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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삼년산성 지도위원회

2004-06-28 1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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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장(노태섭·盧太燮)이 허가하여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 사 한 보은 삼년산성에 대한 발굴조사 지도위원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 한다. ▣ 일 시 : 2004. 6. 4(금) 10:00 ▣ 장 소 :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삼년산성 조사현장 ▣ 조사기관 : 중원문화재연구원(단장 이융조) ▣ 조사기간 : 2004. 5. 22 ~ 5. 28 ------------------------------------------------------------- 보은 삼년산성 2차 발굴조사 1차 현장설명회 자료 2004 (재) 중원문화재연구원 Ⅰ. 조사개요 사적 제235호인 삼년산성(三年山城)은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漁岩里) 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북쪽은 풍취리(風吹里), 서쪽은 성주리(城舟 里), 동쪽은 대야리(大也里)로 둘러싸여 성벽이 축조된 능선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삼년산성은 ꡔ삼국사기(三國史記)ꡕ에 470년인 신라 자비마립간(慈悲 麻立干) 13년에 축조되었고, 486년인 신라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8 년에 개축된 기록이 있다. 또한 삼년산성은 ꡔ세종실록(世宗實錄)ꡕ 지리지에 군창이 있다는 기록 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성 종연간에 편찬된 ꡔ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ꡕ에 보은현 의 고적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이르면 성의 경영이 끝났음 을 알 수 있다. 삼년산성의 둘레는 ꡔ세종실록(世宗實錄)ꡕ에 1,220보라 하여 1보를 6 자로 하고, 주척으로 환산하면 1,596.5m가 되며, ꡔ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ꡕ의 3,699자를 포백척으로 환산하면 1,728.5m가 되므로 이를 성벽 안쪽 둘레와 바깥쪽 둘레로 보면 현재의 규모와 비슷 하다. 즉 ꡔ세종실록ꡕ 지리지의 수치는 현재 성의 성벽 안쪽 벽면을 기 준으로 성벽의 둘레를 잰 값과 일치하며, ꡔ신증동국여지승람ꡕ의 기록 은 성의 바깥 벽면을 기준으로 잰 값과 일치한다. 삼년산성은 ꡔ삼국사기(三國史記)ꡕ에 그 축성 시기가 확실하게 기록됨 으로써, 이 산성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성곽의 절대연대를 결정하는 기 준이 된다는 중요성이 인식되어 1970년대 말부터 일부 조사가 이루어 졌고, 무너진 성벽에 대한 복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삼년산성은 우리나라 고대 산성 축조 기술의 최고 수준을 보여 주는 동시에,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전초기지로 삼은 곳 으로서, 우리나라 성곽의 절대연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 왔으나, 이 산성에 대한 객관적이 학술조사는 미흡하여 학계는 물론 일반인에 게 산성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보은군에서는 2001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 ꡔ삼년산성 종합보존관리계획ꡕ 수립을 의뢰하였고, 중원문화연구소에서는 삼년산 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성과와 아울러 아미지 및 문터와 건물터에 대한 발굴조사 및 복원․정비를 포함한 앞으로의 보존관리에 대한 종합계획 안을 마련하였다. 