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포항 철강공단-냉천간 도로공사구간 유적 발굴조사
2002-11-06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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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철강공단-냉천간 도로공사구간 유적 발굴조사
I.調査槪要
1. 조사기간 : 2002. 5. 13 ~ 2003. 1. 9
2. 조사지역 : 浦項市 南區 仁德洞 山 37番地 일원
3. 조사면적 : 30,083㎡(약 9,100坪)
4. 조사기관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부설 문화재조사연구단
II. 調査經緯 및 經過
조사지역은 浦項市 南區 虎洞 대동철강에서 仁德洞 인덕초등학교 사
이에 위치하며, 서원재를 비롯한 구릉과 경작지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
곳은 2000년 8월 1일 본 재단 소속 연구원들이 시굴조사 예정구역인 호
동 재활용시설 예정부지를 답사하러 가던 도중 ‘서원재’ 정상부쪽에서
도로개설 공사시에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 石槨墓 2基를 발견하고, 그
다음날 이를 포항시에 신고하게 되었다. 이에 포항시에서는 공사중지
지시와 함께 경상북도와 문화재청에 이를 보고하고, 문화재청에서는
도로구간에서 발견된 石槨墓에 대해서는 현장을 보존하고, 공사 전구
간에 대해서는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토록 하였다. 이에 본 재단에서
2000년 11월 13~17일에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였
다1).
상기의 지표조사 결과에 의해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포항시에
서는 2001년 11월 14일 이 구간에 대한 시굴조사를 의뢰함에 따라,
2001년 11월 16일부터 시굴조사를 착수하게 되었다. 시굴조사는 조사
지역의 지형을 참고로 Ⅰ~Ⅳ구역으로 세분하여 진행하였다. 시굴조
사 결과 Ⅰ구역은 三國時代 石槨墓, Ⅱ구역은 靑銅器時代 住居址 및 時
期不明의 溝, Ⅲ구역은 時期不明의 溝 및 高麗․朝鮮時代 建物址, Ⅳ구
역은 支石墓 및 高麗時代 建物址, 우물, 道路遺構 등이 검출되어 공사
구간의 거의 전역이 靑銅器時代~朝鮮時代에 이르는 복합유적임이 밝
혀지게 되었다2).
이와 같은 유적의 중요성과 포항시의 기반산업인 철강관련 자재의 원
활한 수송을 위해 포항시에서 2002년 4월 본 재단에 발굴조사를 의뢰하
여 2002년 5월 13일부터 발굴조사를 착수케 되었다.
Ⅲ. 調査地域의 地形
조사지역 일대는 영일만의 형산강 하구이며, 포항시의 남쪽에 형성
된 저산성 구릉지대에 해당한다. 즉 인덕동 산37번지 일대의 야산은 대
송면 운제산(해발 482m)에서 북쪽 경사면을 따라 길게 주행하여 영일
만 남쪽에 이르는 구릉지대의 남단쪽에 위치한다. 또한 이 지역은 수계
로 볼 때 남쪽의 주봉인 운제산에서 발원하여 南-北으로 흘러 영일만으
로 들어가는 냉천(동쪽)과 남대천(서쪽)사이에 위치하는 지형입지상
조사지역을 포함한 주변의 나즈막한 야산과 河川平野지대에는 靑銅器
時代에서 朝鮮時代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조사지역은 서원재 정상부 동쪽사면과 평야지대에 위치하며, 평야지
대는 원동 3지구에서부터 南-北으로 길게 형성된 경작지이다
Ⅳ. 調査方法 및 內容
발굴조사는 시굴조사시 세분한 구역을 참고로 진행하였으며, 제토는
시굴조사시 확인된 유구상부면을 소형 굴삭기와 인부를 동원하여 실시
하였다. 특히 시굴조사시부터 노출되어 있어 일부 유물의 존재가 이미
드러난 三國時代 墳墓群을 우선적으로 조사하였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유구는 靑銅器時代 住居址 19동,
竪穴 1기, 三國時代 後期의 竪穴式,橫口式 石槨墓 및 橫穴式 石室墓 12
기, 高麗時代 墳墓 3기, 朝鮮時代 建物址 1동, 墳墓 7기(2기는 人骨출
토), 溝 4열, 柱穴群, 아궁이 7기 등이 확인되었다. 時期別로 본 유적의
조성시기는 크게 靑銅器時代~朝鮮時代로 구분된다.
