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용인 보정리고분군 발굴조사
2003-10-30 19:08:00
조회 2588
<용인 보정리고분군 발굴조사 개요>
◎ 조사명 : 용인보정리고분군 발굴조사
◎ 조사지역 : 경기도 용인시 구성읍 보정리 산 121-1임 일대
◎ 조사면적 : 약 1,250㎡(봉토분 2기)
◎ 허가번호 : 2002-567(2002.12.16)
◎ 조사기관 : 토지박물관
◎ 지도위원 : 조유전(문화재위원) / 최몽룡(서울대 교수) /
최병현(문화재위원) / 이남규(한신대 교수)
◎ 조사위원 : 김용성(영남대 박물관) / 조영현(계명대 박물관)
1. 조 사 경 위
용인보정리고분군은 2002년 토지박물관이 용인시 전역에 대한 문화유
적 지표조사를 실시하던 중 확인한 유적이다. 당시는 고분군의 중심지
역에 토지소유자가 전원주택부지를 조성하려는 중이었고 이대로 공사
가 진행된다면 유구에 막대한 손상이 가해질 것으로 판단하여 긴급히
용인시에 매장문화재발견신고를 하게 되었다.
이에 용인시는 토지소유자에게 공사 이전에 해당지역에 대해서 사전
지표조사를 실시를 명하였고 이 조사는 한신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이
루어졌다. 그 결과 이 일대에는 적어도 30여기의 고분이 존재하고 있음
을 파악하였고 당시 조사자들은 “경기지역에서 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대형분으로 구성된 대고분군이라는 점에서 사적으로 지정한 후
유적공원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용인시는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보존방안을 수립하던 중 정확한 유
적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토지박물관이 조사를 맡게 되었다.
조사단구성은 다음과 같다.
조사단장 : 김영웅(토지박물관장)
지도위원 : 조유전(전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위원)
최몽룡(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교수)
최병현(숭실대학교 박물관장, 문화재위원)
이남규(한신대학교 국사학과교수)
조사위원 : 조영현(계명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
김용성(영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
책임조사원 : 김상익(토지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
조 사 원 : 최형균(토지박물관 학예사)
2. 유적의 위치 및 현상
용인보정리고분군은 경기도 용인시 구성읍 보정리 산 120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해발 186m의 소실봉 남쪽 능선에 해당한
다. 이 소실봉 능선은 동쪽에 있는 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이어
지고 있는데 이 지역은 지난 2002년 ~ 2003년 성호건설 아파트 공사
와 관련하여 발굴조사한 결과 25기의 석곽묘와 1기의 신라시대 석실묘
및 백제시대 생활유구들이 확인되어 적어도 삼국시대 관련 유구들이
다량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전면에는 소규모 저수지가 있는데 현재는 낙시터로 이용되고 있고 유
적과 고속도로 사이에 신규 도로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조사당시 보정리 고분군은 A․B지구에는 비교적 대형 봉토분들이 다
수 산재하고, 경부고속도로와 가까운 C지구는 겉으로 봉토가 거의 남
아 있지 않은 비교적 소형분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도굴에 의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고 특히 A․B지구
를 가로지르는 농로의 개설로 일부 고분군(A-2․3호분)은 심각한 피해
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계곡을 메우는 과정에서 일부 고분(A-5호분)
은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3. 조사내용
가. 기본 조사방법
현재 토지박물관이 조사하고 있는 보정리 고분군은 소실봉 남동쪽 능
선일대 야트막한 가지능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규모 계곡을 중심으
로 총 3개의 능선에 걸쳐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주로 능선 정상부를
피해서 자리잡고 있다. 각각의 능선을 한신대학교에서 최초로 명명한
대로 A․B․C 세 구역으로 구분하여 칭하겠다.
