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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삼년산성 발굴조사

2003-07-01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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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삼년산성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자료 Ⅰ. 조사개요 1. 조사명 : 삼년산성 아미지,우물터,수구지 발굴조사 2. 조사기간 : 2003년 3월 10일~2003년 9월 5일 3. 조사기관 :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4. 조사의뢰기관 : 보은군 5. 조사단의 구성 조사 단장 : 이석린(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장, 충북대 교수) 자문 위원 : 조유전(문화재위원회 사적․매장분과위원, 전 국립문화재 연구소장) : 심정보(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위원, 한밭대 교수) : 김주태(문화재위원회 건조물분과 전문위원) : 윤홍로(문화재위원회 건조물분과 전문위원) : 손영식(문화재위원회 건조물분과 전문위원) 책임조사원 : 차용걸(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전문위원, 충북대 교수) 조사 위원 : 양기석(충북대학교 교수) : 박순발(충남대학교 교수) : 심광주(한국토지박물관 학예실장) : 최인선(순천대학교 교수) : 박상일(청주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 조 사 원 : 박중균(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연구원) : 조순흠(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연구원) 조사보조원 : 김주미(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연구원) : 조록주(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조교) 보 조 원 : 홍일교(충북대학교 사학과 4년) : 최관호(충북대학교 역사교육과 3년) : 이문희(충북대학교 역사교육과 3년) : 송지현(충북대학교 사학과 4년) Ⅱ. 1982년 발굴조사 충북대학교 박물관, 1983. ꡔ삼년산성 - 추정연못 터 및 수구지 발굴조사 보고서-ꡕ. 삼년산성(三年山城) 아미지(蛾眉池)는 1982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 하여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1. 마지막 연못 유구와 배수로 1982년도 발굴조사(시굴조사)에서는 삼년산성에 남아 있던 최후의 연 못과, 이 연못의 동북쪽으로부터 서쪽 성벽 방향으로 이어진 배수로 유 구가 존재하고 있던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연못은 알아볼 수 없도록 매몰되고, 논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서쪽 성벽 가까이에 물이 약간 배수되는 깊은 凹形 함몰부가 있었다. 최후에 존재한 연못은 논의 범위에 걸친 것으로서 인식되고, 동쪽의 끝 은 모르나, 배수로가 나타난 시기 이전에 매몰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 최후까지 존재한 연못은 연못 가장자리의 서쪽 일부로 생각되는 석 재 무더기가 발굴 구덩이마다 나타나지는 않았으며, 다만 서쪽 호안은 배수구로 이어지는 부분이 매우 교란되어 있었고, 남쪽으로도 약간의 부석(敷石)이 깔려있었을 뿐이었으며, 발굴구역이 한정된 관계로 전체 적인 규모는 확인되지 못하였다. 최후의 연못에서 서쪽 성벽으로 뻗은 배수로의 연접 부분은 교란되어 있었다. 교란된 석재의 모습은 마치 두둑을 형성한 듯하였으나, 심한 교란상태이고, 남서쪽으로 약간의 석재가 흩어지면서 좁아들었다. 이 것이 E6-18, N2-4 발굴 구덩이의 동북쪽 끝으로부터 배수로의 석렬이 정연하게 나타났다. 