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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비파형동검문화의 성립과 전개과정 연구

2003-0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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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결 론 琵琶形銅劍文化는 동북아시아지역에서 直柄銅劍類가 광범위한 지역 에서 출현하던 단계에 해당하는 청동기문화이다. 비파형동검문화는 비 파형동검을 중심으로 한 특징적인 청동기유물군을 전제로 하여 제안 된 문화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가 내몽고 동남부지 역의  柄式銅劍文化나 하북성 북부 등지의 有柄式銅劍文化와는 차별 적인 문화양상을 나타낸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그 러나 비파형동검을 위시한 특징적인 청동기유물군중 일부가 요령∼길 림 중부∼한반도에 걸친 광역에 분포하고 있어, 그간 내외학계를 막론 하고 동문화를 이해하는데에 적지 않은 혼란이 있어 왔다. 이러한 혼란이 초래하게 된 원인중의 하나는 관련 청동기유물군의 공 반과 관련한 시간성 및 공간성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인 것 으로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인식 하에 비파형동검문화를 모색 하기에 앞서, 요령지역 관련 청동기유물조합을 몇 개의 공반단계로 구 분한 후, 각 공반단계의 시간성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어 비파형동검 을 위시한 관련 청동기유물은 물론 요령지역의 특징적인 무덤 및 토기 의 시간에 따른 공간성을 파악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요 령지역의 유물복합을 몇 개의 지역군으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요령지역이 몇 개의 차별적인 지역군으로 분류된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 요령지역 청동기유물조합의 공반단계는, 기술적인 혁신과 기종 구성 상의 차이를 고려할 때, 전체 다섯 단계로 획분된다. I단계는 약간의 무기류(AI비파형동검,木劍柄,A·BI·CI검병두식)와 생산 공구류만이 공반하는 단계이다. I단계의 공반유물이 寧城 小黑石溝期 에 대비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원전 10세기 후반∼9세기 중반으로 편년된다. 요서 서북부지역에서만 확인된다. II단계는 I단계에 비해 기종 구성(무기류∼위세류)이 완비되어 있는 특징을 보이는데, 銅木混合劍柄, 마구류(三穿式 재갈멈치), 平臺緣의 雷文系 多 粗文鏡(AI식)의 출현을 획기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II단 계의 공반유물중 일부가 南山根期에 대비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원 전 9세기 후반∼8세기 중반으로 편년된다. II단계는 요서 전 지역에서 확인된다. III단계는 청동제 검손잡이와 비파형동모가 공반하는 단계이다. 공반 유물상에서 나타나는 시간성을 고려할 때, 기원전 8세기 중,후반∼7세 기대로 편년된다. 요령의 대부분 지역에서 확인되는데, 구체적인 유물 조합면에서 지역간의 차이가 확인된다. 즉, 요서지역의 경우 각종 기종 과 형식의 청동기유물이 완비되어 있는 반면, 요동 북부지역은 청동제 검손잡이 등의 유물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BI식 비파형동검, B형 비파형동모, BI∼BIII식 선형동부가, 요동 남단지역은 요서 및 요동 북 부지역의 유물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요동 남단지역만의 유물(BII 식 비파형동검,C형 선형동부)이 공반하는 특징을 보인다. IV단계는 시대성을 강하게 띄고 있는 북방계 유물요소가 공반하는 단 계로서, 유행시기는 기원전 6∼5세기이다. IV단계의 청동기유물 또한 요령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확인되는데, 지역별로 공반양상을 달리하 고 있다. 