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산청 지곡사지
2002-05-22 15:41:00
조회 2446
산청 지곡사지 시굴조사 회의자료
1. 現況
○ 유적명 : 산청 지곡사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225호, 2000. 8. 31지정)
○ 소재지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내리 산 772-4번지 일대
(42,559㎡)
○ 기 간 : 2002. 3. ~ 5. 22일 현재(실작업일수 45일)
○ 조사기관 :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 조사목적 : 조사대상범위내 매장유구의 확인을 위한 시굴조사
○ 연혁 및 관련기록
- 創建說話 : 新羅 法興王代 應眞스님이 國泰寺 創建
(秋波 泓有스님<18C>이 지은 「智谷寺 龍華堂記」)
- 高麗初 光宗代 眞觀禪師 釋超스님을 智谷寺 住持로 特詔 임
명, 주석(949~959) (「智谷寺眞觀禪師碑」)
- 또 다른 高僧인 慧月大師가 10C중반 이후 智谷寺 中興
-在智異山有高麗禮部尙書孫夢周所撰,僧慧月及眞觀二碑
(『新增東國輿地勝覽』 山陰縣條 )
- 朝鮮前期 山陰地域 선비들의 학문도량으로 이용
(南冥 曺植ㆍ吳健 등이 大講論會를 수시로 개최)
- 朝鮮後期 寒巖性眼ㆍ秋波泓有에 의하여 다시 중흥기를 맞음
- 性眼ㆍ泓有의 碑와 부도가 憲宗11년(1845년)에 세워짐
-1912~13년경 조선총독부의 전국사찰등록조사시 智谷寺의 이름
이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말경에 廢寺된 것으로 추정됨
- 현재는 40여년전에 건립한 寺刹이 남아있음.
○ 위 치
-「在縣南十里楡山下」(『山淸縣邑誌』, 1871년)
- 산청읍에서 남쪽으로 약 4㎞떨어진 熊石峯(1099m)의 북쪽 골짜기
아래에 입지한 내리 지곡부락에서 서남쪽으로 500m에 위치
- 인근에 斷俗寺址, 栗谷寺, 靈巖寺址등 신라말~고려전기의 대표적
인 사찰이 분포
○ 현 상
- 서남쪽과 북동쪽에 높고 가파른 산을 앞뒤로 두고 熊石峯에서
길게 이어져 내려온 계곡을 감싸 안으며 사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현재는 근세부터 지역민에 의해 계단식으로 넓게 개간된 논과 밭
으로 형성되어 있음.
- 지곡부락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도로우측에 智谷寺의 寺域
入口임을 나타내는 洗塵橋碑(1716年 建立, 세진교는 石築의 虹橋, 1936
년 洪水로 유실)가 있고, 그곳을 올라 40여년전에 축조된 내리제의 안
쪽계곡을 끼고 있는 넓고 얕으막한 구릉지상에 유적이 위치함
- 북동편 산자락에 길이 70여m, 높이 2.5m 정도의 石築이 남아 있으
며 그 위로 金堂址로 추정되는 건물의 礎石(3칸×3칸)과 佛像臺座의 基
壇石이 노출되어 있음.
- 내리제 동남쪽과 서편 산자락근처에 高麗前期로 추정되는 龜趺 2
기가 파손된 채 남아 있고, 개간된 논에는 水槽 2기와 다수의 礎石이 흩
어져 있음.
-부도골로 불리우는 뒤편 야산중턱에 高麗前期의 石塔 1기가 심하
게 파괴되어 있고 深寂寺로 오르는 골짜기내에도 石鐘形浮堵2기와 碑
(性眼ㆍ泓有)가 남아 있음.
- 金堂址와 나란한 서편에는 또 다른 건물의 礎石이 남아 있으나 금
번 시굴조사대상에서는 제외되었는데, 일제시대까지 사각형 樓閣式 建
物이 있었다고 한다.
2. 調査內容
- 추정 金堂址를 중심으로 주변 약 2,000평에 대한 제초작업을 실시
후, 佛像臺座받침중심선에서남으로5m지점에기준점을설정하여, 동서
방향과 남북방향으로 각각 20m간격으로 폭 4m의 시굴Tr.를 설치, 건
물지의 확인과 磁器類, 銘文瓦, 암막새, 石佛片등 약 100여 점의 유물
을 수습함.
