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강릉 홍제동 분묘군
2001-07-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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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고 찰
이상에서 강릉 홍제동 고려~조선시대 분묘군에 대한 발굴조사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 분묘군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오래 전부터 집
중적인 도굴의 피해를 받아 일부 유구를 제외하고는 매납유물의 출토
량은 매우 빈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구는 고
려~조선시대의 토광목관묘 15기와 골호묘 1기 등 전체 16기이며, 출토
된 유물은 자기류(청자, 백자, 질그릇), 구슬류, 청동류, 철제류 등으로
구분된다.
1. 유 구
유구는 구릉의 정상부(해발 91.3m)에서 거의 동쪽으로 완먄히 뻗어내
린 능선의 중간부인 해발 76~69m상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능
선의 상부와 하부에는 조성되지 않았다.
유구의 장축방향은 대체로 동-서향으로 일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편서 42~82도 사이로 모두 등고선 방향과 직교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枕向은 잔존하는 목관의 위치에서 볼 때 모두 西枕으로 하여 구릉의 고
지를 향하고 있다.
유구의 구조는 묘광 내부에 목관과 관못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토광목
관묘로 판단되며, 능선의 경사면을 적당히 이용하여 묘광을 L자형으
로 굴착하고 바닥을 편평하게 정지하여 목관을 안치한 형태이다. 그런
데 고려 청자와 도기편이 출토되어 고려시대 무덤으로 확인된 1호묘와
15호묘의 경우 평면 세장형으로 묘광의 깊이는 매우 낮은 상태로 확인
되었는데, 백자류를 매납한 조선시대 2호묘와 5호묘의 묘광 깊이와는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또한 무덤의 길이에서도 고려시대 무덤들은
2m내외로 조선시대 무덤의 규모보다 작은 편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조영한 무덤들은 고려시대 무덤들보다 묘광을 넓고 깊게 파서 목관을
안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유구가 중복되어 선후관계를 알 수 있는 무덤들로는 1호묘(고려)
와 2호묘(조선), 12호묘(고려?), 13호묘(조선?) 그리고 14호묘(고려?)
이다.
그리고 무덤들 중에 7호묘와 같이 도기장신호안에 화장한 뼈를 넣고 청
자대접을 이용해 뚜껑으로 덮어 작은 묘광안에 매납한 형태는 매우 특
이한 것이다.
2.유 물
유물은 대다수의 유구가 도굴의 피해를 입어 전체적으로 출토량이 빈
약하다. 유물이 배치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무덤은 2호묘와 5호
묘 그리고 15호묘로서 2호묘와 5호묘의 경우에는 장벽 상부에 붙여서
유물을 포개서 매납한 상태이고, 5호묘는 바닥과 장벽에 기대어 매납하
였다. 그리고 청동합은 머리치나 발치쪽의 단벽 모서리부분에 매납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철제류와 구슬류들은 바닥의 목관 주변에서 출토
되었다.
무덤내부와 주변, 그리고 교란된 지표면에서 수습된 유물들은 고려청
자, 질그릇, 백자, 철제류, 구슬류 등으로 구분되는데, 그 편년은 고려
시대 무덤들은 A.D. 13~14C, 조선시대무덤들은 A.D. 15~16C로 추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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