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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관북리 백제왕궁지

2002-10-04 09:21:00
조회 2201
부여 관북리 백제왕궁지 시,발굴조사 Ⅰ 조사개요 1. 조사명 : 부여 관북리 백제왕궁지 시,발굴조사 2. 조사범위 : 시굴조사 8,991㎡, 발굴조사 8,161㎡ 3. 조사기간 : 2001. 10. 15 - 2002. 10. 5 4. 신청인 : 부여군수 Ⅱ 조사경과 및 조사내용 1. 조사경과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은 백제시대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1982년 부터 1992년도까지 7차례에 걸쳐 충남대학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 여 백제시대 도로(남북대로 및 동서소로) 및 건물지, 연지 등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기존의 발굴성과를 바탕으로 백제시대 왕궁터의 실체를 확인하고 향후 발굴자료를 기초로 하여 이 지역의 백제 왕경유 적에 대한 정비복원에 목적을 두고 부여군의 의뢰를 받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발굴조사지역을 ‘가’지구와 ‘나’지구로 나누고 시굴조사지역 을 ‘다’지구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백제시대 것으로 판단되 는 유구를 비롯하여 근래의 건물지까지 확인되었으나 백제시대 것으 로 판단되는 유구의 경우 출토범위가 매우 협소할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역이 근래의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파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유구의 정확한 범위와 성격을 파악하는데 어려운 실정이다. 2. 조사내용 1) 개요 조사지역 전체가 근래의 복토층으로 두껍게 덮여있던 상태였으며 복 토층 하층의 유구 또한 근래의 구조물과 건축행위 등으로 인하여 심하 게 파괴되고 교란된 상태이다. ‘가’지구에서는 조선시대의 석축배수로와 건물지, 통일신라(고려시 대)시대의 건물지관련 석렬유구, 백제시대의 수혈주거지 및 주공, 축 조 시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석렬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며 연지 주 변에서는 조선시대 우물 2기를 비롯하여 백제시대 우물 1기와 석렬유 구 장방형의 석축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나’지구에서는 동서방향의 석렬을 비롯한 굴립주건물지와 구상의 유 구 그리고 저수조 및 그 남쪽에서 장방형 소형유구 등이 확인되었으며 정형화된 유구의 형태는 아니지만 내부에 슬러지를 비롯한 도가니편 등이 포함되어있는 흑색 재층이 확인되었다. 2) 유구 〈‘가’지구〉 ① 연지 충남대학교에 1983년도에 조사하고 난 나머지부분을 조사하였다. 조 사결과 동서장축의 장방형구조로 규모는 동서길이 10m, 남북길이 6.2m, 깊이 120㎝내외이며 거칠게 다듬은 돌을 5~6단 쌓아서 조성하 였다. 입수구는 충남대에서 발굴조사시 확인한 수키와를 이용해 연지 북쪽에 만든 배수관형태의 시설물로 보이며 출수구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바닥은 생토면 그대로이며 서쪽부분에 동서방향의 턱이 조 성되어 있다. 유물은 백제시대 토기편 및 일본토기, 기와편, 목간 등이 수습되었 다. ② 우물 총3기로 모두 원형이며 연지의 서쪽에서 확인되었다. 북쪽의 것만 백제 시대 우물로 보이며 나머지는 조선시대 우물로 판단된다. 백제시대의 우물로 보이는 것은 판석의 석재를 길게 세운 후 그 위에 2단의 돌을 더 쌓은 형태를 하고있으며 내부에서 백제시대 기와가 출토되었다. 지 름은 약 80㎝내외, 깊이는 70㎝정도이다. 그리고 이 우물의 서쪽부분에 서 장방형의 석조구조물이 확인되었는데 유구의 안쪽으로 석재의 치석 된 면을 맞추어 쌓았으며 내부에는 돌들이 채워져 있는 상태이다. 