발굴지역 중앙의 기준에서 동으로 18m, 북으로 4m지점에서 시작된 석 렬은 서쪽 성벽을 향하여 비스듬히 이어져 있었다. 당시 지표 아래 약 95cm까지 내려간 지점에 큰 것은 50×70cm, 작은 것은 주먹크기의 돌 로 2~3단의 석축을 하였으며, 수로 쪽은 비교적 면을 맞추고 있었다. 폭은 넓은 곳이 60cm, 좁은 곳은 40cm, 수로의 깊이는 약 35cm로 조사 되었다. 수로의 양쪽 벽은 60×40×30cm 정도 크기의 돌로 2~3단을 쌓 고, 돌 사이는 붉은색 점토와 돌 부스러기인 산자갈을 다짐하였다. 전체적으로 배수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약간의 기울기를 가지고 서 쪽 성벽 쪽을 향하였으며, 중앙 탐색 발굴 구덩이의 서쪽 끝에서는 기 준 높이보다 200cm, 시작지점의 발굴구덩에서는 180cm가 낮아 길이 18m에서 수평의 높이 차이 20cm로 아주 작은 기울기를 이루며 서쪽으 로 배수되었다. 2. 본래의 연못 유구 1982년도 발굴조사에서는 최후에 남아 있던 연못에서 보다 서쪽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이전의 연못에 대하여 개략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연못은 발굴 당시에는 1차 연못으로 추정하였으며, 대략 남북 방향 이 41.5~42.3m, 동서 방향으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45m가 넘는 것으 로 추정하였다. 발굴 당시 주변 지역이 개인 소유 농경지인 관계로 연 못의 북벽, 남벽, 서벽과 중앙의 토층에 대한 확인 조사만이 이루어졌 다. 1) 북쪽 호안 연못의 북쪽 호안(湖岸)은 2개의 북쪽 발굴구덩에서 나타났는데, 중앙 기준에서 북쪽으로 18.9m 지점과 16.5m 지점에서 나타났다. 60×40×25cm 정도의 돌을 3단으로 쌓아 올렸으며, 높이는 약 50cm 이 다. 석축은 아랫단의 돌보다 위쪽 단의 돌을 연못 바깥쪽으로 물려 쌓 아 안정감이 있게 하였다. 돌과 돌의 사이는 붉은 점토와 할석 조각을 섞어 다짐하였다. 토층상으로 뻘흙층은 이 석축 유구로부터 중앙으로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었다. 2) 남쪽 호안 남쪽 한계선을 찾기 위하여 3개의 발굴 구덩을 설정하였으나 한 곳에서 만 석축 유구가 확인되었다. 호안 석축은 중앙의 기준으로부터 남쪽으 로 25m 지점에서 26.5m 지점까지에서 나타났다. 남쪽 호안을 이룬 벽의 크기는 60×40×25cm 정도의 돌로 4단을 축조하 였다. 가장 아랫단의 돌로부터 점차 밖으로 물리면서 4단을 석축하였 다. 석축의 안쪽은 붉은 점토와 돌 부스러기의 다짐 층으로 매우 굳게 다졌다. 3) 서쪽 호안 서쪽 호안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석축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서쪽 체성 성벽의 안쪽으로 성벽으로부터 자갈과 붉은 색의 점토질 흙을 1.2 ~2.2m로 다진 것이 있었다. 이 붉은 색 다짐 층에 이어서 어떤 석축이 나 기타의 유구는 없었다. 연못의 서쪽 호안은 북쪽이나 남쪽 호안처럼 연못 쪽을 석축하여 벽을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쪽 성벽의 성벽 안쪽으로 자갈과 붉은 색 점 토를 다진 것으로 보고하였다. Ⅲ. 2003년 발굴조사 1. 조사 전 현황 2003년 발굴조사는 2001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수립한 『삼년산성 종합 보존․정비계획 안』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01. ꡔ三年山城 - 기본 자료 및 종합 보존․정비계획 안 -ꡕ. 에 따른 제 1차 년도 발굴조사이다. 발굴조사 전 삼년산성 아미지는 1982년도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1․2차 저수지와 최종 저수지의 구역으로 제시된 곳을 기준하여 이미 10년 전 에 연못을 준설한 상태였다. 이 연못은 현 지표로부터 약 3m 깊이까지 굴착된 상태로 82년도 발굴에서 드러난 배수로 유구는 이미 유실된 상 태였다. 준설의 목적은 집중호우로 인한 서문과 성벽의 보호를 위하여 유속을 즞추고, 일부 저수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현재 의 바닥 층위에서 연자방아의 아래 받침석과 일부 나무기둥, 구돌로 여 겨지는 석렬이 나타나므로 깊이를 한정하였다. 