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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城 梧弓里·文村里遺蹟

1999-1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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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맺 음 말 국도 38호선(장호원~앙성간)도로 음성 오궁리·문촌리 일 대 유적의 조사를 통해 원삼국시대 주거지 3기와 삼국시대 이후의 석실분 7기, 소형 석곽 3기, 토기요지 1기, 草幕유 구 1기, 소형수혈유구 2기, 토광묘 38기 등 모두 55기의 유 구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토기 49점, 석기 5점, 청동제 유 물 21점, 토제품 5점, 철기 46점, 자기 1점 등 모두 127점 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유구와 유물의 조사로 고고 학적 공백으로 남아 있던 음성지역의 문화상을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게 되었다. 본 장에서는 각 시기별 유구의 특징 과 유물의 성격을 살펴 맺음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1.원삼국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오궁리유적에서 3기가 조사되었다. 1 호 주거지는 말각방형으로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내부 에 불규칙하게 주혈이 배치된 형태로 주혈간의 간격을 살 펴 상부구조를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벽체 를 따라 폭 15cm 내외의 壁溝가 돌려져 있으며, 구 내부에 는 소형의 주혈이 불규칙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주 혈이 벽체를 이루었던 부분으로 추정되며, 壁溝는 배수와 관련된 기능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벽구가 끊기고 있는 남서모서리 부분에 출입구 시설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호 주거지는 평면 형태가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서장벽 이 유실되어 전체적인 양상은 파악하기 어렵다. 동장벽의 벽체를 따라 균등하게 주혈이 배치되어 있다. 3호 주거지는 부분적으로만 어깨선이 확인되었는데, 주혈 이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장벽을 따라 벽구의 흔적 이 보인다. 이러한 유구의 특징은 천안 장산리 주거지, 여주 연양리, 대전 노은동 등에서 조사된 주거지와 유사하다. 유물은 1호 주거지에서 硬質無文土器와 타날문단경호가 공반되고 있으며, 2호 주거지에서는 연질의 타날문단경호 1 점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 조합상은 천안 장산리, 여 주 연양리, 대전 노은동 등의 유적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 이며, 인근의 하천리 D지구와 하천리 F지구, 수양개 II지구 유적 등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이는 남한강 수계를 따라 이 루어지던 문화전파의 양상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오 궁리유적이 사곡천과 청미천을 따라 남한강 수계로 이어지 고 있어 그 지류를 따라 동일한 문화상을 지닌 유구들이 조 사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궁리 1호 주거 지의 경우 천안 장산리에서 보이는 유구 및 유물의 형태와 유사하며, 대체로 기원후 2세기 중엽으로 편년하고 있다. 2. 석실분 석실분은 오궁리 유적에서 1기, 문촌리 나지구에서 5기, 문촌리 다지구에서 1기 등 모두 7기가 조사되었다. 오궁리 4호분은 등고선에 직교되게 축조되어 있으며, 장방 형 현실에 가운데 시상이 갖추어진 횡구식석실분으로 문촌 리 나지구나 다지구에서 조사된 횡혈식 석실분과는 구조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본 장에서는 문촌리 일대에서 조사된 횡혈식 석실분을 중심으로 유구의 구조적 특징과 유물의 성 격을 살피고자 한다. 고분의 입지는 대체로 능선의 정상부나 주능선에서 뻗어 나온 가지 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은 문촌리 다-1호분의 경우 능선 방향에 직교되게 축조되어 있으나 문 촌리 나지구에서 조사된 석실분은 대체로 능선의 경사방향 과 일치하도록 축조되어 있다. 묘광의 단면형태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나-1·2·3호의 경우 생토층인 풍화암반을 L자로 굴착하 고, 벽석의 일부가 지상에 노출되게 축조한 반지하식의 형 태이다. 특히 문촌리 나-3호는 경사면 위쪽을 L자로 굴토하 고, 굴착한 흙을 경사면 아래쪽에 쌓아 바닥을 정지한 후 벽석을 축조하였다. 반면 문촌리 나-7·8호와 문촌리 다-1 호 석실분은 풍화암반층을 ┖┙자 형태로 굴착한 후 벽석 을 축조한 지하식의 구조이다. 이는 고분의 입지와 관련된 것으로 가지능선의 사면에 위치한 前者는 경사면 위쪽을 주 로 굴착하고 아래 부분은 제토한 토사를 이용하여 정지한 후 벽석을 축조하였으며, 後者는 정상부에 위치하여 4면을 굴착하고 벽석을 축조하였다. 석실의 평면형태는 문촌리 나-1호와 2호, 3호는 경사면 아 래쪽의 부분적으로 유실되어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장방형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며, 문촌리 나-7호와 8호, 다-1호의경우 평면비가 각각 1:1, 1:1.04, 1:1.15로 방형 에 가깝다. 특히 문촌리 7호의 경우 축조 단계에서부터 석실 중앙에 間壁을 세워 석실 내부를 2개의 공간으로 분할한 雙室墳으 로 석실이 축조시에 추가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쌍실분은 중부내륙지역에서 초출하는 구조로 이 지역 석실분의 다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주목된다. 