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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덕신리 유적 발굴조사

2002-12-13 13:16:00
조회 2774
울진 덕신리 유적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Ⅰ. 調査槪要 ․ 유 적 위 치 : 경상북도 울진군 원남면 덕신리 477-3전, 475-10전, 475-4임 일원 ․ 조 사 기 간 : 2002년 6월 24일 ~ 2002년 12월 23일 ․ 유 적 성 격 : 신라시대 고분 83기, 조선시대 토광묘와 건물지 등 ․ 조 사 면 적 : 4,500㎡ ․ 조 사 기 관 : 안동대학교 박물관 ․ 조사의뢰기관 : 부산지방 국토관리청 Ⅱ. 調査經緯 덕신리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는 2000년 8월 2일부터 8월 26일에 걸쳐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국도 7호선 주변의 원남 면 덕신 1리 일명 ‘후리’마을 앞 계단식 밭에서 무문토기편을 수습하였 다.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구의 분포 범위를 확인하고자 시굴조사 를 2001년 11월 16일에서 12월 26일까지 약 40여일에 걸쳐 실시하였 다. 시굴조사 결과 총 116개의 시굴갱에서 22기의 석곽과 17곳의 조선 시대 건물지 유구, 미상의 석열유구 10곳을 확인하였다. 유물로는 무문 토기편과 어망추 등 청동기시대 유물을 수습하였다. 이 지역의 유구들 은 조선시대 유구, 미상의 석열유구, 석곽 순으로 2~3겹 중첩되어 있 음을 확인하였다. 2002년 4월 발주처인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는 본격적인 공사 시행 에 앞서 울진-영덕간 4차선 확장공사 구간내에 위치하는 덕신리 유적 에 대한 발굴조사를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였고, 문화재청의 매 장문화재 발굴허가(2002-232호)를 얻어 2002년 6월 24일부터 2002년 12월 23일까지 약 6개월간에 걸쳐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1차적으로 능선부에서 석곽분 34기와 토광묘 12기를 조사하 였으며, 계곡부에서 조선시대 건물지 4곳을 조사하였다. 조선시대 건물 지는 초가집터로 적심석의 일부와 아궁이 15곳이 남아 있었다. 건물지 는 경작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 원형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계곡부의 건물지 조사를 완료하고 2차적으로 그 아래 퇴적토를 1.5m~ 2m 가량 제거하였다. 그 아래로 석열이 능선 하단부를 따라 북서에서 남동으로 이어져 있었으며 석열 주변과 그 아래에서 49기의 석곽분이 추가로 노출되어 이를 조사하였다조사 결과 석곽분은 83기, 토광묘 12 기, 조선시대 건물지(아궁이 유구 포함) 19곳, 미상의 석열유구 6곳 등 의 유구를 조사하였다. 출토 유물로는 장경호, 단경호, 유개고배 등 토 기류 697점, 철도자, 화살촉, 철부 등 철기류 42점, 금동귀고리 등 금동 류 16점, 백자류 5점, 기타 17점 등 총 777점이다. Ⅲ. 考古學的 環境 울진지역의 선사시대 유적지 가운데 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아직 확 인 되지 않았다. 현재 가장 오래된 시기의 것으로는 신석기시대로 추정 되는 집단매장유적인 후포리유적을 들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울 진 후포리유적』, 1991. 이곳에서는 180점의 돌도끼와 다수의 인골이 확인되었는데, 특히 돌도 끼는 대부분이 넓적하고 길이가 긴 형태로서 함경도지방과 춘천 교동 혈거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신석기시대 후기의 유적이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고인돌과 몇몇 토기 및 석기 출토지가 있다. 고인돌은 북면 고목2리 고인돌떼, 북면 나곡2리 고인돌, 근남면 진복 리 고인돌, 북면 신화리 고인돌, 북면 부구리 고인돌이 있다. 