금번 발굴조사는 이 계획안에 따른 2차년도 발굴조사 사업으로 동문 지․남문지․북문지 및 동쪽 수구지 내측의 입수구 및 연지의 유무 확 인과 건물지 1개소를 포함하고 있다. 발굴조사는 2003년 11월 6일 착수하여 우선 북문지 일대에 대한 발굴조 사를 진행하였으며, 일부 문구부에 대한 노출과 문지 앞의 차단벽에 대 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동절기 결빙으로 인하여 발굴조사를 일시 중지한 후, 2004년 봄 해빙 후 보은군에서 동문지 부근의 여장시설에 대한 확인작업을 우선 요청함에 따라 동문지 및 수구지에 대한 발굴조 사를 실시하였다. 재단법인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는 삼년산성 2차 발굴조사를 위하여 다 음과 같은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조사단장 겸 책임조사원 : 차용걸(재단법인 중원문화재연구원장, 문화재전문위원) 자문 위원 : 성주탁(전 충남대 교수) : 김동현(문화재위원) : 정재훈(문화재위원) : 조유전(문화재위원) : 이강승(문화재위원) : 심정보(문화재위원) : 윤홍로(문화재전문위원) : 김주태(문화재전문위원) : 손영식(문화재전문위원) 조사 위원 : 고수길(전 청주박물관장) : 양기석(충북대교수) : 신창수(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실장) : 최인선(순천대 교수) : 심광주(토지박물관 학예연구실 조사팀장) 조 사 원 : 조순흠(중원문화재연구원 연구원) : 백영종(중원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조사보조원 : 나상철(중원문화재연구원 연구원) : 최관호(충북대학교 역사교육과 3년) : 박원석(충북대학교 역사교육과 3년) 외 Ⅱ. 조사내용 금번 발굴조사 지역은 삼년산성 북문지․남문지․동문지와 동문지 내 측의 연못 추정지, 건물지 1개소이다. 금번의 자문위원회 및 현장설명 회는 동문지와 수구지 및 수구지 주변의 성벽과 내측의 평탄지에 대한 조사결과에 대한 것이며, 이후 남문지와 북문지․건물지에 대한 발굴조 사를 실시한 후 최종적인 자문위원회 및 현장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 다. 1. 동문지 삼년산성 동문지는 삼년산성에서 가장 긴 동쪽 성벽의 중앙부에 위치 한다. 문지의 북쪽은 305.0m의 작은 봉우리와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부 사이의 작은 안부를 이룬 곳으로 문지의 남쪽으로 수구지가 위치하 고 있으며, 성벽 내측으로는 반원상의 평탄대지이다. 동문지의 조사 전 모습은 성벽의 내측 약 절반이 보다 북쪽으로 돌출되 어 있어 이곳의 통행은 직선이 아닌 ‘ㄹ’형으로 돌아야만 가능한 형태였 다. 이러한 출입통로로 인하여 동문지는 적의 공격 시 방어력을 겸비 한 특이한 성문구조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금번 발굴조사 결과 삼년산성 동문지는 2~3차에 걸친 수․개 축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현재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는 문구부의 구조는 가장 후대의 문구부 이며, 당초 삼년산성의 축성당시에 동문지는 내옹벽(內壅壁)을 갖춘 현 문식(懸門式)의 문지였던 것이 밝혀졌다. 1) 1차 문지 동문지의 1차 문지는 내옹벽 시설을 갖춘 현문의 형식으로 된 개구부 (開口部)가 바깥쪽에서 확인되었다. 마지막 문지의 남쪽 석축열 외측 의 무너진 석재와 토사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성벽과 직교하는 석축열 이 노출됨으로써 확인되었다. 현재 개구부는 외측성벽으로부터 1/3 정도가 바닥면까지 완전히 노출 된 상태이며, 그 안쪽으로는 후대의 수축된 유구로 인하여 더 이상의 조사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1차 문지의 개구부 너비는 5.1m이며, 내측 성벽선이 확인 되지 않았으 나 문지 좌우의 당초 성벽 통과선으로 추정하면, 측벽의 길이는 10.5~ 10.6m이다. 