대체로 遼西地域의 경우, 다량의 북방계 유물과 함께 AIII식 비 파형동검, AI식 중세형동검, B형 청동검손잡이 등이 공반하고 있는 반 면, 沈陽一帶에서는 소량의 북방계 유물과 함께 AIII식 비파형동검, A·B 형 청동검손잡이, AII식 선형동부, 평면연의 뇌문계 다뉴조문경 등이, 遼東 北部와 南端地域에서는 AIII식 비파형동검, C형 청동검손잡이, BII ·BIII·C형 선형동부 등이 공반하는 양상을 보인다. V단계는 A∼C형 중세형동검, C형 청동검손잡이, 葉脈文·星形文 多  粗文鏡, 狹鋒銅矛 등에 戰國燕系 유물요소가 공반하는 단계이다. V단 계는 철기의 공반 여부를 기준으로, V-1기와 V-2기로 세분 가능한데, V-1기의 공반관계는 요령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V-2기의 공반관계는 요동지역에서만 확인된다. 대체로 요서지역에서는 재래의 청동기유물 요소중 무기류(중세형동검,검병두식,短鋒銅矛)만이 확인되는 반면, 요 동지역에서는 형식이 변화된 가운데 전에 없이 다양한 유물들이 유행 하는 양상을 보인다. 전국연문화의 전개과정 등을 고려할 때, V-1기는 기원전 4세기대, V-2기는 기원전 3세기대로 편년된다. 요령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청동기유물면에서 위와 같은 다양한 시공 간성을 보인다. 청동기유물에서 나타나는 지역적 양상과 함께 토기와 무덤의 시공간성을 복합하여 고려할 때, 요령지역은 A형류 비파형동 검, A형 비파형동모, 뇌문계 다뉴조문경, 석곽묘, 토광묘로 상징되는 遼西地域群, BI식 비파형동검, B형 비파형동모, 석관묘, 노성-동산형 호, 미송리형토기, 대화방형관으로 상징되는 遼東 北部地域群, BII식 비 파형동검, C형 선형동부, 적석총, 강상형토기로 상징되는 遼東 南端地 域群, BIII식 비파형동검, 지석묘, 쌍방형토기로 상징되는 遼東 南部地 域群, 桓仁∼鳳城지역의 유물군으로 상징되는 遼東 東部地域群 등으 로 분류된다. 이중 관련 청동기유물군이 I∼V단계 모두에서 확인되는 것은 요서지 역군 뿐이다. 이외의 지역군중 요동 북부지역군∼남단 지역군은 III∼V 단계에만, 요동 동부지역군은 V단계에만 이러한 유물들이 확인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요령의 여러 지역군중 적어도 요서지역군이 비 파형동검문화에 속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늦은 단 계이기는 하지만, 요동의 여러 지역군에서도 이러한 유물들이 공반한 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군의 경우, 청동기유물의 부장 수준이 제약되어 있는데다 기본적인 유물(비파형동검,검병두식)조차 보편화되 어 있지 않는 등, 비파형동검문화 주변지대로서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 인다. 이와 같은 양상은 기왕의 연구자들이 비파형동검문화를 모색하는데 에 분석대상으로 삼은 유물중 적절성을 띄고 있는 일부 유물에 대한 다 양한 방식의 분석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비파형동검문화 모색의 기준 유물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는, 비파형동검과의 직접적인 결합관계와 제작 및 장식문양에서 나타나는 내적인 연관관계를 고려할 때, 비파형 동검, 검손잡이, 검병두식, 비파형동모, 선형동부, 다뉴조문경, 고급의 청동장식물 등이 있다. 그런데 유물에서 나타나는 공간성, 시간성, 계 열성, 조합성, 중심성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요서지역군 외에는 없다. 따라서 이 지역군을 비파형동검문화로 설정할 수 있다. IV단계 요동지역에 돌출적으로 출현한 심양지역은 시간성과 계열성 면에서 후기적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위의 요건 을 모두 구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비파형동검문화가 요동 방면으 로 확산된 결과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외 요동의 기타 지역군(요 동 북부지역군,요동 남부지역군,요동 남단지역군,요동 동부지역군)들 은 기준으로 삼은 일부 유물요소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한 두 기종 중 특정형식만이 제한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이 들 지역군에 포함되어 있는 비파형동검문화의 요소는 비파형동검문화 가 주변지역으로 이삼차적으로 파급된 결과에 의한 것으로 이해된다. 