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밀양 - 상동간 신안유적 발굴조사
2003-05-26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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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상동간 신안유적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Ⅰ. 조사개요
1. 조 사 명 : 밀양-상동간 철도 전철화 사업구간 내 신안유적 발굴조
사
2. 조사지역 위치: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 신안마을 1213번
지 일대
3. 조사기간 : 2002년 11월 27일 ~ 2003년 6월 10일
4. 조사면적 : 약 1543㎡
5. 조사목적 : 경부선 전철화사업의 일환으로 철도청에서 실시하는 상
동-밀양 간의 지하차도 건설공사구간 내에 시굴조사를 통
해 분포가 확인 된 매장문화재를 사전 발굴조사하여 문화
재 보존의 기초자료를 확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Ⅱ. 조사경위
경부선 전철화사업의 일환으로 철도청에서 실시하는 상동-밀양간 구
간 내에 철도 지하로 교차하는 지하차도 신설공사가 진행되게 되었다.
신안마을을 지나는 구간의 지하차도 건설공사에 앞서 인근 지석묘를
중심으로 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2001년 12월 17일 부터 2002년 2월 4
일까지 총 40일)가 본연구원 주관으로 실시되었다.
시굴조사 이전에 이미 경부선 철도 아래로 터널이 뚫린 상태였으며,
지하 터널과 인접한 구릉의 일부지역 또한 터널공사를 위해 이미 굴착
된 상태였다. 굴착부분을 제외한 구간에서 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조사결과 경부선을 중심으로 구릉지역은 삼국시대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었으며, 이 고분군 위에 다시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들어서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경부철도 아래쪽은 지석묘의 상석과 아울러
매장시설의 일부도 확인되었다.
시굴조사 결과에 따라 2002년 11월 27일부터 정식발굴조사가 시작되
었다.
Ⅲ. 유적의 입지와 환경
조사지역은 옥교산(해발 538.4m)에서 뻗어 내린 구릉 사이에 형성된
선상지에 위치한다. 앞으로는 밀양강이 북에서 남으로 곡류하며 흐르
며, 이로 인한 퇴적물이 쌓여 넓은 하성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충
적지에서는 현재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풋고추, 깻잎 등이 많이 재배되
고 있다. 선상지는 특성상 선정과 선단부분에 집들이 들어서게 되는
데, 이곳 또한 마찬가지다. 선상지의 가운데 부분인 선앙부는 현재 감
나무 과수원으로 개간되고 있다. 선단부분은 밀양강에 의해 형성된 자
연제방과 연결되어 있으며, 경부선 철도는 하안단구의 가장 끝부분에
위치한다.
시굴조사 때 행해진 지형분석에 의하면, 이 선상지의 아래층에서는
토탄층이 확인되는데, 이 토탄층이 최종 간빙기인 12~8만년 전에 형성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선상지가 최종 빙하기인 7~1.8만년 전에 형
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으로 지질학 및 자연지리학적
인 측면에서도 양호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유적은 크게 선상지 중에서 선단과 선앙부에서 확인된다. 선단에서
는 하안단구면 위에 청동기시대 지석묘가 확인되고 있으며, 선앙부에
서는 삼국시대 고분과 고려시대 건물지가 확인되고 있다.
Ⅳ. 조사내용
조사의 편의를 위해 조사구역중 경부선 철도를 중심으로 서쪽인 구릉
지대를 Ⅰ지구, 동쪽인 충적지 지대는 Ⅱ지구로 각각 나누어 조사를 진
행하고 있다. 유적중 Ⅰ지구에서는 고려시대 건물지, 삼국시대 고분,
청동기시대 부석유구, 신석기시대 즐문토기 포함층이 확인되고 있다.
Ⅱ지구에서는 현재 지석묘와 청동기시대 밭터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
다.