그 외 울 진읍 고성리 출토 석촉, 근남면 구산리 성류굴내 출토 석검편 등이 있 다. 윤용진,「동해문화권지표조사-고고유적편-」,『경상북도문화재지 표조사보고서』Ⅱ, 경상북도, 1981, 26~32쪽; 안동대학교,『울진의 문 화재』, 울진군, 1991, 33~36쪽. 그리고 호월리 고인돌, 부구리 고인돌떼, 수곡리 고인돌, 삼산리 고인 돌, 척산리 고인돌, 봉평리 고인돌 등이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울진군 문화유적 지표조사」,『年報』8, 1998, 94~95쪽. 이 외에도 수산리, 구산리, 정명리, 신화리, 화성리, 명도리 등에서 다 수의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기성면 울진공항 공사지 역 내에서도 청동기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중앙문화재연구원,『蔚珍空 港 建設地域內 蔚珍 烽山里遺蹟』, 2002. 역사 유적으로는 죽변면 봉평리의 울진봉평신라비(국보 242호)를 비롯 하여 북면 덕천동 고분군, 울진읍 읍남1리 고분군, 기성면 마산동 고분 군, 근남면 노암리 고분군, 원남면 매화리 고분 안동대학교 박물관, 「울진 매화리 고분 발굴조사 약보고서」, 2001. 12. , 기성면 삼산리 고분군, 죽변면 봉평리 고분군, 평해읍 거일리 고분 등 이 있다. Ⅳ. 調査內容 1. 고분군 가. 개요 금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고분은 신라시대 수혈식 석곽분 83기이다. 이들 고분은 일부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 내부 조사가 완료되어 분포 상태 및 축조방식, 출토 유물을 파악하였다. 장축 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으로 거의 일치하고 있어 능선에서 계곡 부까지 긴 열을 형성하고 있다. 고분군을 위치에 따라 그 분포를 나눠 보면 능선 정상부 사면에서 6기, 경사면에서 23기, 계곡부에서 54기가 확인되었다. 봉분은 모두 남아있지 않았으며 토층의 상태로 보아 석곽 축조시 봉분 은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사면의 축조는 경사면과 평행하게 북동벽이 높고, 남서벽이 낮아 축조시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흔적을 찾 아볼 수 있다. 묘광은 능선 정상부에 위치한 고분과 능선 사면의 위쪽에 위치한 고분 에서 확인되었다. 연황색 마사토 층을 파고 벽면을 쌓은 다음 암갈색 부식토로 채워 넣었다. 그 밖의 계곡부 고분의 묘광선은 토질이 점토 질 사질토로 되어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축조 방법은 검은색 부식토 층을 수직으로 파고 벽면을 쌓은 다음, 다시 검은색 부식토를 채워 넣 은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에 따라 검은색 부식토 층은 깊이를 달리하 고 있는데 경사면은 지표에서 50㎝~100㎝아래에서, 계곡부는 150㎝~ 200㎝아래에서 확인되었다. 석곽의 크기는 대략 너비 70㎝, 길이 250㎝, 높이 60㎝를 내외하며, 큰 것은 너비 117㎝, 길이 346㎝, 높이77㎝ 정도이고, 작은 것은 너비 36 ㎝, 길이 138㎝, 높이 34㎝정도이다. 평면 모습은 대부분 장방형으로, 한쪽 단벽이 호형을 이루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축조 방식은 장축의 양 벽과 단축의 한벽은 대부분 길이 60㎝, 너비 30 ㎝, 두께 30㎝ 내외의 비교적 큰 돌을 1단으로 맞물리게 세로쌓기 한 후 그 위에 길이 30㎝, 너비 20㎝, 두께 15㎝ 내외의 작은 돌을 중첩하 여 축조하였다. 나머지 단축 벽은 큰돌이나 판석 1개 또는 2개를 세워 쌓기하여 벽을 만들었고 일부는 그 위에 작은 돌을 가로쌓기로 보충하 였다. 평면상 단축의 한벽이 호형인 경우는 대부분 가로쌓기 한 벽에 서 나타난다. 벽면의 규모는 대부분 3~5단이나 7~8단에 이르는 것도 있으며 일부 는 비교적 큰돌이나 판석 1개를 세워 벽면을 구성한 것도 있다. 일부 고 분에서는 벽석의 틈새를 작은 산돌과 강돌을 고인 것도 있다. 