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진천 송두리유적 발굴조사
2003-07-01 15:50:00
조회 2546
鎭川~鎭川 IC間 道路擴.鋪裝工事區間內..송두리遺蹟 發掘調査指導委
員 會議資料
1. 조 사 명 칭 : 진천-진천IC간 도로확장 및 포장공사 구간내 문화유
적 발굴조사
2. 유 적 위 치 : 충북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 157번지 일원
3. 조 사 기 간 : 2002년 3월 10일~2002년 6월 28일 (실작업일수 90일
간)
4. 조사대상면적 : 6,100㎡(약 1,844평)
5. 조 사 기 관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
6. 조사의뢰기관 : 대전지방국토관리청
7. 조사단 구성
․지 도 위 원 : 조 유 전(문화재위원, 前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 융 조(한국고대학회장, 충북대학교 교수)
최 병 현(문화재위원, 숭실대학교 교수)
차 용 걸(문화재전문위원, 충북대학교 교수)
․자 문 위 원 : 신 창 수(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실장)
우 종 윤(충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관)
박 상 일(청주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관)
․조 사 단 장 : 김 정 기(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장)
․책임 조사원 : 노 병 식(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 선임
연구원)
․조 사 원 : 이 경 식(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 연구원)
8. 조사경위 및 경과
1) 조사경위
發掘調査 지역은 大田地方國土管理廳에서 시행하고 있는 진천~진천
IC간 도로확장 및 포장공사 구간 중 공사예정구간 STA 3+220 ~ STA
3+405 구간에 해당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2002년 2월~3월에 걸쳐 본
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에 의해 地表調査가 실시되었고,(韓國文化財保
護財團, 2002, ꡔ鎭川~鎭川I․C間 道路擴張 및 鋪裝工事 區間 文化遺
蹟 地表調査報告書ꡕ) 지표조사에 근거하여 지난 2002년 9월~10월에
걸쳐 試掘調査가 실시되었다.(韓國文化財保護財團, 2002, 「鎭川~鎭
川I․C間 道路 擴․鋪裝工事 區間內 文化遺蹟 試掘調査 略報告書)
試掘調査 결과 이 유적에서는 최근에 경작층 아래에서 숯+燒土+打
捺文土器片 등을 포함한 百濟初期 文化層이 확인되고, 여기에서는 柱
穴群 및 楕圓形․方形의 유구가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또한 보
다 아래층에서는 舊石器 遺物을 포함하는 고토양층이 확인되어 舊石器
文化層이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이번 발굴조사는 유적의 윗층에 위치한 백제초기 문화층을 먼
저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유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등을 마친 후 구석
기 문화층을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결과
에 따라 1차적으로 백제초기 문화층에 대해서만 조사를 실시하였다.
2) 조사경과
이번 발굴조사 지역은 지난 2002년도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송두리157
전과 155-1전을 약간 포함하는 지역이다.
지난 2002년 11월 26일 문화재청 발굴허가 제2002-543호로 현장조사
기간 90일로 허가를 받으며, 2003년 3월 5일 대전지방국토관리청과 계
약하여 현장조사기간 90일을 포함하여 2003년 7월 8일까지 조사기간
총120일로 예정되어 있어 6월 28일 까지 완료 후 보완조사를 실시할 예
정이었으나, 잦은 강우일수 등 악조건의 기상여건으로 인해 조사가 지
연되어 현재 현장조사기간 80일째 조사 진행 중이다.
발굴조사는 이미 시굴조사에서 전반적인 유구의 분포범위가 확인되
었기에 상부의 표토를 제거한 후 전면적인 제토를 실시하되, 遺蹟의 형
성과정이나 地形分析 및 인접한 大母山城과 관련한 垓子의 有無 등을
확인하기 위해 토층조사를 위해 일부의 둑을 남겨두면서 전면적인 발
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제토 이전의 지형은 157전과 155-1전 사이로 農路가 있었으며, 여기
에는 인접한 공장에서 연결된 하수관이 매몰되어 있었다. 조사지역은
表土가 110~170㎝ 정도 덮혀 있었으며, 최근의 地籍圖線을 따라 유적
이 형성되었을 때의 구릉성지형이 노출되었다. 조사지역의 중간지역
은 이미 농수로의 매입 및 경작지의 삭평작업 등으로 인해 평탄화되어
현상변경이 이루어져 있었고, 동서쪽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土層을 이
루어 유구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토 후의 전반적인 지형양상은 서쪽의 유구 밀집지역과 중간부의 유
구밀집지역 그리고 동쪽의 지역이 약간의 계곡을 이루었던 것으로 확
인되며, 중간부의 곡부 및 동쪽의 곡부는 다량의 숯이나 재 등이 확인
되어 조사구역 경계 밖의 북쪽 사면으로도 유구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
로 여겨진다.