가. Ⅰ지구
1. 고려시대 건물지
Ⅰ지구에서 확인된 건물지 관련유구로는 담장지, 건물지 기단, 문지,
적심 및 주춧돌 등이 확인되고 있다. 각각의 유구 주변에서 기와편과
청자편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1) 담장지
담장지는 최하단석에서 2~4단정도 남은 상태로 모두 4열이 확인되
고 있다. 4열 모두 축조방법은 동일한데, 먼저 담장의 최하단석은 길이
20~40cm정도의 판상의 할석을 폭 170cm정도로 하여 종방향으로 2열
눕힌 후 그 위에 50cm정도의 가공하지 않은 할석을 최하단석보다 내측
으로 들여 쌓은 후, 5단정도의 높이로 올린후 그 내부를 잡석과 점토로
채운 뒤 기와를 얹어서 축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① 1호 담장지
문지의 북쪽으로 연접되는 담장으로 건물의 안과 밖을 경계지우는 담
장으로 생각된다. 현재 최하단석과 바로 윗단만 남은 상태로, 북쪽부분
이 농수파이프 설치로 인해 파괴된 상태이다. 잔존길이 17.7m, 폭
1.7m, 잔존높이 53cm의 규모로 내부는 잡석으로 채워진 상태이다.
② 2호 담장지
2호 담장지는 문지의 남쪽으로 연접되는 담장으로 남쪽 발굴지 경계
밖으로 계속이어진다. 조사 구역내에서 확인된 담장의 길이 5.7m이고,
폭 1.7m, 높이 55cm 정도 잔존한다. 1호 담장과는 달리 내부는 점토로
채워져 있다.
③ 3호 담장지
3호 담장은 1,2호 담장과 수직방향으로 축조되었으며, 규모는 길이
32.4m, 폭 1.3~1.8m, 높이 70cm이다. 담장의 서쪽 끝부분에서 북쪽으
로 90°로 꺽여서 축조되었으나, 현대 농로 건설과 건설자재 야적장 조
성으로 인해 길이 2m정도만 잔존할 뿐 나머지 부분은 훼손된 상태이
다. 중앙부에 재 축조된 흔적이 남아 있다.
④ 4호 담장지
4호 담장은 3호담장의 동쪽에서 9.5m지점에서 남쪽으로 연접되는 담
장으로 3호담장과 직각을 이룬다. 조사지역의 한계로 현재는 1.5m 정
도만 확인된다.
(2) 문지
발굴지의 동쪽부분에서 확인되며, 중앙에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친 지
점에 위치한다. 북으로는 1호 담장과 남쪽으로는 2호 담장과 연접되어
있다. 규모는 길이 5.2m, 폭 4.3m로 바닥면은 소형의 할석이 전면에 깔
려 있다. 바닥에서는 문주석으로 생각되는 편평석 4매가 확인된다. 북
쪽에서만 3매가 확인되므로, 모두 6매가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지
로 향하는 아래쪽 계단시설은 후대 경작으로 인해 결실된 상태이다.
(3) 건물지
이번 조사에서는 3곳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3곳 모두 후대 경작으
로 인해 유실된 부분이 많아 건물의 크기 및 정확한 용도는 확인할 수
없다.
① 1호 건물지
1지구의 중앙부에서 확인되며, 후대 경작에 의해 동쪽부분이 파괴되
었고, 또한 발굴지가 한정된 관계로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길이 9.1m, 폭 5.9m 정도 잔존한다. 남아 있는 서쪽의 기단부는 비교적
네모난 할석을 이용하여 2단정도 쌓았으며, 건물지 내부는 다시 소형
의 할석이 깔려 있다. 기단열이 ‘一’자상으로 이어지다가 북쪽을 기준으
로 남으로 5.1m되는 지점에서 90° 꺽인다. 이 꺽이는 부분에 적심석이
확인된다.
② 2호 건물지
3호 담장지를 따라 길게 만들어진 건물로 원래는 ‘一’자상으로 6개의
적심과 주춧돌이 몇 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 3호 담장에서
북으로 270cm 되는 지점에 남북 길게 5개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북쪽
의 적심들은 후대의 경작과 건설자재 야적장 조성시 모두 파괴된 것으
로 생각된다. 적심석의 총길이는 19m이며, 각각의 점심석 사이의 간격
은 4m정도이다.
③ 3호 건물지
3호와 4호 담장 사이에서 확인되는 건물지로 2호 건물지와 마찬가지
로 적심과 주춧돌만이 확인되고 있다. 조사지역의 한계로 정확한 규모
와 용도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일렬로 4개의 적심과 이 열의 남쪽에 위치
한 1개의 적심이 확인된다. 조사구역 내에서 확인되는 적심4개의 총길
이는 10m정도이며, 적심간의 간격은 1.5m정도이다.
