4기가 연접하고 있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며, 건물지에 비해 수혈유구가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시기적인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4기의 수혈유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중국 제 청자편이 수습되었다. 4) 건물지 Ⅲ-1 성의 남동쪽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심한 경사면을 이루 며, 체성과 연결되고 있다. 남문지쪽으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 한 건물의 규모는 파악할 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초석 5매와 기단부 로 보면, 남-북 3칸, 동-서 1칸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건물지 내에서는 백제시대의 수혈유구 1기가 조사되었는데, 남 서쪽이 훼손되었다. 수혈은 단을 이루고 있는데 먼저 외곽으로 400(동- 서)×현400(남-북)cm 크기의 수혈이 돌아가고, 단이 지면서 안쪽으로 원형의 200×200cm 크기의 수혈이 조성되어 있다. 단이 지는 부분의 남 서쪽으로 주공열이 확인되고 있어 출입과 관련된 시설이 있었을 것으 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백제 평기와편이다. 5) 건물지 Ⅲ-2 성의 중앙부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평탄면에 위치하고 있다. Ⅰ-4 건물 지와 Ⅰ-6·7 건물지와 인접하여 있다. 동-서 13.7m의 기단부가 1단 노출되어 있고, 내부에는 초석 3매가 동- 서로 일렬을 이루고 있다. 초석의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건물지 내부 에는 8기의 수혈유구가 확인되고 있다. 2호 수혈에서는 용도를 알 수 없으나 농공구로 추정되는 철기가 수습되었고, 1호 수혈에서는 소형 청 자호편이 수습되었다. 한편 남쪽 기단부의 상층(1호 구들)과 서편 기단부의 상층(2호 구들)에 서 구들시설이 확인되고 있는데 가장 늦은 시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 되며, 구들과 관련된 건물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구들의 크기는 1호는 길이 380cm, 너비 80cm(안쪽 너비 60cm)이고, 2호 구들은 길이 160cm, 너비 60cm(안쪽 너비 30cm)이다. 6) 건물지 Ⅲ-3 Ⅲ-1 건물지의 북서편에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485(남-북)× 293(동-서)cm이고, 아궁이에서 한번 꺾이는 ‘ㄱ’자형의 구들시설이 있 다. 구들의 길이는 450cm이고, 너비는 35cm정도이다. 건물지는 생토면을 굴착하여 35cm정도로 다짐한 후 구들시설하였다. 건물지의 상층부에는 백제시대 기와편이 깔려있었고, 기와를 제거하 자 구들시설이 노출되었다. 벽체 일부는 백제와를 이용하였으며, 아궁 이는 건물지의 가장 북쪽으로 내부에는 6cm 두께의 단단한 소토층이 확인된다. 건물지의 남쪽으로 같은 시기의 건물지가 일부 노출되었으나 상층부 의 건물지(Ⅲ-1 건물지)때문에 정확한 윤곽은 확인할 수 없다. 2. 문지 1) 남문지 1차 발굴조사 결과 문지의 입구에는 3단 정도로 석축되었으며, 서쪽 개 구부는 외벽에서 타원형을 이루며 안으로 꺾여 거의 직선에 가깝게 뻗 어 내벽과도 곡선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또한 문지 외부에는 5.7× 6.7m 규모의 장방형의 석축렬이 돌아가고 있었다. 2차 발굴조사에서는 문 내부 바닥에 깔려 있던 할석들을 제거하고, 입 구의 막음석을 절반정도 제거하면서 초축 당시 문지에 대한 조사를 실 시하였다. 그 결과 서측벽 바닥부에서 성문과 관련된 주공 5개를 확인 하였다. 주공은 약 100cm 간격으로 정연하게 노출되었고, 주공의 지름 은 30~46cm이며, 깊이는 24~50cm이다. 3차 조사에서는 2차조사에서 절반만 제거하였던 입구의 막음석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였고, 성 밖 장방형으로 돌아가던 석축시설을 제거하였 다. 그 결과 동측벽 바닥부에서도 서측벽과 동일하게 주공 5개을 확인 하였으며, 문지 외부의 석축시설을 제거한 부분에서는 많은 수의 주공 열을 확인하였다. 이 주공열을 자세히 보면, 2개의 주공이 조합을 이루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의 규모는 안쪽 너비 350cm, 바깥쪽 너비 500cm이고, 길이는 성의 너비보다 약간 긴 680cm이다. 문지의 서측벽 최고 잔존높이는 10단 170cm이고, 면석은 앞면이 편평한 장방형의 석재를 사용하고 있다. 동 측벽은 길이 570cm이고, 문지의 개보수에 의해 상부가 유실되었다. 1․2차 조사에서 문지의 형식이 개거식→현문식으로 변화한 것으로 파 악하였으나 3차 발굴조사결과 마지막에 사용된 문지가 현문식이라기보 다는 계단식에 가까운 형태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즉 입구 의 막음석은 동 개구부에서 1열로 시작하여 서쪽으로 가면서 2열로 나 뉘어져 계단처럼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동문지의 폐쇄석과는 차이가 보인다. 2) 동문지 동문지는 와룡마을에서 산성의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상에 위치하고 있 다. 