1. 靑銅器時代
① 遺構
청동기시대 유구로는 주거지 19동과 수혈 1기가 확인되었다. 6~9호
주거지는 후대 분묘의 축조 및 벌목작업, 도로개설 등으로 인해 대부
분 파괴되었으며, 12~14호 주거지는 조사경계지점과 중복되어 일부
에 대한 한정적인 조사로 인해 제 형태를 파악하기 힘들다.
주거지는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조성된 것이 17동으로 다수를 차지
하며, 6호,18호 주거지 2동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고 있다. 이들 주거
지는 3호 주거지를 중심으로 밀집분포하며, 3,4호 주거지 및 8,9호 주거
지 사이의 공간은 비교적 평탄면인데도 불구하고 주거지를 조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광장과 같은 空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지
의 평면형태는 장방형(11동),방형(4동)에 가까우며, 4동은 잔존상태가
불량하여 평면형태를 추정하기가 어렵다.
주거지 내부시설로는 爐址, 壁溝, 柱穴, 바닥처리 등이 확인되었다.
먼저 노지는 평면형태가 원형이나 타원형이며 무시설식이다. 노지가
확인되는 주거지는 모두 6동인데 이 중 1,2호 주거지를 제외하곤 대체
로 한쪽 방향에 편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노지의 편재는 주거
지 내부의 공간확보를 위한 의도로 추정된다. 벽구를 두른 주거지는
총 6동으로 4면을 다 두른 형태는 없으며 대체로 1~3면을 두르고 있
다. 벽구가 확인된 주거지 중 12호 주거지를 제외한 1,2,5,11,15호 주거
지에서 노지가 확인되는 점으로 볼 때 노지와 벽구는 공반된 시설일 가
능성이 크다. 벽구 내부에서 어망추, 석촉 등의 유물이 다수 확인된다.
주거지 내에서 확인되는 주혈은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정형성을 찾아
보기 힘드나 16호 주거지만은 2×1간의 주혈배치의 정형성을 보인다.
주혈의 빈약으로 인한 주거지의 기둥구조는 외부 周堤帶의 존재를 추
정케 하는데 5,16,18호 주거지 내부 퇴적토중에는 벽면의 경사도가 높
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흑갈색점질토의 슬라이드현상이 나타난다. 이
러한 슬라이드현상은 주거지가 폐기되고 난 후 외부 주제대가 주거지
내부로 가장 먼저 퇴적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약 이러한 추정이 가능하
다면 주혈의 빈약과 불규칙성은 周堤帶의 존재로 설명가능하다.
주거지의 바닥처리는 불다짐(7동), 다짐(6동), 생토(6동) 등이 모두
나타난다. 이 중 바닥을 다짐처리한 주거지는 비교적 주거지의 깊이가
깊은 주거지에서 나타나는데, 풍화암반면까지 바닥을 굴착한 뒤, 드러
난 암반면의 불규칙한 면을 점토 등으로 다짐처리하여 바닥을 정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 주거지 내부 시설로는 貯藏穴과 作業孔이 있다. 저장혈은 3,16호
주거지에서 확인되는데, 이 중 3호 주거지는 양 단벽 모서리 부분에 각
각 3개씩의 수혈이 대칭되어 확인된다. 이들 수혈은 주혈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주혈이라고 보기에는 매몰토의 퇴적양상, 단면형태
등에서 저장혈일 가능성이 크다. 작업공은 3호 주거지의 중앙부에서 확
인되는데, 주거지의 바닥부분을 얕게(깊이 약 4~7cm) 팠으며 내부에
서 석촉, 할석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외부시설로는 2호 주거지에서 확인된 周溝가 있다. 주구는 주
거지의 서장벽 외부에서 주거지의 장축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조성되
어 있으며, 내부에서 어망추, 주걱칼, 舞錐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14호 주거지는 발굴경계지점과 맞물려 일부만 조사되었는데, 주
거지 내부에 토기편, 석검, 어망추 등이 다량으로 쌓여 있었다. 이러한
유물의 출토양상은 다른 주거지들의 유물출토양상과는 차이가 있으므
로, 의례 혹은 폐기에 의한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지의 내부시설 및 규모, 위치,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3호 주거지
는 마을의 공공집회, 의례 등 공공을 위한 시설일 가능성이 크며, 1,2,5
~11, 13,15~18호는 주거용 가옥, 4,12호는 작업장이나 저장용 시설,
14호는 의례 또는 폐기시설로 추정된다.