2. 삼국시대 고분
이번 조사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삼국시대 고분은 60여기에 달하며,
크게 위석식 목곽묘, 수혈식석곽묘, 횡구식석실묘, 옹관묘로 크게 나
눌 수 있다. 위석식 목곽묘와 수혈식 석곽묘는 양단벽 쪽에 유물을 부
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수혈식석곽묘 중 ‘凸’자형 석곽묘는 한쪽
장벽의 중앙부 쪽에 부장칸을 마련하였다.
석곽 축조에 사용된 석재는 주변에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할석을 주로
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할석을 치석하지 않고 측벽을 축조하기 때
문에 측벽축조는 엉성한 편이다. 이에 비해 소수이지만 천석을 이용하
여 쌓는 경우는 할석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비교적 축조상태가 양호하
다.
석곽의 축조 방향은 동서향, 남북향 등 불규칙적이며, 축조방향이 시
기차를 보이지는 않는다. 봉토가 확인되는 유구는 현재 없으나, 36,
37, 46호분의 경우는 호석을 돌린 후 주구를 마련하였다. 이 중 36호와
37호는 주구가 중복되는데, 37호의 주구를 36호가 파괴하면서 조성되
었다.
(1) 위석식 목곽묘
현재까지 3기가 확인되었는데, 1호, 9호, 23호가 여기에 해당한다. 1
호와 23호는 따로 부곽을 마련하지 않고 곽내에 모든 유물을 부장하고
있지만, 9호는 주체부는 위석식 목곽으로 만든 후 부곽은 다시 석곽으
로 쌓아 만든 점이 특이하다.
① 1호분
Ⅰ지구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은 N-21°-E로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조성된 위석식목곽묘이다. 유구의 상부는 후대 경작으로 인
해 대부분 결실되어 위석이 2단정도만 남은 상태이다. 묘광은 암갈색
의 선상퇴적토를 길이 440cm, 너비 210cm 정도로 굴착한 후 길이
310cm, 너비 95cm, 잔존깊이 40cm의 목곽을 세운 후 묘광과 목곽사이
를 충진석으로 채워 넣었다.
유물은 양쪽 단벽 근처에 매납하였다. 남단벽 쪽에는 장경호 및 대각
을 파쇄한 대부장경호 4점과 철부 1점이 매납되었으며, 북단벽 쪽에는
단경호2점과 고배 4점이 출토되었고, 중앙부에서 대도편 및 철촉군이
확인되고 있다.
② 9호분
Ⅰ지구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은
N-65°-E로 등고선 방향과 직교된다. 8호분에 의해 서쪽 묘광의 일부가
중복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길이 590cm, 너비 230cm 정도로 묘광을
판 후, 길이 340cm, 너비110cm, 깊이 70cm 정도의 목곽을 설치한 후,
묘광과 목곽사이를 충진석으로 채워 넣었다. 부장칸은 길이110cm, 너
비120cm로, 동단벽 쪽에 덧붙여서 석곽으로 축조하였는데, 평면형태
를 둥글게 처리하였다. 주곽의 바닥에는 관대로 사용된 돌 3매가 확인
됨으로 목관을 안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부장은 양단부장으로 서단벽쪽에는 토기류 중 소형인 고배 6점,
소형 대부장경호 2점을 매납하고 있으며, 발치쪽으로 생각되는 동쪽 부
장칸에는 대호 3점, 단경호 2점, 장경호 1점 등 크기가 큰 유물을 매납
하였다. 철기유물은 유구 전역에서 출토되는데, 주로 부장칸에 인접하
여 확인되고 있다. 부장칸에서 재갈 1점과 교구 2점이 출토되었으며 부
장칸과 인접한 곳에서는 철겸, 철촉, 철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2) 수혈식 석곽묘
본유적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삼국시대 고분의 상당수가 여기에 속하
며, 부장칸을 마련하지 않고 단독 석곽내에 유물을 양단부장하는 경우
가 대부분이다. 유물부장칸을 마련하는 경우는 위치에 따라서 2가지 형
태로 구분된다. 첫 번째 형태는 시신의 발치쪽에 유물을 부장하는 형태
로 12, 35, 44호분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형태는 유물 부장칸을 한
쪽 장벽에 마련하는 형태로 모두 4기가 확인되었다. 31, 33, 37, 46호분
이 여기에 속한다. 46호분은 남단벽 쪽으로 치우쳐서 부장칸을 마련하
였지만, 나머지는 장벽의 정 중앙부에 부장칸을 마련하고 있다. 37호
는 동장벽에 부장칸을 마련하였지만, 나머지 3기는 서장벽에 부장칸이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삼국시대 고분은 봉분 내에 마련하는 석곽의 수, 석곽 축조에 사
용된 석재의 종류, 시상의 유무 등으로도 형식 분류가 세분될 수 있다.