비파형동검문화는 석곽묘와 청동기유물군으로 상징되는데, 이와 같 은 유물요소는 요서지역의 선행하는 청동기문화인 夏家店下層文化와 는 차별성이 현격하다. 따라서 요서 이외 다른 지역의 유물복합과 연관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그간 비파형동검문화의 기원 을 시베리아 또는 중국 내지의 청동기문화에서 구하는 견해가 일반적 이었다. 이중 중국기원설은 두 문화가 무덤(石槨墓↔土壙墓), 무기류 (琵琶形銅劍,琵琶形銅矛↔東周式銅劍,戈,戟), 공구류(扇形銅斧↔長方 形銅斧), 토기류(磨光黑陶鉢,長頸壺,牛角形把手附罐↔中國式土器,三足 器), 위세류(多 粗文鏡↔中國式鏡) 등 전반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 어 설득력이 없다. 반면 시베리아기원설은 두 문화의 중심적인 요소들이 일정한 대응관 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비파형동검문화의 石槨墓와 琵琶形銅劍이 시베리아지역의 쿠르간 및 組立式銅劍과 유사성을 보인 다든지, 三穿式 말재갈멈치가 스루브문화 등의 것과 동일하다든지, 기 하학문양이 시베리아지역에서 폭넓게 발견된다든지, 선형동부가 안드 로노보문화의 것과 유사하다든지 하는 점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그 러나 비파형동검문화는 시베리아지역 전체를 단위로 하여 비교할 때에 만 연관성를 보일 뿐, 유물복합 전반에서 비교되는 것이 찾아지지 않는 다. 따라서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의 유물요소가 특정집단에 의해 요서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로 종합되어 비파형동검문화가 성립된 것으로 파 악된다. 시베리아지역 청동기문화에 기원을 둔 비파형동검문화가 요서지역 에 성립하게된 배경으로는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의 유물요소가 동지역 으로 남하하였다는 점 외에, 기원전 15세기 이후로부터 비파형동검문 화가 성립하는 기원전 9세기대 이전까지 이 지역의 청동기문화가 독특 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요서지역의 청동기문화 또한 내몽 고∼하북성 북부와 마찬가지로, 前期靑銅器文化(夏家店下層文化,無銅 劍段階), 中間 過渡期文化(魏營子式遺蹟群,曲柄銅劍段階), 後期靑銅器 文化(琵琶形銅劍文化,直柄銅劍段階)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내몽고 중부∼하북성 북부지역의 長城地帶에서는 전기청동기 문화로부터 지속된 유물요소(토기)에 시베리아∼중앙아시아지역의 유 물요소(청동기)가 결합하여 새로운 단계의 청동기문화가 성립하는 반 면, 요서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세 단계의 문화가 계통 및 성격을 각각 달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요서지역의 청동기문화가 연 속적인 것이 아닌 단속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각 문화 사이마다 특정한 문화유형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일종의 文化 空洞化 현상마저 확인된다. 요서지역 청동기문화의 전개가 이와 같이 독특하였기에, 시베리아지역으로부터 새롭게 파급된 유물요소가 요서 지역에 용이하게 응집되어 비파형동검문화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배경과 과정을 통해 성립된 비파형동검문화는 유물조합과 형 식의 변천에 따라 초기, 전기, 중기, 후기, 말기의 네 획기로 구분된다. 초기는 AI식 비파형동검, 木劍柄, A형·BI·CI식 검병두식으로 상징되 는 단계로서, 유행시기는 기원전 10세기 후반∼9세기대 중반이고, 분포 범위는 大凌河最上流域이다. 전기는 AI식 비파형동검, 銅木混合劍柄, 平臺緣의 雷文系 多 粗文 鏡, BII·CII·DI식 검병두식, AI·BI·BII식 선형동부 등으로 상징되는 단계로 서, 유행시기는 기원전 9세기 후반∼8세기 중반이고, 분포범위는 努魯 兒虎山 남사면(북)∼建昌縣의 黑山 이북(남), 凌源―建昌線 이동(서)∼ 大凌河 中,下流域이다. 