오궁리 4호 석실분은 횡구식 석실분으로 횡구부는 남단벽 쪽에 위치하며, 남단벽의 일부인 우측부 최하단석 1단부터 閉鎖部로 사용하였다. 문촌리 나-1호와 나-2호에서는 유실 로 인해 연도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실내부에서 보았을 때, 나-3호는 우측에, 나-7호는 중앙에, 나-8호는 좌측에 각각 연도가 축조되어 있다. 이는 동일한 지역에서 다양한 양식의 유구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러 한 양식상의 차이는 유구의 위치 및 규모와 상관관계를 가 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1호 석실분은 우측에 연도가 축 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동남쪽 벽석의 훼손이 심해 정확 하지 않다. 추가장은 나-8호를 제외한 5기에서 확인되었다. 나-8호는 1개의 시상이 설치되어 있어 1차례에 매장이 이루어진 것으 로 보인다. 나-1호와 나-2호의 경우 남서장벽을 따라 1차 시상을 만들고, 추가장이 이루어지면서 1차 시상에 할석을 1~2열 덧붙여 2차 시상을 축조하였다. 나-3호는 양장벽쪽 에 각각의 시상을 설치하였으며, 1차 시상 상부에 할석을 덧붙여 3차 시상을 설치하였다. 쌍실분인 나-7호는 동실에 2개, 서실에 1개 등 3개의 시상이 만들어져 있어 최대 3차 에 걸쳐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1호는 관을 직접 매납한 것으로 보이며, 유물의 출토 위치로 보아 최 소 2차 이상의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실분의 대부분이 훼손된 상태로 조사되어 봉분의 흔적 을 확인할 수 없었다. 벽석은 주로 판상할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나, 오궁리 4 호는 자갈돌을 이용하여 벽체와 시상을 축조하여 횡혈식 석 실분과는 차이를 보인다. 벽석은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천정부가 남아 있지 않은 관계로 정 확한 천장구조를 알 수 없으나, 다-1호의경우 개석이 함몰 된 것으로 보이는 판상할석들이 석실 내부 중앙에서 집중적 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나지구에서 조사된 석실분의 벽체 가 대체로 하단석으로부터 점차 내경하게 축조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충주 루암리 고분군에서와 같이 궁륭상 의 천장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대체로 6세기 중엽으로 편년되는 단각고배가 중심 을 이루고 있으며, 토기가 출토된 유구는 나-1호, 나-2호, 나-3호, 나-4호, 다-1호 등이다. 나-1호와 나-2호, 나-3호 의 1차시상, 나-4호 석곽묘에서는 배신이 깊은 경주식 단각 고배와 壺류 등 6세기 중후반대의 유물이 주로 출토되고 있 다. 나-3호는 3차 시상 유물은 인화문이 있는 대부합과 병 이 출토되었으며, 형식상 7세기 중엽 이후의 유물로 판단된 다. 이는 나-3호 석실이 1세기의 기간을 두고 추가장이 이 루어 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금번에 조사된 석실분은 오궁리 4호만이 횡구식이며, 나머 지는 횡혈식석실분이다. 오궁리 4호 횡구식 석실분도 이 지 역에 횡혈식 석실분이 도입된 이후에 축조되었거나, 적어 도 횡혈식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던 세력에 의해 축조된 것 으로 보인다. 문촌리에서 조사된 석실분은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중엽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고 있음, 이는 6세기 중 엽이후 신라의 중원 진출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관련된다. 5 세기 중반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신라 영내 군사주둔과 내 정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립화를 추구하면서 한동안 경북일 원을 지해고 있던 고구려군을 소백산맥이북으로 구축하며 서 북진경략이 점차적인 성과를 이루게 된다. 그 결과 진흥 왕 14년(553년)충주지역에 州를 설치하고, 군주를 파견하기 에 이르른 것으로 보인다. 문촌리 일대에서 조사된 석실분 은 신라의 북진 경략의 결과이며, 신라가 충주를 거쳐 중서 부지방으로 나아가게 되는 지리적 루트를 해결할 실마리로 중요성이 인정된다 하겠다. 3. 토기가마 토기가마는 오궁리유적에서 1기가 조사되었다. 가마의 평 면은 장타원형이며, 굴뚝부는 확인되지 않았고, 아궁이와 소성실로 구분할 수 있다. 아궁이는 양 벽쪽으로 할석을 세 워 축조하였으며, 바닥은 수평에 가깝게 만들어지다가 30 도 정도의 불고래를 따라 소성실로 연결된다. 소성실의 경 사는 약 12도 정도이며, 소성실 전면에서 고르게 토기가 출 토되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붉은 불먹은 흔적이 확인되기 는 하였으나, 유리질화 되지는 않았다. 벽면의 상태로 보 아 가마는 단발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마의 내부에서 출토된 토기는 대접류를 중심으로 호류 와 동이류 등 실생활 용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나말여 초 토기 생산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현 재 요 벽체에 대한 분석의뢰 중에 있으며, 그 결과가 나오 면 가마의 축조 시기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리라 본다. 이상의 오궁리·문촌리 일대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고고 학적 자료가 전무하였던 음성지역에서 이루어진 조사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다양한 유구와 유물의 조사로 2세기 에서 10세기대에 이르는 시기의 음성 뿐 아니라 중부내륙지 역 문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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