개구부의 바깥쪽 선단은 곧 성벽의 외측 벽면과 동일하다. 문구부의 바닥면은 성벽을 축조한 양상과 동일하여 판상 할석을 평탄 하게 깔아 바닥면을 조성하였으며, 내측과 외측의 경사도는 현재로는 알 수 없다. 문구부의 좌우 측벽은 양쪽 성벽 자체의 하중으로 인하여 개구부의 중 심부를 향하여 심하게 내측으로 밀려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다. 남쪽 측 벽은 현재 6층 석축 높이 1m, 북쪽 측벽은 8층 석축 높이 1.2m가 잔존 하고 있다. 문구부의 외측면은 발굴조사 전 다량의 무너진 성돌과 토사로 덮여 있 는 상태였다. 1차 문구부의 확인 후 문으로 통행하는 계단시설 등의 구 조를 확인하기 위하여 무너진 성돌과 토사를 제거하여 보축이 시작되 는 지점까지 제거하였으나 문구부 외측으로 보축이 이어지지 않고 있 으며, 계속하여 석재와 토사가 쌓여 있는 상태였다. 문구부 외측으로 보축을 시설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붕괴된 것인지 현재로는 알 수 없 는 상태이다. 문구부 외측 성벽은 현재 18층 2.0m 높이까지 노출된 상 태이며, 다른 곳의 성돌보다 비교적 얇은 판상형의 석재를 이용하여 석 축하였다. 내옹벽은 문구부 북쪽 내측 성벽을 확인 하는 과정에서 노출되었다. 내 옹벽은 1차 문구부의 추정 북쪽 측벽선에서 북쪽으로 4.5~4.7m의 거 리에서 내측 성벽에 잇대어 호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측 성벽과 맞닿 아 있을 뿐 맞물려 있지는 않다. 현재 11층~13층, 석축의 높이는 1.9m, 길이 2.6m가 잔존된 상태이며, 너비는 약 2.7~3.0m이다. 따라서 초축 당시의 삼년산성 동문지는 현문식의 문구부와 성 내측에 내옹벽을 갖춘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이번 발굴조사를 통하여 밝혀졌으나, 내측 성벽 벽면과 내측 남북 측벽, 바닥의 상태 및 세부 구 조는 추후 조사를 요한다. 2) 마지막 문지 동문지의 최종 문지는 초축 당시의 현문이 양쪽 성벽의 하중과 북쪽 경 사면의 토압으로 인하여 개구부와 내옹벽부가 붕괴된 이후 1~2차례 의 수축을 거쳐 마지막으로 사용된 문구부이다. 발굴조사 전 지표상으 로 노출되어 있던 문구부이다. 마지막 문지는 당초 개구부의 내측으로 길이 7.5~8m, 너비 4.5~5m 규 모의 석축부를 초축성벽의 보다 안쪽으로 돌출시켜 마련함으로써 성내 로의 통행은 직선이 아닌 한번 꺾어서 통행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 다. 개구부의 외측은 넓고 안쪽으로 돌출된 석축부를 마련하여 안쪽 개구 부가 좁혀진 형태이다. 돌출된 남쪽 측벽은 붕괴된 문지를 정지한 후 2~3층을 석축하여 측벽 을 마련하였으며, 개구부 내측으로 기둥의 초석으로 쓰인 듯한 비교적 큰 돌이 놓여져 있다. 개구부의 북쪽 측벽은 현재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으나 기존 성벽 붕괴 경사면의 제일 남쪽 석축과 성내측의 북쪽 경사 면으로 석축이 남아 있어 이것이 북쪽 측벽으로 추정된다. 이 석축열을 북쪽 측벽으로 가정한다면 개구부의 너비는 내측에서 3.5 ~3.9m, 돌출된 석축의 외측은 8.5~10.0m의 너비가 되며, 개구부 측벽 의 길이는 돌출된 석축부만을 개구부로 가정한다면 4.7m에 불과하나 성외측 성벽부까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13.5~14m에 이른다. 이 마지 막 개구부의 내측으로 북쪽 측벽처럼 이어진 내옹벽이 존재한다. 초축 당시의 1차 문지와 마지막 문지 사에는 1~2차례 수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2차 문지로 추정되는 것은 1차 현문식 문지가 양쪽 성 벽의 자체 하중으로 붕괴된 이후 문지의 범위를 보다 넓혀 사용한 것으 로 추정된다. 이는 돌출된 성벽부의 외측 석축상황으로 추정할 수 있는 데, 내측의 돌출된 석축이 성벽과 직교하게 꺾이는 부분의 석축상황이 다. 석축의 가장 아랫단은 성벽과 직교하도록 놓여져 있으나, 그 윗부 분은 석재를 약간 비스듬히 놓아 석축의 모서리가 둥글게 돌아가도록 쌓고 있다. 