가. 重要遺構
(1) 추정 金堂址
- 길이 70m, 높이 2.5m 규모의 石築 築臺가 축조되어진 곳의 상단
부에 건물의 礎石과 佛像臺座 基壇石이 노출, 시굴조사결과,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추정 金堂址를 확인중에 있다.
- 주칸은 정면어칸 370㎝이고 좌우협칸 330㎝이며, 측면은 어칸 360
㎝ 협칸 210㎝ 정도이다. 佛像臺座는 건물의 정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
며 基壇石은 187㎝×173㎝의 方形이며 3枚로 결구되었으나 1枚가 제위
치에서 이탈되어 있다.
- 金堂址내의 부식토 제거과정에서 연질납석제 佛像片으로 추정되
는 다량의 石材가 출토되었고 塑造의 螺髮片이 다수 수습되었다.
(2) 추정 건물지 1
- 金堂址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경작토와 부식토를 제거하자 표토하
50㎝ 깊이에서 상층유구가, 지표하 90㎝에서 선대유구가 노출되었는
데, 사역의 가장 서편 S50W120Tr.내 지표하 90㎝에서 가장 이른 시기
의 유구로 판단되는 석조의 추정 배수시설이 확인되었다.출토유물은통
일신라~고려초기의평와편등이있다.
- 또 다른 트렌치에서는 3개의 礎石(礎石間의 거리는 280㎝전후)
및 부분적으로 수키와와 직경 20~30㎝ 크기의 강돌을 이용하여 만들
어진 10여m의 石列이 노출되었는데, 성격은 不明이다. 상단의 초석열
과 하단의 석열은 같은 축선(남북)을 이룬다.
- S60W100 트렌치에는 성격불명의 석조유구 사이에 소토층 및 숯알
갱이 주변으로 저경 34㎝ 크기의 옹기가 동체부가 깨어진 채 직립하
여 묻혀져 있는데, 저장용기로 판단된다.
- 유구의 노출과정에서 10C代의 유물로 편년되는 해무리굽 靑磁片
과 청동제숟가락 1점 등이 출토되었고 그밖에 상층에서 기와, 자기류
등의 유물이 혼재되어 수습되었다.
(3) 추정 건물지 2
- 金堂址의 남서방향에 위치한 Tr.내에서 남북방향으로 길게 연결된
石列遺構와동서방향으로 주칸 380㎝ 내외의 方形礎石 2기 등이 확인
되었다.
- 부식토층에서 8C~9C代로 편년되는 中國 荊州窯系 해무리굽 白
磁片이 수습되었고,
- 礎石의 동편 건물지에서는 불에 탄 목재와 炭化米가 다량 발견되
었는데, 이로 보아 곳간과 부엌이 있는 요사채의 일부로 생각되며, 朝
鮮後期의 磁器와 瓦片등이 다량 수습되었다.
(4) 추정 건물지 3
- 金堂址의 남쪽아래 낮은 대지상에서 확인된 것으로 方形의 礎石3
기와 머리크기의 강돌들로 시설한 유구가 배수시설과 같은 형태로 노
출되었는데 성격과 기능 등은 불명이다.
-유구의노출과정에서高麗初의것으로 편년되는 蓮花ㆍ寶相文 수막
새, 다량의 磁器片 등이 수습되었다.
(5) 추정 건물지 4
- 推定金堂址 石築 築臺의 동남편 아래 최하단 Tr.에서 확인된 유구
로서, 크기 50㎝전후의 강돌을 이용하여 남북방향의 직선으로 2열의 石
列이 노출되었고, 한변이 90㎝에 이르는 方形의 自然礎石 2개가 확인되
었으며 石列의 안쪽으로는 雜石을 채워둔 것으로 보아 건물의 내부로
판단된다.
- 유구의 노출과정에서ꡐ智谷寺ꡑ銘 및 嘉靖十五年(1536년)銘 線條
文 銘文瓦 등과 朝鮮時代 磁器片이 다량 출토되었다.