바닥의 시상은 대부분 얇고 편평한 강돌을 이용하였으나 일부는 산돌 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크기는 대부분 길이 10㎝, 너비 8㎝, 두께 2㎝ 내외이나 큰 것은 길이 20㎝, 너비 10㎝, 두께 4㎝, 작은 것은 길이 3 ㎝, 너비 2㎝, 두께 0.7㎝ 정도의 돌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전면에 조밀하게 깔았으나 일부는 장축의 양 끝이나 한쪽에 부장공간 을 따로 두고 바닥돌을 깔지 않은 것도 있으며, 부장품 아래에만 깔지 않은 것도 있다. 나. 분류 현재까지 조사된 수혈식 석곽분은 총 83기이다. 이들 중에서 크기와 형태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분류대상의 석곽을 선정하는데 는 다음 기준에 의해서 했다. A형 : 길이가 318㎝이상이면서 너비대 길이의 비가 1 : 3 미만인 장방 형으로 이들은 고분군의 중심에 있으며 성인 1인을 매장하고 양 단벽 에 부장품을 2열 이상 안치할 수 있는 비교적 큰 석곽들이다. B형 : 길이가 309㎝이상이면서 너비 대 길이의 비가 1 : 3 이상인 세장 방형의 석곽들이다. C형 : 길이가 309㎝미만이면서 220㎝이상인 것으로 성인 1인을 매장 하고 양 단벽에 부장공간이 1~2열 있는 석곽이다. 규모가 작아 장방형 과 세장방형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D형 : 길이가 195㎝이하에 속하는 석곽들로 성인 1인을 매장하기에 는 다소 작은 규모 이다. E형 : 그밖에 별도의 특징을 갖고 있는 형식이다. 이상의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석곽분은 모두 61기이며 훼손되어 원 형을 알 수 없는 22기의 석곽분은 제외하였다<표1 참조>. (표는 첨부 파일을 참고하십시오.) 각 분류별 대표적인 석곽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3호 석곽분 남동쪽으로 낮아지는 능선 정상부 사면의 해발 23m지점에 위치한 수혈 식 석곽분이다. 석곽의 장축 방향은 N-60°-W로 능선의 축과 평행이다. 석곽은 표토를 20cm 가량 제거한 아래에서 벽석의 상부가 노출되면서 확인되었다. 석곽의 크기는 너비 120cm, 길이 318cm, 높이 36cm 이 다. 벽면은 부정형 강돌의 편평한 면을 벽면으로 하여 양 장벽과 단벽 을 맞물려 쌓았다. 네 모서리는 각지게 처리하여 전체적인 형태는 장방 형이다. 석곽의 바닥에는 길이 10cm, 너비 8cm, 두께 1.5cm 내외로 거 의 일정한 크기의 강돌이 바닥 전면에 조밀하게 깔려있다. 유물은 석곽의 양 단벽쪽에서 장경호 1점, 단경호 6점, 고배뚜껑 10점, 고배 13점, 귀걸이 2점 등 총 32점이 출토되었다. 2). 48호 석곽분 남동쪽으로 낮아지는 능선의 말단 계곡부 해발 11m지점에 위치한 수혈 식 석곽분이다. 석곽의 장축 방향은 N-20°-W로 능선의 축과 평행이다. 석곽은 1차 조사시 확인된 석열의 아래에서 석곽의 적석 상부가 노출되 면서 확인되었다. 석곽의 크기는 너비 117cm, 길이 346cm, 높이 77cm 이다. 벽면은 부정형 산돌을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번갈아 하여 양 장 벽과 단벽을 맞물려 쌓았다. 남벽은 3단이며 동․서벽과 수직을 이룬 다. 서벽은 편평한 면을 잘 맞추어 벽면을 고르게 쌓았으며 5단이다. 동 벽은 4단이나 북벽과 인접한 곳은 토압에 밀린 모습이다. 북벽은 4단이 며 호형으로 쌓았다. 전체적인 형태는 장방형이다. 석곽의 바닥에는 길 이 11cm, 너비 8cm, 두께 2cm 내외의 강돌과 길이 6cm, 너비 5cm, 두 께 2cm의 작은 강돌이 바닥 전면에 조밀하게 깔려 있었다. 유물은 석곽의 양 단벽쪽에서 장경호 4점, 단경호 3점, 고배뚜껑 6점, 고배 7점, 환두대도 1점, 방추차 1점등 총 22점이 출토되었다. 3). 36호 석곽분 남동쪽으로 낮아지는 능선의 말단 계곡부 해발 7m지점에 위치한 수혈 식 석곽분이다. 석곽의 장축 방향은 N-10°-W로 능선의 축과 평행한다. 석곽은 조선시대 건물지 유구의 60cm 가량 아래에서 석곽의 개석 상부 가 노출되면서 확인되었다. 석곽의 크기는 너비 66cm, 길이 358cm, 높 이 124cm 이다. 개석은 모두 5개의 부정형 괴석으로 이루어 졌는데 가 장 큰 것은 길이 135cm, 너비 93cm, 두께 35cm 이고, 가장 작은 것은 길이 105cm, 너비 40cm, 두께 25cm 이다. 가장 큰 개석에는 지름 4~ 5cm 가량의 성혈이 3개 발견되었다. 