이 석축열과 대응하여 북쪽으로도 나란한 석축열이 보이고 있어 이것 이 2차 문지가 아닐까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내측의 돌출된 석축으로 인하여 내측을 확인 할 수 없으므로 2차 문지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차 문지는 돌출된 석축부의 동쪽 벽면과 마지막 문지의 내측으로 남 아 있는 석축열과 ‘ㄱ’자 모양의 석축열로 추정할 수 있다. 돌출된 석축 부의 동쪽 벽면 중앙에는 약 2m의 너비로 개구부의 측벽으로 추정할 수 있는 수직선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수직선과 대응되는 서쪽의 벽면에는 개구부의 측벽으로 추 정할 수 있는 수직선이 확실하지 않아 이것이 문지가 아니었을 가능성 도 있다. 2. 성벽과 수구 및 내측 평탄지 삼년산성 동문지 남쪽의 성벽은 내외겹축된 성벽으로 약 45m 구간의 외측 성벽이 잘 남아 있는 곳이며, 그 중앙부(1차 동문지의 남쪽 측벽 에서 22m)에 수구가 마련되어 있다. 수구가 있는 이 구간은 삼년산성 의 동쪽 가장 큰 계곡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며, 지표상으로도 석축 성 벽 외측으로 보축성벽의 위쪽이 확연하게 보이는 곳이다. 또한 성벽 상 면에서 여장으로 보이는 석축열이 석축 외측벽면과 나란하게 기단석 일부가 확인되고 있었다. 내측으로는 체성의 내벽이 중간 중간 노출되 어 있으며, 그 내측으로는 반원형의 평탄지가 조서되어 있다. 이곳의 발굴조사는 먼저 성벽 상면의 여장시설의 확인을 위하여 2개의 발굴구덩을 설치하였고, 수구 내측평탄지에 연못지의 유무를 확인하 기 위하여 중앙부를 기준으로 3개의 발굴구덩을 설치하였으며, 성벽 외 측으로 기단보축의 규모를 확인하기 위하여 1개의 발굴구덩을 설치하 였다. 1) 성벽 삼년산성 동문지 부근의 성벽은 크게 체성벽과 외측 기초를 이룬 보축 성벽, 그리고 여장부로 구성되어 있다. (1) 성벽 외측 하단의 기초 보축성벽 먼저 보축 성벽은 체성벽의 외측벽면의 하부에 5.8~6m의 높이까지 단 면 부채꼴 모양으로 남아 있다. 보축 성벽의 기초부는 소토가 섞인 진 흙을 다져 정지한 후 보축성벽을 쌓아 올렸다. 경사도는 아래에서 1.5m 높이까지는 64도의 경사면을 이루며, 다시 3.2m까지는 60도의 경사면을 이루며 축조 되었다. 외측 선단 첫층의 석 축 기초로부터 위쪽으로 3.2m 지점에서 보축성벽은 약 20cm가 앞으로 내밀어 다시 70도의 경사면을 이루며 축조되었다. 보축의 상면은 0.8~ 1m로 평탄면에 가까운 외환도를 이루고 있으나, 이는 보축성벽의 위쪽 이 붕괴된 때문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당초 보축성벽은 경사도를 달리 하여 체성벽의 외측 벽면까지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 는 보축성벽은 약 38~40층으로 석축되었다. (2) 체성벽 동문지 부근의 체성은 성벽 상면에 여장시설을 갖춘 단면 사다리꼴의 모양이다. 성벽의 너비는 여장 아랫부분 체성벽 상면을 기준으로 8.6~ 9.0m에 이른다. 외측 벽면은 기단보축으로부터 평균 82도의 경사면을 이루며 90~100 층 14m의 높이로 남아 있다. 그러나 체성벽 밖으로 보축 성벽이 5.8~ 6m의 높이로 남아 있으며, 온달산성의 외측성벽에서 확인된 것처럼, 당초 체성벽은 보축성벽의 내측으로 보축성벽의 바닥부분까지 이어질 것으로 추정되며, 이럴 경우 외측 체성벽의 전체 높이는 19.8~20m에 이르게 된다. 체성벽의 아래 너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바닥부터 겹축 성벽 일 경우 최소 15.5m가 된다. 내측 벽면은 평균 81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고, 지표 아래로부터 약 50 층 8m의 부분까지 확인되었다. 당초 내벽은 현재 성벽의 내측 붕괴경 사면을 고려하면, 최소 13m에 이르렀을 것을 추정된다. (3) 여장 동문지 부근의 성벽 윗면에는 지표상에 여장으로 추정되는 석축열이 체성벽의 외측벽과 나란하게 확인되고 있었다. 삼년산성의 여장 구조 를 확인하기 위하여 성벽 윗면 남쪽과 북쪽에 2곳의 발굴구덩을 설치하 여 여장시설을 확인하였다. 조사결과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던 석축열은 후대의 여장시설 기초부이 며, 성벽축조 당시의 여장시설은 보다 외측에 시설되어 있었다. 