현재 조사대상지역은 A구역으로 모두 11개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이중
6번과 9번 고분을 조사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 두 고분을 선택한 이유는 한정된 예산으로 A구역내 고분군의 명확
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비교적 규모가 작은 6호분과 규모가 큰 9호
분을 조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한신대학
교 박물관 지표조사보고서에 긴급 수습조사가 필요하다고 한 2호분의
경우는 이미 대부분 파괴되어 조사를 통해 성격을 파악하기 힘들 것으
로 판단하여 제외하고 도굴이 이루어져 수습조사가 필요한 고분들 중 2
기를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기본 조사방법은 4분둑 조사법을 사용하였다. 이에 의해 기본적으로 남
북방향을 기본으로 한 둑을 설정하고 풍화나 후대에 의해 교란된 표토
를 제거하고 확실한 봉분면에서 매장주체부의 장축방향으로 추정되는
쪽으로 다시 기준둑을 설정하였다.
이런 방법에 의해 6호분은 드러난 개석을 토대로 개석의 장축방향으로
다시 기준둑을 설정 한 후 조사를 진행하였고 9호분은 도굴갱 내부를
통해 추측한 장축방향이 기존 설정방향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생각
되어 최초 설정된 둑을 유지하면서 조사를 실시했다.
둑을 기준으로 좌상단은 1사분면, 우상단은 2사분면, 좌하단은 3사분
면, 우하단은 4사분면이라고 명명하였다.
나. 조사내용
(1) 6호분
(가) 개요
6호분은 A지구 서쪽을 가로지르는 능선의 동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
으며 외형상으로는 거의 봉분양상이 관찰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만
능선과 6호분 사이에 약간의 굴곡이 있고 봉분 정상부로 추정되는 지역
에 개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일부 노출되어 있었으며, 북쪽면으로 도
굴갱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리고 대상지역 위 아래로 민묘가 조성되
어 있어 구역설정에 제약을 받는 상황이었다.
제토의 원칙은 유구의 파괴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하여 서로 마주보는
사분면(1․4사분면/2․3사분면)을 번갈아 실시하였는데 최초 제토는
최대한 봉토와 관계없는 부토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확인된 부
토층의 두께는 최대 60cm 정도 제토할때까지 교란된 백자편들이 확인
되었고 추정 봉분 정상부는 약 20cm 정도 하강한 상태에서 개석이 노
출되었다.
이에 매장주체부 장축방향을 기준으로 기준둑을 다시 설정하여 제토하
면서 주변의 굴광선을 우선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였으나 특별한 흔적
을 확인할 수 없었고 트렌치 벽에서도 굴광없이 벽석과 봉분토층이 맞
물려 들어감을 확인함에 따라 개석을 노출시키고 관련 시설을 조사하
였다.
(나) 봉토조성
A-6호분은 외부에 노출된 상황으로 보아 봉토 부분은 대부분 삭평되었
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경사면이 형성된 매장주체부 서편 트렌
치 조사결과 적어도 이 부분은 약 150cm 정도 벽석과 같이 성토하여 조
성한 것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능선에 연한 부분은 약 30cm 정도를 하
강한 상태에서 바로 암반면이 확인되었는데 이 암반면은 호석 인근에
서 급격히 경사를 이루며 떨어지고 매장주체부 하부까지 이어진다.
매장주체주 서쪽부분의 양상은 붕괴가 심해 토층이 심하게 교란된 상
태였으나 일단 생토면을 약 60cm정도 파고 서장벽 하부를 설치하였고
상부는 동쪽과 마찬가지로 벽석의 축조와 동시에 조성해간 것으로 판
단된다.
호석에서 호석까지 측정한 봉토 저경의 길이는 약 630cm 정도이다.