이후 준설된 저수지 내측으로는 선버들과 부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곳 곳에 찔레가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준설된 저수지 위쪽으로는 2002년까지 논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다 시 더 위쪽으로는 폐경지가 되어 찔레와 선버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 다. 2. 조사 방법 조사는 먼저 아미지 부근 및 보은사에 이르는 평탄지에 대한 잡목과 제 초작업을 하였다. 잡목과 제초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아미지 부근에 대한 전체 평면도를 새로이 작성하였으며, 작성된 평면도를 바탕으로 전체 평탄면에 그리드를 설정하고 구역을 구획한 후 본격적인 발굴조 사를 실시하였다. 먼저 이미 준설된 저수지의 동쪽 지안을 따라 설정된 그리드에 대한 발 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잦은 비와 약 1m 아래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사질토층으로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 계속하여 벽이 무너져 내 렸다. 이로 인하여 더 이상 그리드에 의한 조사가 불가능하므로, 다시 동서 방향의 계곡부로 긴 발굴구덩을 설정하여 조사하는 것으로 바꾸 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 번째 구덩은 준설된 저수지의 동쪽 지안(池岸)으로부터 길이 약 80m, 폭 8m, 깊이 3.5m의 크기이고, 두 번째 구덩은 이 첫 번째 구덩으 로부터 남쪽으로 12m의 간격을 두고 길이 60m, 폭 8m, 깊이 약 2~3m 의 크기이다. 3. 조사내용 1) 제 1 발굴구덩 [추정 담장유구] 담장유구는 제1 발굴구덩의 시작지점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15m, 깊이 약 3.5m 지점에서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석축은 외면을 일정하게 맞추어 마치 부석(敷石)한 것처럼 노출되었 다. 석축의 폭은 약 1.2~1.3m이며, 1~2단을 수직으로 석축하였다. 군 데군데 석축이 탈락하고 있으나,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석축 바닥면은 회흑색 사질토층으로, 1차 저수지 유구가 매몰된 이후 사질층 위에 석 축한 후대의 유구로 보이며, 석축의 중간부는 남쪽으로 잔돌을 이용하 여 다짐하듯 부석한 후 석축하였다. 노출된 석축 유구의 규모를 확인하기 위하여 발굴구덩의 북쪽으로 길 이 약 13m, 폭 5 m의 크기로 발굴구덩을 확장하였다. 확장한 발굴구덩 의 서남쪽 모서리에서 또 다른 석축 유구가 노출되었다. 기존의 노출 된 석축과의 간격은 2m의 간격이며, 석축의 폭은 1.2m로 앞의 석축과 비슷하다. 이 두 개의 석축열은 확장 발굴구덩의 동쪽 끝에서 이어지는 듯 하나 발굴구덩을 더 이상 확장하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 [석축유구] 석축 유구는 제1 발굴구덩의 시작지점으로부터 동쪽으로 60m 지점에 서 노출되지 시작하였다. 석축은 현재의 지표로부터 약 1~1.2m 아래 가 된다. 석축이 노출된 위치는 삼년산성의 동쪽 2개의 계곡부가 만나는 지점에 해당한다. 석축의 길이는 약 11m이며, 석축의 높이는 1~1.5m이다. 석축은 치석 하지 않은 석재를 이용하여 허튼층 쌓기로 쌓아 올렸으며, 석축의 외면 을 맞추어 축조하였으나, 모서리를 맞추지 않아 석축의 외면 상태는 매 우 조잡하다. 석축의 바닥면은 흑색 뻘층이며, 그 아래로 흑회색의 사질토층이 이어 진다. 석축의 북쪽 한계선을 찾기 위하여 북쪽으로 길이 7m, 폭 3m의 크기로 발굴구덩을 확장하였다. 확장한 발굴구덩에서 석축열은 곧바로 동동 북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나 더 이상 확인하지 못하 였다. 