성벽의 외측 체성벽에서 미석이 없이 곧장 여장을 쌓았으며, 여장의 너 비는 105~110cm, 높이 70~80cm의 규모로 남아 있다. 여장을 쌓은 석 재는 성벽을 쌓은 석재와 동일한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여장의 내측 벽 면 축조 상태는 체성 벽면 보다는 정연하지 못하다. 타의 유무는 확인 되지 않았다. 여장의 내측으로 성벽 윗면은 성벽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대형의 판상 할석을 깔아 성벽의 윗면을 마무리 한 후, 성벽 윗면을 20~25cm 높이까지 사질이 섞인 다짐층위가 있고, 그 위로 약 7cm의 두께로 갈 색 점토 다짐층이 있다. 이 층위 위로 표토까지 황갈색과 적갈색의 점 토와 굵은 자갈이 섞인 토층이 약 10~15cm의 두께로 교대로 여장 상 면까지 보이고 있다. 이러한 토층상은 성벽 내측으로 계단상을 이루며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토층상으로 보아 초축 당시의 성벽 윗면은 사질토를 다짐한 후 다시 갈색 점토를 이용하여 다짐한 층위의 윗면이 성벽 윗면이었다고 추정된다. 2) 수구 삼년산성의 수구는 동문지 남쪽의 계곡부 잔존 성벽의 중앙에 위치하 고 있다. 출수구는 이미 체성 외측벽면의 하단에 그 형태가 알려져 있 었다. 그러나 입수구는 지표아래에 묻혀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중간부 를 관통하는 수구는 삼년산성 외에 충북지역에서 청원 양성산성을 비 롯하여 충주산성, 단양 온달산성에서 이미 입수구와 출수구가 조사된 바 있으며, 이들 중 삼년산성 수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수구는 현재 남아 있는 보축성벽의 윗면에서 약 1m의 높이에서 수 구 바닥돌이 시작된다. 이 바닥돌은 밖으로 약 15cm가 돌출되어 있으 며, 다른 석재보다 비교적 큰 것을 사용하였다. 출수구 바닥의 너비는 43cm이며, 좌우로 측벽을 쌓았다. 가장 위쪽의 석재는 면을 사면(斜面) 으로 가공하여 수구의 형태가 오각형이 되도록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러나 현재 좌측의 맨 위쪽 석재는 당초 오각형의 모양이 깨어 진 것인지 붕괴되어 다시 쌓은 것인지 수직선을 이루고 있다. 출수구 의 높이는 63~64cm이다. 좌측이 5층, 우측이 4층으로 쌓여져 있다. 덮 개돌은 길이가 긴 석재를 이용하여 2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로 체성벽 의 외측 벽면이 이어진다. 수구의 바닥면은 두께 10cm 내외의 판상석 을 이용하여 계단상으로 입수구로 이어지고 있으며, 입수구까지는 직 선이 아닌 중간부분이 남쪽으로 휘어진 곡선상을 이루고 있다. 입수구는 체성의 내측벽면에 잇대어 별도로 석축하지 않고 그대로 벽 면에 덮개돌을 약 10cm 내밀게 하여 만들었다. 입수구의 형태는 출수 구와 같은 오각형이며, 입수구 바닥면의 너비 37cm, 높이가 64cm의 규 모이다. 입수구 덮개돌은 길이 110cm, 두께 15cm의 비교적 큰 석재를 이용하였으며, 좌우 측벽은 각각 4층으로 축조하였다. 입수구를 처음 노출 시켰을 때 입수구는 판상할석을 이용하여 입수구 가 폐쇄되어 있었다. 이것이 후대 매몰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 니면 인위적으로 폐쇄시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단양 온달산성에서 도 이와 비슷하게 판상할석을 이용하여 입수구를 폐쇄시킨 예가 있다. 입수에서 출수구까지의 길이는 13m이며, 바닥면을 기준한 높이 차이 는 4.2m이다. 입수구 내측으로는 입수구에서 약 40cm 내측으로 대형의 판상 할석이 놓여져 있으며, 대형의 판상할석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강돌과 판상할석을 깔아 도수로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입수구 내 측에서는 별다른 연못지나 집수시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얇게 회 색 점토가 깔려 있는 부분이 있을 뿐이었다. 3) 수구 내측 평탄지 수구지 내측의 평탄지에 당초 수구와 관련된 연못지 또는 집수 시설의 유무와 체성의 내측 토층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평탄지의 중앙부를 중심으로 십자의 둑을 두고 남쪽으로 2개, 북쪽으로 1개의 발굴구덩을 설치하였다. 