① 31호분
Ⅰ지구의 서쪽부분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은 N-4°-E로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설치되었다. 동쪽으로 32호분이 나란히 축조되어 있으며, 32
호분이 일반적인 수혈식 석곽묘인데 반해, 31호분은 서장벽 쪽에 부장
칸을 마련한 ‘凸’자형 석곽묘이다. 후대 경작으로 인하여 상부가 대부
분 파괴되어 최하단석을 비롯하여 2단 정도 남은 상태이다.
길이 315cm, 너비 129cm 정도로 묘광을 판 후, 길이 230cm, 너비
50cm, 잔존깊이 30cm 정도의 석곽을 설치하였다. 부장칸은 서장벽의
중앙부분에 마련하였는데, 길이 65cm, 너비 55cm 정도로 평면형태를
둥글게 처리하였다. 바닥에는 잔자갈을 이용하여 시상을 전면적으로
깔았지만, 부장칸에는 시상을 깔지 않은 상태에서 유물을 부장하고 있
다.
유물은 서쪽 단벽부근에서 대부장경호 1점, 고배6점이 출토되었으
며, 부장칸에서는 양유부호 1점, 대부장형호 1점, 단경호 4점, 연질옹 1
점이 출토되고 있다. 북단벽 쪽에서는 고배 1점이 출토되었다. 철기유
물은 중앙부에서만 출토되는데, 철촉 1점과 철겲 1점이 출토되었다.
② 35호분
Ⅰ지구의 중앙부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은
N-5°-E로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조성된 수혈식 석곽묘이다. 묘광은
암갈색의 선상퇴적토를 길이 414cm, 너비 170cm, 잔존깊이 51cm 정도
로 굴착한 후 길이 340cm, 너비 65cm, 잔존깊이 60cm의 석곽을 축조하
였다.
석곽은 10~40cm정도의 치석하지 않은 할석을 이용하여 4단정도 축
조하였는데 남단벽은 직각에 가깝지만, 북쪽의 부장칸은 둥글게 축조
하였다. 부장칸에 사용된 석재는 주체부의 할석보다 더 작은 할석을 이
용하여 비교적 정연하게 쌓았다. 바닥에는 시상을 설치하였는데, 중앙
부에서 남단벽까지 전체의 절반 정도만 깐 점이 특이하다.
유물은 양단벽 쪽에 매납하였는데, 남단벽 쪽에는 장경호 2점, 고배4
점을 매납하였으며, 부장칸을 마련한 북쪽에서는 대각을 파쇄한 대부
장경호 3점, 양이부 단경호 1점, 단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 철기는 양단
벽쪽에 부장된 토기들 사이에서 확인되는데, 철겸 1점과 철촉 3점이 출
토되고 있다.
(3) 횡구식 석실묘
지금까지 확인된 유구는 모두 3기이며, 38, 39, 40호가 여기에 속한
다. 비교적 형태가 잘 남아 있는 38호의 평면형태는 석곽의 장벽중앙부
가 불룩한 타원형을 띠며, 주축방향은 남북향이다. 추가장을 위한 개폐
시설은 북쪽 단벽 쪽에 마련하고 있으며 개폐 폭만큼 묘광 또한 북쪽으
로 돌출되어 있다.