전기단계는 다뉴조문경을 위시한 각종 위세품이 출현하였다는 점과 비파형동검문화의 전형적인 유물요소가 모두 구비되었다는 점에서 의 의가 자못 적지 않다. 중기는 AII식 비파형동검, A형 청동제 검손잡이, A형 비파형동모, 뇌 문계 다뉴조문경, BIII식 검병두식으로 상징되는 단계로서, 유행시기는 기원전 8세기 중반∼7세기이고, 분포범위는 전기의 범위보다 다소 동 쪽(醫巫閭山과 그 이동)으로 확대된 양상을 보인다. 후기는 AIII식 비파형동검, B형 청동제 검손잡이 등으로 상징되는 단 계로서, 유행시기는 기원전 6∼5세기이다. 말기는 A·C형 中細形銅劍, BIII·C형 청동제 검손잡이, 長頸壺, 牛角形把手附罐 등으로 상징되는 단 계로서, 유행시기는 기원전 5∼4세기이다. 비파형동검이 중세형동검으 로 유형적인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을 말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위의 획기와 관련하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파형동검문화가 IV단계 에 서쪽(요서지역)과 동쪽(심양지역) 두 개의 지대로 분화된다는 점이 다. 이러한 점은 두 지대가 비파형동검문화의 유물요소를 유물복합상 의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질적성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외래계 유물요소의 수용과 비파형동검문화 토착요소의 지속성면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서쪽지대 의 경우 이전 단계로부터 지속된 비파형동검문화 요소중 최소한의 기 본유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종이 외래계 유물에 의해 대체되는 반면, 동쪽지대는 비파형동검문화 중기단계에 유행한 유물요소가 지속된다. 후기단계에 분화된 동서 두 지대는 이후 요령지역 청동기문화의 전개 에 큰 영향을 끼친다. 즉, 아래에서 언급할 바와 같이, 비파형동검문화 의 동쪽지대가 심양지역에 성립됨에 따라 요동지역에 대한 동문화의 영향력이 크게 제고되었고, 그 결과 요동지역내에 심양지역을 상위로, 기타 토착지역군을 하위로 하는 독특한 교섭체계가 형성된다. 아울러 심양지역을 매개로 하여 요서와 요동지역이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한 다. 이외 기원전 3세기대 요서지역에서 비파형동검문화가 완전히 소멸 되는 반면, 요동지역에서는 그러한 계열의 유물요소가 여전히 지속되 는 것 또한 이 단계에 형성된 동서 두 지대의 성향과 관련이 있다. 아뭏튼 획기별로 이와 같은 발전상을 보이는 비파형동검문화는 동검 의 유형 변화를 기준으로 다시 비파형동검단계와 중세형동검단계로 대 분된다. 비파형동검기는 앞의 획기중 초기∼후기까지가, 중세형동검기 는 말기에 해당된다. 이중 중세형동검단계는 동검의 유형이 비파형동 검에서 중세형동검으로 변천되었다는 점에서 비파형동검단계와 획기 적인 차이를 보인다. 동검의 유형적 전환을 전후로 하여 비파형동검단 계에 전형을 이루며 발전하던 고유한 유물요소가 이 단계에 들어와 대 거 쇠퇴한다는 점과 북방계 유물요소 및 전국연계 유물요소가 요서지 역에 다수 복합하게 된다는 점 또한 획기의 주요한 근거로 삼을 수 있 다. 그러나 중세형동검단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해서, 이 단 계가 비파형동검문화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비록 새로운 유물요소가 첨가되었다고 할지라도, 비파형동검단계의 기준유 물이 여전히 중세형동검단계 유물복합에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 고 있기 때문이다. AI식 중세형동검이 AIII식 비파형동검을 직접적인 선 행형식으로 하고 있다든지, 이 단계에도 여전히 석곽묘가 유행하였다 든지, 비파형동검의 직접적인 부속물인 청동제 검손잡이와 검병두식 이 여전히 유행하였다든지 하는 점 등을 그러한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의 중세형동검단계는 요서는 물론 요동지역의 청동기문 화 전개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즉, 