발굴구덩은 각각 SE, SW, NE로 명명하였다. 먼저 입수구를 중심으로 내측의 도수로 및 연못 또는 집수시설의 유무 를 확인하기 위하여 입수구를 중심으로한 SE 발굴구덩을 조사한 결과 입수구 내측으로 연못과 집수지와 관련된 유구는 노출되지 않았다. NE 발굴구덩의 남쪽벽면에서 확인되는 성 내측의 토층을 살펴보면 최 하층의 회갈색의 뻘층이 약 150cm의 두께로 뻘층이 확인되며(Ⅰ), 그 위로 10~15cm 두께의 적갈색 점토층(Ⅱ), 200~300cm의 가는 사질이 섞인 황갈색사질 다짐층(Ⅲ), 그위 얇게 소토층이 깔리고(Ⅳ), 다시 20cm 두께의 적갈색 사질층(Ⅴ), 15~20cm 두께의 황갈색 사질층 (Ⅵ), 성돌이 섞인 암갈색 사질층(Ⅶ), 굵은 자갈이 섞인 암갈색 사질층 (Ⅷ), 흑갈색의 부식토(Ⅸ)로 구성되어 있다. 토층은 전반적으로 성내 측에서 성외측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유물이 포함된 층위는 대체로 4개의 층위로 나타난다. 회갈색 뻘층의 상면과 뻘층의 아래쪽에서 토기편들이 일부 출토되고 있으며, 뻘층의 상면에는 성벽과 직교하여 장방형과 방형의 목재, 나무망치가 출토되 었다. 입수구의 바닥면이 위치하고 있는 황갈색 사질층(Ⅵ)에서 단각고 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그 위로 9세기 이후의 경질토기와 대형 옹 편이 출토되고 있다(Ⅶ). 마지막으로 굵은 자갈이 포함된 암갈색 사질 층(Ⅷ)에서 고려 이후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 출토 양상과 토층 양상으로 보았을 때 입수구에 대한 문제 점이 노출되고 있다. 입수구의 바닥면은 Ⅵ층에 해당하고, 토약으로 추 정되는 두터운 황갈색의 다짐층 아래의 뻘층과 뻘층 상면에서 출토되 고 있는 목재의 관계이다. 이는 현재 노출되어 있는 수구가 개축되었 을 가능성과 아래층에 또다른 수구의 존재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 다. 그러나 현재 입수구 아래쪽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서는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 이는 동문지 내측 성벽의 북쪽 토층 양 상으로도 추정할 수 있는 것으로 동문지 내측의 1차 내옹벽 위쪽으로 토약으로 추정되는 황갈색의 사질 다짐층이 있는 상황과 동일하게 나 타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현재 노출되어 있는 수구는 후대 초축보 다 늦은 시기에 개축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NE 발굴구덩의 회갈색 뻘층 상면에 노출되어 있는 목재는 방형 과 장방형으로 가공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북쪽의 것은 길이 392×13cm×31cm의 크기이며, 남쪽의 것은 각각 144×17×20cm, 222×20×32cm의 크기이다. 북쪽의 것은 아래쪽에 38cm의 간격을 두 고 방형의 구멍이 뚫려 있는 상황이며, 남쪽은 것은 아래쪽으로 방형 과 원형의 단이 진 양상으로 가공하고 있다. 따라서 북쪽의 목재와 남 쪽의 목재가 결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들 목재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며, 이러한 목재가 입수구 아래쪽으로도 이어질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SW 발굴구덩은 내측 평탄지에 또 다른 시설물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하 여 설치하였다. 부식토와 잔자갈이 혼입된 암갈색의 사질층을 제거하 자 바로 황갈색의 사질 다짐층이 나타났으며, 그 위로 두개의 석축열 이 나타났다. 위쪽의 석축열은 성벽 방향과 나란하게 남북으로 이어지 고 있으나 석축열의 성격은 알 수 없다. 또 다른 석축열은 남쪽으로 이 어지다 서쪽으로 곡선상으로 휘어지는 석축열로 잔돌을 이용하여 석축 하였다. 