(다) 호석
둑을 기준으로 각 분면을 제토하던 중 4사분면 일대에서 비교적 양호
한 상태의 호석렬을 확인하였다. 이에 호석이 확인되는 레벨면을 집중
적으로 조사하였으나 인근하는 3사분면 일부를 제외하곤 확인할 수 없
었다. 그나마 3사분면에서 확인되는 유구들도 4사분면처럼 괴석이 아
니라 작은 즙석들 틈에 일부 원형으로 추정되는 열이 보이는 정도이
다. 다만 이 소규모 석렬 부근에서 일부 유물들이 확인되고 있으며 그
유물들이 돌과 함께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호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
각된다. 1․2사분면의 경우는 호석이 잔존하지 않았다. 이는 이 방향이
자연경사면상으로 침식이 우세하게 일어나는 지형에 위치하고 있어 파
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6호분 서쪽 트렌치 상에서 확인된 호석 축조양상은 바닥면 정지후 벽석
과 같이 봉분을 축조해가는 도중 호석이 위치할 곳을 파내고 조금 단단
한 점토로 아래를 다지면서 시설한 것으로 판단된다. 3사분면의 호석
은 돌의 크기가 작아서인지 특별한 시설양상을 확인할 수 는 없었다.
(다) 매장주체부
매장주체부는 개석의 형태로 보아 등고선의 장축방향과 평행하게 만들
어진 장방형 석곽이다. 제토는 동서기준둑을 남겨 놓은 채 개석을 받
치고 있는 벽석 상면까지 완전히 노출시켰는데 유구 주위에서 굴광 흔
적은 찾을 수 없었다. 석곽의 크기는 약 장축 410cm, 단축 150cm 정도
이다.
모두 4매의 개석이 덮여 있었는데 개석이 매장주체부 장축보다 작아서
띄업띄엄 개석을 배치하고 그 사이를 작은 돌들로 촘촘히 막아놓았다.
묘곽은 암반면위를 약간 정지한 바닥면에서부터 벽을 축조하면서 봉분
을 만들어 나갔다. 벽석은 장축을 기준으로 총 9-10단 정도로 축조하였
는데 바닥에서부터 약 5단 정도는 비교적 정연하고 규모가 큰돌을 가로
쌓기하여 만들었으나 위쪽은 상대적으로 작은 돌들을 쌓아 만들었다.
이런 축조양상은 전반적인 붕괴상황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판단된다.
매장주체부는 개석의 양상으로 보았을때는 비교적 세장한 석곽일 것으
로 생각하였으나 실제로는 상협하광의 단면 사다꼴꼴을 한 석곽으로
서장벽이 약 70cm 이상 동쪽으로 붕괴된 상태였다.
이에 시상부분의 조사를 위해 서장벽을 제거한 결과 바닥면의 규모는
장축 340cm, 단축 140cm 정도이고 양쪽 장벽에 접하는 시상이 설치되
어 있었다.
시상은 손바닥만한 판석을 이용해서 약 27cm 정도 높이로 올렸고, 횡
구부 이격거리는 약 40cm 정도이다. 시상 상부에는 규모가 작은 시상
이 약 높이 12cm, 길이 190cm 정도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추가장
된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에서 확인된 유물로는 2차시상면상에 북단벽 가운데 접해서 지름
4.2cm의토제 방추차 1점이 반파된 상태로 확인되었고 시상면 북서쪽
모서리 부분에 유물매장공간을 마련하였는데 여기서 부장공간에서는
부가구연대부장경호 2점과 단각고배 2점, 뚜껑 3점이 확인되었다.
(2) 9호분
(가) 조사경과
9호분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자연경사면상에 위치하고 있다. A
지구 다른 고분 중에서도 10호분과 함께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점하
고 있으며 봉분의 크기도 상대적으로 큰 편이었다.