구 1호의 남쪽에서 수혈유구 1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형태는 타원형
에 가까우며, 규모는 길이 55cm, 폭 39cm, 깊이 8cm이다. 내부에서 발
형토기 1점과 미완성석도 1점이 출토되었다.
② 遺物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 석기, 토제품 등으로 나
눌 수 있다. 먼저 토기는 문양으로 볼 때, 이중구연구순각목단사선문토
기,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구순각목단사선문토기, 단사선문토기, 공
열토기, 무문토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기형상 발형토기의 출토비율이
높다. 호형토기는 단도마연토기 경부 1점이 출토되었으며, 그 외 토기
대각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토기중 이중구연에 사선문이나 구순각목문
이 시문된 토기의 출토량이 많은데 비해 이중구연에 공열문이 같이 시
문된 토기는 출토되지 않았으며 단순 공열토기는 1점만 출토될 정도로
극히 적다.
석기는 주걱칼, 석검, 석촉, 석도, 석부, 환상석기, 지석 등이 출토되
었다. 주걱칼은 4점이 출토되었는데, 형태는 하키스틱과 유사하며, 날
은 합인으로서 바깥쪽에 날을 세웠다. 이러한 주걱칼은 강릉 포남동,방
내리, 속초 조양동, 정선 귤암리, 경주 황성동유적에서 각 1점씩 출토되
었는데, 이번 발굴조사에서 2,15,16,17호 주거지에서 각 1점씩 4점이 출
토되었다. 경주 황성동유적을 제외하면 주로 영동지방에서의 출토량
이 높은 유물로 각 유적에서 1점씩만 확인될 정도로 출토예가 드문 편
이나 이번 발굴조사에서 대량 출토되어 주목된다. 석검은 거의 파손품
으로 유단식석검이다. 석촉은 일단경식석촉, 이단경식석촉 등이 출토
되었으며, 석도는 완형 1점을 제외하곤 전부 파손품이다. 석부는 합인
석부, 편평편인석부, 주상석부 등이 출토되었는데, 편평편인석부와 합
인석부 중 일부는 국부만 마연하였으며, 주상석부는 1점만 출토되었
다. 그 외, 환상석기 2점이 출토되었는데 1점은 미완성품이고 1점은 완
형이다. 환상석기는 동그랗게 외면을 떼어 낸 후 마연하였으며 중앙부
를 투공구로 뚫은 것이다. 환상석기 중앙 홈의 투공방법은 석기의 두께
가 두꺼워서 투공구로 한 방향으로 뚫기엔 무리가 있었던지 양방향에
서 투공구를 돌려가면서 뚫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석기의 용도는 舞錘
로 추정되며 인접한 포항 대련리유적 등에서도 출토되었다.
지석은 대형 지석 2점과 소형 지석들이 다수 출토되었으며 16호 주거
지에서는 석겸 미완성품 1점이 출토되었다.