이러한 석축은 2003년도 연못터 남쪽에서도 동일한 양상의 기 초를 이룬 석축이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이 석축열의 동쪽으로는 마 치 부석한 것과 같이 편평한 판석형 석재를 이용하여 바닥면을 조성 한 듯하나 발굴조사가 완료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는 상황이 다. 3. 출토유물 이번 발굴조사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토기류를 비롯하여 철기류 기와 류 청동류 등 다양하다. 철기류 - 솥, 솥뚜껑, 따비, 철촉 등 토기류 - 고배류, 토기 뚜껑류, 완류, 소형 완류, 대옹편, 가로띠 손잡이 류, 쇠뿔손잡이류 등 청동류 - 청동병 기와류 - 선문기와류, 어골문기와류, 청해파문 기와류, 무문기와류 등 Ⅲ. 조사성과 금번 삼년산성 2차 발굴조사의 범위는 동문지를 비롯하여, 남문지, 북 문지 및 동문지 내측의 평탄지와 건물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북문 지 일부와 동문지, 동문지 내측의 평탄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한 상 황으로 지금까지의 조사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당초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던 동문지는 꺾어서 성내로 통행하는 독 특한 구조의 성문양식으로 주목되어 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는 성문은 몇 차례의 개축과정을 거쳐 조선시대 가장 마지 막으로 사용된 문임이 확인되었다. 2. 삼년산성 초축 당시의 동문지는 현문식의 개구부와 성 내측으로 내 옹벽을 갖춘 문지였으며, 이후 이 문지가 성벽의 하중과 북쪽 경사면 의 토압으로 인하여 붕괴된 후 몇 차례의 수축과정을 거쳤다는 것이 밝 혀졌다. 3. 동문지 남쪽 성벽의 규모와 성벽 외측면 하단의 기초 보축 성벽의 규 모가 확인되었다. 보축을 포함한 외측 성벽의 높이는 현재 20여m에 이 르며, 내측 성벽도 아직 내측의 바닥면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최소 13m 이상의 규모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보축 성벽 또한 6m 높이로 일 반적인 삼국시대의 다른 지역 신라가 석축한 산성의 외측벽과 비슷한 대규모의 것임이 밝혀졌다. 4. 동문지 부근의 성벽 상면에서 여장 시설 및 체성 윗면의 처리 방법 이 확인되었다. 여장은 별도의 미석이 없이 외측 체성벽에 이어져 있으 며, 너비는 105~110cm, 높이는 약 70~80cm의 규모임이 밝혀 졌다. 이러한 여장의 양식은 충주산성 동문지 북쪽 성벽에서도 일부 확인 된 바 있어, 삼국시대 신라 산성의 여장 시설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 가 될 것이다. 또한 여장 내측의 성벽 윗면은 뒷채움석의 상면을 대형 의 판상할석을 깔고, 그 위로 사질토를 다짐한 후 다시 점토질의 흙을 다져 성벽 윗면으로 사용한 것이 밝혀졌으며, 성벽 윗면은 성외측에서 내측으로 계단상으로 경사지도록 정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5. 현재 수구 내측으로는 연못지나 집수장과 같은 시설은 확인되지 않 았다. 다만 입수구 바닥면 아래쪽에서 대규모의 토약이 이루어진 것과 토약의 아랫부분에서 뻘층과 일부 목재가 확인됨으로서 현재 남아 있 는 수구가 개축되었을 가능성과 또 다른 수구가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 되었다. 그러나 현재 일부만을 조사한 상황으로 수구지 아래쪽에 대한 별도의 조사를 실시하여야만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Ⅳ. 토의사항 1. 입수구 북쪽 NE 발굴구덩의 매몰 문제 2. 입수구 바닥 아래쪽 뻘층에 대한 추가 조사 문제 3. 동문지에 대한 추가 조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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