4분둑 조사방법을 위한 구역 설정은 잔존 봉토의 최정상부를 기준으로
동-서, 남-북 방향의 기준선을 설정하고 그 설정된 선에서 50cm씩 좌
우로 구역을 설정하여 총 1m의 기준둑을 구획하였다. 벌목과 주변정리
가 끝났을 때 주변 평평한 지역은 붉은색 점토이고 추정 봉분지역은 갈
색토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평면을 기준으로 동서남
북으로 3m 정도씩 확장하는 것으로 1차 구역을 설정하였다. 이렇게 최
초로 설정된 구획은 봉토정상부 기준점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7m, 남쪽
으로 11m, 동쪽으로 10m, 서쪽으로 9m였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봉분 인근의 붉은색 점토가 거의 구지표면일 것
으로 생각했으나 실은 유수에 의한 퇴적토층임이 확인되었고 이 부분
을 완전 제토한 결과 봉분은 약 1.5m 가량 묻혀있었고 남쪽면에는 거
의 폭 1m에 달하는 거대한 호석이 확인되었다.
이 호석은 봉분으로 생각되는 면을 따라서 조성되었는데 남쪽에서 바
라보는 면은 비교적 규모도 크고 정연한 상태였으나 북쪽면은 붕괴된
돌들과 함께 뒤섞여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붕괴면을 제거한 후에
야 비교적 정연한 호석의 가장 아랫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잔존하는
호석렬로 보아 봉분의 원래 형태는 원형으로 생각된다.
조사 이전 상태는 6호분과는 달리 표토에서 아무런 도굴흔적이 확인되
지 않았다. 다만 봉분상태가 남쪽방향으로 많이 무너져있다고만 생각
되었다. 하지만 기준둑을 남기고 약간의 표토를 제거하자 2개의 도굴공
이 확인되었고 추가 제토과정에서 1개를 더 확인하였다.
이 도굴갱중 정상부에 뚫려있는 2개소는 개석이 너무 커서 묘곽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실패하였으나 마지막 횡구부 개석직하 벽석을 파괴
한 도굴갱을 통해서 도굴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도굴에 의한 피해는 예상보다 커서 시상이 상당히 교란되어 있었고 유
물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교란토 제거과정에서 3점의 토기편
과 2차시상부에서 반파된 완 1점을 수습하였다.
봉토에 대한 제토는 네 개 사분면 중 서로 마주보는 쪽을 먼저 실시하
였다. 그 중에서도 1․4사분면을 먼저 제토하고 매장주체부의 장축방향
의 끝단인 2, 3 사분면은 출입시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더욱 나중에 제
토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제토는 약 10cm 단위로 진행하되 개석
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일단 멈추고 상황을 파악하였다. 지표하 약 1m
지점에서 개석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개석이 확인된 상태에서 집중적으로 횡구부와 추가장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봉분 서쪽면 일대에서 횡구부관
련 시설을 확인하였다.
이 시설은 토층상으로 비교적 넓은 나팔상을 하고 있었으며 매장주체
부 한 벽 전체를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매장주체부일대는 개석이 일부 붕괴된 면이 확인되었고 이 유구는 향
후 현장보존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최대한 원상을 유지하기 위
해서 개석의 최상면만을 노출시켜 대략의 형태, 축조방법 등을 확인하
는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하였다.