(6) 추정 건물지 5
- 金堂址의 서편에 위치한 Tr.내 동남편으로 積心石으로 보이는 石
群이 일부 확인되었다. 동편에는 온돌의 아궁이시설로 추정되는 시설
이 있고 동서방향으로 5m정도 연결되고 있는 石列과다량의 강돌이 채
워진 유구가 있다.
-특히, 積心石주변에서는 10C代의 靑磁 해무리굽편과 蓮花文수막
새, 鬼目文 등 高麗前期의 와당이 출토되었고, 아궁이시설이 있는 유구
에서는 梵語(옴 字)가 찍힌 조선시대의 瓦當과 다량의 磁器片이 수
습되었다.
나. 出土遺物
(1) 瓦塼類
-조사구역의전범위에걸쳐서다량의기와편이수습되었는데‘智谷寺ꡑ
銘文瓦 등을 포함하여 草花文, 鬼目文, 蓮花ㆍ寶相文수막새, 無紋塼
등 40여점이 출토되었다.
- 특히, 統一新羅時代에 유행한 무단식수키와 1점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中國系 磁器와 함께 寺刹의 初創을 8C~9C代경으로 올려볼 수 있
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銘文瓦 (△은 缺字, ○는 不明, /은 行바뀜)
․「嘉靖十五丙申」
․「○熙四十三年/甲○○月日山陰智谷寺/△△○施主裵文赤兩
主/供養施○比丘世眼/布施○朴仲善兩主/○○崔大行崔連鶴/○○○○
○比丘/造手雙學△△/化主幸稔供養主祖○/別座○吾○比丘/○○○施
主」
․「別座△△弘淨/山陰南面/智異山國/泰寺△△」
․「△八年○智谷寺」
․「○德九年甲○」
- 또한, 無紋樣의 塼돌이 여러점 出土되었는데, 대부분 크게 파손된
상태여서 원래의 형태와 크기는 알 수가 없으나 두께는 4㎝ 내외이다.
(2) 磁器類
- 시굴Tr.내의건물지로추정되는곳에서다량의자기류가수습되었는
데, 中國 荊州窯系 해무리굽 白磁片 및 國內産 10C代 해 무리굽 靑磁
片을 비롯하여 高麗全時代의 靑磁, 朝鮮前期의 粉靑 磁器, 17~19C代
의 白磁類등 다종다양한 磁器類가 출토되었다.
(3) 佛像類
- 推定 金堂址의 石佛臺座 基壇石 주위에서 출토되었는데, 塑造의
螺髮片과 菩薩像의 두발장식편, 그리고 破佛된 연질납석편들이 대량으
로 수습되었다.
- 특히, 다량의 佛石片은 모두 3㎝~10㎝크기로 破碎되어 있으며 佛
像臺座 基壇石의 주위에 반원을 그리며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보아 의
도적인 破佛 또는 儀式과 관련된 행위의 결과로 추정된다.
(4) 石造物
-크기와 형태가 유사한 4기의 石製 水槽가 조사대상구역내에서 확
인 되었는데, 크기는 대체로 규모는 길이 180㎝, 너비 120㎝, 깊이 70
㎝ 정도이다. 이 중 1기에는 丙申年에 기록한 조성기가 새겨져 있어서
水槽의 제작연대를 寺域의 入口에 소재하는 洗塵橋碑의 조성연대와 같
은 朝鮮 肅宗42年(1716年) 경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또한,2軀의龜趺가사역의서편과남쪽에위치하여있는데 모두 龜頭
와 碑, 離首는 유실된 상태이다. 眞觀禪師와 慧月大師의 碑로 판단되는
데, 龜趺의 龜甲文, 蓮花文, 魚龍文 등 문양의 기법은 이를 뒷받침해주
고 있다.
3. 調査成果
-‘智谷寺ꡑ銘 막새의 수습으로 지곡사의 실체 확인
- 추정 금당지의 구조 파악 및 납석제불상의 존재 확인
- 각종 건물지의 노출과 중국계 백자, 초기의 고려청자 및 무단식 수
막새 등의 수습으로 智谷寺의 초창연대 추정이 가능한 자료 확보
4. 討議事項
- 발굴된 유구 및 유물에 대한 학술적 자문
- 유적의 향후 관리와 관련한 자문
- 기타 발굴조사와 관련된 사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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