전면적인 제토를 마치고 개별 유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柱穴
群遺構와 竪穴住居址遺構 및 溝狀遺構, 그리고 약간의 爐址遺構 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底地帶의 垓子 추정지역에서도 柱穴遺構와 百濟
初期 유물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한정된 조사구간과 한정된 예산 및 시간 등으로 인해 전체적인
유적의 현상 및 垓子 추정지역에 대한 더 이상의 조사를 할 수 없어 성
격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의 조사는 위층의 百濟初期 文化層을 중심으로 한 조사가 완료되
어 가고 있으며, 아래층의 舊石器時代 유물포함층에 대한 발굴조사가
남아있는 상태이다.
舊石器時代 유물포함층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미 발굴조사한 百濟初
期 文化層에 대한 조사가 완료된 후 적법한 절차에 띠라 시행할 예정이
다.
9. 조사내용
遺蹟이 위치하는 지형의 현상은 인접한 大母山城으로부터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어 서북쪽을 막아주며, 대모산성과의 사이에는 ‘쉿
골(沼谷)’이라고 하여 대모산성의 垓子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
었다.
遺構의 분포는 대략 서북쪽의 구릉성 지형의 남사면을 따라 垓子추정
지역과 연하는 사면에 형성되었으며, 서북쪽의 사면은 유구가 밀집된
지역을 따라 약간의 계곡부를 이루고 있어 습윤한 지형으로 바로 아래
층의 홍적토와 화강암 풍화토가 뒤엉겨 유구의 토층의 구분이나 유구
의 윤곽 구분이 난해한 지역이다. 그리고 서남쪽의 垓子 추정지역 늪지
에서도 약간의 柱穴과 遺物이 수습되었는데, 이들 유물의 분포는 상부
의 유구가 밀집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지역과 垓子 추정지역의 늪지에
서 확인된 유물의 시기적 차이는 보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는 2~3차례 중첩된 말각방형 내지는 타원
형의 백제 초기의 竪穴住居址가 1개소 있고, 약간의 벽체부분만 남아있
는 추정되는 말각방형 내지는 타원형의 주거지 추정부분이 5개소 확인
되었으며, 柱穴群 및 住居地遺構 외곽으로 돌아가는 溝狀遺構가 2개소
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주거지와 연관할 수 있는 수십여개의 柱穴群이 밀집되어 확인
되지만, 출토되는 유물 등을 고려하면 遺蹟의 형성기간이 단시간으로
추정되며, 지형적인 여건상 유구의 중첩 등 문화층이 심하게 교란되었
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약간의 爐址遺構와 유적 남쪽 저지대의 垓子로 추정되는 급경
사면을 이루는 있는 계곡부에서 약간의 늪지가 확인되었고, 垓子와 연
결되는 계곡부에서는 大甕이 埋納되어 있었으며, 이들 垓子 추정지나
계곡부가 매몰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柱穴을 바탕으로 하는 주거지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확인된 유구 및 유물들은 조사지역의 서북쪽으로 형성된 낮은 구릉
을 따라 이어져 일부의 遺構는 도로공사 예정구간 보다도 바깥으로 이
어지고 있으며, 서동남쪽의 경우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면
서 보다 오랜 것으로 판단되는 토기편이 나오고 있어 유적의 형성과정
에서 시기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1) 遺構
이번에 조사된 유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柱穴群이다. 하지만
이들 柱穴群 遺構는 평면적인 분포가 일정한 양상을 보이지 않고, 중첩
되거나 경사지를 따라 분포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또한 柱穴의 경우 일
부는 계단식으로 굴광한 직경 50㎝․깊이 90㎝정도로 큰 것도 있으며,
일부는 굴광한 부분과 안쪽의 木柱痕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
들 柱穴이 밀집된 지역은 토질이 습윤하며, 홍적토와 주거지 및 생산유
구 등에서 반출된 숯가루 등으로 인해 구분이 어려웠으며, 다만 柱穴
이 배치된 竪穴住居址가 확인됨으로서 이들 柱穴遺構에 대한 약간의
성격을 대신할 수 있겠다.
이들 住居地는 저지대의 垓子 추정지역에서도 柱穴가 확인되거나, 遺
物이 출토되고 있다. 이는 일찍이 저지대까지 생활하였으면서 저지대
가 인위적인 垓子가 되어서이든지, 아니면 아래쪽의 어느 지형이 산사
태 등 자연적 작용에 의해 계곡을 틀어막으면서 서서히 초기의 생활지
역이 습지대로 변하면서 점차 위쪽으로 이동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서
쪽의 垓子 추정지역에서 연결되는 계곡부의 매몰된 溝는 폭이 약 300
㎝ 정도를 이루는데, 바닥면에는 성격미상의 大甕이 西向하여 埋納되
어 있는 遺構가 확인되어 주목되며, 여기에 매몰된 土層 위로 높이를
달리하여 柱穴 유구가 분포하고 있다.