토제품은 어망추와 방추차가 있다. 어망추는 원형, 원통형, 산주형 등
이 출토되었는데, 모든 주거지에서 적게는 1점에서 많게는 약 60여점까
지 출토되었다. 13호 주거지에서는 다른 주거지들에 비해 비교적 대형
어망추만 출토되었으며, 18호 주거지에서는 상부에서부터 상면까지
약 60여점의 어망추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어망추는 당시의 생업경제
의 한 면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어업에 대한 비중이 높았음을 방증한
다. 방추차는 16호 주거지에서 1점만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중 석도와 같은 농경구, 어망추와 같은 어로구의 출토를 통
해 당시 생업경제를 추정해 보면 농경과 함께 어업의 비중도 높았던 것
으로 생각된다.
상기와 같은 유물에 의해 유적의 상대연대를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
다. 먼저 토기의 문양구성요소로 볼 때, 이중구연토기에 단사선문, 구
순각목문 등이 시문된 점과 이중구연토기의 출토비율이 높은 점에서
속초 조양동 유적과 유사한 조합을 보인다. 단 문양구성요소 중 이중구
연에 공열이 시문된 토기의 출토가 없다는 차이가 있으나 그 외의 구성
요소는 거의 유사하다. 또한 토기 외에 주걱칼이 출토되는 유적이 주
로 영동지방에 분포하는 점에서 영동지방과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
다.
석기 중 석검은 고식에 속하는 유단식 석검이 출토되며, 석촉 역시 편
년상 고식에 속하는 일단경식석촉, 이단경식석촉이 출토되었다. 이러
한 석촉과 석검의 조합은 포항 초곡리유적 등 청동기시대 전기의 비교
적 이른 시기의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와 같은 토기 문양구성요
소 및 석검, 석촉을 통해 볼 때, 속초 조양동유적, 강릉 방내리유적, 포
항 초곡리 유적 등과 유사하므로 이에 따른 유적의 상대연대는 이들 유
적과 비슷한 청동기시대 전기의 이른 시기로 비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2. 三國時代
① 遺構
본 발굴조사구역의 가장 서쪽인 인덕동 산37번지의 구릉 8부 능선에
서 확인되었다.
조사된 분묘는 모두 12기이며, 그 중 1,3,6,8,9,10,11,12호분은 竪穴式
石槨墓, 4,5,7호분은 橫口式石槨墓, 2호분은 橫穴式石室墓이다. 장축방
향은 대체로 정남북향을 하고 있으며, 묘광형태는 주로 수혈식,횡구식
석곽묘는 (말각)장방형이고, 횡혈식석실묘인 2호는 정방형이다. 3,9,10
호분은 전형적인 수혈식석곽묘로 板石材를 蓋石으로 이용하였으며, 長
壁石은 橫平積 또는 竪積하고, 段壁石은 1매의 板石으로 竪積하였다.
8,12호분은 蓋石을 板石材 대신 소형의 川石들을 이용하여 상부에 적석
하였다. 그러나, 1,11,12호는 잔존벽석이 1~3단에 불과해 유구의 정확
한 성격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으며, 횡구식석곽묘인 4,5,7호분은 잔존
한 최상단석이 표토에 상당부분 드러나 있는 상태였으므로 정밀한 입
구부 조사는 곤란하였다.
2호분은 좌편수식의 횡혈식석실묘로 벽석은 1~4단 정도 잔존해 있었
으며, 내부에 천장석으로 사용된 板石材 수 매가 함몰되어 있었다. 후
대에 조성된 구에 의해 연도부가 교란된 상태여서 追加葬 여부에 대한
조사는 불가능하였으나, 유구내부의 시상석 조성상태로 보아 최소 2차
장(추가장 1회)까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분묘의 장축방향은 대개 정남북향이며, 頭枕石 및 耳飾 등의 출토로 두
향을 알 수 있는 것들은 대개 북향이었다. 매장주체부내의 시상석은 소
형의 역석 또는 할석으로 상면전체에 시설하고 있다.
벽석을 파괴할 정도로 중복 조영된 분묘는 없다. 그러나 3~7호분은
상호 근접 또는 맞닿아 있는데 현재로서는 선후관계 파악이 곤란하다.