벽면은 부정형 산돌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번갈아 가며 양 장벽과 단벽을 맞물리게 하여 동시에 쌓았다. 벽면은 길이 30cm, 너비 12cm, 두께 13cm가량의 산돌을 이용하여 7~8단으로 축조하였으며 간혹 길 이 58cm, 너비 42cm, 두께 25cm 가량의 비교적 큰 돌을 이용하기도 하 였다. 전체적인 형태는 장방형이다. 석곽의 바닥은 북쪽 단벽 50cm를 제외한 전면에 길이 13cm, 너비 6cm, 두께 3cm 가량의 산돌을 조밀하 게 깔았다. 유물은 석곽의 남쪽 단벽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현재 작업 중으로 유물 의 정확한 수량은 알 수 없지만 육안으로 장경호 2점 단경호 2점, 고배 14점, 고배뚜껑 5점, 철제 4점, 금동 귀고리 2점 등 모두 29점이 확인되 었으며 앞으로의 조사를 통해 더 많은 유물이 수습될 것으로 보인다. 4). 27호 석곽분 서북쪽으로 낮아지는 능선 정상부 사면의 해발 14m지점에 위치한 수혈 식 석곽분이다. 석곽의 장축 방향은 N-30°-W로 능선의 축과 평행이다. 발굴 전 도굴이나 경작 등으로 인한 석곽의 훼손은 없었으나 석곽 바 로 옆으로 민묘가 형성되어 석곽 주위의 유구가 훼손되었다. 석곽은 표토를 20cm 가량 제거한 아래에서 적석이 노출되면서 확인되 었다. 석곽의 크기는 너비 74cm, 길이 260cm, 높이 50cm이다. 벽면은 부정형 괴석의 단면을 벽면으로 하여 양장벽과 단벽을 맞물려 쌓았으 며 벽석과 벽석 사이의 공간에 10cm 전후의 작은 산돌을 채워서 보강 하였다. 전체적인 형태는 장방형이다. 석곽의 바닥에는 길이 10cm, 너 비 8cm, 두께 1.5cm 내외로 거의 일정한 크기의 강돌이 바닥 전면에 조 밀하게 깔려 있었다. 유물은 석곽의 양 단벽쪽에서 장경호 5점, 고배뚜껑 4점, 고배 4점, 귀 걸이 1점, 방추차 1점, 연질단경호 1점이 출토되었고 석곽의 주변에서 장경호 1점 고배 5점이 출토되어 총 22점이 출토되었다. 5). 57호 석곽분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말단 계곡부 해발 11m지점에 위치한 수혈 식 소형 석곽분이다. 석곽의 장축의 방향은 N-30°-W로 능선의 축과 평 행이다. 석곽은 조선시대 건물지 유구의 50cm 가량 아래에서 벽석 상부가 노출 되면서 확인되었다. 석곽의 크기는 너비 55cm, 길이 158cm, 높이 38cm 이다. 벽면은 부정형 석재를 일부는 세우고 일부는 눕혀서 쌓았다. 석 곽의 바닥에는 일정하지 않은 크기의 납작한 강돌이 바닥전면에 조밀 하게 깔려 있었다. 유물은 석곽의 양 단벽쪽에서 단경호 2점, 고배 1점등 총 3점이 출토되 었다. 6). 55호 석곽분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말단 계곡부 해발 11m지점에 위치한 수혈 식 소형 석곽분이다. 석곽의 장축 방향은 N-30°-W로 능선의 축과 평행 이다. 석곽은 조선시대 건물지 유구의 50㎝ 가량 아래에서 석곽의 개석이 노 출되면서 확인되었다. 석곽의 크기는 너비 52cm, 길이 112cm, 높이 37cm이다. 벽면은 넓적한 부정형 강돌을 세워 1단으로 축조하였으며 그 위에 두 개의 개석을 올렸다. 양 단벽은 길이 54cm, 너비 34cm, 두 께 16cm가량의 비교적 큰 돌 1개를 세워서 1단으로 축조하였으며 양 장벽의 북동쪽과 남서쪽은 그 위에 길이 32cm, 너비 8cm, 두께 24cm가 량의 비교적 작은 돌을 올려 2단으로 하였다. 석곽의 내부에는 옹관이 들어 있었으며 바닥돌은 깔지 않았다. 유물은 합구식 옹관 2점으로 남단벽쪽에 치우쳐서 출토되었다. 다. 출토 유물 덕신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766점으로 많은 양을 수습하였으 나 대부분이 토기류이고 일부 철기류(41점)와 금동류(16점) 등이 확인 되었다. 현재 유물은 세척과 분류작업이 진행중이다.     2. 조선시대 건물지(아궁이) 유구 조사지역의 남쪽부분 계곡부에서 조선시대 건물지 4곳과 아궁이 유구 15곳을 확인하였다. 조선시대 건물지는 초가집터로 적심석의 일부와 아궁이 13곳이 남아 있었다. 건물지는 경작으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 원형을 확인하기 어려웠다<표2 참조>. (표는 첨부 파일을 참고하십시오.)     3. 