3. 신석기․청동기시대
현재 청동기 시대 유구로는 성격 불명의 부석유구가 확인되고 있으
며,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삼국시대 고분 조사시 다수의 신석기시대 즐문토기편이 확인되며, 시
기는 3~4열의 연속단사선문과 태선어골문이 시문된 토기가 함께 출토
되는 되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 전기말에서 중기로 추정된다. Ⅰ지
구의 1호 건물지와 1호 담장지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며, 고려시
대 건물지와 삼국시대 석곽묘조사가 완료된 후 이 층위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나. Ⅱ지구
1. 토층
Ⅰ지구는 대부분 선상지성 퇴적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Ⅱ지구는 밀
양강의 범람시 선상지성 퇴적물이 영향을 받는 곳이기 때문에 토층양
상이 다양하다. 크게 자갈층과 모래층이 반복 퇴적되어 있는데, 자갈
의 퇴적비율이 압도적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토층은 크게 나누어 보면 모두 10개층으로 나누어진
다. 1층은 현재 경작층이며, 2-5층은 모래층, 자갈층이 반복하면서 퇴
적되어 있다. 5층의 경우 자갈층 내부에서 통일신라-고려시대의 경질
토기편이 확인된다. 6층은 암갈색 부식토층이며, 밭이 조성되어 있으
며, 층 하방에서 무문토기편이 다수 확인된다. 7-9층은 자갈층과 모래
층이 반복하면서 퇴적되어 있는데, 7층은 지석묘 및 적석유구가 조성되
어 있는 층이다. 10층은 암갈색 부식토층으로 밭의 존재가 예상되지
만, 미조사상태이다.
2. 지석묘
지석묘는 모두 4기가 확인되었다. 1, 2, 4호 지석묘는 모두 하부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3호 지석묘는 주민에 의해 상석이 매몰되면서 교란되
어 원형을 알 수 없다.
(1) 1호 지석묘
1호 지석묘는 대형의 상석아래에 방형의 적석시설을 하부구조로 채용
한 형태이다. 상석은 하부 적석의 중앙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북서
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것이 특이하다. 또한 상석 남쪽 측면에는 암각
화가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심하여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석
검․방패형․사람․여성기․석촉의 형태로 추정되는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하부 적석은 조사구역 외곽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길이 현 9.8m, 너비 6.4m이다. 가장자리
에 3-4단 정도 할석을 정연하게 쌓으면서 내부에는 무질서하게 할석을
채워 넣은 형태이다. 가장자리 벽석사이에는 석부 1점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인접한 밀양 살내유적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 4호 지석묘
4호 지석묘는 1호 지석묘와 같은 형태이다. 1-3호 지석묘에 비하면 상
석으로 볼 수 있는 큰돌은 없지만, 자체내에서 비교적 큰 납작한 할석
이 상석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부 적석은 조사구역내에서 극히 일부만 확인되어 전모를 알 수 없지
만, 방형내지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길이 6.8m, 너비 현 4.4m이다. 가
장자리에 3-4단 정도 할석을 정연하게 쌓으면서 내부에는 무질서하게
할석을 채워 넣은 형태이다. 서쪽 가장자리 벽석에는 암각화가 확인된
다. 암각화는 동심원의 형태가 뚜렷하게 확인되며, 주변에는 형체를 정
확히 알 수 없는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동심원은 중앙에 점을 기준으
로 주위에 3중의 원을 그린 형태이다. 이러한 동심원 암각화는 울주 천
전리암각화, 고령 양전동암각화, 함안 도항리암각화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동심원은 일반적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해석되고 있는
데, 농경의 풍요기원을 위한 재생의 상징으로서 영원회귀의 원을 신앙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3. 적석유구
(1) 3호 적석유구
3호 적석유구는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타원상의 대형 할석
이 적석된 서편에 소형 할석이 일부 깔려있는 형태이다. 인접하여 매몰
된 3호 지석묘 상석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
(2) 4호 적석유구
4호 적석유구는 4호 지석묘 북편에 인접하여 조성되어 있다. 중앙에 원
형의 적석을 먼저 쌓고, 그 양쪽에 방형의 적석을 잇대어 쌓은 형태이
다. 길이 8.0m, 원형 적석 너비 3.2m, 방형 적석 너비 2.5m이다.
양쪽의 방형의 적석은 상면이 비교적 평탄하지만, 원형 적석은 중앙부
가 오목하다. 축조형태는 가장자리에 할석을 3-4단 정도 정연하게 쌓으
면서 내부에 할석을 채워 넣은 형태인데, 중앙의 원형 적석의 경우 가
장자리 최하단에 편평한 판석을 깔고 그 위에 할석을 차차 들여쌓기 하
였다.
4. 밭
밭은 조사구역에서는 2그리드 가장 남쪽 부분에서만 확인되었는데, 조
사구역 외곽으로 계속 확장된다. 단면형태는 고랑과 두둑이 매끄럽게
파도모양으로 연결된다. 고랑내에는 조사와 세력이 채워져 있으며, 너
비 45-55㎝, 깊이 5-7㎝이다. 두둑은 너비 45-55㎝로 고랑과 두둑의 너
비가 거의 같다.