이전까지 문화적으로 차별성 을 보이던 요서와 요동지역의 지역군들이 중세형동검단계를 전후하여 유사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양상은 비파형동검단계 후기에 비파형동검문화의 동쪽지대가 심양지역에 형성됨으로써 가능 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요동 북부의 일부 지역에 심양지역이 성립 한 직후, 이전 시기까지 요동의 토착지역군에서 특징적으로 유행하던 B형류 비파형동검이 비파형동검문화의 전형유물인 A형류 비파형동검 으로 완전히 대체되는 것을 통해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다시말해, 중세형동검단계에 진행된 요령지역 청동기문화의 유사화 현상은 심양지역을 매개로 가속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중세형동 검이 기원전 4세기대로부터 심양지역을 중심으로하여 요동지역에 광범 위하게 확산되었다든지, 요동지역에서 이전에는 유행하지 않았던 청동 제 검손잡이와 다뉴조문경 등의 유물요소가 이 단계를 전후하여 유행 하였다든지, 중세형동검단계 요서지역에서 유행한 長頸壺 二重口緣罐 牛角形把手附罐 등이 요동지역에도 출현하였다든지, 요동지역의 토착 무덤과는 이질적인 석곽묘와 토광묘가 이 단계로부터 요동의 주요지점 에 출현하였다든지 하는 점 등 모두가 심양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 어진 현상들이다. 이와 같은 양상은 심양지역의 요동지역의 토착지역군에 대한 영향력 이 강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상황을 고려하여 볼 때, IV∼V-1기 요동지역에 심양지역을 상위로, 토착지역군을 하위 로 하는 독특한 교섭체계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사실 은 A형류 비파형동검과 중세형동검이 심양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 의 토착지역군으로 확산되었다든지, 심양지역의 중심유물인 鄭家窪子 型壺가 요동 토착지역군에 널리 확산되었다든지, 이러한 유물요소가 심양지역의 특징적인 유구인 토광묘(석곽묘)와 함께 주변지역으로 파 급되었다든지 하는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같은 시기 요동지역에 형성된 교섭체계와 관련하여 부언하고 싶은 것 은, 요동 각 토착지역군의 심양지역과의 연결관계가 일정하지 않았다 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토착지역군내에 포함되어 있는 비파형동검 문화 요소의 多寡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데, 이 시기 琵琶形銅劍文化化 가 가장 많이 진척된 곳은 요동반도 남단지역이다. 남단지역 다음으로 는 요동 북부지역이 있다. 이들 두 지역은 비파형동검단계에도 다른 토 착지역군에 비해 우위를 보이던 지역군들로서, 전 시기에는 요동 북부 지역 보다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으나, 중세형동검단계에 이르러서는 요동반도 남단지역이 상위의 양상을 보인다. 이들 지역군 이외는 심양지역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기 보다 는 요동 북부와 남단지역을 통해 비파형동검문화의 유물요소를 이삼차 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요동 동부와 길림 남부지역에서 요동 북부와 남단지역에서 유행한 C형 검손잡이의 葉脈文 모티프를 차용한 葉脈文系 多 粗文鏡이 유행하였다든지, 요동 남단지역의 지역형식인 C형 선형동부와 오목밑 삼각석촉 등이 그 이동의 지역에 파급되었다든 지 하는 점 등은 이러한 사실을 짐작케 한다. 따라서 요동 북부와 남단 지역에 일차적으로 수용된 비파형동검문화의 유물요소가 주변의 기타 지역으로 이삼차적으로 파급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중세형동검단계에 요령지역의 청동기문화가 유사화되었다고 해서, 이들 지역이 비파형동검문화에 포괄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 은 요동의 토착지역군이, 비록 이 시기에 비파형동검문화의 영향을 강 하게 받았다고 할지라도, 전반적인 문화면모에서 비파형동검문화와 여 전히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요동 북 부지역의 AII식 중세형동검, DII·E∼I형 검병두식, 狹鋒銅矛, 大石盖墓 등이 비파형동검문화와는 전혀 다른 구역성을 보이고 있다든지, 요동 반도 남단지역에서 후기청동기시대 이래 이 지역 유물복합의 기본축 을 이루고 있던 유물요소가 지속되었다든지 하는 점을 그러한 예로 들 수 있다. 