추후 분묘 해체조사가 이루어지면 보다 확실한 조영순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물부장양상은 수혈식,횡구식석곽묘는 주로 북단벽 부분에 주유물
부장공간을 마련하여 유개고배 ,단경호,부가구연장경호 등을 부장하였
으나 남단벽 부분에 유개고배,단경호 등을 부장한 분묘도 있다. 수혈식
석곽묘인 9호분은 전술한대로 북단벽 부분을 주유물부장공간으로 이용
하고 있는데 그 중 부가구연장경호 1점을 의도적으로 파쇄,이분하여 다
른 토기유물과 함께 매납하고 있다. 횡구식석곽묘인 5호분은 동장벽의
측부에 부곽을 설치하여 유물을 부장하고 있다. 횡혈식석실묘인 2호분
은 다른 유구에 비해 현저한 薄葬이며, 소형완 3점과 연질옹 1점은 1차
장, 소형완 1점은 2차장시의 매납유물로 판단된다.
② 遺物
삼국시대 분묘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이 토기이다. 수혈식,횡구
식석곽묘에서는 유개고배set, 단경호, 부가구연장경호 등이 기본적으
로 출토되고 있다. 유개고배set와 부가구연장경호, 단경호는 주로 북단
벽의 주유물부장칸에 매납되어 있으나 남단벽석 근처에서 출토되는 분
묘도 있다.
유개고배set의 개는 주로 단추형과 짧은 호선의 뉴를 가지며, 고배는
1단투창,상하교호투창,무투창 등 다종다양하다. 단경호는 모두 짧은 경
부와 삼각형의 구연단을 가지며, 저부는 거의 평저에 가깝다. 부가구연
장경호는 경부 및 동체부에 1~2조의 돌대가 성형되어 있으며, 동최대
경은 중상위에, 대각부는 1단투창,상하교호투창이 있는 등 다양하다.
특히, 11호분에서는 고배와 파수부완, 단경호와 함께 도질소성의 장군
이 출토되었다. 횡혈식석실묘인 2호분에서는 1차장과 관련하여 소형
완 3점과 연질옹 1점이, 2차장과 관련하여 소형완 1점이 출토되었는
데, 기형의 차이는 거의 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분묘군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모두 신라의 후기양식토기
단계에 해당하는 기종들로 6C 전,중엽으로 편년할 수 있다.
그 외의 유물은 1,8,11호분에서 각각 철소도자 1점씩이 출토되었으
며, 1호분에서 석제이식이, 11호분에서 소환의 청동제이식이 출토되었
다.
3. 高麗,朝鮮時代
① 遺構
이 時期의 유구로는 高麗時代 墳墓 3기, 朝鮮時代 墳墓 7기, 建物址 1
동, 溝 4열, 柱穴群, 竪穴遺構, 아궁이 등이 있다. 墳墓는 총 10기(高麗
時代-3기, 朝鮮時代-7기)로서 장축방향은 남서-동북향인 1호를 제외하
고, 모두 東-西향이다. 풍화암반토를 굴착하여 조성했으며, 평면형태
는 장방형이다. 2호는 고려시대 분묘로서 3호 주거지내 수혈을 깨고 조
성하였다. 유구내부에는 관뚜껑 대용으로 사용된 듯한 암키와 3점(양
단벽 끝의 기와 2점은 의도적으로 파기하여 사용)이 함몰되어 있었으
며, 암키와 하부의 북단벽 쪽에 청자 대접 2점이 상하로 포개어져 있었
다. 조선시대 분묘는 대부분 목관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8,9호와
같이 내부에 棺材와 人骨이 잔존해 있는 경우도 있다. 보강토는 5호와
8,9호 등에서 나타나며, 특히 9호의 경우는 회곽을 이용해 보강시설을
한 것으로 보인다. 8호 분묘에서 출토된 인골은 유존상태가 대체로 양
호하나 하악골을 제외한 두개부위가 결락된 상태로 앙와신전장되어 있
었다. 인골의 상체가 분묘의 중심축에서 남측으로 이동해 있는 상태이
며, 상체하부에는 礫石臺가 놓여져 있어 상체가 타 부위보다 레벨상 상
위에 있다. 피장자의 성별은 남성, 연령은 성년에 해당되며 추정신장
은 155.6㎝이다. 9호 분묘의 인골은 유존상태가 아주 양호하며, 앙와신
전장된 상태이다. 좌우요척골의 하단과 좌우경골의 하단이 서로 인접
하여 만나는데, 이는 殮에 의한 행위로 추정된다. 하악융기,유양돌기,
관골부위로 보아 남성으로 판단되며, 연령은 성년후반에 해당된다. 추
정신장은 164.9㎝정도이다.