서쪽 부분은 파괴되어 유실되었고 남북 폭 72㎝, 동서잔존 길이 104㎝이다. ③ 주거지 ‘가’지구 연못 서쪽 부소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상면에 위치하 는데 주거지의 남쪽부분은 파괴되어 남아있지 않다. 생토면을 파고 조 성한 수혈주거지로 형태는 남북장축에 장방형이고 규모는 잔존깊이 20 ㎝내외, 동서 폭 330㎝, 잔존남북 길이 360㎝이다. 관련 시설물로는 주 거지벽을 따라 조성된 주공들이 일부확인 된다. 유물은 바닥면에서 백 제기와편이 확인되었다. ④ 주공 다수의 주공이 생토면에서 확인되었는데 대부분이 주거지 주변에 위 치한다. 형태는 원형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타원형과 방형도 일부 확인 된다. 지름 20㎝내외부터 100㎝내외까지 존재하며 지름이 30㎝~40㎝ 내외인 것이 가장 많다. 상호 간에 뚜렷한 정형성을 보이는 것은 없으나 규모가 큰(지름50㎝ 이상의 주공)것 중에서 남북2열, 동서3열의 형태를 하고있는 주공들이 확인된다. ⑤ 석렬 남북으로 이어지는 석렬 3기와 동서로 이어지는 석렬 1기를 비롯해 다수가 확인되었으나 파괴되어 극히 일부만 남아있는 것이 대부분이 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석렬은 서로 축조시점이 다른 상태로 제일 동쪽 의 것(잔존길이 12.3m)은 3단으로 외면을 동쪽으로 하여 축조하였으 며 나머지는 1단으로 각각 동쪽(잔존길이 6.9m)과 서쪽(잔존길이 12m) 을 외면으로 하여 시설하였다. 관련유구를 확인 할 수 없어 규모와 성 격은 알 수 없으며 축조시기 또한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주변지 역에서 통일신라시대 기와를 비롯한 백제시대 기와 및 토기편이 확인 되고 부분적으로 백제시대 문화층이 확인되고 있어 늦어도 통일신라시 대에는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동서석렬(잔존길이 7.6m)은 주거지 북쪽 평탄면에서 확인되었는데 생토면 위에 시설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의 양 끝단에서만 각각 3 개의 석재가 확인될 뿐 나머지부분은 모두 유실되고 시설흔적만 남아 있다. 석렬의 남쪽에 잇대어 숯이 포함된 붉은색의 소토층이 남아있고 그 내부에서 백제시대 기와가 확인되고있어 백제시대에 축조된 유구 일 가능성이 있으나 역시 잔존상태가 불량하고 주변지역의 파괴가 심 하여 정확한 성격과 규모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나’지구> ① 구상유구 8개가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등고선과 평행하게 동서방향으로 진행한 다. 폭은 최대 250~70㎝내외로 다양하며, 잔존깊이는 30~85㎝내외이 다. 가장 늦게 형성된 구상유구는 잔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해서 평면에 서도 확인되었는데, 단면에서 확인된 너비와 깊이는 각각 110㎝와 50㎝ 이며 길이는 19m가 현재 노출되었다. 이 구상유구는 철재(鐵滓)가 다 량으로 포함된 부정형의 목탄층을 파괴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나’지구 의 중앙 북쪽에서 발견된 1기의 구상유구는 내부조사가 완료되었다. 잔 존길이는 8.2m이고 깊이는 25㎝내외이다. 내부에는 굵은 모래가 퇴적 되어 있어서 물이 흘렀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남북방향의 구상유구 도 1기가 발견되었다. ② 굴립주건물지 2기가 확인되었는데 1호 굴립주건물지는 ‘나’지구 북동편에서 발견된 건물지로 현재 3개의 주공이 등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혈의 크기 는 동서 100㎝내외, 남북 120㎝내외이며, 중심부 목심의 크기는 직경 40㎝내외이다. 주공간의 거리는 약 360㎝이다. 2호 굴립주건물지는 ‘나’지구 동서석렬 북쪽에서 발견된 건물지로 현 재 5개의 주공이 등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혈의 평면은 계란형이 며 2~3차례에 걸쳐 보수된 흔적이 층위상 확인되었다. 