관련 시설로는 주변에 주구의 존재여부를 집중 조사하였으나 뚜렷한
징후를 확인할 수 없었고 매장주체부 북서쪽 공간에 조그만 석곽이 한
기 확인되었는데 이는 매장시설과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지
만 내부에서 유물이나 특별한 유기물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 봉토 축조
봉토 조사를 위한 트렌치는 횡구부 및 추가장 여부를 확인해야하는 서
쪽을 제외하고 남․북 그리고 동쪽, 모두 세군데에 설치되었다. 그 결
과 수직, 수평 축조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수직으로는 크게 4가지
단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는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윗부분을 파내고 일부 땅을 고
르는 작업이고 두 번째는 벽석을 만들면서 동시에 봉토를 조성하는 작
업, 다음으로는 개석을 덮고 그 윗부분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봉토를 마
무리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반을 고르는 작업은 바닥면 전반에 걸쳐 확인되는데 상대적으로 지
반이 높은 쪽은 필요한만큼 굴토하였으며 낮은 쪽은 땅을 고르는 선에
서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 면에 벽석을 바로 시설한 것으로 보이
는데 남쪽트렌치의 경우 최상면 벽석까지 붉은색 암반풍화토로 시설하
여 뚜렷한 경계를 형성하였고 북쪽트렌치는 벽석 최상면에 봉토 전반
을 덮고 잇는 얇은 회색층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벽석과 하부 봉토를 성토한 다음 개석을 덮고 다시 성토한 것으
로 보이는데 이 면과 최후 봉토면의 구분은 토층상으로 명확하게 나누
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개석을 덮고 있는 약 60cm 정도 구간은 전반적
으로 점성이 많은데 비해 마지막으로 작업한 봉토 최상단은 점성이 떨
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수평면에서본 성토양상은 크게 매장주체부 북동면과 남서면에서 구분
되는 양상을 보인다. 남쪽 트렌치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면이 벽석을 만
들면서 축조한 붉은색 암반퇴적토인데 이 퇴적토가 북쪽트렌치에서는
보이지 않고 동쪽트렌치 남벽에서만 일부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이 동
쪽트렌치에 접하는 동단벽을 살펴보면 북쪽 상단 모서리에서 남쪽 하
단 모서리로 비스듬하게 흐르는 구획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토
층과 연계시켜 생각해보면 북장벽과 동단벽의 절반을 먼저 만들고 나
머지 동단벽 절반과 남장벽을 만들었고 이 벽을 축조하면서 붉은색 암
반풍화토를 이용해서 봉토를 성토한 것으로 판단된다.
개석 상면에서는 1사분면에 11시 방향으로 비스듬히 흐르는 석렬이 확
인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서편에는 비교적 고운 흙과 작은 돌들을 이용
해서 봉분을 만들었는데 동편에는 지름 20-30cm 가량의 원판형 돌들
을 이용한 토석혼축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 호석
호석은 앞서 말한 봉분축조 단계 중 벽석을 만드는 과정에서 봉분 끝자
락을 일부 제거하고 만들어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6호분과 마찬가지로 벽석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쌓은 봉토면에 설치하
였으며 남쪽면 일대는 비교적 장대한 괴석으로 호석을 쌓은 반면 북쪽
일대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돌들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붕괴가 심한편으로 대부분 가장 아랫단 호석만 남아있으
며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약 4단정도, 높이는 82cm 가랑 잔존하고
있다. 호석의 구획은 전면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매장주체부 앞쪽 약
130cm 정도 구간만 이어지지 않고 있다.
호석으로 추정한 전체적인 봉분 저경은 13m정도이다.
(라) 횡구부
개석면에서 가장 서쪽개석 모서리에서 바깥쪽으로 나팔상으로 벌어지
는 토층이 확인되었다. 이 토층은 특히 개석의 북쪽면에서 뚜렷하게 드
러났는데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노란색 석립이 다량 포함된 두께 약
10cm 띄모양 구분선이 확인되었고 그 끝단은 짙은 갈색을 띄고 있으
며 이 토층은 기준둑으로 이어져있었다. 우선 이띄모양 구분층이 봉분
내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확인되고 있지 않았으며 수직토층상으로도
봉분면에서 완전히 면을 이루면서 구분되고 있어 횡구부 시설이거나
추가장흔적으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개석의 남쪽은 명확한 구분선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우선적으로 파악된 양상은 붉은색 점토층이었는데 이 선을 기준으로
하고 미세한 세부토층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확인된 양상은 최초 축조
선과 그 내부에 있는 양상은 추가장흔적으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이런
양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개석의 장축과 평행한 방향으로 횡구부 전면
을 가로지르는 폭 50cm 트렌치를 설치한 결과 평면상에서 횡구부로 파
악했던 부분은 수직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가장 외곽에서 찾은
최초 축조선으로 추정했던 부분만 유의미한 층위 구분양상을 보여주었
다. 이 층위양상은 횡구부의 가운데를 최저점으로 하는 단면 포물선형
태를 하고 있는데 이 바닥은 얇은 회색 점토가 층을 이루고 있었으며
수직으로는 흑갈색 점토층이 기준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공간을 횡구부
혹은 추가장 공간으로 이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부분의 폐쇄는 폐쇄
석을 막으면서 남쪽에서부터 약간의 석립이 포함된 흑갈색 점토로 폐
쇄하고 나머지 부분을 채워 최종적으로 마감하였다.