조선시대 建物址는 현대 분묘 아랫단의 해발고도 58~60m의 비교적 평
탄대지에 조성하였으며, 구, 수혈, 아궁이, 집석 등의 시설이 확인되었
다. 전체적인 건물지의 형태나 구조, 용도는 추정하기 어렵다.
竪穴은 총 4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1,2,4호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으나 3호에서는 백자 3점이 출토되었다. 상부의 평면형태는 장방
형이나 하부는 다시 원형으로 판 이단굴착 수혈이다.
溝는 서→동으로 경사면을 따라 조성하였으며 총 4열이다. 유구간 중
복에 의한 溝의 선후관계는 1(先)→2→3호(後)순이며 條溝인 4호의 조
성시점은 현재로서는 불명이다. 그러나 거의 같은 양상으로 구가 조성
된 점 등으로 볼 때 3~4차례정도의 증,개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므
로 서로간의 조성시기차이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의 단면
형태는 ‘Y"자형 또는 완만한 ‘U'자형이며, 구의 전체길이는 약 154.5m,
규모는 1호 구가 폭 1~3m, 깊이 30cm, 2호 구가 폭 2~5m, 깊이
72cm, 3호 구가 폭 1.2~3m, 깊이 50.5cm, 4호 구가 폭 0.6~2m, 깊이
28cm이다. 서쪽구 일부구간의 하단부에는 잔자갈돌이 깔려있는 점 등
으로 볼 때 배수구로 추정되며, 구 내부에서 기와, 백자, 옹기 등이 소
량 출토되었다.
주혈군은 유적 서쪽의 현대 수혈 및 청동기시대의 7호 주거지, 구 사
이에 밀집분포하며 일부는 구 내부에서도 확인된다. 구와의 중복관계
가 확실한 일부 주혈은 구보다 후대에 조성되었으나, 구 외부에 있는
주혈은 구와 진행방향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동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주혈에서는 목심흔이 확인되며, 현재로서는 주혈
의 정형성을 찾아 볼 수 없다. 주혈의 목심 아래에서 常平通寶 當二錢 1
점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참고로 할 때, 주혈군은 숙종 5년(1679년)~
영조 29년(1753년)대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地主錢의 용도로
목심하부에 매납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궁이는 7기가 확인되었는데 타원형(4기), 원형(2기), 장방형(1기)
의 평면형태를 띠며, 벽과 바닥에서 소토 및 소결흔, 목탄 등이 출토되
어 불에 의한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2호 아궁이는 중복되
어 확인되었는데 2호 아궁이 내에 1호 아궁이가 다시 조성되었으며, 2
기 모두 남쪽에 연소실을 두고 벽쪽에는 다시 2단으로 조성하여 연기
등이 빠져 나가게 만들었다. 또 7호 아궁이는 내부에 비교적 큰 돌로서
3벽을 만들고 트인 면에서 불을 지핀 것으로 보인다. 그 외의 아궁이들
은 무시설식이며, 이 중 4호에서는 판상의 철기가 1점 출토되었다.