이번 조사에서는 문지의 노출작업만 실시하였는데 먼저 무질서하 게 있는 석재를 제거하자 폐쇄석이 확인되었다. 노출된 문지의 규모는 안쪽 너비 420cm, 바깥쪽 너비 560cm이고, 문의 길이는 590cm이다. 폐 쇄석의 높이는 110cm이다. 문지의 북쪽 개구부의 외벽 상부는 후대에 한번 보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그 하부에는 3단의 석축열이 성 벽과 나란히 쌓여지다가 폐쇄석과 북쪽 개구부가 접하는 지점에서 만 나고 있어 폐쇄석이 축조된 후 덧붙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 용도에 대 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3. 집수시설 산성에 있어서 그 어떤 자원보다도 중요한 것은 水源을 확보하는 것으 로 마로산성에서는 1·2차 조사에서 3개소의 집수정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2개소의 집수정과 5개소의 우물을 확인하였다. 집수정은 성의 북쪽 정상부와 남쪽 정상부의 경사면에서 각각 1개소씩 확인되었고, 성의 북서쪽 가장 낮은 부분에서는 5개소의 우물이 확인되 었다. 우물이 위치한 곳은 성내에서도 계곡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북동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다 비교적 평탄면을 이루는 곳이다. 1) 집수정 집수정은 생토층을 굴착한 후 물이 빠지지 않도록 회흑색 점토(뻘흙) 를 바닥과 4벽에 덧붙인 것이다. 2) 우물 우물은 현재 5개소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1호 우물이 가장 북쪽에 치우쳐 있고, 2~4호 우물이 상호 중복되어 1 호 우물의 남동쪽에 있으며, 5호 우물이 가장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2~4호 우물의 윗쪽(동쪽)으로 2중의 축대가 있어, 우물을 보호하고 있 다. (1) 1호 우물 가장 북쪽으로 치우쳐 위치하고 있으며, 절반정도만 조사하였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규모는 외곽은 1030×1030cm이며, 내곽은 760× 540×300cm이다. 외곽과 내곽 사이의 폭은 160cm정도이고, 그 사이는 할석들을 무질서하게 채웠다. 벽체는 Ⅱ-3건물지와 유사한 삼각추 형태의 석재로 들여쌓기하였다. 또한 동·서 양벽이 남쪽의 막음석보다 앞으로 더 삐져 나와 있어 축조 순서를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북벽 → 동·서 양벽 → 남벽 순이다. 바닥 은 회흑색 점토로 다짐하였다. 출토유물은 사각편병을 비롯한 토기편, 수막새, 와편 등이고, 뻘층에 서 패각과 통나무형 목재, 복숭아씨 등이 출토되었다. (2) 2호 우물 1호 우물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평면형태는 원형이나 바닥부분으 로 갈수록 육각을 이루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규모는 직경 160cm이 고, 높이는 12단 300~320cm이다. 우물 내부에서는 가공되지 않은 통 나무형 목재가 출토되었고, 바닥부에서는 사각편병편이 다수 출토되었 다. 또한 복숭아씨 및 호박씨가 수습되었다. (3) 3호 우물 2호 우물에서 남서쪽으로 470cm 정도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평면형태 는 원형이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우물의 폭이 좁아지고, 벽면의 상태도 정연성이 부족하다. 규모는 직경 60cm이고, 높이는 현100cm이다. (4) 4호 우물 2·3호 우물과 겹치고 있다. 평면형태는 원형으로 규모는 직경 610cm이 다. 2·3호 우물보다는 먼저 축조되었다. (5) 5호 우물 4호 우물의 남서쪽으로, 체성의 내벽과 100cm 정도 사이를 두고 위치 하고 있다. 평면형태는 일부만 노출되어 정확하지 않으나 원형으로 추 정된다. 규모는 직경 690cm이다. 4. 제사유구 건물지 Ⅲ-1의 북서쪽으로 640(동-서)×400cm(남-북) 범위내에서는 토 제마 285점, 철제마 1점, 청동마 6점이 출토되었다. 특별한 시설이 없 이 무질서하게 흩어진 상태인데, 대부분 다리·머리·몸통이 분리된 채로 출토되었다. 공반유물에 있어서는 청자 및 분청사기편이 공반되고 있 어 시기적으로 산성내에서 가장 늦은 유구로 판단된다. 제사유구의 하 층에서는 백제토기편과 기와편이 수습되고 있다. 5. 기타 1) 수혈유구 성내의 북쪽 정상부에서 2기, 중앙부 평탄면에서 8기가 확인되었다. (1) 북쪽 정상부 2) 저장공 Ⅱ-1건물지와 Ⅱ-2건물지 사이의 경사면에서 단경호 1점이 수혈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장용의 토기로 추정된다. 수혈의 크기는 70×55cm 이고, 단경호의 크기는 높이 40cm정도이고, 외면에는 단사선문이 타날 되어 있으며, 견부에는 일부 자연유가 흐르고 있다. Ⅲ. 조사성과 1. 1~3차 발굴조사 결과 성벽, 백제~통일신라시대의 건물지 14동, 문 지 2개소, 우물 5개소, 집수정 5개소, 치 2개소, 수혈유구 20여기 등의 많은 유구와 명문와·수막새·평기와 등의 기와류, 토기류, 철기류, 청동 기류 등의 다양한 유물들이 조사되어 산성연구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 활상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2. 