석축의 윗면은 붉은색의 점토와 잔자갈을 이용하여 다짐하고 있으며, 다짐층 위로 비교적 큰 석재들이 놓여 있고, 배수로가 일부 확인되고 있으나, 대부분 교란되어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없다. 이 석축 유구는 제2 발굴구덩의 4번째 석축열과 이어지는 듯 하며, 석 축의 높이가 남쪽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지고 있다. 석축 유구의 성격은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석축의 바로 아래 토 층 상황을 보면 현재의 지표로부터 뻘과 사질토가 교대로 이어지는 다 른 곳의 토층과는 달리 현재의 지표로부터 약 1.9m 아래의 토층에서 큰 돌과 작은 자갈이 섞인 황갈색의 토층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발굴구덩을 확장하지 않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로 보아 이 석축 유구가 한 시기의 호안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며, 회절한 석축부 는 동쪽 계곡에서 내려온 물이 저수지로 들어오는 도수로가 아닌가 여 겨진다. 2) 제 2 발굴구덩 제2 발굴구덩에서는 4개의 석축열이 확인되었다. 먼저 서쪽으로부터 제1 석축열은 준설된 저수지의 동쪽 지안 바로 아래에서 노출되었다. 저수지의 준설로 인하여 일부의 석축이 파괴된 상태이며, 남쪽의 석축 은 저수지 준설시 노출된 제1석축열의 석재를 들어올려 높은 것들이 다. 당초 석축의 폭은 약 3m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제 2 석축열은 발굴구덩의 서쪽 시작지점으로부터 약 18m 지점에서 노 출되었다. 석축열의 폭은 1.3~1.6m로, 석축의 윗면은 많이 교란된 상 태이다. 석축은 외측면을 맞추어 2~3단으로 석축하였으며, 바닥면은 흑회색 뻘층이다. 이 석축의 동쪽으로 석재들이 흩어져 노출되고 있으 며, 석축의 서쪽 외측면으로부터 약 4m 거리에 열을 이룬 석축이 노출 되고 있다. 이 석축열이 앞의 석축열과 이어지는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 하였다. 제 3 석축열은 발굴구덩의 시작지점으로부터 34~35m 지점에서 노출 되었다. 석축열의 폭은 1.1~1.2m이며, 석축의 외측면을 맞추어 2~3단 으로 석축하였다. 제 3 석축열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바닥면은 붉은 색 점토와 잔자갈을 이용하여 다짐하였다. 제 4 석축열은 발굴구덩의 시작지점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46m 지점에 서 노출되었다. 석축은 외면을 맞추어 석축하였으며, 석축의 뒤쪽으로 는 붉은색의 점토와 잔자갈을 이용하여 매우 단단하게 다짐하고 있다. 이 석축열은 제 1 발굴구덩의 석축열과 이어지는 듯하다. 3) 출토유물 ․고배[사진 10-①] 회청색을 띠는 경질소성의 고배로 파손된 것을 복원하였다. 대각은 八 자형으로 벌어졌으며, 하단부에 돌대가 1조 돌려져 있으며, 끝은 둥글 게 말아 올렸다. 대각의 상단부에 4개의 장방형 투창이 뚫려 있다. 배신 은 둥글게 비스듬히 올라간다. 구연은 내경하며, 뚜껑받이턱은 수평에 가깝게 외반한다. 태토에는 세석립이 소량 혼입되었다. 내외면으로 회 전물손질되었다. 구경 : 15.0cm, 높이 : 7.3cm, 굽지름 : 7.2cm ․완[사진 10-④] 회백색을 띠는 연질소성의 완편으로 일부가 결실되었다. 내외면으로 표면박리가 심하다. 태토에는 세석립이 소량 혼입되었다. 저부는 말각 평저이며, 동체는 저부로부터 부드럽게 곡선상으로 올라가며, 구연은 짧게 수평으로 외반하였다. 구경 : 13.7cm, 높이 : 4.6cm ․완[사진 10-⑤] 흑회색 내지 회흑색을 띠는 연질소송의 완편으로 구연의 일부가 결실 되었다. 내외면으로 표면박리가 심하다. 태토에는 석립이 소량 혼입되 었다. 저부는 말각평저이며, 동체는 저부로부터 부드럽게 곡선상으로 올라간다. 구연은 짧게 외반한다. 구경 : 13.3cm, 높이 : 4.6cm. ․병[사진 10-②] 흑회색 내지 담갈색을 띠는 경질소성의 병으로 구연이 결실되었다. 저 부의 일부는 회색을 띤다. 태토는 석립이 소량 혼입된 점토이다. 저부 는 말각평저이며, 동체는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경부는 직립한다. 견 부에 2~3조의 횡침선이 돌려져 있다. ․뚜껑[사진 10-③] 흑색을 띠는 경질소성의 뚜껑이다. 