토광묘 조선시대 토광묘로 총 12기가 확인되었다. 모두 조사지역의 동쪽 경사 면 유연민묘 부근에 집중되어 있으며 일부 토광묘들은 석곽분(19호․ 20호)을 파괴하고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장축방향은 대부분 북 동-남서이나 정북향도 있다. 토광묘 중 크기가 가장 큰 것은 길이 175 ㎝, 너비 65㎝, 깊이 123㎝이고 작은 것은 길이 130㎝, 너비 60㎝, 깊이 40㎝이다. 유물로는 옹기 2점, 자기 5점, 청동 숟가락 1점이다<표3 참 조>( 첨부 파일 참조) Ⅴ. 調査成果와 意義 현재까지 발굴조사 한 결과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석곽분 과 토광묘, 조선시대 초가집 아궁이 유구 등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 다. 청동기 유적과 관련되 무문토기편은 석곽 내부와 주변에서 일부 수 습되었을 뿐 유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는 경사가 비교적 완만 한 곳에 석곽의 토광을 만들면서 파괴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 결과 신라시대 석곽분은 83기, 조선시대 토광묘 12기, 초가집 아 궁이 유구 15기이다. 이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울진 덕신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후포리 유적과 봉산리 유적에 이어 울진 지역에서 이루어진 세번째 발굴조사이다. 그러나 신라시대 의 고분 발굴조사로는 최초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 지역의 고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2. 덕신리 유적에서 확인된 신라시대 석곽분은 총 83기이다. 대부분의 석곽들은 세장방형으로 한 쪽 단벽이 둥근 호형인 것이 특징이며, 봉분 이 없다는 것과 개석이 없는 무개석식이라는 점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 다. 장축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향이다. 금동귀고리, 철도자 등의 출 토 형태로 보아 두향을 알 수 있는 것은 대개 남동향이었다. 묘광의 형태는 대부분 세장방형이며 일부는 장방형이다. 매장주체부 내의 시상석은 작은 강돌을 전체 또는 대부분 깔았다. 목관을 사용한 흔적이 없으며 세장방형으로 보아 시신을 그대로 안치한 것으로 추정 된다. 유물의 부장 양상은 주로 남동 단벽 부분에 유물부장 공간을 마련하여 비교적 크기가 작은 유개고배, 단경호, 파수부완, 발 등을 부장하였다. 북서 단벽에는 비교적 크기가 큰 장경호, 단경호 등을 부장하였다. 유물은 수혈식 석곽분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유개고배set, 단경호, 대부장경호 등이 기본적으로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모두 신라 후기 의 토기양식 단계에 해당하는 기종들로 5C 말엽에서 6C 중엽으로 편년 된다. 일부 인화문이 있는 토기는 7C 초로 편년된다. 3. 이상과 같은 석곽분의 조사결과, 능선 위에서 능선 사면을 걸쳐 계곡 부까지 길다랗게 이어지는 대규모 고분군을 확인하였으며 장축방향과 고분의 위치로 보아 국도 7호선 아래로 이어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 다. 4. 조선시대 유구는 건물지, 아궁이, 토광묘 등이 확인되었다. 현재로서 는 이들 유구의 정확한 성격파악이 곤란한 실정이다. 다만 아궁이 내부 에서 우상문 암키와편, 삼구분창해파문 암키와편이 출토되어 건물지 는 조선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지와 아궁이는 중첩되어 있어 초가집터가 여러번 중복되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토광묘에서는 옹기 2점과 조선 후기 백자 5점, 청동숟가락 1점이 출토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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