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새천안번영로 白石,業成洞유적
1999-11-30 00:00:00
조회 1056
3. 유적의 성격과 편년
새천안 번영로라는 도로의 개설구역에서 조사도니 백석동,
업성동 유적은 조사범위가 도로범위라는 한정된 구역에 국
한되었지만, 청동기시대 및 이후 신라 고려시대의 생활유
적, 분묘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 유적의 조사 결과
는 백석동 유적의 경우 기왕에 조사된 백석동 주거유적의
분포범위가 좀더 확대시켰다는 점과 더불어 당시에 사용된
토기의 내용을 보다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집자
리의 구조를 좀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얻었
다는데 주목할 수 있다. 그리고 업성동 유적도 백석동 유적
과는 달리 청동기시대 중기 원형집자리가 확인됨으로써 우
리 나라 중기무문토기 문화의 확산과 전파과정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분석과 이해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자료를 얻
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특히 업성동 유적의 주거지 출토유물에서 공열문토기편이
보인다. 이는 기왕에 중서부지방에서 조사된 송국리유형의
유적, 즉 중기 무문토기시대로 편년되는 유적에서 구순각목
문토기편이 출토되는 예는 있었으나, 공렬문이 시문된 토기
편은 그 출토 예가 상당히 희박한 상황이었다. 이에 비추
어 업성동의 송국리유형의 주거지에서 공열문 토기의 출토
는 인근의 백석동유적의 존재를 고려하더라도 일단 시기차
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일단 유적이 입지한 안성천-금강
유역이라는 지리적인 측면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을 것
으로 판단된다. 즉 안성천-금강유역에서 송국리유형의 주거
지가 확인되는 경우 두가지의 특성을 지적할 수 있는데 하
나는 전형적인 송국리 유형의 문화상을 보이는 유적과, 또
다른 하나는 주거지의 형태는 중기인 송국리 유형의 것이자
만 유물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특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구
분함이 그것이다. 예로 전자는 주로 금강유역에 인접해 있
는 유적들로 공주 산의리, 안영리, 태봉동, 부여 송국리 등
이 있으며, 후자는 금강이북의 안성천 인접지역인 천안 업
성동, 남관리, 대흥리, 아산 신달리, 군덕리유적을 들 수
있다. 이에 업성동 유적은 안성천 인근지역의 유적으로 전
기 무문토기문화의 특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송국리 유형의 원형집자리의 분포범위
가 확대되면서 송국리 문화로 대표되는 중기무문 토기 문화
의 북한계선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이는
천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안성천-곡교천-錦江중상유역 일대
가 우리 나라 무문토기 문화에 있어서의 중요한 입지를 차
지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부각시켜 주는 자료이기도 하
다.
석실분에서 출토된 棺釘은 고분에 목관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공통으로 출토된 철제가위는 그 부장양
상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즉 2호 석실묘는 頭部
방향으로 가위의 손잡이를 나란히 하여서 부장한 반면에, 3
호 석실묘에서는 시신의 허리부분을 가로질러 서쪽에 가위
의 손잡이가 향하도록 하여서 부장하였다. 철제가위는 하나
의 철편을 구부려서 병부와 선단부를 모두 제작한 것으로
병부의 상단은 철편이 교차하여 원형을 이루고 있다. 모두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가위이다. 청동제뒤꽂이는 2호 석실묘
에서 출토된 반면에, 3호 석실묘에서는 청동제뒤꽂이 대신
에 청자가 출토되었다.
조사된 유적의 편년문제는 다소 어려움이 없지 않다. 물론
백석동 유적의 편년은 큰 어려움은 없다. 이는 이미 백석
동 유적의 조사결과 대체로 이 유적은 기원전 9세기대를 중
심년대로 하면서 기원전 10세기에서 8세기의 어간에 조성
된 유적으로 인정되기에 그러하다. 여기에 금번에 새롭게
조사된 백석동 유적내의 주거지에서 채집된 시료를 탄소측
정한 결과 이전의 것과 큰 차이가 없이 기원전 9세기대의
조성시기가 확립되고, 출토유물에서도 이전의 것과 큰 차이
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업성동 유적이다. 그것도 석실묘와 같은 상대비교
가 가능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주거지의 경우 평면상으로
송국리 유형의 것으로 판단되지만, 유물이 적고, 절대년대
를 추정할 수 있는 시료도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
서 여기에서 업성동의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일단 중기에 속
하는 것이란 잠정 결론에 이르면서 참고로 주거지내에서 수
습된 시료의 측정결과는 기원전 640년대라는 추정치가 있
어 조성시기가 그 어간에 속하지 않는가 여겨진다.
이외에 업성동의 석실묘의 축조연대는 구체적인 자료라 보
기 어렵지만 1호 석실묘의 경우 출토된 印花文甁과 鉢의 형
태로 미루어 볼때, 8세기 말엽으로 추정되며, 2,3호 석실묘
는 조질의 청자소접과 가위 등으로 미루어 14세기 중엽으
로 추정된다.
요컨대 이번에 조사도니 백석동 지역의 세장방형, 장방형
주거지, 그리고 소형유구는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 전기인
기원전 10세기에서 8세기의 어간에 조성된 유적으로 볼 수
있고, 이들 유적은 94,95년의 조사로 확인된 약 80여기의
주거지군 속에 포함된 것으로 대단위 군락속에 포함된 것임
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업성동의 유적은 백석동 유적보다
는 늦은 시기의 것으로 문화양상도 차이가 있는 것이며, 소
규모의 단위집단이 생활 후 남긴 흔적으로 대체로 기원전 7
세기 혹은 6세기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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