마로산성은 크게 2시기(백제후기와 통일신라시대말기)에 걸쳐 점유 되었다. 먼저 백제 후기인 6세기대에 초축되어 7세기까지 마로현(馬老縣)의 중 심 성곽으로 기능하였다. 백제시대에는 석축우물, 집수정(점토부가), 수혈유구, 건물지, 문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유물로는 토기류와 기 와류가 대표적이다. 한편, 통일신라시대말기에는 기본적으로 백제시대의 체성을 그대로 이 용하되 부분적으로 보수하였다. 예컨대 백제시대의 체성에 잇댄 2개소 의 치(雉)는 통일신라시대말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건물지, 우물, 수혈 유구 등에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심연대는 9세기-10세기초 에 이르는 시기이다. 기와류, 토기류, 철기류, 청동기류 등 유물의 종류 가 다양하며, 중국제 유물(銅鏡, 중국제 청자와 백자 등)도 적지 않게 출토되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말기의 유구보다 백제시대의 유구 수가 적은 것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산성 내부전역에 대규모로 건물 지를 조성하면서 백제시대의 유구를 훼손한 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 다. 아울러 마로산성의 일부 지구에서는 통일신라시대말기의 건물지 를 조성하기 위해 복토한 흔적이 있는데, 트렌치 조사에서 통일신라시 대말기의 건물지 1-2m아래에서 백제시대의 유구가 확인되고 있다. 3. 남문지(南門址) 외곽의 주공열(柱孔列)은 성문을 방어하기 위한 1차 적인 시설물로 판단된다. 2개의 주공이 조합을 이루고 있어 목책이 있 었다고 전제한다면 견고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동쪽에만 이 주 공열이 없어 출입시 문지 정면이 아니라 동쪽으로 돌아서 문을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설은 기존에 조사된 예가 드물어 중요한 자료 이다. 4. 마로산성에서 9세기대~10세기초의 유구와 유물이 많이 확인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혼란한 상황과 더불어 후삼국시 대의 이 지역의 호족집단과 관련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제 동경이나 청 자․백자, 은제 요대, 마로산성에서만 확인되는 수막새 등은 후삼국시 대의 역사적 상황이나 중국과의 교역을 대변해 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5. 금번 발굴에서 5기의 석축 우물이 성내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 서쪽 에서 확인되었다. 백제시대 것이 2기,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것이 3기이 다. 일부는 중첩되어 있어 시대적인 변천상을 잘 보여준다. 추가발굴조 사가 완료되면 그 구조의 전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6. 마로산성은 3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기와류를 비롯하여 청동기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철기유물은 철제솥을 비롯한 생활유물, 철제 호등·마탁(馬鐸) 및 철제 깃꽂이 등의 마구와의 관련품, 철제촉 등의 무기류 등 산성유적에서는 보기 드물게 다양한 유 물들이 수습되어 철제유물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7. 제사유구에서는 토제마 및 청동마·철제마가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특히 토제마(285점)는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예에서 가장 많은 양이 출 토되어 주목된다. 기존에 토제마 출토유적은 당성, 이성산성, 포천 반월산성, 천안 위례 산성, 월성 해자, 양주 대모산성,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 영암 월출산 제사유적 등이다. 한편, 청동마는 양주 대모산성, 익산 미륵사지 등에 서, 철제마는 이성산성, 거돈사지, 포천 반월산성, 부여 무량사지 등지 에서 출토되었다. 말(馬)은 神乘物이거나 영험적이고 신적인 존재, 또는 의리와 충성, 그 리고 남성의 상징 이고, 재앙을 예시해주는 존재로 신앙적인 측면에 서 이해되고 있다. 마로산성의 제사유구는 공반 유물상으로 보면 마로산성이 성곽으로서 의 역할을 다한 이후의 고려말에서 조선초(14~15세기)에 해당한다. 제 사유구의 입지가 광양의 중심지인 광양읍이 내려다보이는 산성의 남서 쪽에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서 고려말-조선초에 고을의 안녕과 관련된 제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Ⅳ. 토의 사항 1. 조사성과 및 유적의 성격 2. 추가조사 문제 3. 유적의 보존과 정비·복원문제 4. 성 외부의 토지 매입 문제 - 체성 외곽 둘레의 일정 공간(20~30m 너 비), 진입로와 주차장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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