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용인 壬辰山城
2001-06-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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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맺음말
본 박물관에서는 용인시 수지읍 임진산성에 대한 긴급발굴조사를 실시
하여 이미 확인된 총통 2점 이외에 임진왜란 당시 용인 광교산전투에
서 조선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무기류,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류,
백제시대의 타날문토기류, 조선시대의 중국제 명문도자기, 瓦류 등이
출토하였다.
용인 임진산유적의 조사내용을 정리해 볼때, 청동기시대에서부터 초기
백제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복합유적으로 특히 입지조건상 해
발 129m 고지에 유적이 형성되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최초의 유적 형
성이후 한국전쟁까지 계속적으로 전쟁과 관련된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중요성에 비추어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유적이 정식조사 이전
에 대부분 훼손되어 정확한 문화상을 비롯한 제반자료들이 멸실되었다
는 점이다. 이를 통해 각종 개발로 인한 문화유적 파괴를 사전에 방지
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요구되는지를 알 수 있다. 확인된 유구 가운데
조선시대 성벽의 일부에 해당하는 성토층은 각종 공사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어 그 전모를 밝힐 수 없지만 성토층 외부에서 확인된 구시설과
더불어 조선시대 관방시설 축조의 한 자료로써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성토층 하부에서 확인된 백제시대의 주거지는 이목작업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되어 서벽과 바닥면 일부가 확인되었는데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무문토기류, 반월형석도, 석제방추차 등과 더불어 임진산 일대
에 일찍부터 인류의 거주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
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 우선 총통은 그 기본적인 형태와 크기가 조선 명종
(1545~1567)대에 주조된 보물 1233호 玄字총통과 비슷하여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엣 기타 무
기류와 일괄로 출토되어 더없이 귀중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 大明宣
德年製(1426~1435), 長春佳器(1522~1566)銘 중국제 도자기 등을 통해
볼 때 임진산성이 일시적인 목적 아래 축조되었다기 보다는 이 일대의
관방체계 하에 일정한 역활을 수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이번 조사의 성과와 의의로는 우선 도로개설과 조경을 위한 이목
작업으로 심하게 훼손된 유적에서 이렇듯 소중한 자료가 출토되어 유
적보존과 관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되었다는 점과 발굴사상 최
초로 임진왜란 당시 무기체제를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일괄로 출토되었
고, 그것도 문헌에 격전지로 알려졌던 역사의 현장에서 정식발굴을 거
쳐 출토되어 조선시대 무기발달사와 전투방식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결
정적인 학술자료를 확보하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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