이 외의 유구로는 장방형의 수혈, 집석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② 遺物
고려시대 분묘 1~3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청자 및 암키와가 있다. 청자
는 4점이 출토되었는데 기종은 모두 대접이다. 대부분 완형이나, 구연
의 일부가 파손된 것도 있다. 태토가 거칠고 유약의 시유상태는 불량하
다. 유색은 암록색이나 담록색, 담갈색 계통으로 발색이 매우 탁하며
구연부는 내만하는 형태이다. 굽은 낮으며, 거칠게 정면되었다. 사립
이 혼입된 내화토비짐을 사용해 번조했다.
암키와는 분묘 2호의 蓋瓦 3점으로서 有文과 無文 2가지가 있다. 有
文 암키와는 方格區劃文을 중심으로 한 복합문이 타날되어 있는 와질
소성의 회색 암키와로서 거의 완형인 상태로 1점 출토되었다. 無文 암
키와는 와질소성의 회백색 암키와로서 타날 후 전체적으로 물손질정면
하였으며 대부분이 파손된 상태로 2점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유물로는 백자 3점과 관정 2점, 常平通寶 當二錢 1점이 출토
되었다. 竪穴遺構 내부에서 출토된 백자3점의 기종은 대접 1점, 발 1
점, 접시 1점 등이다. 대접과 발은 구연부를 비롯한 기형의 약 1/2 정도
가 파손된 상태이며 접시는 완형이다. 태토는 정선되었으나, 유약의 시
유상태는 불량하다. 유색은 회청색, 회백색을 띄고 있으며, 발색상태
는 보통이다. 구연부의 형태는 내만하는 형태와 외반 기미를 띄다가 내
만하는 형태 2가지가 있다. 굽은 오목굽과 평굽이며, 내화토를 사용해
번조한 흔적이 있다.
鐵器類는 民墓 내부에서 출토된 관정 2점이 있다. 두부의 형태는 비교
적 뚜렷하며, 단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이 외에 柱穴 내부에서 출토된 동전이 1점 있다. 형태는 극히 일부 파
손되기는 했으나 거의 원형이며, 가운데 방형의 구멍이 있다. 전면에
‘常平通寶’, 후면상부에 ‘賑’ 후면하부에는 ‘二’자 새겨져 있다. 常平通
寶 當二錢은 숙종 5년(1679. 9)에 상평통보의 규격을 달리하여 발행한
대형전으로서 종래의 초주단자전과 구별하기 위해 뒷면하부에 ‘二’자
를 표시하여 발행한 화폐이다. 뒷면의 구멍 위에 쓰인 ‘賑’은 주조 관청
이름으로서 ‘賑恤廳’에서 제작했음을 나타내며, 구멍 아래의 숫자는 주
조번호를 표시한 것이다.
Ⅴ. 調査成果 및 意義
현재까지의 발굴조사결과 靑銅器時代~朝鮮時代에 이르는 다종다양
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로는 주거지 19동, 수혈 1기
등 총 20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구릉의 비교적 평탄한 면과 경사지
에서 등고선의 유동방향과 동일하게 조성되었으며, 평면형태는 장방형
(11동)이나 방형(4동)이며, 내부시설로는 노지, 벽구, 주혈, 바닥처리
등이 확인되었다. 노지는 무시설식으로 평면형태가 원형 또는 타원
형에 가까우며 주거지의 중앙이나 한쪽방향에 편재하고 있다. 벽구는
대체로 1~3면을 둘렀으며, 주혈배치의 정연성은 16호 주거지에서만
확인가능하다. 바닥처리는 불다짐, 다짐, 생토를 그대로 사용한 것 등
이 비슷한 비율로 확인되는데, 주거지의 깊이가 깊어 풍화암반이 드러
난 7,16호 등에서는 바닥에 점토를 깔아 불규칙한 면을 정지하였다. 벽
면에서 소토벽체가 확인된 주거지는 1,2,15호 3기뿐이며, 특히 15호 주
거지는 상부에서부터 집석시설이 확인되었다. 3호 장방형 주거지는 작
업공으로 추정되는 수혈이 유구 중앙부에서 확인되었으며 내부에서 석
촉, 할석 등이 출토되었다. 저장혈로 추정되는 수혈은 3호 주거지의 양
단벽 모서리에서 각 3개씩이 대칭적으로 확인되었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이중구연구순각목단사선문토기, 이중구연
단사선문토기, 이중구연구순각목문토기 등 이중구연토기의 출토비율
이 높으며, 그 외 단사선문, 공열문등이 출토되나 공열문은 극히 희박
하다.