수혈의 크기는 동서 100㎝내외, 남북 80㎝이며, 중심부 목심의 직경은 20㎝~40㎝내외 이다. 주공간의 거리는 약 350~360㎝내외이다. ③ 장방형 저수조 풍화암반층 및 전대의 백제 퇴적층을 삭토한 후 아무런 시설 없이 그 대로 이용했다. 동서 700㎝, 남북 610㎝내외이며 60㎝가량의 깊이가 잔 존하고 있다. 수조의 동벽에 수키와 토기호 저부로 구성된 입수시설이 확인되었다. 내부에는 회청색의 니질토와 굵은 모래, 가는 모래가 퇴적 되어 있었다. 기와, 토기뚜껑, 자배기류, 시루, 완, 흑요석편 등이 출토 되었다. ④ 장방형 소형유구 저수조 남쪽에서 발견되었다. 근세에 파괴되어 바닥부분만 잔존한 다. 동서 230㎝, 남북 190㎝내외의 크기로 수혈을 파고 회청색의 점토 로 외곽을 채웠다. 그리고 점토의 안쪽으로 석축을 쌓았다. 현재는 1단 만 일부 잔존하고 있다. 내부에는 붉은 소토가 일부 채워져 있었고 기 와를 비롯하여 토기류가 퇴적되어 있었다. ⑤ 석축열 중앙부 동서뚝의 남쪽지역에서 2열의 석축열이 조사되었다. 북편의 석축열은 동서로 24m가 노출되었다. 남편의 석축열은 북편 석축열과 290㎝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축조되었다. 북편석축열의 중앙부에서 남 쪽으로 직각을 이루면서 약 1m가량 꺾이는 부분이 보이는데, 이 꺾이 는 부분이 남쪽으로 더 연장된다면 남편의 석축열과 맞닿게 되는 것으 로 보인다. 남편 석축열은 현재 5m내외가 잔존하고 있다. 3) 출토유물 백제시대 기와편, 토기편, 도가니편, 목간 등의 목제품과 금속유물 그 리고 통일신라시대 연화문수막새, 당초문암막새 등이 출토되었는데 백 제시대 유물은 대부분 연지내부 퇴적토와 ‘나’지구 에서 출토되었다. ① 연지 내부 출토유물 토기는 주로 호류와 대부완류 이며 내기벽이 타날되어 있는 일본의 수혜기 1점과 완형에 가까운 도가니도 출토되었다. 기와는 백제시대의 것으로 연화문막새가 부착된 완형의 수키와와 태극문막새가 부착된 수 키와를 비롯한 많은 양의 기와편이 확인되었다. 목제품은 주로 목간이 나 목간형태의 목제품 등이며 나무인형의 다리로 보이는 유물도 1점 출 토되었다. 금속류로는 개원통보 3점과 청동제품, 벼루 등이 출토되었 다. ‘나’지구에서는 기와류, 토기류, 도가니류, 철재(鐵滓) 등이 출토되었 다. 출토된 토기중 장방형 소형유구의 내부에서 출토된 완의 경우 바닥 에 ‘合’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合‘자가 음각된 완은 장방형 소형유구 외 에도 ‘나’지구 서쪽지역의 백제층을 제토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1점이 발굴되었다. 도가니는 돌로 만든 것과, 흙으로 구운 것, 심발형토기를 이용한 것의 세 종류가 출토되었다. 철재는 유적 전체에서 출토되기도 하지만, ‘나’지구 동북편의 중심에는 철재와 목탄이 집중적으로 깔려 있 다. Ⅲ. 조사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발굴조사 유구를 통하여 사비백제 왕궁터의 실체는 파악할 수 없었으나 연지를 비롯한 굴립주건물지, 구상유구 등과 저수 조 등의 공방관련 유구, 그리고 이 지역을 이용하기 위해 자연지형에 대한 정지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통해 사비백제의 왕궁이 자리하고 있 었던 주변구역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되며 후대의 유구를 제외하 고라도 백제시대에도 유구들 또한 매우 복잡하게 중첩되고 교란된 것 으로 보아 이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이용이 백제시대 이후에도 꾸준하 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사비백제시대의 왕궁터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조사가 이루어지 지 않은 지역과 조사중인 지역에 대한 정밀한 발굴조사 및 자료의 축적 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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