테토에는 세석립이 다랑 혼입되었 다. 동체 상부는 편평하게 처리하였으며, 중앙에 직경 0.8cm의 원형 구 명이 뚫려 있다. 편평한 동체 상부로부터 급격히 내려가며, 구연은 직 립하며, 끝을 둥글게 마무리하였다. 뚜껑받이턱은 수평으로 외반하였 다. 구경 : 9.5cm, 높이 2.5cm. ․소형 잔[사진 10-⑥] 흑색을 때는 연질소성의 소형 잔으로 구연의 일부가 결실되었다. 일부 는 회흑색을 띤다. 태토는 석립이 소량 혼입된 니질토이다. 전체적은 점토를 손으로 눌러 성형한 것으로 보이며, 외면으로 도구를 이용하여 조정한 흔적이 보인다. 저부는 말각평저이다. 구경 : 7.0cm, 높이 3.2cm. ․금속류 - 주조철부 2점(표토교란층), 소문단뉴소형동경 1점(표토교 란층), 소문 무뉴동경 1점(제1구덩 중간 뻘층, 桃實등 포함층), 은곶 1 점(1구덩 석축 위층), 청동수저, 청동합편(제1구덩과 제2구덩의 중간이 상 뻘층) 등 ․토기류 - 단각고배편, 쇠뿔손잡이, 가로띠손잡이, 시루편, 토기 뚜껑 류, 토기 반류, 대형 옹류 조각 등 ․기와류 - 연화문 수막새기와편(동쪽 석축 아래 다짐층), 선조문 기와 류, 승문 기와류, 무문 기와류, 어골문 기와류, 격자문 기와류 등 ․이형 와제품 - 동쪽 석축 아래 다짐층 출토로 연질이며, 흑받이 모양 의 異形. ․기타 - 어망추, 방추차, 숫돌, 납석제 용기 조각 등 4) 조사 성과와 과제 지금까지 막연히 범위를 추정하였던 동쪽 부분에서 유구가 노출되었으 므로 여러 시기에 걸친 유구가 존재할 것이 예견된다. 먼저, 삼년산성의 초축과 개축이 이루어진 서기 470년과 486년의 유구 는 현재로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현재까 지 노출된 유구까지의 층위에서 지속적으로 신라․통일신라․고려시기 의 유물이 잔편으로 섞여서 출토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노출된 층위 아 래로 깔려 있는 뻘층 아래에 초축 시기의 유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노출된 유구로 억측한다면, 서쪽으로부터 4개의 석축 내지 부석은 각기 시기를 달리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유구 아래 층위 의 다짐층과 뻘층에서 보다 오래된 시기의 유물 출토 빈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아래 층위의 조사는 뻘층 내에 목재류와 열매나 껍질류 등이 들 어 있으므로 보다 신중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수습된 유물들은 이제까지 조사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유 물들이 나오고 있으므로, 일단 연못 뻘층 자체에는 보다 많은 정보가 간직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Ⅳ. 향후 발굴조사 계획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으로 보아 금년도 조사에 의하여 전체적인 규모 나 범위를 모두 밝힐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조사 물량의 조정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그간 보은군에서 꾸준히 성내 사유지를 매입 하여 조사에 어려움이 없으나, 유적의 중요성으로 보아 보다 진전된 조 사를 위한 예산의 확보가 필요한 일이다. 금년도에는 조사가 가능한 남쪽 한계선의 노출 조사와 동쪽 한계선의 명확한 파악이 필요하며, 깊이를 더한 조사는 건물지 등과의 관련 하 에 연차적인 계획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일부 노출된 유구를 기준으로 삼아 연못의 보수나 복원을 계획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Ⅴ. 토의사항 1. 향후 조사 계획과 범위 2. 조사 마무리에 따른 유구 보존 문제 3. 토사의 처리 문제 4. 향후의 연차적 조사와 관련된 문제 5. 금년도 조사의 완료 시기와 그에 따른 일정의 조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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