석기는 주걱칼, 석검, 석촉, 석도, 석부, 지석 등이 출토되었다. 주걱
칼은 하키스틱모양으로 외면을 합인으로 처리하였으며 크기도 다양하
다. 속초 조양동, 강릉 포남동,방내리 등 주로 영동지방에서의 출토 예
가 알려져 있으나 이번 조사에서 4점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그리고 석
검, 석촉은 현재까지의 연구결과 古式으로 편년되는 유물들이다. 이러
한 연구결과를 참고 할 때, 영동지방과의 관련성이 유추되며, 울산 등
영남 동해안 지역, 인접하는 院洞 3地區 遺蹟3), 虎洞遺蹟4) 보다도 시
기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조사구역을 포함한 원동, 호동, 인덕동 일대는 청동기시대의 대
단위취락이 분포하였음을 재차 확인하였으며, 분포범위, 시기적인 취
락의 이동, 다른 지역과의 관계 등에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국시대 유구는 분묘 12기로서 수혈식석곽묘, 횡구식석곽묘, 횡혈식
석실묘 등이 확인되었다. 분묘의 장축방향은 대개 정남북향이며, 두침
석 및 이식 등의 출토로 두향을 알 수 있는 것들은 대개 북향이었다. 묘
광형태는 수혈식석곽묘,횡구식석곽묘는 장방형, 횡혈식석실묘는 정방
형이다. 매장주체부내의 시상석은 소형의 역석 또는 할석으로 상면전
체를 깔았다. 유물부장양상은 수혈식,횡구식석곽묘는 주로 북단벽 부
분에 주유물부장공간을 마련하여 유개고배, 단경호, 부가구연장경호
등을 부장하였으나 5호분은 동장벽 측부에 부곽을 설치하여 유물을 부
장하였다. 횡혈식석실묘는 薄葬이며, 1,2차에 걸쳐 유물을 부장하였
다.
분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토기이며, 철제소도자, 이식 등이 소
량 출토되었다. 수혈식,횡구식석곽묘는 유개고배set, 단경호, 부가구연
장경호 등이 기본적으로 출토된다. 부가구연장경호, 고배 등의 유물들
은 모두 신라 후기양식토기 단계에 해당하는 기종들로 6C 전,중엽으
로 편년된다.
이상과 같은 분묘군의 조사결과, 조사구역 밖의 남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에는 대규모 분묘군이 존재함을 재차 확인하였으며, 이 분묘군의
시기도 추정가능하게 되었다.
고려시대 유구는 분묘 3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2호 분묘는 기와로서
관 뚜껑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구조로서 고려시대 분묘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시대 유구는 건물지, 수혈, 구, 주혈군, 아궁이, 분묘 등이 확인되
었는데, 건물지, 수혈, 주혈군, 아궁이 등은 현재로서는 정확한 성격파
악이 곤란한 실정이다. 그러나 주혈에서는 목심하부에서 常平通寶 당
이전이 출토되어 건물지 및 주혈의 조성시기가 추정가능하다. 그리고
구는 총 4열이 중복 및 증,개축에 의해 순차적으로 조성되었음이 밝혀
졌다. 구의 용도는 경사면(西→東)에 따른 굴착 및 流水에 의해 이동된
것으로 생각되는 잔 자갈돌의 분포 등에 의해 배수구로 추정된다. 이러
한 구는 당시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의미하나 과연 무엇을 위한 용도인
지는 불확실하다.
< 청동기시대 주거지 속성표 >, < 삼국시대 분묘 속성표 > ,
< 고려,조선시대 분묘 속성표 > 는 첨부 파일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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