중세형동검단계 전후 심양지역(비파형동검문화 동쪽지대,정가와자 식 유적군)을 통해 비파형동검문화의 유물요소를 대거 수용한 요동 북 부지역군과 요동반도 남단지역군은 청동기시대 이래 해당지역에 지속 되어오던 토착적인 유물요소를 여전히 중심요소로서 보유하고 있었다 는 것을 통해서 충분히 짐작된다. 즉, 요동 북부지역군에서는 石棺墓 老城―東山型壺 大 房型罐 등의 유물요소가, 요동반도 남단지역군에 서는 積石塚 崗上型土器 三角凹底石鏃 環狀石器 대롱구슬 石製垂飾 등 의 유물요소가 중세형동검단계에도 유지되었던 것이다. 비파형동검문화의 전개와 관련하여 끝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기원 전 3세기대 비파형동검문화계열의 중심이 요서에서 요동지역으로 옮겨 간다는 점이다. 요서지역의 중세형동검 관련유적은 유물조합의 차이에 따라 중세형 동검을 위시한 비파형동검문화 유물요소와 북방계 유물요소가 조합하 는 老爺廟組(기원전 5∼4세기)와 위의 유물요소 외에 새로이 소량의 戰 國燕系 유물요소(土鼎,土盆)가 조합하는 喀左縣所在地組(기원전 4세기 대)의 두 단위로 구분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喀左縣所在地組를 마지 막으로 요서지역에서 비파형동검문화의 유물요소가 완전히 소멸된다 는 점이다. 기원전 3세기대에 해당하는 眉眼溝組(木棺槨墓,土城,生活 遺蹟,戰國燕-漢系 遺物)를 그러한 예로 들 수 있는데, 이 단계로부터 요서지역의 고고문화가 戰國燕-漢文化 일색으로 완전히 전변된다. 반면 요동지역의 경우에는 요서지역에서 비파형동검문화의 유물요소 가 戰國燕系의 초기철기문화 요소로 완전히 대체된 시점(기원전 3세기 대)에도 비파형동검문화를 직접적인 기원으로 하는 유물요소들이 지속 되는 양상을 보인다. 물론 요동지역의 중세형동검단계 또한 기원전 3세 기대로부터 戰國燕文化의 요소가 적지 않이 복합된다. 그러나 요동의 일부 거점지역을 제외한 산간지역 등에서는 이 시기에도 여전히 토착 적인 요소가 유지됨은 물론 비파형동검문화계의 유물요소가 유행하였 던 것이다. 따라서 요령지역만을 기준으로 할 때, 기원전 3세기대 요동 지역이 비파형동검문화계열의 중심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총결하면, 비파형동검문화는 기원전 9∼4세기대까지의 기간 동안 요 서지역을 중심으로 한 요령지역에서 유행한 특징적인 문화이다. 동문 화는 인접하고 있는 요동 등지의 토착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러 한 영향은 IV단계 비파형동검문화의 일단이 심양지역으로 확산됨에 따 라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즉, IV∼V-1기 심양지역을 매개로 요서와 요 동지역이 문화적으로 유사화되기 시작한다. 비파형동검문화는 戰國燕 文化의 동진으로 쇠퇴소멸하는데, 요서지역의 경우 기원전 4세기 직후 전국연문화로 완전히 대체되는 반면, 요동지역은 기원전 3세기대까지 비파형동검문화계열의 유물요소가 지속되는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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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남한지역 고대 製鐵爐에 대한 一硏究 김권일 2165 2003.09.14
>> 비파형동검문화의 성립과 전개과정 연구 오강원 4867 2003.02.15
46 신석기시대 낚시바늘연구 김충배 3642 2003.02.11
45 한강유역 고구려토기의 제작기법에 대하여 양시은 2966 2003.02.10
44 경주지역 수혈식석곽묘에 관한 일고찰 조수현 2618 2003.02.10
43 중서부지역 송국리문화 연구 우정연 2763 2002.08.27
42 영산강유역 금속유물의 변천 연구 이범기 2254 2002.08.15
41 韓半島 無文굽다리土器 硏究-형식분류를 통한 편년 및 성격추론 강병학 2446 2002.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