竪穴住居址의 경우 완경사를 이루는 지역 生土層에 造成되어 중첩되
어 있으며, 주거지의 장축방향은 지형을 따라 南東向을 유지하며, 큰
것은 대략 570×360㎝ 정도이며, 작은 것은 대략 440×315㎝ 정도로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竪穴의 깊이는 최대 60㎝를 보이나, 유구의 형태
가 정형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柱穴의 배치는
150㎝~250㎝정도를 보이나 일정한 간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주거
지 내부에서는 원형의 爐址가 야간의 지면을 굴토한 상태에서 확인된
다. 또한 주거지의 벽체에서 작은 구덩이 확인되고, 벽체를 따라가면
서 草本類의 재가 집중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조사구역내의 柱穴이 밀집된 지역의 벽체흔적이 약간 남아 있
는 주거지와도 비교되는데, 벽체흔적이 잔존하는 주거지의 경우 대략
한변의 길이가 590㎝․430㎝․440㎝로서 말각방형내지는 타원형을 이
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디 이곳의 주거지는 竪穴住居址가 주류를 이
루었으며, 점차 수혈의 깊이가 얕아지면서, 점차 바닥이 지상화되어 올
라오는 과정의 시기로 여겨진다.
그리고 부뚜막의 가장자리를 돌렸던 것으로 보이는 이형의 토제품이
출토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주거지는 없으며, 다만
일부 주거지가 시간적 차이를 보이면서 주거지내의 시설물이 치장된
것인지, 신분상의 차이에 의한 주거지내의 시설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
다.
서쪽의 住居地遺構가 밀집된 지역 아래층에서 단면 U자형의 溝狀遺
構가 14.8m 정도 확인되었는데, 유구의 깊이는 50㎝ 정도이고, 폭은 95
~155㎝ 정도를 이루면서 이어지고 있으나, 조사구역 경계 밖으로 이어
지는 관계로 더 이상의 조사를 할 수 없었지만, 유구내에서 출토되는
打捺文土器片 등으로 미루어 住居地域과 관련한 遺構로 추정된다.
그리고 동쪽지역의 溝狀遺構는 깊이 78㎝․폭이 250㎝정도로 넓게 조
성되어 보다 위쪽의 조사지역 경계 밖으로부터 약18m 구간 확인되어
있는데, 조사구역 동쪽 저지대의 유물(적갈색 연질;격자문+횡침선문+
파상문)분포지역을 감싸고 돌아가는 유형의 것으로 주목된다.
垓子 추정지는 지금의 道路 보다도 약 90㎝ 정도 낮은 지형이며, 바닥
부분의 일부는 작은 늪지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대형 甕片 및
집선문+횡침선문․격자문토기편 등의 打捺文土器片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바닥면은 舊石器時代遺物을 포함하는 고토양층이 형성되어있
고, 일부 삭토된 지형은 곧바로 百濟 初期의 文化層과 연결되어 인위적
인 삭토 등이 大母山城의 築城과 연관될 경우 성밖의 토양을 안쪽의 축
성을 위해 파 옮겨진 것으로 해석되며, 垓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
나, 조사구역 밖으로 연장되어 더 이상의 조사를 할 수 없었다.
2) 遺物
이번 발굴조사에서 出土된 遺物의 종류는 대부분 土器類로서 완형의
것이 없고 파손된 것들 뿐이다. 그리고 유구의 현상이 정형성을 이루
지 못하고, 중첩내지는 교란되어 정확히 연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
만 일부 유물 가운데는 분명히 보편적으로 시기를 달리하는 유물이 있
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시기적으로 앞선 것으로는 舊石器時代 石器類
외에 初期鐵器時代 以前의 것으로 보이는 홈자귀(有溝石斧) 1점을 비
롯하여 硬質化된 無文土器片 등이 있다.
그리고 原三國時代 이후 百濟 初期의 것으로 보이는 繩文, 格子文, 格
子文+橫沈線文+波狀文, 格子文+橫沈線文, 集線文+橫沈線文, 橫走集線
文 등의 打捺文土器類와, 硬質(陶質)의 無文土器片도 있다. 무문의 토
기편들 가운데에는 연질의 것으로 적색이나 황색의 피막을 엷게 입힌
후 매끈하게 표면처리한것도 보이며, 대다수의 경질(도질)의 무문토기
류에서는 표면을 깍기수법으로 처리한 유형의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대체적으로 이들 유물들은 住居址 지역 및 垓子 추정지역 과 構狀遺
構 내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橫走集線文係의 유물이 빈도가
높은 편이며, 횡침선문이 가미된 圓低類의 토기는 출토 빈도가 낮은 편
이다.