고랑 내부를 비롯한 밭 상면에서의 출토유물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연
대를 알 수 없다.
Ⅴ. 조사성과
(1) 본유적에서 확인되는 건물지는 시굴 당시에는 조선후기에 신설
되었다가 곧 폐지된 신원(新院)이 있었다는 기록을 참조하여 조선시대
건물지로 예상하였지만, 발굴조사에서 출토되는 기와편과 청자편으로
보아 고려시대 건물지로 생각되며, 시기는 12세기말로 추정된다.
(2) 본유적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고분은 약 60여기로 5세기 중엽에서
6세기말까지 약 150년간 조영되고 있다. 조사면적에 비해 고분의 밀집
도는 대단히 높은 편이며, 60여기의 고분 중 9호와 같은 위석목곽묘와
31호와 같은 ‘凸’자형유구는 신라의 지역의 적석목곽묘를 모티브로 하
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본 고분군 집단은 신라의 직접적인 지배
하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3) 출토 유물의 대다수는 토기인 반면, 철기유물의 부장량은 상대적
으로 적은 편이다. 출토 토기의 대부분은 이시기에 신라지역에서 많이
확인되는 기종과 형식이 주류를 이루는데, 고분과 더불어 신라의 직접
지배를 시사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된다.
(4) 고분의 규모와 부장량의 많고 적음이 당시 피장자의 사회적인 위
치를 반영한다고 가정한다면, 본 고분군 집단은 생산을 담당한 중하위
계층이 대부분이었을 것임을 생각할 수 있다.
(5) Ⅱ지구에서 확인된 장방형의 적석시설로 이루어진 지석묘 하부구
조는 인근의 살내유적에서 같은 형태가 조사되었다. 또한 지석묘 상석
과 하부적석에서 암각화가 확인되었는데, 인근의 살내유적에서도 하부
적석에서 암각화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지석묘의 동일한 하부구조와
암각화의 존재는 신안유적과 살내유적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시사하
며, 밀양지역의 독특한 지석묘문화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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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 [재알림]인천 삼목도유적 현장설명회 일정 조정 | 임상택 | 1013 | 2003.06.02 |
317 | [알립니다] 인천 삼목도유적 현장설명회 우천으로 인해 취소 | 임상택 | 902 | 2003.05.29 |
>> | 밀양 - 상동간 신안유적 발굴조사 | 운영자 | 2663 | 2003.05.26 |
315 | 마산시 진동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내 시굴조사 | 운영자 | 1796 | 2003.05.26 |
314 | 인천 삼목도유적 현장설명회(05.30) 개최 안내 | 양시은 | 1115 | 2003.05.25 |
313 | 나주호 관광지 조성부지내 발굴조사 | 운영자 | 1876 | 2003.05.21 |
312 | 담양 성산리 유적 | 운영자 | 1969 | 2003.05.16 |
311 | 익산 왕궁리 와요지 | 운영자 | 2263 | 2003.05.16 |
310 | 경남대학교 박물관 밀양금천리유적 현장설명회 개최 안내 | 경남대학교박물관 | 1146 | 2003.05.15 |
309 | 화성 발안리 유적 | 운영자 | 2018 | 2003.05.09 |
308 | 화성 기안리 유적 | 운영자 | 2050 | 2003.05.09 |
307 | 연천 은대리성 지표 및 발굴조사 | 운영자 | 2006 | 2003.05.09 |
306 | 포항 호동 쓰레기매립장 건설부지내 유적 | 운영자 | 2412 | 2003.05.09 |
305 | 울산옥동유적 지도위원회 개최 안내 | 울산문화재연구원 | 1531 | 2003.05.01 |
304 | 경주 봉길리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 영남문화재연구원 | 2138 | 2003.04.23 |
303 | 여주 중암리 고려백자요지 2차 발굴조사 | 한준영 | 1637 | 2003.04.15 |
302 | 경의선 연결도로 비무장지대구간 시굴조사 | 한준영 | 1582 | 2003.04.15 |
301 | (재)울산문화재연구원 신축부지 발굴조사 | 운영자 | 1868 | 2003.04.14 |
300 | 경주 봉길리 신월성 원전부지내 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 이주림 | 1109 | 2003.04.10 |
299 | 울주 반구대 암각화 진입도로 부지 내 유적 시, 발굴조사 | 운영자 | 2125 | 2003.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