횡구부 폐쇄석은 아랫부분은 상당히 규모가 크고 길쭉한 돌들을 이용
하였는데 상부로 올라오면서 규모도 작아지고 틈사이를 메꾸기위한 작
은 돌들이 많이 이용되었다.
(마) 매장주체부
매장주체부는 내부를 기준으로 장축 420cm, 단축 200cm 그리고 가장
높은 곳의 높이가 180cm 정도인 세장방형을 하고 있다. 출입시설로 횡
구부만 확인되고 별도의 연도나 묘도 등이 확인되지 않아 횡구식석곽
으로 판단된다.
기본적인 축조양상은 암반면 위에 바로 벽을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
이는데 평면상으로는 횡구부인 동단벽과 양장벽을 ㄷ자형으로 먼저 만
들고 서단벽을 횡구부로 이용하기 위해서 남겨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면상으로는 아랫부분 넓이가 약 200cm, 윗부분 넓이가 약 120cm 정
도에 달하는 단면 사다리꼴형태로 만들었는데 상부는 대형 개석과 그
뒤를 받치는 뒷채움으로 보강하여 지지하고 있다. 북장벽 일부에 약간
의 붕괴가 있어 횡구부 폐쇄석을 다 제거하지 못하고 남겨놓았다.
상부 개석은 총 4매의 판돌로 시설하였는데 판석 사이에 형성된 틈새
는 돌로 막음한 후 일부 밀봉토를 사용하여 막은 것으로 보인다. 대략
적인 개석의 크기는 장축이 140cm, 폭이 100cm 내외이다.
묘곽 내부에는 북장벽에 붙여 판석을 이용한 시상(1차 시상)을 만들고
아랫부분에 최소 1회 추가장한 흔적이 보인다. 추가장 흔적은 1차시상
과 관련한 냇돌시상부의 형태가 정확하지 않아 정확한 횟수를 파악하
기는 힘든 상황이나 최소 2회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차 시상 규모는 길이 262cm, 폭 96cm 바닥에서 높이는 25cm 정도이
다. 북동쪽 모서리는 완전히 막혀있지 않고 바닥면만 일부 시설되어
약 높이 20cm 가량 공간이 있는데 6호분으로 보아 이 부분에 약간의 부
장품을 매장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시상대 동쪽 편에는 두침
이 1매 뒤집어진채로 확인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추가시상이 남장벽과 횡구부쪽에 연하여 만들어졌는데
도굴로 인하여 상부는 대부분 파괴되고 강돌로 묘역을 형성한 듯한 흔
적만 확인할 수 있었다.
(바) 소형석곽
횡구부 확인을 위해 개석 앞으로 전면적인 트렌치를 넣는 과정에서 일
부 시설의 모서리가 확인되었다. 처음 확인된 양상은 트렌치 모서리에
두매로 짜맞춘 벽석과 그 위를 덮고 있는 개석같은 구조물을 확인했는
데 이 유구는 9호분 전반에 깔려 있는 기반토를 파고 들어가 있으며 상
부에 횡구부 전반적으로 확인되는 얇은 회색점토층이 도포되어 있어
매장주체부와 같이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매장주체부와 같이 3매의 개
석과 조그만 개석사이 막음석으로 폐쇄하였다. 대략적인 내부규모는
장축 107cm, 단축 40cm, 높이 33cm 정도이고 외부는 130cm×65cm 정
도이다. 조그만 판돌로 바닥시설을 하고 비교적 큰 판석으로 벽을 만
든 다음 개석을 덮어 폐쇄하였다. 개석을 제거할 당시 내부는 단순퇴적
토로 가득 차있었으며 유물과 특별한 매장흔적 등은 확인할 수 없었다.