유물의 기형으로 보면 大形 甕類片이 많으며, 대체적으로 圓低器類
에 비하여 平低器類의 빈도가 높으며, 이형의 것으로는 軟質 小型 杷杯
가 있고, 圓低의 시루편도 있으며, 格子文의 鉢形土器片도 있다. 그리
고 盤類와 다수의 高杯類가 출토되었는데, 無蓋高杯보다는 有蓋高杯
의 출토 빈도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대형 옹의 경우 저부의 폭이 좁으
면서 약간 돌출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형의 유물 가운데는 주거지 유구와 관련한 부뚜막의 아궁이 입구
가장자리를 돌렸던 것으로 보이는 토제품이 출토되었는데, 회색연질
의 것과 적갈색연질의 것이 있으며, 적갈색의 것을 표면에 陽刻으로 樹
枝文을 접합하여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유적 내에서 출토된 土器의 生産과 관련한 拍子 2점과 陶枕으
로 추정되는 유물 1점이 출토되었다. 이 지역은 토기생산과 관계한 고
령토가 습지에서 확인되므로서 원료입지형의 토기 생산 유적이 함께
있었던 지역으로 볼 수 있으나, 이번 조사구역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므
로 추후 조사지역 주변에 형질변경이 수반될 경우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그리고 新羅土器의 高杯類 뚜껑 꼭지 1점과 高麗時代의 靑磁片 및 도
기류편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인접한 松斗里遺蹟 發掘調査
에서 6세기 중후반경의 新羅古墳이 조사된바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
은 대모산성 내에서도 고려시대의 기와편 등이 출토되고 있어 주목된
다.
10. 조사성과 및 의의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는 大母山城을 중심으로 한 百濟 初期의
취락구조 및 住居址에 대한 약간의 성격과 대모산성과 관련한 垓子의
성격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住居址遺構는 竪穴住居址의 전통이 지속되어 내려오고 있었던 것으
로 보이며, 다만 기본적인 평면의 형태는 抹角方形 내지는 橢圓形의 모
습을 보이며, 주거지 내부에 원형의 爐址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리고 일정한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가구가 增築내지는 改築되었
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住居地域를 경계로하여 일정한 구역을 따라 溝를 돌렸던 것으
로 보인다. 이러한 溝의 성격은 규모 및 구조등으로 보아 보호․방어의
목적 보다는 우수에 의한 피해를 예방 하고자 함이 아닌가 추측이 된
다.
조사지역에서 출토된 有溝石斧 등의 유물들을 고려하면 이 유적의 상
한 시기는 考古學的으로 初期鐵器時代 以前에 해당하나, 보다 집중된
생활 근거지를 이루었던 시기는 유물로 보아 橫走集線文土器를 중심으
로한 打捺文土器가 유행하던 百濟初期 한 시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
리고 이후의 유물들이 집중적으로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마도 大母
山城의 初築과도 연관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대모산성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집중적으로 모여 생활의 터로 삼았던 유적으로 볼 수 있다.
대모산성 인근의 발굴 조사된 백제 초기의 유적으로는 석장리의 百
濟 冶鐵遺蹟과 삼룡리․신수리의 百濟 土器窯址遺蹟 등이 있다. 이들
유적의 시기는 대략 4세기경의 것으로 편년된 바 있어 이들 유적과 비
교하여 진천지역을 중심으로 한 百濟 初期의 時․空間的 文化史를 살
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조사지역에서는 수혈주거지 및 柱穴이나 爐址遺構, 그리고 垓
子 추정지역에서 유물과 함께 공반되어 출토된 木炭類 등의 시료는 추
후 절대연대측정을 의뢰하여 이와 관련한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
록 하고자한다. 그리고 저지대의 垓子 추정지역에 있는 늪지 및 대모산
성이나 조사된 유적과 관련한 지형분석 등을 통하여 유적의 성격을 밝
히도록 하겠다.
그리고 시굴조사에서 확인된바 있으며, 이번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된
구석기유물을 포함하는 토층에 대해서는 舊石器時代 文化層에 대한 조
사가 남아있는 상태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발굴 조사된 백제 초기의 유
적에 대한 조사가 완료된 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우선적으로 형질변경
이 되는 지역을 고려하여 선행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발굴조사는 도로의 확장 및 선형변경을 위한 공사에 따른 救濟
發掘調査로서 한정된 조사구간과 한정된 예산 및 한정된 시간 등으로
인해 전체적인 유적의 현상이나 성격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에 추후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각종 형질변경이 수반되는 개발
사업 등이 있을 경우에는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 져야 할 것으로 여겨진
다.
11. 토의 사항
― 발굴 조사된 유구 및 유물의 성격
― 발굴 완료 후 유적의 처리 문제
― 기타사항
619개(15/3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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