4. 조사결과 및 유적보호에 대한 조사자 의견
가. 조사결과
이번 조사는 보정리 고분군 A구역에서 제기된 민원에 대한 조치로, 우
선적으로 고분군의 정확한 성격 파악에 조사 주안점을 두었다.
그 결과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조사대상 두 기 모두 횡구식석곽으로 매
장주체부 설치, 시상, 호석, 입지 등에서 상당히 유사한 성격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매장주체부 장축은 모두 등고방향에
평행하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사가 높은 지역을 ‘ㄴ'자
형으로 얇게 파내고 주 석곽을 만들었으며 암반면 위에 바로 벽석을 시
설하기 시작한 점, 벽석의 축조와 함께 봉토를 같이 만들어간 점, 횡구
부를 제외하고 ’ㄷ'자 형으로 일단 매장주체부를 축조하고 한 쪽을 마
감한 점, 4매의 개석을 사용해서 마무리한 점, 매장주체부의 경우 횡구
부쪽에서 바라보아 좌상단쪽에 특별한 공간을 마련한 점, 호석이 설치
되고 주변에 주구가 확인되지 않는 점 등 대부분의 요소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시상의 설치방법, 추가장 방법 등에서는 일부 세부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 유구의 추정연대는 6호분에서 확인된 부가구연대부장경호와 단각고
배 세트 그리고 9호분에서도 직접적인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추정
구지표 면이나 봉토, 매장주체부 내부에서 확인된 유물에 인화문토기
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6세기 중반, 적어도 7세기를 넘지 않
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용인 보정리고분군은 한강유역 일대에서 확인되는 신라
고분군들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주변
유적과 관련해 보아도 현재 탄천을 중심으로 하는 좌우 지역이 삼국시
대 중요한 지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중 특히 이 보정리 일대
는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신라의 중심지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강
력하게 시사하는 유적으로 판단된다.
나. 유적보호에 대한 조사자의견
보정리고분군은 한신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지표조사시 이미 지정을 통
한 보존 방안을 제시하였고, 관련 기관도 이와 관련한 조치를 진행중
인 유적이다.
이번 조사결과를 보아도 실제 보정리 일대에 있는 고분군들은 퇴적양
상으로 보아 현재 지표상으로 보이는 것들보다 더욱 규모가 크고, 심하
게 도굴되기는 하였지만 유구 잔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확인
되었다.
또 출토유물을 통하여 파악한 연대도 한강유역 신라고분군들 중 비교
적 빠른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적극적인 보존조치가 뒤따라야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유적 일대에 대하여는 고분군의 규모에 걸맞
은 대대적인 정비복원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적극적인 역사교육의 장
이 되도록 활용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 조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이번 발굴대상유적에 대한
임시보호조치를 다음과 같이 실시하고자 한다.
첫째 발굴조사 후 원형이 유지되도록 취약지구(6호분 내부, 9호분 횡구
부 등)를 흙주머니 등으로 충진한다.
둘째 봉토 제토 부분을 비닐 등으로 덮고 그 위를 흙으로 피복한다.
셋째 완전히 흙으로 덮여진 봉토위를 두꺼운 비닐포장재로 덮고 이 포
장재를 완전히 지표에 밀착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넷째 조사시 횡구부, 호석렬 인근에서 나온 석재들은 복원시 사용될
수 있도록 봉토 주변에 모아 놓는다.
하지만 이상과 같은 조치는 임시보호조치에 불과하므로 조속한 시일내
에 체계적인 정비, 복원이 이루어지도록 행정적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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